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호

2014

12장 대한민국 연방 (마지막 회)

  • 입력2011-06-21 11: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2014


    2014년 8월5일 화요일 22시30분, 개전 12일째.

    선양군구사령관이며 북한 진주군사령관 후성궈 대장이 탄 장갑차가 평양특별시 구역 안의 용성으로 향하고 있다. 39집단군의 190기계화 보병사단과 제3장갑여단의 경호를 받으면서 군구사령부 진영이 천천히 남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앞에는 16집단군과 40집단군 병력이 평양시 깊숙이 진출해서 김정일 친위군과 격렬하게 교전을 하는 중이다.

    “300m만 전진하면 호위총국이 사용하던 벙커가 있습니다.”

    앞쪽에 앉은 참모가 소리쳐 말했으므로 후성궈가 불쑥 묻는다.



    “쓸 만해?”

    “예?”

    참모의 시선을 받은 후성궈가 자르듯 말한다.

    “오늘밤에 사령부를 그곳에 설치한다. 물론 벙커가 쓸 만하다면 말야.”

    본래 오늘밤 사령부 예정지는 서남쪽으로 5㎞쯤 더 내려간 서포 근처의 평방사 벙커였던 것이다. 참모가 분주하게 연락을 하는 동안 후성궈는 흔들리는 차체에 몸을 맡긴 채 기다렸다. 한국군은 동부전선을 돌파하고 무서운 기세로 북상 중이다. 조금 전에 선발대가 회양과 통천을 돌파했다니 그 속도라면 오늘밤 안에 원산까지 닿을지도 모른다. 그때 참모가 앞서 가던 부대와 연락이 닿았는지 헤드셋을 머리에서 떼고 후성궈에게 소리쳐 보고했다.

    “사령관 동지, 벙커가 온전하다고 합니다!”

    그 시간에 주석궁 벙커 안에서 김정일이 쓴웃음을 띤 얼굴로 말한다.

    “인간사는 정말 알 수 없는 거야. 내 생전에 평양이 중국군의 전차로 짓밟히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김정일의 앞에는 호위총국 부사령관 윤국순 상장이 서 있다. 눈만 치켜뜬 윤국순을 향해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저놈들에게 어떤 것이 중요할 것 같나? 평양인가? 아니면 나, 김정일일까?”

    “지도자 동지.”

    윤국순이 굳은 얼굴로 김정일을 보았다.

    “놈들을 가로막고는 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피하셔야 합니다.”

    “기다려.”

    한마디로 자른 김정일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이곳은 상황실 옆쪽 주석 전용실이어서 방 안에는 대여섯 명뿐이다. 보고하러 들어온 윤국순 외에 경호역 장군 두 명, 그리고 구석 쪽 탁자에서 지도를 보고 있는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와 참모, 그 앞쪽에 김정은과 이동일이 나란히 서 있다. 이동일은 항상 김정일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김정일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윤국순이 상황실로 돌아가자 김정일이 전백준에게 물었다.

    “전 차수는 어떻게 보시오? 중국놈들이 원하는 건 뭐인 것 같소?”

    “평양입니다.”

    전백준이 김정일의 시선을 똑바로 받으면서 대답했다.

    “평양만 점령하면 지도자 동지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김정일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앞에 서 있던 이동일이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중국군은 이미 평양특별시 북부 지역을 석권했다. 평양에는 호위총국, 평양경비사령부, 평양방위사령부까지 3개 군단급 부대가 배치되었는데 평양 외곽을 방위하던 평양방위사령부 소속 군단이 가장 큰 해를 입었다. 3개 보병사단과 3개 교도사단, 1개 기갑여단과 2개 장갑여단 중 온전한 부대는 남쪽으로 밀려나온 1개 보병사단과 1개 장갑여단뿐이다. 지금 중국군은 16, 40집단군이 양쪽에서 평양을 공격하는 중이었고 후성궈는 39집단군을 이끌고 약간 뒤에 처져서 남하한다. 물샐틈없는 작전이다. 그때 김정일의 시선이 이동일에게로 옮겨졌다.

    “지금 중동부전선에서는 한국군 12사단을 선봉으로 6개 사단이 북진하고 있다. 아마 오늘밤까지는 강원도를 석권하고 함경남도, 평안남도까지 진출할 것이다.”

    김정일이 차분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말을 잇는다.

    “내가 한국군 지휘부에 밀서를 전하게 한 거야. 이번 작전은 박성훈 대통령이 연합사 측에 통보하지 않았어. 한국군 수뇌부의 단독작전이야.”

    어느덧 김정일의 두 눈은 번들거리고 있다.

    “미군이건 중국군이건 이젠 다 필요 없어. 조선의 북남 군대가 이 전쟁을 끝내는 거야.”

    그렇다면 이제 남북한군의 적은 미군과 중국군인가? 이동일은 눈만 껌벅였다.

    “각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하고 우드워드가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우드워드는 화상통신으로 산본장 지하 벙커에 있는 한국 대통령과 통신 중이다. 박성훈의 시선을 잡은 채 우드워드는 말을 잇는다.

    “저는 미군 통수권자이며 본인의 명령권자인 미국 대통령의 전갈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한미협정을 위반하셨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께서는 유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해합니다, 장군.”

    화면에 비친 박성훈의 표정은 차분했다. 상황실 안은 작은 소음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모두 긴장한 모습이다. 상황스크린 옆쪽의 100인치 대형 화면에 박성훈의 모습이 떠 있는 것이다. 박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한국군이 북진은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북한군의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인민해방군 127개 부대가 한국군과 합류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합류해오고 있습니다. 장군, 나는 한미연합사가 북진 명령을 내려주기를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여 부탁드립니다.”

    “각하, 그것은.”

    우드워드가 일그러진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외면했다가 입맛을 다셨다. 또 기습을 당했다는 표정이다. 적반하장이다. 이 상황에서 같이 북진을 하자니, 그 순간 우드워드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한미연합사는 주적 북한에 대응하는 군 조직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지 않은가? 한국군의 북진을 막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머리가 어지러워진 우드워드가 어금니를 물고는 박성훈을 똑바로 보았다.

    “각하, 한미연합사 해체를 심각하게 고려할 상황이 되었다고 미국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전해드리려고 각하께 전화를 한겁니다.”

    “문제는 핵이요.”

    육본 작참부장 박진상 중장이 잇사이로 말했다. 박진상은 상황실 안에서 방금 끝난 우드워드와 박성훈 대통령의 통화를 들었다. 구석 기둥에 기댄 박진상이 앞에 서 있는 정용우에게 말을 잇는다.

    “통일 대한민국이 핵까지 보유한 강대국이 되는 게 걸리는 거요.”

    “일본에서 난리를 치고 있겠는데.”

    정용우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가장 초조한건 일본이 될 거요. 그래서 미국을 압박하겠지.”

    “역사는 되풀이되는 건가?”

    시선을 앞쪽 벽에 둔 박진상의 말이 이어졌다.

    “100년도 더 전에 미국과 일본은 필리핀과 조선을 나눠 먹기로 합의를 했단 말이오. 그러고는 서로 눈을 감아주기로 했는데, 미국이 먹은 필리핀을, 일본이 먹은 조선을 말이오.”

    “70년 전에는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놓고 합의했소.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면 한반도를 소련한테 주기로 말이오.”

    하고 정용우가 말을 받았을 때 박진상이 꿈에서 깨어난 얼굴을 짓고 정용우를 노려보았다.

    “이보쇼, 사령관. 우리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돼. 이게 마지막 기회요.”

    2014년 8월5일 화요일 23시30분.

    평양특별시 서포지역 인민학교 교사 안. 주위는 어둠에 덮여 있었지만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안에 모인 사람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안에는 10여 명의 군인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 인민군 장교다. 그들은 제각기 무기를 쥐고 서거나 앉아 중앙에 선 사내를 주시하고 있다. 폭음이 연거푸 울렸고 총성이 이어지고 있어서 분위기는 급박했지만 모두의 표정은 차분하다. 그때 중앙에 선 사내가 말했다.

    “현재까지 인민혁명군 17개 부대가 조직되었다. 병력은 6700명, 부대마다 특성이 있겠지만 이만하면 강력한 전력이다.”

    “너희들이 한민족의 저력을 이제야 맛보게 될 것이다.”

    상황실을 나와 복도 앞쪽 화장실로 들어선 이동일에게 안성욱 하사가 다가와 옆에 나란히 섰다.

    “중대장님, 어떻게 될까요?”

