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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⑧

편작 창공 열전

환자에 대한 긍휼, 시대를 초월한 명의의 조건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편작 창공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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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작 창공 열전

허준의 ‘동의보감’

이때 중서자가 중국 전설시대의 유명한 의사 유부 이야기를 한다. 유부는 편작과 더불어 중국 의술의 양대 산맥이다. 유부는 외과수술 전문이었던 반면, 편작은 사람 몸에 절대 칼을 대지 않았다. 사물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중서자는 죽은 자를 살린다는 편작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옛날 유부라는 명의가 있었는데 병을 치료할 때 탕액, 예쇄, 참석, 교인, 안올, 독위를 쓰지 않고 옷을 풀어헤쳐 잠시 진찰해보는 것만으로 질병의 징후를 보았고, 오장에 있는 수혈의 모양에 따라 피부를 가르고 살을 열어 막힌 맥을 통하게 하고 끊어진 힘줄을 잇고, 첫수와 뇌수를 누르고, 고황과 횡격막을 바로하고, 장과 위를 깨끗이 씻어내고, 오장도 씻어 정기를 다스리고 신체를 바꾸어놓았다고 합니다. 선생의 의술이 이러하다면 태자를 살려낼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이 할 수 없으면서 태자를 살리려고 한다면 말해도 믿지 않을 겁니다.”

왕을 위협하는 의사

유부는 약을 쓰지 않고 침도 경락안마도 뜸도 뜨지 않고 오로지 환부를 열어 신장이면 신장, 심장이면 심장, 심지어 뇌도 깔끔하게 씻어내고 잘라내서 제자리에 같다 놓고 다시 봉합한다. 그러면 죽었던 사람도 벌떡 일어난다는 것이다. 현대의학이다. 암에 걸리면 악성종양을 떼어내고, 회복시킨다. 맹장수술에서부터 간이식, 심장이식술까지 이어진다. 유부가 이미 고대 중국에서 외과의로서 이룬 경지다. 그런데 왜 이러한 ‘기술’이 전해지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바로 편작 때문이다. 중국 의술의 본류로서 편작과 그 계열의 의술을 펼친 무명 의사들의 인체와 질병에 대한 이론을 집대성한 책이 바로 한나라 때 편찬된 ‘황제내경’이다. 이 책은 오늘날 한의대 교재로 사용된다. 만약 중국인들이 유부의 이론을 집대성해 ‘황제외경’과 같은 외과서를 만들었다면 오늘날의 한의학은 그 위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서양의 의학은 과학이다. 자료를 모아 실험하고 그 결과를 공유해 약을 만들어 환자에게 처방한다. 그 모든 데이터가 쌓이고 쌓여 후대에 전해지고 발전한다. 새로운 질병이 출현하면 그 질병을 다스리는 방법을 과거의 데이터에 기초해 분석하고 연구한다. 암 정복과 같은 대단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면, 당사자는 ‘천재’ 소리를 듣고 노벨상을 받는다.

반면 동양의 의학은 대단히 개인적이다. 물론 각종 의서를 통해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지만, 편작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듯 개인의 능력에 따라 환자의 생명이 좌지우지된다. 편작 정도 되는 한의사가 우리나라에 10명만 있다면, 그리고 그 제자들이 활동한다면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가 된다. 그런데 편작 이후에 창공 정도가 그 이름을 남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는 것은 노벨상과는 비교가 안 되는 신비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편작의 대를 이은 의사가 창공이라면 유부의 제자쯤 되는 인물이 바로 화타다. 화타의 외과수술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전쟁이 잦은 춘추전국시대에 왕의 몸을 여는 것은 두렵고 불안한 일이다. ‘삼국지’를 보면 화타 이야기가 나온다. 화타가 조조의 두통을 치료한답시고 두개골을 열고 뇌를 꺼내 깨끗하게 한 다음에 다시 넣겠다고 했을 때, 늘 암살 위험에 시달리던 조조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중국 대륙을 통일하겠다는 일념으로 격무에 시달린 조조. 편두통을 달고 살았던 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아니 내 두개골을 열었다가 안 닫으면 난 뭐야? 죽는 거야? 이런 무엄한 놈이 있나. 저 놈 죽여버려.’

