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실화소설|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의 최후

동토의 붉은 별 바렌츠해에 지다

  • 진병관·김경진·신재호·전쟁소설 데프콘, 동해 및 남북 공동저자

동토의 붉은 별 바렌츠해에 지다

3/5
- 하강!

신호와 함께 구조선 니콜라이 치커 호의 선체 하단에 열려 있는 통로로 잠수종(Diving Bell)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윈치가 풀리며 강철 케이블에 연결된 잠수종이 어두운 바닷속으로 서서히 빠져 들어갔다.

구조선에 탑재된 잠수함 구조장비는 크게 볼 때 두 가지로 나뉜다. 니콜라이 치커 호에 탑재된 것과 같은 잠수종 방식은 비교적 간단한 구조장비로 모선에 케이블로 연결된 상태에서 작동한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므로 모선에서 잠수종의 움직임을 직접 조정한다.

반면에 특수하게 제작된 심해잠수정(DSRV)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잠수함처럼 자체동력으로 움직이며 비교적 소형이다. 작기 때문에 선체는 더욱 견고하게 제작되었고 일반 군용 잠수함보다 훨씬 깊이 잠수하는 것이 가능하다.

러시아 해군은 세 종류의 심해잠수정을 보유하고 있는데 서방측이 프리즈(PRIZ)라는 별명을 붙인 Project 1837급 잠수정과 베스터(Bester)라는 별명이 붙은 Project 1855(MIR) 잠수정이 대표적인 심해잠수정이다. 프리즈는 2,000미터를 잠수할 수 있고 핀란드 라우마 레폴라사에서 제작된 베스터는 6,100미터까지 잠항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 잠수정을 탑재한 구조선 미하일 루드니츠키호와 알타이호는 14일이 돼야 구조작전에 투입될 수 있었다. 지금은 급한 대로 구조선 니콜라이 치커에 탑재된 잠수종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잠항지휘자는 내려가는 심도를 계속 확인하며 아래쪽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강력한 조명이 켜졌으나 시야는 무척 나빴다. 조류가 워낙 거세 해저에 가라앉아 있던 미세한 모래와 뻘 입자들이 흩뜨려져서 물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었다.

수중카메라에 비친 해저면의 영상은 케이블을 통해 구조선 니콜라이 치커호의 사령실로 연결되었고, 함장은 그에 따라 잠수종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했다.

잠수종 아래쪽에는 여압장치가 달려 있어서 쿠르스크의 탈출 해치에 정확히 도킹할 수만 있다면 그쪽 승무원들이 잠수종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 다만 잠수종에는 한 번에 10여 명밖에 탑승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어둠 속에서, 언뜻 보기에도 해저지형과는 명확히 다른, 거대한 인공구조물이 잠수지휘관의 시야에 들어왔다. 잠수지휘관은 갑판이 널찍한 잠수함 쿠르스크의 특징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다시 그 위에 낮고 도톰하게 솟은 사령탑을 찾은 잠수지휘관은 뱃머리 방향을 확인한 다음, 니콜라이 치커 호에 연락해서 위치를 조정해주도록 보고했다.

다시 잠수종이 서서히 움직이고 조명라이트가 이곳저곳을 비추며 카메라로 쿠르스크의 상태를 담아내는 중이었다. 쿠르스크와 가까워질수록 거대한 선체가 심하게 기울어 있는 것을 확인한 잠수지휘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쿠르스크는 선체 중심축을 기준으로 거의 60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리고 선체의 3분의 1 가까이가 뻘과 모래바닥에 파묻혀 있었다. 잠수종은 자체동력 없이 위쪽에서 내려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쿠르스크가 심하게 기울어진 상태에서는 이 잠수종을 잠수함 해치에 결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윽고 쿠르스크의 전방 해치에 접근한 잠수종이 해치를 확인하기 위해 조명을 비추기 시작했을 때였다. 검은 선체를 더듬던 카메라가 함수 부분에 커다랗게 뚫린진 파공을 발견했다. 엄청난 크기의 구멍이었다.

쿠르스크의 선체는 두 겹의 외판으로 이루어진 이중선체, 이른바 복각(復殼)구조이다. 그런데 그 파공은 견고한 안쪽 압력판까지 뻥 뚫려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선체 전방 구역은 보나마나 완전히 침수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선체 앞쪽의 탈출용 해치 주위도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참담하군.”

