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北의 낚시전술 vs 南의 그물전술

국내외 인사 20인이 말하는 통일게임의 전망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9-22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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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의 극적인 역전승인가, 아니면 남북한 모두의 윈-윈게임이었을까. 신동아 긴급 여론 조사는 우리 사회가 6·15 공동 선언 사항을 수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6·15 공동 선언 이후 한반도에는 어떤 변화가 밀어닥칠 것인가를 분석해 본다. 》
    만고역적을 영접한 인민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끝났다. 6월13일부터 한국 전역에 몰아친 김정일 신드롬은 과히 충격이었다. 전격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공항에서 영접하는 김정일의 자신만만한 어조, 좌중을 휘어잡는 그의 제스처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군주’로서 부족함이 없는 듯 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만 3일 동안 한국 텔레비전 화면을 마음껏 누빈 최고의 ‘탤런트’였다.

    조선인민군은 한국 대통령을 ‘만고역적(萬古逆賊)’으로 불러왔다. 그러한 만고역적을 향해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장 차민헌 대좌는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명예위병대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물론 북한은 언론 자유가 없어 DJ 신드롬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이 정상회담을 보도했으므로, 북한 사회가 받는 충격도 엄청났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새’처럼 자유롭게 남북 상공을 오가면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사상 최대의 외교전



    전쟁이란 국익을 쟁취하기 위해 펼치는 최대의 ‘정치 행위’이다. 전시가 아닐 때는 외교전을 통해 국익을 다투게 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6·25전쟁 이후 최대의 남북 대결이었다. 총성 없는 전쟁이고 사상 최대의 외교전이었다. 사상 최대의 외교전을 펼칠 때는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있는 법이다.

    먼저 북쪽부터 살펴보자. 현재 북한이 겪고 있는 최대 고통은 경제붕괴다. 90년 이후 북한에서는 300여만 명의 아사자(餓死者)가 이 벌어졌다면 그 지도자는 국민들로부터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조선조 왕조 체제를 인정하는 문화가 남아 있고, 또 강력한 군부가 떠받치고 있어 김정일 정권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폭풍우에 휩싸인 ‘종이배’처럼 언제 가라앉을 지 불안하기만 하다.

    김정일은 어떻게 해서든 북한 경제를 재건해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있다.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한데 자본은 서방국가가 쥐고 있다. 이런 나라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이다 보면 “김정일, 너 정치 잘못했어. 물러나”라고 외치는 자유주의 사상이 따라 들어올 수가 있다. 자본주의의 ‘단물’(자본)은 빨아먹고, 단물을 따라 들어오는 ‘파리·모기’(자유주의 사상)를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향하여

    경제는 재건하면서도 권력은 계속 유지하는 사례로는 두 가지가 있다. 군부독재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경제를 부흥시켰고 사후에는 ‘위대한 지도자’라는 평가까지 받은 박정희 모델과,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는 개혁·개방으로 살려나가고 있는 중국식 모델이다. 박정희식 모델은 그래도 선거라는 ‘중간 평가’를 거치며 권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중국은 선거도 없는 일당독재로 권력을 유지해 왔다. 이 둘을 합쳐 ‘개발독재’로 명명할 수가 있다.

    김정일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와 중국식 개혁·개방의 ‘진부분 집합’거나 그 옆 동네 어디쯤으로 북한을 끌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목표점에 이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친절하게도 해답은 현실 세계가 가르쳐 주었다. 중국은 아쉬운 대로 조금씩 북한을 도와주긴 하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로 그 양이 너무 적었다. 미국·일본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에 자본을 투자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덜 적대적인 유럽 국가들도 “한국이 북한에 투자해야 우리도 믿고 들어갈 수 있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남은 것은 한국뿐이다. 한국이 투자하면 유럽국가가 따라 오고, 미국과 일본도 경제봉쇄를 풀고 북한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을 끌어들이다 보면 한국에 흡수통일될 수가 있다.

    여기서 북한의 고민은 시작된다. ‘미끼’(자본)는 따먹고 ‘미늘’(낚시 바늘, 즉 흡수통일)은 삼키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세계가 던져주는 ‘단물’은 빨아 먹고, ‘파리·모기’를 막는 길은 무엇인가. 한번 게임을 벌여볼까….

    게임을 벌이기 위해서는 먼저 김정일 중심으로 북한 인민이 뭉쳐야 한다. 그래서 수령론을 중심으로 한 주체사상을 완성했다. 수령론만으로는 안된다. 뭔가 눈에 보여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실제로 북한이 미국에 맞서는 강성대국이라는 것을 인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미사일을 시험발사해서 미국을 비롯한 온세계가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미국은 더욱 북한을 옥죄므로 북한의 선택지는 더욱 한국으로 축소된다. 이것이 북한의 딜레마였다. ‘한국을 끌어들여 보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을 보름여 앞두고 중국을 방문해서 ‘결코 바보가 아님’을 입증했다. 이에 대해서는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지근 거리에서 김정일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있다가 탈북한 A씨 설명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구한 정보에 따르면 김정일은 장쩌민(江澤民)한테서 4억 달러 규모의 경제지원을 받기로 약속했다. 그 대가로 북한은 미국에 맞서고 있는 중국을 지지해 주기로 했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된 것이다. 김정일은 이런 식으로 우군을 확보하고 ‘딴 주머니(4억 달러)’까지 찬 후 한국이 경제지원을 미끼로 무리한 요구를 하면 이를 걷어차겠다는 속셈으로 김대통령을 만났다. 한국이 조건 없이 지원한다면 받아 먹고 그렇지 않으면 내차버리면서 자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번에는 한국을 살펴보자.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두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첫 번째는 일본으로부터 대일 청구권 자금을 받아 사회간접자본과 포항제철 같은 기간 산업을 건설함으로써 발전 기틀을 마련했다.