이런 식이다. 그에 비하면 편작의 의술은 안전한 편이다. 몸속 질병을 침과 약으로 다스리니 항상 암살 위협에 시달리던 제후들은 그를 신뢰했다. 예로부터 의사는 마음먹기에 따라 군왕의 목숨을 좌지우지한다. 왕의 독살도 의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다. 맘만 먹으면 독약을 보약으로 위장할 수 있으니.

살 만한 사람만 살린다

유부는 현재 중국 의술의 지류로 전설로나마 존재한다. 하지만 편작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유부의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니 중서자가 편작에게 유부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라면 죽은 태자를 살려내겠다는 장담 같은 건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편작은 유부와 차별화된 내과적인 소견을 이야기한다. 이 말에 중국 의술의 본령이 담겨 있다. 유부의 의술이 과학이라면 편작의 의술은 철학에 가깝다.

“당신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대나무 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좁은 틈으로 무늬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환자의 맥을 짚고 안색을 살피고 목소리를 듣고 몸의 상태를 살펴보는 등의 일을 하지 않고도 어느 부위에 질병이 있는지 말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양에 관한 증상을 진찰하면 음에 관한 증상을 알 수 있습니다. 환자의 음에 관한 증상을 진찰하면 양에 관한 증상을 알 수 있습니다. 몸속의 병은 겉으로 나타나므로 천리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아주 많으며,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습니다. 당신이 제 말을 진실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안으로 들어가 태자를 살펴보십시오. 태자의 귀에서는 소리가 나고 코는 벌름거리고 있을 것이며, 양쪽 넓적다리를 타고 음부에 이르러 아직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편작은 전술했듯 신비한 약을 먹고 사물을 투시하는 능력을 가졌다. 심지어 환자의 상태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가 죽지 않았음을 안다. 현대의학에서는 이런 진단이 불가능하다.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종일 촬영하고, 혈액검사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는 데만도 며칠이 걸린다. 그런데 편작은 이야기만 듣고 관 속에 곧 들어갈 사람을 살려낸다. 태자의 병명은 ‘시궐(尸厥)’, 피가 위로 올라가 환자가 가사상태에 빠진 것이다. 한의학 전문용어가 많아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시궐이라는 병의 증세에 대해 편작은 이렇게 설명한다.

“대체로 양기가 음기 속으로 흘러들어가 위를 움직이고, 경맥(양의 맥)과 낙맥(음의 맥)을 얽어 막히게 하고, 한편으로는 삼초(육부의 하나로 상초, 중초, 하초를 말한다. 상초는 위장의 윗부분으로 호흡이나 혈맥 등에 관여하고, 중초는 위장 부위로 음식물 소화를 담당하고, 하초는 위장 아랫부분으로 배설을 담당한다)와 방광까지 내려갑니다. 이 때문에 양맥은 아래로 내려가고, 음맥은 다투듯이 위로 치달아 양기와 음기가 만나는 곳이 막혀 통하지 않게 됩니다. 이 음맥은 위로 올라가고 양맥은 안을 향해서 내려갑니다. 양맥은 안으로 내려가 고동치지만 일어설 줄 모르고, 음맥은 밖으로 올라가 끊어져서 음의 역할을 못합니다. 음기가 파괴되고 양기가 끊겨 혈색이 사라지고 맥이 어지러워지기 때문에 몸이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태자께서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양기가 음기 속으로 들어가 오장을 누르는 자는 살지만, 음기가 양기 속으로 들어가 오장을 누르는 자는 죽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은 모두 오장의 기가 몸속에서 거꾸로 치솟을 때 갑자기 일어나는 것입니다. 훌륭한 의사는 이것을 치료하지만 서툰 의사는 의심하여 믿지 않습니다.”

양기, 음기, 양맥, 음맥, 삼초, 낙맥 등에 대한 완전한 이해 없이는 편작의 설명은 쇠귀에 경 읽기다. 기와 맥은 또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해야 하는 일이니, 편작의 설명을 다 이해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겠다. 단 음기와 양기의 부조화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정도로 ‘시궐’이라는 병을 조금 이해한다. 하여간 병인을 잘 알고 있는 편작은 침과 약으로 태자를 치료해서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

곧 관 속에 들어갈 사람이 살아난 이 유명한 일화는 그보다 더 유명한 편작의 “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한다. 나는 스스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어날 수 있도록 할 뿐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서양의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철학을 산파에 비유하고, 또 자신은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 뿐이라고 한 것과 상통한다. 편작이 보기에 환자가 살 수 있을 때 의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 때 앎이 가능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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