    무전병으로 이곳까지 따라온 안성욱은 전투 때보다도 기가 죽어 있었다. 이동일이 심호흡을 하고나서 말했다.

    “난 죽을 각오를 하고 있어.”

    거울 앞에 선 이동일이 손을 씻으면서 저를 향해 웃었다.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하지만.”

    고급 티슈를 뽑아 손의 물기를 닦으면서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넌 살아 돌아가도록 내가 최선을 다할 테다. 그래야 우리 이야기가 기록에라도 남을 것 아니냐?”

    이곳 위치는 알 수 없었지만 평양특별시에서 벗어난 외곽 지역이다. 3면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안쪽에서 깊숙이 산을 파고 들어간 동굴은 시멘트 벙커보다 더 견고하게 보였다. 주석궁 벙커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친위대 병력에 의해 3중 방어막과 온갖 시설이 다 갖춰졌다. 왼쪽 복도 끝 계단을 오르면 터널 끝 쪽으로 앞쪽 산이 보인다. 포성이 은근하게 들리는 것이 평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화장실 안에는 둘뿐이었지만 안성욱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전쟁터에 있는 것이 차라리 낫겠습니다. 이곳은 숨이 막힙니다.”

    “그럼 새 공기를 마시러 가자.”

    하고 이동일이 안성욱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 쳤다.

    “하사, 니 군기 좀 잡아야겠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화장실을 나온 둘은 붉은색 양탄자가 깔린 복도를 걸어 왼쪽 끝 시멘트 계단을 오른다. 모두 48계단으로 12계단마다 네 발짝 폭의 평지가 나온다. 둘은 단숨에 48계단을 오른 다음 통로 앞쪽을 보았다. 이곳은 둥근 터널이다. 50m쯤 앞에 나무로 가려진 입구가 있다. 이윽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흡입되었으므로 이동일은 심호흡을 했다. 터널 좌우에 서 있던 친위군 하사관들이 그러는 이동일을 보더니 슬쩍 웃는다.

    2014년 8월6일 05시15분.

    오산 한미연합사 상황실 벙커에서 갑자기 탄성이 터져 나온다. 상황 스크린을 보고 있던 한미 양국군 지휘관들이다.

    “빌어먹을.”

    장군 하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돌렸고 또 다른 장군은 구둣발을 구른다. 그것은 용성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중국군들이 일제히 움직였기 때문이다. 공격을 한 것이다. 이쪽 참모 대부분도 그렇게 예상은 했다. 후성궈를 포함한 참모 15인을 살리려고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제한시간인 2시간도 안 되어서, 그리고 협상해보겠다는 시늉도 않고 이렇게 공격해오다니. 전시라도 인간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행위는 경멸받는다. 공격 장면을 본 연합사 장군들의 심정은 다 똑같았다.

    “개새끼들.”

    폭음과 함께 천장의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내렸으므로 차금성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폭음은 더 격렬해졌고 이제는 벙커 전체가 흔들렸다. 1㎞도 안 되는 거리에서 정확한 좌표를 입력해 놓고 발사되는 포탄이다. 지금 떨어지는 포탄은 미사일이다. 배겨날 수 없다. 차금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쪽 벽에 나란히 앉은 후성궈와 참모들을 보았다. 이곳은 후성궈가 지휘하던 사령부 상황실 그대로다. 주인이 포로 신분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다. 후성궈와 양훙은 차분했지만 이미 긴장으로 굳어진 표정이다. 후성궈 뒤쪽 벙커의 시멘트벽이 갈라져서 10㎝ 정도의 검은 틈이 벌어져 있다. 양훙의 어깨에 시멘트 가루가 쌓여 있다. 그러나 나머지 참모들의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죽음이 임박한 것을 깨달은 몇 명은 눈물을 흘렸으며 몇 명은 벙커가 무너질 것에 대비해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때 참모 하병준 중좌가 소리쳤다.

    “여단장 동지! 이름을 남기십시오!”

    하병준의 손에는 켜진 휴대전화가 들려져서 차금성을 향하고 있다. 마지막 방송을 하라는 뜻이다. 그러자 차금성이 뿌연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쓴 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아니다. 네가 해라. 이름은 무슨.”

    그러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너 때문에 내가 웃으며 죽는다.”

    2014년 8월6일 05시25분.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참모가 버럭 소리쳐 보고했지만 주자춘은 상황 스크린만 보았다. 이곳은 16집단군사령부가 위치한 서포 남쪽의 임시 벙커 안이다. 포성과 폭음이 귀청이 떠나갈 듯 울리고 있었으므로 참모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적은 격멸되고 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학살이 맞다. 사방에서 포위한 중국군이 전 화력을 동원해 가로 1㎞ 세로 1.2㎞ 타원형 구역을 집중 폭격하는 터라 각종 포탄이 몇 미터 간격으로 폭발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주자춘 옆으로 참모장 타이윈 중장이 다가와 섰다.

    “사령관 동지. 후성궈 동지는 전사했다고 발표하시지요.”

    타이윈이 소리치듯 말했다. 이런 발표는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폭격하는 장면은 이미 전세계로 보도될 테니 빨리 사건을 덮는 것이 낫다. 방금 참모가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소리친 것은 후성궈가 갇혀 있는 벙커를 말한다. 지대지 미사일을 집중적으로 10여 발이나 맞은 벙커는 이제 거대한 구덩이가 되어 있을 뿐이다. 이윽고 주자춘이 머리를 돌려 타이윈을 보았다.

    “좋아, 내가 발표하겠다.”

    그때였다. 상황 스크린 앞에 선 참모가 다시 소리쳤는데 폭음 때문에 잘 안 들렸다. 그 좁은 구역에는 인민군 2만여 명이 집결해 있었기 때문에 눈을 감고 쏴도 맞을 것이었다. 다시 참모가 소리쳤는데 이번에는 들렸다.

    “……진격해 옵니다!”

    몸을 일으킨 주자춘이 상황 스크린 앞으로 다가갔을 때 다시 참모가 소리쳤다.

    “조선군 탱크대입니다! 전속력으로 이쪽을 향해 진격해 옵니다!”

    같은 시간 차봉호는 자신의 ‘애마’라고 불리는 1번 장갑차에 타고 있었지만 멀미에 시달렸다. 자리도 불편해서 엉덩이가 쑤셨고 자꾸 어깨가 쇠붙이에 부딪혔다. 1년에 몇 번, 그것도 10분 정도 탑승한 것이 고작이기 때문에 익숙지가 않다. 그러나 엔진과 성능은 빠삭해서 냄새만 맡아도 기능을 안다.

    “야! 밟아!”

    버럭 소리친 차봉호가 입맛을 다셨다. 105와 820이 거의 동시에 출발했지만 5분여가 지난 지금 105의 탱크대가 대부분 앞으로 튀어나왔다.

    “시발놈들, 저런 걸로 탱크 군단이라고 하다니.”

    바로 눈앞에 설치된 14인치 상황 스크린을 흘겨보며 차봉호가 투덜거렸다. 사단장 장갑차여서 탑승한 작전참모가 소리쳐 보고했다.

    “선봉 중대는 중국군 저지선을 돌파했습니다!”

    105사단의 1개 중대다. 같이 돌파하기로 했던 820의 1개 중대는 우측에서 500여m나 뒤처져 있다.

    “저런 지기미 시발놈들.”

    스크린을 보면서 차봉호가 투덜거렸을 때 갑자기 헤드셋에서 무전병의 목소리가 울렸다.

    “사단장님! 본부 연락입니다!”

    본부라면 연합사를 말한다. 차봉호는 헤드셋을 움켜쥐었다. 벗어 던지려는 것이다. 그러다가 심호흡을 하고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버튼을 누르자 곧 선명한 목소리가 울렸다. 차봉호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는 상관이라기보다는 인간, 육참총장 조현호다.

    “얀마! 거기 서!”

    대뜸 그렇게 소리친 조현호의 목소리는 마치 개가 물어뜯기 전에 짖는 것 같았다.

    “중국 놈들 전폭기가 떴단 말이다! 우리도 전폭기를 띄웠는데 그 상황에서 오바마가 시진핑에게 전화를 했어! 전화가 끝날 때까지 멈춰! 중국 놈들도 멈출 테니까 말야! 스톱! 스톱!”

    나중의 외침은 다급한 버스 차장의 외침 같다.

    2014년 8월6일 오전 5시40분.

