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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에 길을 묻다

충고하고 지적하고 바로잡으라!

제나라 위왕의 ‘소통 리더십’

  •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충고하고 지적하고 바로잡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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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잘생겼나

그러자 추기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의 업은 거문고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라 거문고에 정통한 건 당연합니다. 하온대 대왕의 업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인데 어찌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에 정통하지 못하십니까. 대왕께선 신이 거문고를 어루만지기만 하듯 나라를 9년 동안이나 어루만지기만 할 뿐 다스리지 않으시니 백성의 마음이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추기의 이 말에 위왕은 문득 깨달은 바 있어 흥분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황급히 말했다.
“선생의 뜻을 알았습니다. 과인이 삼가 선생의 말씀을 따르겠소이다!”
위왕은 추기를 자기 침소의 오른쪽 방에 머물도록 했다. 다음 날 아침 위왕은 목욕재계한 다음 추기를 불러 치국(治國)의 도리를 물었고, 추기는 치국의 이치와 방법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얼마 후 위왕은 추기를 재상으로 삼고 자신을 도와 나라를 다스리게 했다. 위왕은 이렇게 대오 각성하고 추기와 호흡을 맞춰 제나라 중흥을 위한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추기는 미남이었다. 일쑤 거울을 보며 잘생긴 용모에 스스로 감탄했다고 한다. 그는 아내에게 도성 북쪽의 서공과 자신을 비교할 때 누가 더 미남이냐고 물었다. 아내는 “당연히 당신이 더 잘생겼지요”라고 대답했다. 첩에게 물어도,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물어도 답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서공의 실물을 보니 아무리 봐도 자기보다 더 잘생겼다. 추기는 ‘이들은 왜 내가 더 잘생겼다고 할까’ 하며 고민에 빠졌다.
얼마 뒤 추기는 위왕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며 “아내는 저를 사랑하기에, 첩은 총애를 잃을까 겁이 나서, 손님은 제게 바라는 게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왕의 곁에도 이런 부류가 넘쳐나니 정작 바른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충고했다.
이를 들은 위왕은 전국에 포고령을 내렸다. 첫째, 왕 앞에서 대놓고 충고하는 사람에겐 1등상을 준다. 둘째, 글을 올려 왕의 잘못을 바로잡는 사람에겐 2등상을 준다. 셋째, 사석에서라도 왕의 잘못을 지적해 그 얘기가 왕의 귀에 들리면 3등상을 준다. 그로부터 1년 뒤 위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위왕은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충실히 귀 기울여 잘못을 바로잡았고, 이 때문에 지적할 잘못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개혁으로 이어진 용인술

추기 등의 보좌를 받으며 부국강병을 추구한 위왕의 정책 중에서도 인재를 등용하는 용인 정책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는 먼저 지방 관리에 대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제나라는 두 자리의 중요한 지방관을 뒀는데, 즉묵(卽墨, 지금의 산둥성 평도 동남쪽) 대부와 아(阿, 지금의 산둥성 양곡 동북쪽) 대부였다.
즉묵 대부는 황무지를 개간하는 등 지역을 잘 다스려 세금이 날로 늘었다. 성격이 강직해 권세가들의 비위를 맞출 줄 몰랐고, 이 때문에 위왕 측근 대신들은 늘 즉묵 대부에 대해 험담을 일삼았다. 아 대부는 농사를 제대로 안 챙겨 논밭엔 잡초만 무성하고 창고도 텅 비어 방어력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위왕 측근들에게 뇌물을 자주 바치는 등 아부를 일삼아 위왕 측근들은 아 대부를 칭찬하는 말을 늘어놨다.
위왕은 두 사람에 대해 조사한 뒤 그들을 불러들였다. 위왕은 즉묵 대부에게 “그대가 즉묵으로 간 다음 자네에 대한 뒷공론이 무성했다네. 그래서 내가 사람을 보내 즉묵을 살피게 했더니 곳곳이 논밭으로 변해 있었고, 백성은 풍요롭고 관리들은 청렴해 모두가 편하게 살고 있다더군. 이는 그대가 나의 측근 대신들에게 아부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네”라며 1만 호나 되는 땅을 다스리게 했다.
이어 위왕은 아 대부에게 “그대가 아 지역으로 간 다음 오로지 칭찬하는 말만 들리더군. 그래서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논밭은 농사를 짓지 않아 잡초만 우거지고 백성은 고생에 허덕이더군. 옛날 조나라가 견(甄)을 칠 때 그대는 견을 구하지 못했고, 위나라가 설릉(薛陵)을 칠 때도 알지 못했지. 너는 재물로 내 측근들을 매수해 나를 속였더군”이라고 호통을 친 뒤 “아 대부와 그의 죄를 숨겨준 자들을 끓는 물에 던져 죽이라!”고 엄명을 내렸다.
즉묵 대부에게 상을 내리고 아 대부를 징벌한 것으로 볼 때 위왕은 진짜 잘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가릴 줄 알았고, 상벌의 원칙이 분명해 큰 업적을 이룰 가능성을 보여줬다. 실제로 위왕은 탁택(濁澤)에서 위나라와 싸워 이기고 혜왕을 포위했다. 혜왕은 화해를 구걸하며 조나라에게서 빼앗은 제나라의 장성을 돌려줬다. 위왕은 집권 이전 제후국들의 혼전(混戰) 상황을 짧은 시간에 수습했다. 국내에서 실시한 일련의 정책은 제나라 백성들로 하여금 건전한 생활과 인간관계를 누릴 수 있게 했고, 모두가 성실히 살도록 자극해 제나라는 번영을 구가했다. 이후 20년 동안 어느 제후도 제나라를 건드리지 못했다.
제후들이 제나라를 넘보지 못한 건 위왕이 유능한 인재를 기용한 덕분이기도 하다. 위왕 곁에는 추기 외에도 손빈(孫臏), 순우곤(淳于髡) 등의 인재가 있었다. 손빈은 뛰어난 군사가였는데, 위나라에 갔다가 동문수학한 방연(龐涓)의 질투와 모함으로 무릎 아래를 잘리는 극형을 받고 제나라로 도망쳤다. 제나라 장군 전기(田忌)는 위왕에게 손빈을 추천했고 위왕은 그를 참모로 앉혔다.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제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손빈은 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한다는 ‘위위구조(圍魏救趙)’ 책략으로 계릉(桂陵)에서 위나라 군대를 대파했다. 이로써 제나라는 최강의 제후국으로 부상해 천하를 호령했다.