잠수지휘관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사령탑 바로 아래에 위치한 사령실도 그 구멍에서 가까운 거리였다. 침수를 확인한 잠수지휘관이 전방해치로 접근하는 것을 포기하고 간단한 보고와 함께 다시 위치이동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사령탑 쪽에서도 폭발 흔적이 있었다. 사령탑 바로 아래쪽에서 구멍을 확인한 잠수지휘관이 고개를 흔들며 관찰결과를 구조선의 지휘실로 보고했다.

“선체 앞부분에 커다란 파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3격실까지 완전 침수를 확인했음. 사령탑의 손상 정도로 미루어 제4격실과 5격실도 동시에 침수된 것으로 추정됨. 전방 1격실부터 4격실까지에 어뢰실과 사령실, 그리고 승무원 거주구역 등이 밀집돼 있으므로 승무원의 80퍼센트 정도가 폭발과 함께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됨. 생존 승무원은 후방구역에 있을 것으로 판단됨.”

선체의 손상정도는 절망적이었다. 쿠르스크의 사령탑 바로 위에는 승무원들이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있는 탈출용 캡슐(Escape Capsule)이 붙어 있는데 아마 그것을 사용할 시간조차 없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로운 파열음에 잠수지휘관이 몸을 흠칫거렸다.

- 깡깡깡! 까앙~ 까앙~ 까앙~ 깡깡깡!

무언가 단단한 물체로 쇳덩어리를 두들기는 것 같은 요란한 파열음이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든 잠수지휘관은 이내 그것이 쿠르스크에서 들려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확실히 모스 신호였다. 짧은 연속음(dot) 세 번은 ‘S’를, 긴 연속음(dash) 세 번은 ‘O’를 뜻한다. 소리는 바로 옆에서 나는 것처럼 너무나도 명확하게 들렸다. 물 속에서 소리는 공기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된다. 음파탐지기를 쓰지 않고도 잠수지휘관은 긴박하게 울려 퍼지는 S-O-S 신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절망적인 무력감으로 잠수지휘관이 송신기를 집어들었다. 수중마이크로 응답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로 옆에 구조대가 와 있음을 알려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잠수종으로는 구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잠수지휘관이 몸을 떨었다. 구조 경험이 있는 요원들은 그 구조요청 소리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구해달라고 발버둥치는 생존자를 당장 도와줄 수 없는 구조요원의 안타까움과 고통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쇠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는 승무원들의 울부짖음처럼 들려왔다.

8월 15일 01:42 러시아 해군 잠수함, K-141 쿠르스크(Kursk)

“부함장님, 구조대로부터 신호가 다시 끊어졌습니다.”

벽에 귀를 대고 있던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D. R. Kolesnikov) 대위가 자세를 바로잡으며 허탈하게 보고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장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에 들떠 있던 승무원들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부함장 두드코 중령 역시 실망으로 얼굴이 굳어 있었지만 부하들에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가 이곳에 아직 살아남아 있는 것조차 행운인지 불운인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낡은 인디아(India)급 구조잠수함에 탑승해본 적이 있는 두드코 중령은 누구보다 이곳 해역에서의 구조작업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구조잠수함이 탑재한 프리즈 심해잠수정도 이 정도 조류라면 해치로 도킹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두드코 중령이 외부출입용 해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천장에 붙어 있어야 할 해치는 고개를 약간만 들어도 보이는 위치까지 기울어져 있었다. 수심 100미터, 저 해치를 열고 거친 바렌츠해의 수면까지 떠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9격실의 해치는 엄밀히 말해서 탈출용 해치가 아니었다. 굳이 이 해치를 통해서 나가려면 일단 9격실의 내부압력을 바깥 수압과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 높은 수압 때문에 해치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압력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9격실까지 물을 강제로 침수시키는 방법뿐이었다. 게다가 탈출에 꼭 필요한 탈출복은 이곳 9격실에는 없었다.

‘차라리 사령실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두드코 중령이 중얼거렸다. 첫번째 폭발이 있을 때도 쿠르스크함이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가 원자로의 비상정지를 명하고 후방구역 승무원들의 탈출을 지휘하려고 사령실을 빠져 나온 직후 훨씬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고, 걷잡을 수 없는 침수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제 쿠르스크에 안전하게 남은 구역이라고는 선체 맨 뒤쪽 제9격실뿐이었다. 이곳에는 잠수함 쿠르스크에 직접 동력을 전달하는 기계실이고 전기추진장치인 대형 전동모터가 탑재되어 있었다. 다른 격실에 비해 가뜩이나 좁은데다가 선체가 기울어진 까닭에 남은 요원들이 자리잡고 앉기도 곤란한 지경이었다.

“부함장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다면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을 겁니다.”

