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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 있는 문화이야기

‘민중 정치’ 꿈꾼 이단아 마키아벨리

  • 박홍규 < 영남대 법대 교수 >

‘민중 정치’ 꿈꾼 이단아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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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베버는 겹눈을 가진 르네상스적 인간이었다. 그는 19세기말 독일에 만연한 이데올로기병을 치유하고자 노력했다. 즉 정치를 하나의 관념으로 보고, 그것을 긍정하면 무조건 미화하고 부정하면 무조건 부정하는 태도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베버는 긍정에 대해서는 부정, 부정에 대해서는 긍정이라는 균형적 태도를 취했다. 즉 국수주의가 판을 치면 평화주의를 옹호하고, 평화주의가 판을 치면 국수주의를 변호했다.

이를 일관성 없는 태도라 매도할 수도 있겠으나, 베버에게 정치란 윤리와 별개인 실용주의의 대상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의 가치를 선험적인 것으로 고정해두지 않고, 강인한 주체성을 바탕 삼아 구체적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유동화·상대화하는 유연한 사고를 구사했다. 그러한 사고는 당시 독일에서 철저히 매도되었으나, 유연한 사고의 부재야말로 나치스와 분단의 ‘씨앗’이었다. 지금 우리의 사정도 그와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이러한 겹눈의 사고방식이야말로 르네상스, 특히 그 정치관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잇는 것이라고 본다. 마키아벨리를 흔히 권모술수의 독재를 주장한 사람으로 폄훼해 왔으나 이는 선험적 가치에 사로잡힌 편견에 불과하다. 그는 정치와 윤리를 구별한 점에서 정치학의 선구자였고, 반민중적인 귀족정(貴族政)에 반대하기 위해 군주정과 공화정을 번갈아 옹호했다.

‘모나리자’의 미소와 달리 마키아벨리의 입가에는 조소가 있다. 눈은 교활하게 빛나고 얇은 입술은 굳게 닫혀 있으나, 언제나 비웃는 듯한 모습이다. 권모술수를 뜻하는 마키아벨리즘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교활한 느낌을 주나, 귀족에 대항하는 민중사상가라 생각할 때는 영민한 지혜와 저항의 조소를 표상하는 얼굴로 볼 수도 있다.

한편 우리 정치학자는 신념 없이 정치판에 뛰어드나, 플라톤이나 마키아벨리는 일관된 신념에 따라 정치에 참여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나는 우리 정치학자가 그랬다는 점에는 동의하나, 플라톤이나 마키아벨리가 그렇지 않았다고 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해도 오십보백보 차이라고 본다.



나는 마키아벨리를 처세주의자로 이해하는 나나미류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치학자들이 그를 공화주의자나 통치기술자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있다. 나나미처럼 그를 풍류객으로 묘사하거나 정치학자들처럼 학문의 시조 모시듯 하는 태도 또한 무시한다. 마키아벨리는 권위의식 없는 민중 지식인으로서 노동자·창녀·과부·제자들과 함께했고, 한편으로는 역사를 통한 정치 연구에 진력했던 르네상스인이라는 것이 내 견해다.

아니 그는 정치학자이기보다 역사학자, 무엇보다 휴머니스트라는 점에서 르네상스인이었다. 그 자신 ‘정치학자’라는 의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또한 오늘의 행태주의적 정치학은 그의 실천적 정치학과는 아무 관련 없는 이론조작에 불과하므로 그를 ‘현대정치학의 아버지’라 칭한다면 아마 그 자신이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희극과 비극을 쓴 극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다. 그의 ‘만드라골라’는 이탈리아 연극사에서 가장 위대한 희극 중 하나로 평가된다. 유부녀를 유혹하는 줄거리에는 아마 마키아벨리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으리라. 그러나 ‘만드라골라’가 이 땅에서 상연돼 우리에게 감동을 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 점에서는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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