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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노동의 경제학

휴일이 늘어야 나라가 산다

  •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휴일이 늘어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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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노동부가 발표하는 10인 이상 상용노동자의 노동시간은 노동계로부터 실제보다 낮게 잡혀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사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이기 때문에 초과근로 법정 상한선(주 12시간)을 넘어서는 곳의 실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체 취업자(자영업자, 무급 가족종사, 임시직, 일용직 등 포함) 기준으로 보면 연간 노동시간은 2673시간(97년 기준)으로 늘어난다.

연간 휴일·휴가 일수(표2)를 비교해도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너무 짧고, 그나마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이철수 교수의 조사를 보면, 98년 한국인의 평균 휴무일수(법정공휴일, 주휴일, 연월차휴가는 평균 26일로 함)는 총 96일인데 사용일수는 76.8(89%)일에 불과했다. 법정공휴일이나 주휴일에 모두 쉰 것으로 했을 때 연월차유급휴가는 26일 중 7일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고 있다.

세계관광기구에서도 지난해 재미있는 통계를 발표했다. 한국은 명목 휴가일수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위(조사대상은 세계관광 소비의 73%를 차지하는 상위 18개 국가)인데, 실질휴가는 중국·미국·싱가포르·일본에 이어 말레이시아와 함께 적게 쓰는 순위 5위여서 명목과 현실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통계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전체 휴일·휴가에서 주휴일(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것. 대부분의 선진국이 주5일 근무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일요휴무만 인정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52일 가량 주휴일이 많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명목상의 휴일도 선진국에 비해 절대 부족한 상태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연간 1800시간(97년 기준 1891시간)을 목표로 정부가 앞장서 단계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시켰으며, 일본의 사용자 단체인 일경련도 이 정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2002년부터는 학교에서도 토요일 수업을 전면 폐지할 예정이어서 전 사회가 ‘인간다운 삶’을 목표로 주5일제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에서의 노동시간 단축논의는 IMF위기 상황에 실직자에게 ‘목숨’과도 같은 일자리를 나눠주자는 지극히 실용적이고 절박한 노동자들의 요구로 시작됐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이 기업의 신규고용을 유발하리라는 노동계의 기대는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 같다.

“법정근로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인다고 해서 실질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한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기업 쪽에서는 신규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보다 연장근로수당을 주고 기존 숙련된 근로자를 이용하는 게 훨씬 유리하니까요. 신규채용과 해고비용, 교육기간까지 고려해야 하니까요. 또 워크셰어링(Work-sharing:시간 분할제)을 통해 사양산업에서 떠나려는 사람들을 자꾸 묶어두면 당장은 사회적 통합이나 고통분담 차원에서 의미가 있겠지만 경제구조조정을 저해하고, 나중에 호황기가 왔을 때는 오히려 노동의 기회를 줄이는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기업은 추가로 고용할 여력이 생겨도 향후 다가올지도 모를 불황기를 대비해 적게 충원하려 할테니까요.”

한국개발연구원의 유경준 연구위원은 최근 OECD 국가에서 발표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창출효과 연구를 보면 지금까지는 고용창출 효과는 미미하거나 고용유지효과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노동계가 계속 고용창출효과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여가를 확보해 삶의 질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여 그 증가분이 노동자에게 환원될 수 있는 노동시간단축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이 시점에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

쉬지 않으면 바보 된다

왜 한국 사람들은 덜 일하고, 좀더 많이 쉬어야 하는가. 노동시간단축과 생산성의 관계를 설명하기 전에 ‘잠’에 관한 재미있는 실험결과를 살펴보자.

캐나다 브리티시 칼럼비아 대학 심리학 교수인 스탠리 코렌이 ‘잠을 줄이는 법’을 연구했다. 일을 너무 사랑했던 그는 매일 밤 8시간씩 잠으로 낭비하는 것이 아까워 수면시간을 5시간으로 줄이기로 결심했다. 대신 매일 3시간씩 벌면, 일주일에는 21시간, 1년에 1092시간(8시간 기준 근무일수로 치면 136일), 10년 뒤에는 일할 시간을 거의 4년이나 더 가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렇게 얻은 시간에 책을 더 쓰고, 더 많은 연구를 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떴다.

방법은 첫주에 30분, 다음주에 30분 하는 식으로 6주에 걸쳐 단계적으로 3시간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상황변화를 기록했다.

1주 목요일 : 내 옷이 실제보다 몇 파운드 더 무겁게 느껴지는 정도의 피로감을 느꼈다.

2주 수요일 :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자명종이 꼭 필요하게 됐다.

4주 금요일 : 내가 소집한 모임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부랴부랴 모임에 가서도 왜 내가 이 모임을 소집했는지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5주 목요일 : 정말 당황스럽다. 나는 세미나 도중, 그것도 내가 굉장히 관심을 갖고 있는 발표를 듣던 중 잠이 들었다. 누군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코를 골았던 모양이다.

6주 목요일 : 사람들은 내가 우울하고 무덤덤해 보인다고 말한다.

7주 월요일 : 아침에 숙취상태인 것처럼 일어나기 힘들었다. 내 사무실로 가면서 예전 사무실이 있던 건물 현관에서 3,4분동안 멍청하게 두리번거리다가 겨우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냈다.