    워싱턴은 오후 3시40분이다. 여기는 백악관 집무실. 오바마가 책상에 두 손을 얹고 앞쪽 벽에 붙여진 영상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오바마의 좌우로 참모들과 장관, CIA 담당 부국장까지 10여 명이 둘러앉았다. 그래서 상대방 화면에는 오바마만 비칠 것이다. 지금 오바마가 응시하는 화면 속의 시진핑도 그렇다. 화면 밖에 중국 정부의 실력자가 다 모여 있을 것이었다. 오바마가 입을 열었다.

    “시 주석 각하. 지금 한반도 주변에는 1000기 가까운 미·중 양국의 전폭기가 떠있습니다.”

    오바마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우리가 이 회담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양국 전폭기는 교전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시작된 전쟁은 금방 바다로, 다시 육지로 이어질 것입니다.”

    아직도 시친핑은 시선만 주고 있다. 계속하라는 표시 같기도 하고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고 코웃음 치기 직전의 표정 같기도 했다. 헛기침을 한 오바마가 말을 이었다.

    “미국 정부는 지금 즉시 휴전을 제안합니다. 미·중 양국군 전폭기를 복귀시킴과 동시에 한반도 안에서 미중 양국군의 철수를 제안합니다.”

    그때 시진핑의 표정에 천천히 변화가 일어났다. 눈썹이 희미하게 꿈틀거리더니 입술 끝이 떨렸고 나중에는 눈도 깜박인다. 그것을 오바마는 유심히 보았다. 좌측에 앉은 CIA 국방 리처드 번스에게 비서실장 패트릭 어윈이 귓속말로 물었다.

    “승낙할 것 같소?”

    초조해서 말을 건 것이라 시선은 시진핑에게 향해 있다. 그러자 번스도 입술만 어윈의 귀에 붙이고 말했다.

    “시발 놈들 속을 알 수가 있어야죠.”

    CIA 국장답지 않은 발언이었지만 듣는 쪽이 건성이라 그냥 넘어간다. 그때 시진핑이 말했다.

    “대통령 각하. 중국 정부는 5분의 시간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러고는 화면이 꺼져버렸기 때문에 오바마가 어깨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갓뎀.”

    그 시간에 한국 대통령 박성훈도 화면을 보고 있다. 비록 이쪽은 스피커 기능이 상실되어 있지만 양쪽 표정과 이야기를 다 보고 들은 것이다. 따라서 화면이 두 개다. 산본장의 지하 상황실 안에는 박성훈을 중심으로 요인들이 둘러앉았다. 이쪽은 관람만 하는 처지라 극장식 배열이지만 화면은 둘이다. 그래서 왼쪽 오바마 화면이 ‘갓뎀’ 하면서 나중에 꺼졌을 때 박성훈이 머리를 돌려 옆에 앉은 국방장관 임기태에게 물었다.

    “지금 김정일씨는 어디 있습니까?”

    “이 대위하고 연락이 안 됩니다만.”

    임기태가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주석궁은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김정일씨도 이것을 봐야 하는데.”

    박성훈이 혼잣소리처럼 말하자 바로 뒤에 앉은 안보수석 주명성이 대답했다.

    “녹화되어 있으니까 나중에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한반도 운명이….”

    잠깐 말을 그친 박성훈이 머리를 좌우로 풍뎅이 머리 비틀 듯이 한껏 비틀어 모인 인사들을 다 본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말을 잇는다.

    “내가 한 시간 전에 오바마의 연락을 받았어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 해서 난 최악의 경우까지 예상했는데….”

    모두 숨을 죽였고 박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한반도에서 미·중군 동시 철군 카드를 들고 나왔군요.”

    “우리한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해준 것입니다.”

    하고 주명성이 말을 받은 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설명성 발언이다. 오바마의 연락이 왔을 때 주명성도 함께 들었기 때문이다. 주명성의 말이 이어졌다.

    “미국은 한반도의 핵을 그대로 남겨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중국군이 철수하면 핵은 남게 됩니다.”

    무수단리는 이제 3만여 명의 인민군, 인민혁명군에 의해 완벽하게 경비되고 있다. 중국군이 그곳을 탈취하려면 원자탄을 써야 할 것이다. 그때 박성훈이 말을 받는다.

    “문제는 핵이었어요. 일본의 반발이 거세었지만 미국은 핵을 남겨두기로 한 겁니다, 대한민국에 말이오.”

    박성훈은 대한민국을 한 자씩 더 분명하게 발음했다. 다시 박성훈의 목소리가 상황실 안을 울린다.

    “1949년, 미·소 양국군이 한반도에서 다 떠나고 난 다음해인 1950년 북한이 남침해왔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상황도 아닌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는 박성훈의 얼굴은 어둡다. 이제 쓴웃음을 지은 박성훈이 말을 맺는다.

    “한반도 운명이 주변 강대국 결정에 따라 변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지만 말요. 자, 이제 중국 측 결정을 기다려 봅시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오전 6시 정각.

    5분 후라고 했던 시진핑은 15분을 끌었다. 그래서 연료가 떨어진 미군 함재기는 34대나 항모에 돌아가 연료 공급을 받은 후에 다시 떠올랐고 중국군 전폭기 13대는 연료가 떨어져 북한 비행장에 불시착을 했다. 물론 승무원들은 인민혁명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 시진핑이 15분 안에 TV 화면에 나타났다. 화면이 켜진 것이다. 백악관 집무실 화면만 켜진 것이 아니다. 애초에 양국 수뇌부의 단독 영상 회담 형식이어서 참관자로 대한민국 대통령만을 넣어서 3국 정상의 대담과 참관 형식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오바마의 지시로 전 세계 TV에 방영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시진핑이 등장했을 때 일산 대호식당의 사장 김대호도 박성훈과 같은 조건으로 TV를 본다. 그때 시진핑이 말했다.

    “중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중·미 양국군의 전면 철군에 동의합니다. 또한 중국은 5000년 형제국인 코리아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것을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

    “히, 5000년이나?”

    하고 벽에 기대앉은 처 박인옥이 궁시렁거렸을 때 김대호가 버럭 소리쳤다.

    “아, 시끄러! 헷갈려!”

    그래서 시진핑의 다음 말은 못 들었지만 핵심은 이미 다 들었다. 개전 13일째에 휴전이 된 것이다.

    2014년 8월8일 금요일 오전 10시30분.

    주석궁으로 돌아온 김정일이 대국민 방송을 한다. 전쟁이 일어난 후부터 김정일은 방송에 직접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평양특별시는 폐허가 되었고 인민혁명군의 초기 약탈로 북한 전역이 피폐해졌지만 분위기가 묘하다. 생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이 정전 선언을 한 지 이틀이 지난 지금, 중국군의 마지막 부대인 제39집단군 소속의 부교연대가 압록강을 건너감으로써 중국군의 철군은 완료되었다. 미군은 먼저 미8군 소속의 2개 연대 병력을 일본으로 철수시켰는데 기지 관계상 완전 철군은 2015년 6월 말까지로 계획되었고 중국 측의 동의를 얻었다. 이동일은 김정일이 방송을 하는 바로 옆방에서 김정은과 함께 TV를 본다. 이 방송은 대한민국에서도 다 시청할 것이다. 이윽고 정색한 김정일이 TV를 똑바로 보았다.

    “인민 여러분, 이제 전쟁은 끝났습니다. 모두 제가 부족해서 인민 여러분께 고통과 슬픔을 드렸습니다.”

    여전히 굳어진 얼굴로 이쪽을 응시한 채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앞으로 한민족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깨를 조금 부풀렸다 내린 김정일이 한마디씩 힘주어 말했다.

    “8월10일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박성훈 대통령과 함께 재건사업을 심도 있게 협의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재기할 능력이 있는 민족입니다.”

    화면을 응시한 채 이동일이 숨을 들이켰다. 옆에 서 있던 김정은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갑자기 꾸무럭거린다. 김정일의 방한은 세계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이 대위, 너, 나하고 같이 가자.”

    방송실을 나온 김정일이 영접하러 나온 인사들 뒤쪽에 끼어 있는 이동일을 용케 찾아내더니 말했다.

    “이번 서울 방문에는 이 대장도 함께 간다.”

    이제야 돌아가게 되었다. 가슴이 뛴 이동일이 머리를 돌려 김정은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김정은이 빙긋 웃는다. 천진한 웃음이다. 김정일을 따라 일행이 복도 끝 쪽으로 몰려갔으므로 이쪽에는 둘이 남았다. 김정은이 물었다.

    “돌아가게 되어서 좋아요?”