콜레스니코프 대위가 부함장만 들으라는 듯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두드코 중령이 눈을 부릅뜨자 대위는 힘없이 입을 닫았다. 누구나 극한 상황에서는 마음이 약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원자로실과 터빈실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몸을 던진 승무원들을 모독하는 발언이었다.

예비전력만 있었더라면. 쿠르스크도 다른 잠수함과 마찬가지로 예비동력에 사용되는 발전기와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그러나 배터리실은 선체 중앙에서 앞쪽의 맨 아래층에 탑재돼 있기 때문에 이미 침수된 상태였다. 전력을 사용하려면 오직 원자로를 가동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기계실 뒤쪽에 있는 산소발생장치, 이 장치는 물을 전기분해해서 산소와 수소를 공급한다. 전력만 있다면 쿠르스크는 무제한으로 산소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그리고 압축펌프를 사용해서 내부에 들어찬 물을 밖으로 빼내는 것도 가능하다. 사고 이후에 침수된 7격실과 8격실은 만약 전력만 있었다면 고압공기로 물을 빼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치명적인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원자로를 정지시켜야 하는 것은 절대 명령이었다. 원자력 잠수함에 탑승하는 승무원들은 이런 경우에는 승무원들의 생존 가능성과 관계없이 원자로를 비상정지시키도록 훈련받는다.

물론 원자로는 잠수함이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면 센서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이 정지된다. 그러나 그 후에 원자로를 재가동할 수 있는 선택권은 인간인 승무원들에게 있다. 하지만 쿠르스크의 승무원들은 결국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건강을 그들 목숨보다 우선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두드코 중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폐가 약한 승무원들은 벌써부터 천식환자처럼 쇳소리를 내면서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느끼면서 옳은 행동이라고 믿었던 결정들이 그를 힘겹게 만들었다. 두드코 중령은 원자로를 다시 재가동하지 않은 결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그런 생각들을 떨쳐내며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군인이었다. 죽음에 맞선 상황에서도 기꺼이 죽어야 한다면 죽도록 훈련받았다. 그것이 임무를 위해서라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함장 랴친 대령은 이미 죽었지만 아마도 이 사고 때문에 앞으로도 두고두고 비난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유능한 함장이었다. 소련 시절 잠수함 지휘관들의 명문 코스라고 할 수 있는 VVMUPP(고등해군수중항해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한 랴친 대령은 두드코에게는 존경하는 선배이자 오랜 친구였다. 하긴 지금까지 잠수함 함장으로 남아 있는 사람 중에 무능한 자가 있을 리 없었다.

9격실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계속 높아지면서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시는 가슴이 무척 답답해졌다. 두드코 중령은 출항하는 순간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출항한 쿠르스크. 그로서도 잠수함을 타고 바다로 나오는 것이 지옥 같은 러시아의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축복이었다.

바다에서는 2년 넘게 신던 군화를 시장에 팔러 나오는 현역 대령을 보며 조국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을 통감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장교들한테 나눠주지 않으려고 화장실에 숨어 몰래 담배를 피우며 눈물지을 필요도 없었다. 바다에서는 강력한 핵무기를 싣고 당당히 항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러나 물론 자주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쿠르스크는 좋은 잠수함이었다. 750kg짜리 고폭약이나 500kt(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은 20kt) 위력의 핵탄두를 장착한 SS-N-19 대함미사일, 그것은 550km나 떨어져 항해하는 항공모함 같은 거함이나 심지어 막강한 미국의 수상함대조차 일격에 모조리 격침시킬 수 있는 강력한 대함미사일이다. 쿠르스크는 그런 미사일을 24발이나 적재했고, 고성능 어뢰도 24발이나 적재했다.

공격력에서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급 공격원잠이나 영국의 트라팔가(Trafalgar)급 공격원잠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 오스카급 원잠인 쿠르스크이다. 그 자부심이 이제 상처받은 것이다.

수병 하나가 망치를 집어들고 구조신호를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강철벽을 두들겨대고 있었다. 날카롭던 소리가 이제는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간격도 점점 늘어졌다. 어느새 그 소리마저 멈춘 것 같았다.

두드코는 가족과의 행복했던 기억을 다시 더듬어보려고 애썼다. 만신창이가 된 조국에서의 힘겨운 삶이었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 행복했던 순간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이 계속 혼미해져 아내 얼굴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졸렸다. 숨이 가빴다.

3/5
진병관·김경진·신재호·전쟁소설 데프콘, 동해 및 남북 공동저자
목록 닫기

동토의 붉은 별 바렌츠해에 지다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