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마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모델하우스.
“진작 그렇게 말씀해주시지…. 고민 해결됐네요. 여기 상담료 있어요.”
“저기 오디오 턴테이블 옆 은색 통에 넣고 가세요.”
“네. 그런데 저…다음 분 상담하는 것 좀 듣다 가면 안 되나요?”
“그러세요. 그 대신 서비스를 부탁드려요, 커피 좀 맛있게 한잔씩 타주세요.”
곽형근은 예상외로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경매 메뚜기’로 수익 내기
“먼저 예약하신 장윤석 선생 이리로 오시고, 김 선생은 저기 박선은씨하고 같이 앉아 계셔야겠네요.”
검은 점퍼는 상담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그의 이름이 장윤석인 모양이었다.
“장 선생 나이는?”
“65년생입니다, 우리나이로 마흔여섯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계약직으로 한문을 가르치는 와이프가 있고요, 일곱 살짜리 유치원생 딸이 있습니다.”
“월수입은 얼마나 되시나요?”
“실은 제가 공인중개사인데, 요즘 장사가 잘 안됩니다. 월 100만원 정도 수입이 있고요, 와이프가 벌어오는 돈이 170만원쯤 됩니다. 형편이 어렵다보니 집을 팔아 경매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제가 소유한 집이 두 채가 있었습니다. 잘 오르지도 않고 게다가 2주택자는 1순위 청약도 할 수가 없어서 1순위 청약을 하려고 한 채를 팔았습니다. 중랑구 신내동에 있는 17평짜리 아파트인데, 8년 전 결혼할 때 1억 주고 샀는데 8년 동안 하나도 안 올랐어요. 팔려고 내놔도 와 보는 사람도 없었고…. 그런데 1억1000만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팔았더니 그 다음부터 막 오르는 거예요. 그러더니 6개월 사이에 2억원까지 가더라고요.”
검은 점퍼의 사내는 냉수를 한 컵 들이켜더니 먼 산을 바라봤다. 작은 출입문 밖으로 올망졸망한 산동네 풍경이 보이고 멀리 북한산이 눈에 들어왔다.
“남은 한 채는 지금 살고 있는 성북구 돈암동의 아파트인데 그것도 헌집을 사서 재개발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43평형인데 지금은 빠져서 4억원 정도 합니다. 가진 게 이것뿐인데 이걸 팔아서 경매로 수익을 내보려고요. 그게 가능할까요?”
장윤석의 굳어진 얼굴빛을 바라보던 곽형근이 웃으면서 말했다.
“다 팔자예요. 거꾸로 팔았으면 좋았을 텐데…. 2~3년전까지는 다 장 선생처럼 했어요. 순환매가 예상됐지만 8년 동안 안 오르는 물건을 사겠다는데 안 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파시려는 돈암동 아파트는 당장 오르지는 않을 거예요. 올라도 미미한 수준, 지난 번처럼 두 배는 안 되겠죠. 주변에 특별한 호재가 없는데다 중대형 수요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죠. 또 인근 미아뉴타운 등에서 대단지 새 아파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생각하신 대로 돈암동 아파트를 팔아서 경매로 잘 굴려보신다면 손해 봤다고 생각하는 돈 정도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장윤석은 옆 사람들을 힐끗 보더니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