    “살아서 돌아갈 줄은 생각도 안 해봐서요.”

    이동일이 정직하게 대답하자 김정은은 다시 웃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좋아하겠네요.”

    김정은도 송아현의 존재를 아는 것이다. 이동일과 송아현의 방송을 주석궁에서 보았다고 했다. 김정은이 발을 떼었으므로 이동일은 대답하지 않아도 되었다.

    2014년 8월10일 일요일 오전 11시10분.

    북한 민항기가 내전으로 다 파괴되는 바람에 김정일 일행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1대씩 제공한 A-300기편으로 성남공항에 도착했다. 성남공항에는 박성훈이 마중 나와 있었는데 3부 요인은 물론 주한 외교관까지 동원했고 3군 의장대와 예포까지 준비했다. 최대의 규모였고 최상급 환대다. 트랩에서 내린 김정일과 박성훈이 포옹하고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세계에 보도되었다. 일산 대호식당에 가득 찬 손님들도 숨을 죽이고 화면을 본다. 예포가 발사되면서 인사를 나누고 의장대를 사열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둘이 연단에 나란히 섰을 때는 11시35분이 되어 있었다.

    “아, 시발. 너무 잘혀주는 거 아녀?”

    마침내 지겨운 표정이 된 김대호씨가 투덜거렸을 때 몇 명이 동의했다. 손님 중 1할쯤 된다. 그때 먼저 박성훈의 환영사가 시작되었다. 민족, 평화, 통일, 화합, 새 출발 등이 요지였는데 5분쯤 걸린 연설에서 김대호의 머릿속에 입력된 단어는 그것뿐이었다.

    이윽고 김정일의 순서가 되었다. 식당 안의 손님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박성훈의 연설은 다들 많이 들었지만 김정일은 남한에서 처음 연설을 한다. 김정일과 얽힌 사연이 얼마나 많은가? 근래의 연평도 포격, 천안함 기습 격침 사건에서부터 대한항공 폭파, 아웅산 테러 등 헤아리면 금방 열불이 난다. 도대체 저놈이 우리하고 무슨 원한이 있기에 돈 달라, 쌀 달라 하다가 안 주면 죽인단 말인가? 이런 날강도가 없다. 지하자원도 남한보다 몇 배나 많고 해방 이전에는 남한보다 잘살던 이북이다. 그런 이북을 최빈국으로 만들어 300만이나 굶겨 죽여놓고 왜 남한에다 떼를 쓰는가? 같은 민족이라고? 그럼 같은 민족이니까 마음대로 죽이고 납치해도 되는 거냐? 그때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도 이런 기회가 올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차분한 표정이다. 표현도 차분해서 귀에는 쏙쏙 들어왔다. 그래서 말 많은 김대호도 잠자코 시선만 주었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제 아버지 김일성을 대신하여 사과드립니다. 1950년 6월25일, 북남통일의 명분을 내걸고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인명을 살상했고 지금도 그 가족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놀란 김대호가 입만 딱 벌렸을 때 김정일의 목소리가 열기를 띠었다.

    “제가 일으킨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천안함 침몰, 어선 납치, 요인 암살 등 수많은 테러, 정부 전복 활동에 대해서도 사과합니다. 모두 제가 지시한 일이며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이렇게 말씀드릴 기회가 온 것을 저는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문이 막혔다는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김대호는 물론이고 식당 안의 손님 모두가 입만 딱 벌리고 있다. 그때 김정일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나는 오늘부터 대한민국 대통령과 통일 협의를 할 것입니다. 이제 외세가 사라진 지금,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내놓은 지금, 대한민국의 통일에는 장애가 있을 리 없습니다. 나는 통일을 위해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시간이지만 워싱턴은 오후 10시다. 화면의 자막으로 내용을 읽다만 오바마가 불쑥 머리를 들고 옆에 서있는 CIA 국장 리처드 번스에게 물었다.

    “리처드, 핵은?”

    그러자 번스가 입맛부터 다시고 말한다.

    “무수단리 핵시설은 온전합니다, 각하.”

    “그럼 그것이 대한민국 차지가 되겠군.”

    “그렇습니다, 각하.”

    “일본이 당장 핵을 만들겠는데.”

    그러자 번스가 정색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본래 한 국가 아니었습니까? 북한 핵이 대한민국에 흡수되었다고 일본이 핵을 만들다니요?”

    “그것도 말이 되지만….”

    “중국도 적극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바마가 입맛을 다셨다.

    “중국이 신생 대한민국을 끌어들이려고 하겠군.”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 입장이었으므로 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오바마가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난 대한민국에 어떤 미국 대통령으로 기억될까?”

    이번에도 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리 CIA 국장이라고 해도 그것까지 조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김경식 일당 중 살아남은 군 간부는 모두 중국군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래서 북한 땅은 친김정일 부대, 중립군, 인민혁명군이 남았지만 자연스럽게 원상회복이 되었다. 평양특별시 공방에서 친김정일 부대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바람에 위축되었고 간부 대부분이 전사한 상황이다. 인민해방군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고 새로 조직된 자위대가 치안을 맡았다. 북한의 치안 회복력은 강하다.

    김정일이 서울에서 회담을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정전 6일째가 되는 8월12일에는 북한 전역이 정상 기능을 회복했다. 그리고 ‘남북한 통일회담’이라고 명명한 ‘통일조건’도 하나씩 외부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新) 연방제 통일이다. 북한을 대한민국 북(北) 연방으로 포함시켜 한국에서 파견한 정부조직의 관리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남북한 간 입출국은 당분간 통제되며 북한에는 대규모 공단과 대기업 수십 개가 밀려갈 것이다. 최적의 입지조건과 노동력, 지적 수준과 의욕, 거기에다 언어와 풍습까지 같은 민족이 아닌가? 더욱이 공장 부지는 무상이나 다름없고 임금은 중국의 절반 수준으로 책정했다. 기업가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땅이었다. 이제는 북한이 대한민국의 지배를 받는 영토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남북한 연방 합의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김정일이 다 맡긴 상황이어서 서로 호의적이었고 배려했으며 북한이 요구하지도 않은 조항을 넣어주기까지 했다. 8월14일 회담 닷새째가 되는 날 오후는 마무리 상태가 되었다. 검토를 마친 박성훈과 김정일이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때 박성훈이 문득 입을 열었다.

    “저기, 북한연방의 구심점으로 위원장께서 앞으로 도와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김정일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김정일은 이제 북한연방의 대통령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 대통령처럼 상징적인 역할이 많다. 박성훈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김정일을 보았다.

    “위원장님께서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박성훈이 이런 말을 했다면 탄핵을 받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둘러앉은 정부각료, 자료를 가져왔던 한국군 장성까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김정일은 웃기만 했다.

    2014년 8월15일 금요일 낮 12시 정각.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대형 기자회견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백 명의 기자, 주한 외교사절단,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각국의 특사, 수십만 명의 시민이 운집해 있다. 이윽고 연단에 대한민국 대통령 박성훈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나란히 섰다. 하늘은 푸르고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다. 그러자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있다. 단상 뒤에 나란히 세워진 깃봉에는 태극기와 북한기가 흔들리고 있다. 국기를 향해 함께 목례를 한 두 지도자는 다시 정면을 향해 섰다. 그때 사회를 맡은 대한민국 문화공보부 장관 이춘식이 마이크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2014년 8월15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자는 양국의 신(新)연방제 통일에 합의하여 이에 합의서를 교환합니다. 합의서가 교환되는 시점에서 남북한 양국은 대한민국 연방으로 통일되었음을 세계 만방에 선포하는 바입니다.”

    이춘식의 말이 끝났을 때 두 지도자는 다가가 서로 사인한 합의서를 교환했다. 그때 다시 이춘식이 소리치듯 말한다.

    “대한민국 연방에 대한 경례가 있겠습니다.”

    그러자 박성훈과 김정일이 다시 돌아섰고 대한민국 애국가가 울린다. 마침 바람이 조금 불면서 태극기가 펄럭였다. 단상과 단하에 모인 내외 귀빈이 모두 일어나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한다. 숭례문까지 운집한 수십만의 시민도 부동자세로 선 채 애국가를 따라 부른다. 점점 시민들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고 노랫소리에 울음이 섞여들었다. 일산 대호식당 안에서도 애국가가 울려나오고 있다. 김대호씨는 아예 끅끅 우느라고 노래를 따라 부르지 못한다. 애국가가 끝났을 때 따라 울던 이춘식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이상입니다.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대한민국 연방기는 태극기다.