충고하고 지적하고 바로잡으라!

거문고로 소통의 이치를 설파한 추기.

보물 같은 인재들

위왕은 이렇듯 정치·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탁월한 인재들을 거느렸다. 위왕은 유능한 인재를 기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알았고, 그래서 인재를 나라의 보물처럼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양(粱) 혜왕(惠王)과 나눈 의미심장한 대화를 보자.
“대왕의 나라엔 보물이 얼마나 있습니까.”
“없습니다.”
“과인의 나라는 비록 작긴 하지만 한 치짜리 구슬로 수레 12대는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왕의 나라는 대국인데 어째서 보물이 없다고 하십니까.”
“과인의 보물과 당신의 보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단자(檀子)라는 신하가 있는데, 남쪽 성을 굳게 지켜 초나라 사람들이 동쪽을 넘보지 못하고 12제후가 공물을 바치게 합니다. 반자(盼子)라는 신하가 고당(高唐)을 지켜 조나라 사람들은 그 동쪽 강에서 감히 고기도 잡지 못합니다. 검부(黔夫)라는 신하는 서주(徐州)를 지키는데 북문과 서문에서 제사를 지내는 연나라와 조나라 사람 7000호가 우리 쪽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종수(種首)라는 신하는 도적을 막는 능력이 특출해 그의 관할 지역에선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는답니다. 이런 인재들을 어찌 열두 수레를 채우는 보물과 비교하겠습니까,”
양 혜왕은 위왕의 말을 듣고는 부끄러워 얼른 자국으로 돌아갔다. 위왕과 그 후의 선왕은 여러 방법과 수단으로 인재를 끌어들였고, 덕분에 제나라는 인재로 흘러넘쳤다. 제나라는 사상적으로도 개방됐고, 수도 임치(臨淄)의 서문인 직문(稷門) 밖엔 오늘날의 대학교나 전문 연구기관 같은 학교가 들어섰다. 이를 직하학궁, 그곳에서 강의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직하학파(稷下學派)라고 일컬었다. 직하학궁에선 국적을 초월해 뛰어난 학자를 두루 받아들였다. 각국의 문인과 학자, 사상가들이 운집했는데 추연, 순우곤, 전병(田騈), 접여(接予), 신도(慎到), 환연(環淵) 등 70명에 이르는 학자가 녹봉과 상대부라는 자리를 받아 학문을 연구하고 국사를 논의했다. 한창 번성했을 땐 학자가 수천 명에 달했다. 대사상가 맹자와 순자도 이곳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충고하고 지적하고 바로잡으라!

 전국시대 학술사상의 요람이던 직하학궁 유지(왼쪽). 인재의 중요성에 대한 이치를 통찰한 순우곤(오른쪽).

共生同趨, 以賢薦賢

제나라가 유능한 인재를 많이 끌어들일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군주가 인재를 중시하고 그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함께 살고 함께 발전해나가는 ‘공생동추(共生同趨)’ 현상이 나타났다.
어느 날 순우곤은 선왕에게 하루 동안 7명의 인재를 한꺼번에 추천했다. 선왕이 의아해하며 “내가 듣기에 1000리 안에 현명한 선비 한 사람만 있어도 인재가 몸에 부딪칠 정도로 많다고들 하며, 100대에 성인이 한 사람 나와도 발꿈치가 닿을 정도로 인재가 많다고들 하는데, 나는 오늘 하루 만에 7명을 얻었으니 너무 많은 것 아니오?”라고 물었다. 순우곤의 대답은 이랬다.
“사람은 뜻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고, 사물은 같은 종류끼리 모이는 법입니다. 오늘 추천한 이들은 모두 천하에 둘도 없는 인재입니다. 대왕께서 제게 인재를 구하라는 것은 강물에서 물을 얻고 불더미에서 불씨를 얻으라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7명 추천한 것을 어찌 많다고 하겠습니까.”
인재는 고립된 상황에서 출현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조건이 되면 식물들의 공생관계처럼 무더기로 자라나며, 같은 이상과 포부를 지닌 인재는 조건만 맞으면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현명한 사람이 현명한 사람을 추천한다’는 ‘이현천현(以賢薦賢)’의 법칙이다.
위왕은 추기로부터 소통의 이치에 대한 충고를 듣고 9년에 걸친 생활 태도와 사고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그러고는 백성과 적극 소통했다. 그 결과 어떤 관리가 좋고 나쁜지를 정확히 알게 됐고 손빈, 전기 같은 군사 전문가를 발탁할 수 있었다. 나아가 당대 최고의 사상가들을 대거 초빙해 학궁을 만들고 자유롭게 학술 토론을 하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제나라와 수도 임치는 당시 최고 수준의 문화를 누리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은 다름 아닌 통치자의 소통 의지와 실천이었다.






신동아 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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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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