7주 수요일 : 오늘 밤으로 잠 줄이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현재 나는 난독증에 걸려있다. 자동응답기에 남긴 전화번호를 몇 차례나 잘못 옮겨적었다. 운전을 하다가 졸고, 뒤차가 경적을 울렸을 때야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스탠리 코렌의 ‘잠도둑들’ 1998)

코렌 교수가 이 실험에서 내린 결론은 “잠을 줄이면 바보가 된다”였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노동윤리는 가능한 한 수면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잠을 자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트럭, 자동차, 비행기, 기차의 운전대에 졸린 사람들이 앉아 있다. 졸려서 비틀거리는 투자관리자가 당신의 평생 저축을 좌우할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 해마다 잠과 관련된 실책과 사고가 미국에서만 56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가져오고 있으며 거의 2만5000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사고로 인한 장애에 빠뜨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잠’을 ‘휴식’으로 바꾸면 곧바로 장시간근로 산재왕국 한국이 나타난다. 민주노총의 주진우 정책국장은 “한국이 산재왕국(98년 국제노동기구 자료를 보면 1만명 당 산재사망자가 3.33명으로 미국의 67배, 일본의 33배, 프랑스 6배, 독일의 4배에 이름. 태국보다도 2배나 많은 수치다)이 된 것도 장시간 노동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 말한다. 특히 산재가 주로 마지막 노동시간대(대개 연장근로)에 발생한다는 것도 이미 사례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다.

반면 충분한 여가는 신경쇠약과 피로와 소화불량 대신 인생의 행복과 환희를 가져다 준다고 버트런드 러셀은 말했다.

“만약 누구나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 필요한 일만 함으로써 기력을 소모하는 일 없이 여가를 즐겁게 보낼 것이다. 따라서 여가에 지쳐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오락거리들(스포츠를 보고, TV를 보는 등 도시인들이 즐기는 수동적인 오락)만 찾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1%는, 직업상의 일에 써버리지 않은 시간을 뭔가 유용한 것을 추구하는 데 바칠 것이다.”

실제로 노동시간단축이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는 연구도 있다. 노동계에서 자주 인용하는 일본 노동성의 ‘노동시간백서’(91년)를 보면 “노동시간단축은 경영개선, 노동시간관리의 합리적 개선, 노동자의 의욕 향상 등을 유발한다. 노동시간과 출근일수를 1% 줄이면 생산성은 3.77% 향상된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는 96년 1·4분기 노동생산성(생산액을 노동시간과 근로자수로 나눈 것)이 1년 전에 비해 10.9%로 크게 오른 적이 있다. 원인은 노동시간단축. 특히 경기 흐름에 민감한 연장근로시간이 업종에 따라 월평균 2.2~3.1시간씩 줄어들자 오히려 생산성이 올라가는 현상을 보였다.

휴가 대신 돈, 연월차수당의 함정

지금까지의 주장이나 사례로 보면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노동계의 판정승이다. 사용자측은 시기를 놓고 “단축속도가 너무 빨라 부담스럽다”고 할 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의의 타당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못했다(주 40시간으로 단축하는 문제는 이미 98년 6월 노사정위에서 ‘그 방안을 논의한다’고 합의했다).

학자들은 노사가 쟁점 싸움만 계속할 게 아니라, 무역과 노동을 연계시키는 ‘블루라운드(EU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무역과 각국의 기본 노동권을 연계시키자는 움직임)’에 대비해, 지금부터 세계적 추세에 맞게 실질노동시간의 단축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예로 독일은 60년대까지만 해도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자 유럽국가들이 공정한 경쟁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라는 압력을 넣어 실노동시간을 30시간대로 줄였다. 일본 역시 주변국가의 압력으로 노동시간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사용자측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노동계가 이것을 임금보전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즉 일량은 변하지 않은 상황에 법정근로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면 노동자들은 주어진 시간내에 열심히 일해 생산성을 높이고 4시간의 여가를 갖는 게 아니라, 40시간에 기초한 연장근로수단만 더 받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것이 한국 특유의 ‘연월차수당’ 제도. 월차는 매월 하루씩 계산해 1년에 12일이고, 1년 이상 계속근무를 하면 연차 10일을 합해 22일의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특이한 것은 근속일수가 늘어날수록 가산점이 있다는 것. 한 직장에 평균 5~6년 근무한다고 했을 때 연월차 휴가는 25~26일이 되므로 제대로 찾아 쓴다면 거의 한 달을 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연월차를 휴가가 아닌 임금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연월차는 휴가가 아니라 놀지 않고 일하면 근속연수가 많은 사람일수록 많은 임금을 가져갈 수 있는 사유가 됐죠. 그래서 사람들은 법대로 휴가를 쓰기보다 30일 가까운 휴가를 일주일만 쓰고 나머지는 돈으로 받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사용자측으로서는 인건비 부담이 늘고, 근로자는 과로해 가면서 대신 돈으로 받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실제 과로하면서도 과로라고 못 느껴요. 고작 일주일 쉬고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법정근로시간을 줄이거나 휴가를 늘리자고 주장하기 전에 정말 쉬는 게 목적이라면 현재 법이 허용하는 휴가만이라도 제대로 쓰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철수 교수는 이미 근로자들이 휴가 대신 연말에 몰아서 받는 연월차수당이라는 ‘목돈’에 길들어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된 데는 쉬고 싶어도 쉴 수 없게 만드는 저임금 구조와 휴가를 사용하는 데 눈치가 보이는 기업풍토가 원인이 된다.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 한때 노동법에 “휴가를 쓴다고 해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뒤집어 보면 “그동안 휴가를 쓰면 괘씸죄로 불이익을 줬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와 자료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국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

●노동시간 단축은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 (△) -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 생산성을 높인다(○) - 이것은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노동시간 단축은 시기상조다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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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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