    이원호

    2014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등이 있다.


    폭음이 컸으므로 사내의 목소리도 그만큼 커졌다. 근처에 포탄이 떨어지면서 건물이 흔들렸고 천장에서 시멘트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사내는 28해상저격여단장 차금성 중장이다. 중국군의 공습으로 부대가 궤멸되었지만 200여 명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차금성 옆에 서 있는 장교는 주장온 대좌다. 차금성의 지원부대를 이끌던 주장온도 겨우 살아남아 인민혁명군 부대를 규합한 것이다. 차금성이 소리치듯 말을 잇는다.

    “알겠는가? 우린 평양시에 진입한 결사대다. 호위총국, 평양경비사 부대가 우리를 적극 지원할 것이다.”

    이제 평양특별시는 중국군과 김정일 정예군의 전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차금성과 주장온이 이끈 부대는 주변에서 모여든 인민혁명군이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폭발음이 울리면서 유리창들이 부서져 내렸다.

    “자, 출발!”

    차금성이 소리치자 사내들은 일제히 막사를 빠져 나간다. 섬광이 번쩍이면서 사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모두 인민혁명군의 지휘관들인 것이다.

    “김정일을 잡아.”

    후성궈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밤이 깊었지만 상황실 안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70대 초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후성궈는 활기찬 표정이다. 두꺼운 눈꺼풀을 치켜든 후성궈가 다시 소리쳤다.

    “오늘밤 안에 평양을 석권한다! 자, 밀어붙여라!”

    평양 북방은 전체가 전장으로 변했다. 각 부대가 나뉘어 돌파하고 있었지만 평양은 전체가 진지였고 사방이 북한군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략도 전술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치 백병전을 하는 것처럼 앞을 막는 적을 제거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머리를 든 후성궈가 벙커 벽에 붙여진 상황 스크린을 보았다. 스크린에는 평양만 확대되어 비치고 있었는데 북쪽은 전체가 붉고 푸른 등으로 덮였다. 붉은 등은 중국군이고 푸른 등은 북한군이다. 이제 호위총국, 평방사, 평경사 구분도 없다. 인민혁명군 부대도 같이 붉은 등으로 나타난다.

    후성궈의 닫힌 입안에서 굵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평양특별시 전체를 초토화하고 진입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국제 여론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평양특별시 구역 안에만 북한 인구의 5분의 1인 500만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때 옆으로 참모장 양훙이 다가와 섰다. 양훙은 50대 나이인데 지친 표정이다.

    “사령관 동지, 한국군이 조금 전에 원산에 입성했습니다.”

    양훙이 말했으나 후성궈는 상황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표정에도 변화가 없다. 다시 양훙의 말이 이어졌다.

    “1개 기계화사단은 고속도로를 타고 황해북도 신평 동쪽 10㎞ 지점까지 접근했습니다.”

    “… ….”

    “반란군 부대가 합류하고 있는데다 전혀 저항을 받고 있지 않아서 내일 아침까지는 함경남도, 평안남도 남쪽 지역까지 장악할 것 같습니다.”

    “김정일만 잡으면 돼.”

    화면에서 시선을 뗀 후성궈가 양훙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놈이 숙주야. 그놈만 잡으면 북한은 해방되는 거야.”

    중국군의 명칭은 ‘인민해방군’이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1시10분, 개전 13일째다.

    대통령 박성훈이 산본장 지하 벙커에서 조금 전 화면에 뜬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응시한다. 지금 영상 통화가 시작되고 있다. 박성훈 뒤에는 비서실장 한창환, 안보수석 주명성, 국방장관 임기태에, 급하게 달려온 합참의장 장세윤까지 넷이 서 있다. 그때 통화를 신청한 박성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각하, 전황을 다 알고 계실 겁니다. 한반도에서 중국군이 철수할 것을 미국 정부가 요구해주십시오. 중국군만 철수하면 전쟁이 끝납니다.”

    오바마는 시선만 준 채 입을 열지 않았고 박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전장은 평양특별시로 옮겨갔습니다. 다른 곳은 모두 평정되었습니다, 각하.”

    “중국 정부는 한국군이 38선 이남으로 철수하면 자국 군 철수를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바마가 말했을 때 박성훈 뒤에서 누군가 혀를 찼다. 다시 오바마의 말이 이어졌다.

    “중국군은 조중동맹 조약에 의거한 진출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김정일의 대표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주적인 남조선의 침공에 대응한 조약 이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박성훈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목소리는 높아졌다.

    “각하, 그 말이 억지라는 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중국은 이 기회에 북한을 영토에 통합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정부도 한미방위조약을 어겼어요, 각하.”

    말을 자른 오바마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길게 숨을 뱉었다.

    “각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이곳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이 기회에 한미방위조약을 폐지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단 말입니다. 일부 의원은 제2차 중국군 공습에 연합사는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박성훈은 어금니를 물었다. 국가는 개인보다 엄격해야 한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조약도 어길 수 있다. 그것을 비판하는 자국민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에 해가 되는 조약을 지키려고 든다면 매국노, 부적격자로 비난받는다. 지금의 미국 정부 상황이 그렇다. 한국인에 호의적인 미국 일부 국민은 그러지 않겠지만 미국 정부는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불편한 것이다. 다시 오바마의 말이 이어졌다.

    “각하, 한국군을 이전의 휴전선 밑으로 철군해주시지요. 그럼 우리 미국 정부도 책임지고 중국군을 철군시키겠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1시30분.

    계단을 오른 이동일은 숨을 들이켰다. 그 순간 맵고 찌릿한 땅 냄새가 맡아졌다. 자세히 말하면 흙과 풀이 섞인 대기의 냄새다. 도시에서는 이런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그때 위쪽에서 김정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음, 오랜만에 흙냄새를 맡는구나.”

    김정일도 목소리는 밝다. 그러나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다. 그리고 천둥 같은 폭음이 들린다. 계단을 더 오를수록 포성과 폭발음이 더 선명해졌다. 이동일은 잠자코 계단을 오른다. 앞뒤로 경호원들에 싸여 있었지만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주석궁 벙커에서 나와 지하철을 이용해 이곳까지 온 것이다. 객차 5량에 측근과 경호원을 가득 싣고 이동한 시간은 15분 정도. 15분간 남하하고 나서 지금 지상으로 오르는 중이다. 김정일이 주석궁을 떠나 피신하는 것이다.

    “자, 이쪽으로.”

    옆쪽에서 소리가 들렸으므로 이동일은 머리를 들었다. 군관 하나가 시멘트벽에 기대서 있다가 옆쪽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그쪽으로 꺾어졌고 이동일도 뒤를 따른다. 다시 50m쯤 걸었더니 앞쪽이 둥근 구덩이처럼 보였다. 터널 입구로 나온 것이다. 이동일이 지금 걷고 있는 터널에 불을 켜지 않아서 밖이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이윽고 이동일은 터널을 나왔다. 그러자 주위가 깊고 험한 산인 것을 알았다. 삼면이 가파른 산이다. 양쪽과 위쪽이 모두 산으로 막혔는데 골짜기 사이는 100m도 되지 않는다. 주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었지만 하늘의 별이 보였다. 이제 포성은 더 커졌고 딛고 선 땅이 울렸다. 드디어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제4대피소죠. 자, 저쪽으로 갑시다.”

    어느새 김정은이 옆에 와 있었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1시50분.

    평양특별시 북방 용성에 위치한 중국군 사령부 벙커 안에서 갑자기 외침이 터졌다.

    “820이 움직입니다!”

    작전참모 중 한 명이 소리를 지른 것이다. 소파에 앉은 채로 잠깐 졸고 있던 후성궈가 머리를 들었고 상황실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후성궈의 시선이 상황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평양특별시를 관통하는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가 화면에 떠있다. 그 고속도로의 평양 아래쪽 송림에 파란 불덩이가 모여 깜박이고 있다. 다시 참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105기갑사단이 양쪽으로 벌어지고 820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앞장선 것은 1개 여단인 것 같습니다.”

    참모가 말하는 동안에도 파란불이 살아 있는 세균 덩어리처럼 꿈틀거리며 위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때 어느새 후성궈 옆으로 다가선 참모장 양훙이 말했다.

    “한 시간이면 평양 시내로 진입할 수 있겠습니다.”

    “김정일은?”

