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항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촛대바위
필자는 2004년 7월 마침내 남쪽 백두대간의 귀착지인 강원도로 들어섰다.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볼 때 강원의 관문은 영월과 태백이다. 두 지역은 최근 수 년간 개발론자와 환경론자가 치열하게 맞섰던 곳이다. 동강댐 건설이 중단된 영월에서는 언뜻 환경론자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동강 주변은 개발의 몸살을 혹독하게 앓고 있다. 반면 태백은 석탄산업이 퇴조하면서 급격하게 몰락한 이후 고랭지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도약을 힘겹게 모색하는 중이다.
이제 강원도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일단 세계적인 흐름이 개발에서 환경보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환경과 관련한 각종 국제협약이 발효되고 대규모 국책사업이 곳곳에서 재검토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렇다고 지역개발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지속가능한 개발’이다. 기존의 개발이 일회적이고 환경 파괴적이라면, 지속가능한 개발은 환경과 상생하는 영구적인 개발로 볼 수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의 관점에서 강원도가 처한 현실을 보자면 나름의 해법은 있다. 백두대간 보호라는 법의 목적을 살리되, 지역주민의 생존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시행령을 제정하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별다른 제한 없이 백두대간을 파괴해왔다. 백두법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이 법을 시행하기도 전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환경이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 요즘, 우리나라의 ‘환경대표’라 할 수 있는 강원도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소나무와 한국인의 질긴 인연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타고 고치령에 이르자 산신각이 서 있다. 비운의 삶을 마감한 단종과 금성대군을 기리는 곳이다. 한 등산객이 산신각 앞에 비닐을 치고 비박을 하고 있었다. 백두대간 연속종주자였다. 그와 함께 걷고 싶었으나 그는 이틀 동안 너무 많은 비를 맞은 탓에 푹 쉬고 나서 걷겠다고 했다. 혼자서 비를 맞으며 950m봉과 1096m봉을 넘어서자 춘양목 지대가 드넓게 펼쳐졌다. 춘양목은 소나무 품종의 하나인 금강송의 다른 이름으로 그 옛날 대궐을 지을 때 쓰였던 고급 목재다. 우리나라에서 춘양목이 자라는 지역은 태백산 줄기를 따라 삼척 봉화 울진 영덕 등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생산된 목재가 봉화군 춘양면을 통해 서울로 옮겨진 데서 춘양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단연 소나무다. 한국인과 소나무의 관계는 질기고도 운명적이다. 예로부터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 앞에 솔잎을 달았고, 보릿고개를 만나면 소나무 껍질로 허기를 달랬으며, 세상을 떠나면 묘지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다.
2004년 3월, 한반도 전역의 수많은 소나무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춘양의 금강송이 참변을 당했다. 불의의 화재로 무려 1만여 그루가 타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금강송 군락지를 중심으로 넓게 분포하는 송이버섯 생산량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마구령과 1057m봉을 넘자 짧은 암릉지대가 나오고 934m봉을 거쳐 영주와 봉화의 경계지점인 갈곶산(966m)에 이르자 대간은 왼쪽으로 90도 휘어져 뻗어나간다. 갈곶산에서 10여분 정도 급하게 내려서면 텐트를 치고 쉬어갈 만한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소백산국립공원이 끝나는 늦은목이다. 백두대간 연속종주자들은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도중에 지친 사람들은 좌우로 나 있는 비상탈출로를 타고 민가로 내려간다. 늦은목이에서 강원 영월과 경북 봉화의 도계가 시작되는 선달산(1236m)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어서 두세 차례 숨을 고르고 내쳐야 한다.
선달산 중턱에서 하늘은 아주 잠깐 푸른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가 사진기를 꺼내기도 전에 다시 비구름이 몰려들었지만 하늘(靑)과 구름(白)과 숲(綠)이 빚어낸 환상적인 순간의 조화에 가슴이 설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