    후성궈가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주위는 조용해졌다. 바로 5분 전에도 김정일 상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주석궁 근처까지 중국군 선발대가 접근했지만 호위총국 병사들의 저항은 격렬했다. 인간 폭탄이 되어서 중국군 장갑차에 몸을 던지는 바람에 다시 후퇴해야만 했다. 잠깐 정적이 흘렀을 때 상황 스크린 앞의 참모가 다시 소리쳤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더 크다.

    “아, 820 뒤쪽으로 105가 따라붙습니다!”

    “105가 움직입니다!”

    이쪽은 오산의 한미연합사 벙커 안, 후성궈 앞에 펼쳐진 스크린의 10배쯤 되는 크기의 스크린이어서 점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탱크도 드러났다. 이미 송림 서북방 고속도로에 진입한 820전차군단의 2개 여단 뒤쪽으로 105기갑사단의 1개 연대 규모의 전차가 ‘은근슬쩍’ 따라붙은 것이다. 그렇다. ‘은근슬쩍’이다. 우드워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빠른데, 이동과 대열 정비가 빠르다.”

    옆쪽에 서 있던 참모장 해리슨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다 들었을 것이다. 우드워드가 어금니를 물었을 때 해리슨의 말이 이어졌다.

    “105하고 호흡이 맞는군. 미리 연습을 한 것처럼 움직이는구만 그래.”

    “중지시켜!”

    마침내 우드워드의 입에서 격한 외침이 터졌다. 주위 참모들은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마치 비 오는 날 번쩍이는 번개를 보고나서 천둥소리를 듣는 것 같은 표정들이다. 다시 우드워드의 천둥이 이어졌다.

    “한국군 지휘부를 불러! 그리고 직접 저 빌어먹을 탱크 사단장 놈을 연결해!”

    그 시간의 서울 서교동 동양호텔 객실 안이다. 민중당 국회의원 임민희가 객실 의자에 앉아 술잔을 들고 있다. 임민희 앞에 앉은 두 남녀는 국제신문 사회부장 홍동수와 기자 송아현. 둘은 지금 막 인터뷰를 시작한 참이었는데, 늦었다. 그것은 임민희가 시간을 지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인사가 끝났을 때 임민희가 송아현에게 말했다.

    “송 기자가 요즘 뜨시데? 지금 이 대위는 국방위원장님하고 같이 계시죠?”

    “네.”

    하고 송아현이 대답했지만 말은 홍동수가 이었다.

    “임 의원께선 이젠 김정일을 국방위원장님이라고 대놓고 부르시네요, 그죠?”

    “그래요, 의식적으로 그랬어요.”

    임민희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골수 빨갱이인 제가 가족과 함께 이곳 호텔에서 묵고 있는 걸 보면 세상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김정일의 밀서를 전한 투사로 인정받은 거 아닙니까?”

    “아니죠, 이젠 남북한은 이념에서 해방되었다는 걸 의미해요.”

    “김정일이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투항했다고 봐야 되겠죠?”

    “아니죠, 서로 용해된 겁니다. 대한민국은 새로 건국되는 거죠.”

    그러자 송아현이 정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내저었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했어요. 그것을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고요. 새 건국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죠.”

    홍동수가 거들었다.

    “임 의원께서 그렇게 주장하시다간 또 도망 다니시게 되겠습니다.”

    “위원장님께서 대통령과 합의를 하실 겁니다.”

    이제는 임민희도 정색하고 말했다.

    “통일이 된다면 위원장님이 가장 큰 기여를 하신 것이 될 테니까요.”

    송아현과 홍동수가 마주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김형기, 김경식 일당의 도발로 시작된 남북전쟁은 대한민국에 대한 김정일의 적극적인 협조로 급진전되고 있다. 쓴웃음을 지은 홍동수가 물었다.

    “그럼 앞으로 대한민국의 사회 통합은 어떤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오늘 인터뷰의 핵심은 이것이다. 그러자 임민희가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바로 대답했다.

    “민주주의의 틀은 존속시키되 공산당을 완전 합법화, 헌법에도 넣고, 국가보안법은 물론 철폐하는 것입니다. 또한….”

    “알겠습니다.”

    말을 자른 홍동수가 머리를 끄덕이면서 웃음 띤 얼굴로 임민희를 보았다.

    “이제 공산주의가 대한민국에서 새롭게 부활하겠습니다. 임 의원 말씀대로라면 말입니다.”

    “그것이 남북한 공존의 유일한 방법이죠, 보세요.”

    임민희의 열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인민혁명군도 이제 모두 위원장님 중심으로 뭉치고 있지 않습니까?”

    “임 의원께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민혁명군을 반란군이라고 부르셨지요?”

    “내가요? 언제요?”

    눈을 크게 떴던 임민희가 곧 시선을 내렸다.

    “저, 그런 적 없어요.”

    2014년 8월6일 수요일 02시20분.

    워싱턴은 화요일 낮 12시20분이다. 백악관의 집무실에서 오바마는 방으로 들어서는 국무장관 빌 스튜어트와 CIA 국장 리처드 번스를 맞는다.

    “그래, 어떻게 되었습니까?”

    앞쪽 소파에 앉는 스튜어트에게 오바마가 먼저 물었다. 스튜어트는 오전에 일본 대사 이토 사다유키를 만난 것이다. 이토는 일본 정부의 훈령을 받고 스튜어트와 두 시간 동안이나 비밀 회담을 했다. 스튜어트가 입을 열었다.

    “일본은 북상하는 한국군이 무수단의 핵을 확보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수단을 미군기가 폭격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폭격?”

    그러고는 오바마가 입맛을 다셨다.

    “아직 점심 전인데 밥맛 달아나는 소리를 듣는군.”

    “각하, 일본 정부는 심각합니다.”

    이번에는 CIA국장 리처드 번스가 말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에 진주한 중국군이 무수단과 함경북도의 북한 핵기지를 완전히 확보하도록 중국 정부에 로비까지 하고 있습니다.”

    정색한 오바마가 스튜어트를 보았다. 자리를 고쳐 앉은 오바마가 묻는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극동은 더 안정되는 것 아닙니까? 핵까지 포함해서 말이오.”

    그 순간 스튜어트와 번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바마는 지금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첫째, 중국과의 전면전을 피했으며 둘째, 북한 핵은 중국군이 흡수하는 것이 이롭고 셋째, 남북한은 최악의 경우에 평양 이남으로 분할하여 위쪽은 중국, 아래쪽은 대한민국으로 재조정되는 것을 기대했다. 둘의 표정을 살핀 오바마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순리를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단 말입니다.”

    그러고는 오바마가 소파에 등을 붙였다.

    “내가 우연히 백악관 기록을 보았더니 지금부터 109년 전인 1905년에 코리아의 이승만이란 청년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방문했더군요.”

    스튜어트와 번스는 눈만 껌벅였고 오바마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사연이 재미있어. 이승만은 1882년에 한미 우호조약을 맺은 거중조정항, 즉 한쪽 국가가 위급하면 다른 국가가 조정해준다는 조약상 한 항목을 이유로 그 당시의 코리아를 일본의 침략에서 구해달라고 온 거요. 코리아 황제의 특사로 말이오.”

    둘은 이게 무슨 귀신이 씨 까먹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오바마의 얼굴에는 열기가 드러났다.

    “그런데 루스벨트는 탄원서류를 국무부에 접수하라면서 아승만을 돌려보냈어요. 이승만은 희망에 부풀어서 돌아갔지. 그런데 사실은.”

    오바마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둘을 보았다.

    “이미 루스벨트는 일본과 밀약을 맺고 있었어요. 미국이 필리핀을 먹을 테니 일본, 너는 코리아를 먹어라. 그리고 우리는 서로 상관 안 하기로 하자….”

    “… ….”

    “코리아는 뒤통수를 맞았지. 아니, 바보 같다고 봐야겠지. 그런 조약 한 줄을 믿다니 말야.”

    “… ….”

    “두 번째는 얄타에서 또 다른 루스벨트가 소련한테 코리아를 넘겨주었어. 2차대전 때 소련의 참전이 절실했던 루스벨트가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만 해주면 코리아를 준다고 했거든. 극동 방위선은 일본이면 충분하니까 말야.”

    “… ….”

    “그래서 38선이 생긴 거요. 소련 놈들은 우리 원자폭탄 덕분으로 총 한방 안 쏘고 38선 이북을 점령하고 그 즉시 공산 괴뢰정부를 세웠지. 남한이 단독정부를 먼저 세웠기 때문에 통일이 안 되었다고 하지만 소련이 얄타에서부터 한반도를 먹을 작정이었어.”

    “… ….”

    “그런데 이제는 중국이군.”

    그때 스튜어트가 헛기침을 했다.

    “각하, 코리아 역사 이야기는 감명 깊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말씀을 하셔도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2시40분.

    함경북도 화대군 화대시 서쪽 3㎞ 지점에 9군단 예하 제102교도사단 수송대대의 자재창고가 있다. 그러나 10여 년 전에 수송대대가 군단사령부인 청진으로 철수하면서 지금은 시멘트 골격만 남았다. 목재로 된 것은 모두 땔감으로 뜯어갔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 안에 마치 벌통 안의 일벌처럼 구물거리는 물체들이 있다. 멀리서 보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이 구더기떼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가가보면 군인들이다. 이곳은 인민혁명군 제427부대. 부대장은 제102교도사단 제2연대장 이강복 대좌이며 휘하에 3개 연대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 자신이 지휘하는 2연대 병력에다 인민혁명군으로 흡수한 4000여 명의 병사를 재편성하여 인민혁명군 제 427부대로 조직한 것이다. 건물 구석에 선 이강복이 앞쪽의 부대장들에게 말한다.

    “지금 즉시 무수단리 기지로 가서 경비 업무를 맡는다. 아마 곧 3개 인민혁명군 부대가 지원을 올 게야.”

    “아니, 대장동지. 무수단리 기지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고 인혁군 연대장이 된 50대의 사내가 묻자 이강복이 머리를 끄덕였다.

    “무수단리 기지를 사수하라는 지도자 동지의 명령이시다, 그리고.”

    이강복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부대장들을 둘러보았다.

    “중국 놈들이 동창리 기지는 이미 접수했으니 이곳만은 빼앗기면 안 된단 말야. 자, 출발!”

    소리친 이강복이 발을 떼자 모두 움직였다. 구더기떼가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방이 소란스러워졌다. 이곳에서 무수단리까지는 10㎞,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무수단리 기지에는 1개 대대 병력이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인민혁명군 부대와는 우호적이다. 김경식 세력이 소탕된 지금, 인민혁명군의 목표는 침략자 중국군이 된 것이다. 김정일의 대국민 선언 이후로 정규 인민군과 인민혁명군은 급속히 결속했다. 특히 중국군과의 접경 지역이나 작전 지역에서 인민군 장교가 통합군 지휘를 맡기도 한다. 지금 이강복도 통합군 대장인 것이다.

    “주석궁에 진입했습니다.”

    참모장 양훙이 소리쳐 보고하자 후성궈는 빙그레 웃기부터 했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3시30분이다. 앞에 선 양훙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지금 16집단군의 48보병여단 1연대 병력이 주석궁 벙커 입구를 폭파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다섯 번째 시도에서 주석궁이 뚫린 것이다. 저항이 격렬해서 선봉에 섰던 제69보병사단은 막대한 피해를 보고 후퇴했다. 대신해서 나선 48여단이 마침내 방어선을 뚫은 것이다.

    “김정일은 꼭 생포하도록 해.”

    여러 번 주의를 주었지만 후성궈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 아들놈도 말야.”

    “모두 알고 있습니다.”

    둘의 시선이 동시에 벽에 붙여진 상황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동부전선의 푸른 반점이 강원도를 휘덮고 함경남도 신포에까지 닿았다. 현재시간 새벽 3시30분. 4시간 전에 원산에 입성하더니 함흥을 거쳐 신포에 닿은 것이다. 또한 2개 사단이 함흥에서 북진해 장진고원의 장진에 닿았다.

    “이놈들이 이제는 폭격을 받을 차례가 된 것 같군.”

    후성궈가 푸른 점들을 노려보며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였다. 바닥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으므로 후성궈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곳은 정예 호위총국 소속의 벙커여서 시멘트 재질도 우수한 데다 깊이는 지하 20m나 된다. 북한 평양시의 대공 요새는 최첨단 무기로도 뚫을 수가 없다. 수십 년 전부터 개보수를 해온 터라 지하벙커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됐다. 평양시에 거의 2개 집단군 전력이 진입했는데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도처가 요새요 벙커여서 몇 십 미터 전진하는 데도 엄청난 손실을 입은 것이다. 다시 땅바닥이 흔들리더니 테이블 위에 놓은 지휘봉이 조금 굴렀으므로 후성궈가 두꺼운 눈꺼풀을 치켜들었다.

    “뭐야?”

    양훙도 놀란 모양인지 몸을 돌렸고 상황실 안의 장교 서너 명도 두리번거린다. 그때 또 한번 진동이 왔는데 이번은 강했다. 상황실 안의 모든 장교가 머리를 들 정도였다. 벽에서 시멘트 부스러기가 떨어졌고 스크린의 전등이 깜박이다 다시 켜졌다.

    같은 시간 차금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좋아! 좌측은 돌파했다! 앞으로!”

    사방은 요란한 총성과 폭음으로 뒤덮여 있다. 전방 100m 지점의 초소가 불에 타 화염이 하늘로 치솟았고 연거푸 폭발음과 함께 이곳저곳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차금성은 AK-47 자동보총을 고쳐 쥐고는 다시 앞으로 내달렸다. 이미 앞쪽에 10여 명의 부하가 달려가고 있다. 그때 옆으로 붙은 하병준 중좌가 소리쳤다.

    “여단장 동지! 주장온 대좌가 전사했습니다!”

    차금성은 말없이 뛰기만 했다. 옆쪽에서 포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철모에 파편이 맞아 요란한 소리가 났고 폭풍으로 몸이 흔들렸지만 부상을 입은 것 같지가 않다. 주장온은 좌측을 돌파하고 전사한 것이다. 이제 후성궈의 벙커까지는 100m 정도가 남았다. 기습에 놀란 진주군사령관의 호위대는 전열이 흐트러졌는데 좌측에 이어 정면도 무너지는 중이다. 달리면서 차금성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인민군 전사들이여! 조국의 운명이 이 작전에 달렸다! 이름을 빛내고 죽으라!”

    폭음과 총성이 귀청을 찢을 듯이 사방에서 울리고 있었으므로 앞을 달리던 부하 서너 명만 들었을 것이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3시45분.

    “피하십시오!”

    벙커 안으로 달려 들어온 장교 하나가 버럭 소리쳤을 때 상황실 안은 물벼락을 맞은 듯이 조용해졌다. 벙커의 철문이 열린 상태여서 이제 폭발음과 총성까지 울리고 있다.

    “시끄럽다!”

    하고 먼저 꾸짖은 것은 참모장 양훙이다. 눈을 치켜뜬 양훙이 소리쳐 물었다.

    “전황을 자세히 보고해야 할 거 아니냐!”

    하지만 바로 2분쯤 전에 참모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진주군 사령부는 39집단군의 190기계화 보병사단과 제3장갑여단의 철통 같은 경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방에서 공격해온 인민군 부대는 호위총국도, 평방사, 평경사도 아닌 혼성군이었다. 아니, 잡군(雜軍)이다. 그런데 그 잡군의 기세가 무서웠다. 각각 500 내지 1000명까지의 소부대로 나뉜 잡군 20여 개 부대가 마치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쪽을 격파한 것이다.

    “현재 100m 앞까지 적이 침투해왔습니다!”

    양훙의 기세에 잠깐 움찔했던 참모가 안간힘을 쓰면서 보고했을 때 열린 문 안으로 군관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그 순간 엄청난 폭음이 울리면서 군관 뒤쪽에서부터 잔해가 쏟아져 들어왔다. 벙커 안 복도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파편에 맞았는지 비틀거리던 군관이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적이 벙커 입구에 도달했습니다!”

    그때 요란한 발사음이 울렸으므로 양훙이 머리를 돌려 후성궈를 보았다. 후성궈는 어금니를 문 채 앉아 있었는데 마치 낡은 석상 같았다.

    “사령관 동지! 피하셔야 되겠습니다!”

    그때였다. 총성이 더 요란해지더니 벙커 안으로 10여 명의 군인이 쏟아지듯 들어섰다. 지저분한 군복, 모두의 눈에는 핏발이 섰고 손에는 제각기 AK-47 자동보총을 쥐었다. 북한군이다. 놀란 상황실 안의 참모들은 무기를 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참모 대다수가 권총 혁대를 풀어놓은 채 상황스크린을 들여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인민군 하나가 유창한 중국어로 소리쳤다.

    “반항하면 죽인다!”

    2014년 8월 6일 수요일 04시 정각.

    오산 한미연합사 상황실 벙커 안. 상황 스크린 옆쪽에 붙여진 TV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곧 희미한 영상이 드러났다. 그러나 미군 참모 하나가 설명을 한다.

    “휴대전화 영상통신을 TV화면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곧 화면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북한에서 5분 전에 전송된 사진이다. 상황실 안은 조용하다. 연합사령관 우드워드 대장부터 해리슨 참모장, 한국 측 합참의장 장세윤과 육참총장 조현호까지 한미 양국군 고위층은 다 모여 있다. 그때 화면이 깨끗해지더니 험악한 표정의 사내가 나타났다. 단정한 용모의 50대인데 표정이 험하다. 눈을 치켜떴고 이마에 핏자국이 배어 있다. 굳게 다문 입술, 인민군 군복 앞쪽에 검은 얼룩이 묻었고 구겨졌다. 그러나 어깨에 붙여진 계급장은 중장, 장군이다. 그때 사내가 말했다.

    “나는 제28해상저격여단장 중장 차금성. 지도자 동지의 명을 받아 방금 침략자인 중국군 최고사령관 후성궈와 참모장 양훙, 그리고 14명의 참모를 생포했다.”

    사내가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하는 동안 상황실 안에서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또한 내가 지휘하는 19개의 부대는 용성에 주둔한 적 2개 사단을 완전히 격파, 적 후방의 진지를 확보했다. 이제 평양 시내로 진입한 적은 사방에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정말인가?”

    우드워드가 혼잣소리로 물었을 때 화면이 바뀌더니 한 무리의 군인을 비췄다. 중국군이다. 모두 벽을 등지고 앞 열은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뒤 열은 서 있었는데 누군가가 소리쳤다.

    “앗! 후성궈다!”

    우드워드도 앞 열 중앙에 앉은 노인을 보았다. 모자를 쓰지 않은 군복 차림으로 두터운 눈꺼풀을 늘어뜨린 채 양쪽 입 끝이 내려가 있어서 우울한 ‘불도그’ 같다.

    “옆에 앉은 건 참모장 양훙입니다.”

    작전참모 마이클 토드 소장이 우드워드의 옆으로 다가와 설명했다. 토드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렸다.

    “맞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위치는 평양 북방의 용성입니다. 진주군 사령부가 위치했던 곳입니다.”

    그러자 심호흡을 한 우드워드가 화면을 보았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참동안 중국군 장성들을 비추던 화면이 바뀌더니 차금성의 얼굴이 나왔다.

    “나는 중국군에게 지금부터 2시간 여유를 주겠다. 2시간 안에 평양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포로로 잡힌 15명의 중국군 지휘부를 모두 처형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지금부터 두 시간 후인 오전 6시까지다….”

    그때 화면이 끊겼으므로 우드워드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놈의 전쟁.”

    투덜거린 우드워드가 머리를 돌려 상황판을 보았다. 그의 시선이 멎은 곳은 평양특별시 남쪽이다. 참모장 해리슨의 시선도 우드워드를 따라 같은 지점에 멈췄다. 평양특별시 남쪽 ‘강남’이다.

    장갑차에 부착된 스크린은 16인치 모니터이지만 화면이 선명했다. 작전 참모가 손끝으로 화면을 ‘톡’ 찍었더니 금방 그 부분이 확대되면서 탱크들이 드러났다.

    “야, 신기하구만.”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응시하던 820전차군단 참모장 조규 상장이 감탄했다. 화면에 비친 것은 강남 우측의 산골짜기에 배치된 105기갑사단 제2 연대의 탱크들이다. 머리를 든 조규가 차봉호에게 물었다. 멀리서 포성과 폭음이 울리고 있다.

    “사단장 동무, 남조선 땅크는 기름을 얼마나 먹소?”

    “앞으로 300㎞는 충분합니다.”

    차봉호가 금방 대답했더니 조규가 다시 감탄했다. 이제는 어둠 속에 섬광이 번쩍인다.

    “야, 대단하구만. 지금까지 200㎞는 뛰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린 보통 600㎞는 갑니다.”

    2014년 8월6일 04시10분 현재, 820전차군단과 105기갑사단은 평양특별시 진입을 완료했다. 지금 강남과 중화에 걸쳐 가로로 1000대가 넘는 남북한군 전차가 배치되어 있는데 물론 중심은 820군단이다. 그런데 820군단의 전차가 말썽을 일으켜서 1시간 전부터 더 이상 북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820전차군단은 5개 여단으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1개 여단의 전차보유 대수는 약 120대, 군단의 총 전력은 600대의 전차다. 그런데 사리원 북방에서 820이 앞장을 설 때부터 540여 대가 움직였는데 평양특별시에 닿았을 때는 470대로 줄어들었다. 도중에 엔진고장, 캐터필러까지 풀린 전차가 나오는가 했더니 나중에는 엔진 과열로 불이 난 전차가 두 대나 되는 등 70여 대가 길가에 낙오한 것이다. 한국군 105기갑사단은 720대의 전차를 보유했다. 그중 개성에서부터 705대가 출동했다가 지금은 703대가 포진하고 있다. 두 대가 낙오한 것이다.

    “역시 듣던 대로 한국군 전차 성능이 좋구만.”

    머리를 끄덕인 조규가 말했으므로 차봉호는 입맛을 다셨다. 지금 전력을 재정비해서 평양으로 진격하려는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이다. 한가하게 칭찬이나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장갑차 안에는 서너 명밖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뒤쪽 문을 열고 10여 명의 남북한 지휘관이 둘러서 있다. 폭음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다.

    “그럼 10분 후에 진격하는 것으로 하고 시간을 맞춥시다.”

    하고 차봉호가 말했을 때였다. 장갑차 안쪽에 앉아 있던 참모 하나가 귀에서 헤드셋을 떼더니 작전참모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작전참모가 차봉호에게 말했다.

    “연합사에서 발신한 화면입니다. 보시라는 지시가 왔습니다.”

    그러고는 스크린의 버튼을 누르고 음량을 조절했다. 새벽 4시1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어서 주위는 어둡다. 그래서 밖을 향해 놓인 스크린의 영상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때 화면에 인민군 복장의 사내가 나타났으므로 모두 긴장했다. 사내가 소리치듯 말한다.

    “나는 제28해상저격여단장 중장 차금성. 지도자 동지의 명을 받아 방금 침략자인 중국군 최고사령관 후성궈와 참모장 양훙, 그리고 14명의 참모를 생포했다.”

    모두 숨소리도 내지 않았고 어둠에 덮인 대지 위로 차금성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참모가 볼륨을 더 올렸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지휘하는….”

    북쪽에서 포성과 기관포 발사음까지 들렸지만 차금성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가 대지를 울리는 함성이 일어났다. 화면에 후성궈를 포함한 중국군 지휘부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진군을 당분간 보류합시다.”

    같이 함성을 질렀던 차봉호가 열에 뜬 목소리로 소리치듯 말하자 조규가 서둘러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그래야겠소! 과연 해상저격여단이다! 만세! 만만세!”

    만세 소리를 들은 순간 차봉호가 퍼뜩 눈을 치켜뜬 이유가 있다. 혹시 만세 앞에 김정일 이름이 들어갈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잊었는지 생각이 없었는지 조규는 끼워 넣지 않았다.

    “16집단군사령관 주자춘이 선임입니다.”

    하고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가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주자춘이 진주군사령관을 맡을 겁니다.”

    이곳 상황실은 좁지만 응접실처럼 꾸며놓아서 아늑했다. 소파 앞쪽 벽에 펼쳐진 상황 스크린은 대형 TV같다. 김정일은 잠자코 스크린만 보았고 옆에 선 전백준의 말이 이어졌다.

    “그놈들한테는 후성궈 이하 참모가 15명일 뿐입니다. 철수할 리 없습니다.”

    “영웅이야.”

    스크린을 응시한 채 김정일이 입술을 달싹이지 않고 말했다.

    “저 동무들한테 내가 미안해.”

    지금 김정일의 시선이 닿은 곳은 평양특별시 북쪽의 용성이다. 이제 그곳에는 30여 개의 인민혁명군 부대가 운집되어 있다. 중국군 사령부를 함락시키고 나서도 더 모인 것이다. 그러나 용성 주위에는 중국군 3개 집단군의 7개 사단병력이 포위하고 있다. 차금성이 통보한 2시간은 아직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평양특별시 안으로 뒤에 처져 있던 39집단군 부대까지 진입해 왔다. 김정일이 다시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뒤쪽에 서 있는 이동일에게도 다 들렸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