    두 번째로는 건설회사들이 월남과 중동에 진출해 건설 특수를 일으켜서 재도약하는 뜀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경제는 유기체와 같아서 이런 기반도 흘러가 버리면 무용지물이다. 한참 경기가 좋을 때 자본을 축적해 고도화된 산업 구조로 도약하지 못하면 그 나라 경제는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지난 90년대, 한국은 그 동안 축적한 자본력을 토대로 첨단 산업 쪽으로 도약했다가 힘이 달려 하루아침에 IMF 경제위기를 맞았다. 한국으로서는 자본력을 모을 무대가 필요한데, 좌우를 둘러봐도 현재 한국 주력 산업으로는 자본을 모을 무대가 없다.

    한국의 주력 산업체인 건설사들은 더 이상 일감을 찾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제조업체 역시 인건비 상승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언어가 통하고 노동력이 괜찮은 북한은 별천지다.

    그래서 “북한 땅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다오”라는 여론을 만들어 왔는데, 가장 안전한 구조는 한국이 북한을 통치하는 통일뿐이다. 한국식 경제 체제 속에 북한을 흡수하는, 이름하여 ‘흡수통일’뿐인 것이다.

    흡수통일은 무력통일을 대치하는 남측의 새로운 평화통일 방안으로 자리 잡았다. 그에 앞서 북한은 무력통일을 대체할 평화통일 방안으로, 남조선에 혁명으로 용공(容共)정권이 들어선 후, 남북을 합치는 ‘적화(赤化)통일’ 방안을 창출해 냈다.

    낚시바늘을 던져라

    적화통일을 선택한 후 북한은, 80년대부터 줄기차게 ‘고려연방제’를 제창했다. 북한에 견주어 한발 늦게 흡수통일안을 만든 한국은, YS 시절에는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DJ 시절에는 ‘3단계 국가 연합’ 방안을 내놓았다.

    고려연방제는, 외교와 군사문제는 중앙정부가 갖고 나머지 내정권은 남북 정부가 갖는다는 뜻이므로 ‘1국2제’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의 통일 방안은 남북이 내정권은 물론이고 외교·군사권까지 가진 엄연한 ‘2국2제’, 위에서 경제교류부터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목표와 방법을 결정했으니 양쪽은 ‘링’에 올라가 시합을 벌일 수밖에 없다. 총력 외교전이라는 시합을 위해서는 작전이 있어야 한다.

    북한은 ‘한국이 제시한 단물은 영락없이 빨아먹고 파리·모기는 여차하면 내쫓는다. 내부 단결을 위해서는 장군님(김정일)의 카리스마를 한껏 보여준 다’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래서 박지원-송호경이 4·8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문을 만들 때 내쫓을 명분으로 “김대중 대통령‘요청’에 따라 회담을 연다”와 “‘상봉’과 “회담’을 가진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동시에 북한은 평양학생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을 서울에 보내 분위기를 띄웠다. 이때도 북한은 남측 요구에 따라 예술단을 보내주는 형식을 취해 5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실리전을 펼쳤다. ‘꿩 먹고 알 먹고, 털 뽑아 부채질 까지 하는’ 1석3조를 거둔 것이다.

    이러한 북한 전략은 북한을 넘보고 싶어 안달하는 한국에게 “이 낚시 바늘을 삼키면 만나 주지. 더욱 깊이 삼키면 만나 주지”하는 야멸찬 시험이었다.

    힘센 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코뚜레를 뚫어야 ‘이랴 이랴’ 끌고 다닐 수 있다. 북한은 한국이라는 ‘위험한 소’를 통제하기 위해 코뚜레를 뚫는 심정으로 한국에게 낚시 바늘을 던진 것이다. 한국이 이 낚시 바늘을 삼켜야만 북한으로 들어올 한국 자본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서….

    이러한 북한 전략이 잘 드러난 것이 6월13일 순안공항에서 펼쳐진 김대통령 영접행사다.

    이 부분은 북한 사정에 정통한 탈북자 A씨의 설명이 적절하다. 설명에 앞서 A씨는 “기자 선생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단 두 사람만이 만난 단독 정상회담이 없었다고 보십니까?”라는 물음부터 던졌다. 배석자 없는 단독정상회담은 양 정상간에 ‘밀약이 있지 않았는가’ 혹은 ‘두 정상 간에 승패가 갈리는 치열한 기 싸움이 있지 않았는가’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배석자 없는 단독정상회담은 김정일의 카리스마가 확고부동한 북한에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여야 정당을 비롯한 여러 정파 사이의 견제가 자심한 한국에서는 큰 오해를 부를 수가 있다. 이런 이유로 평양을 방문한 김대통령은 단 둘 만의 단독 정상회담은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6월14일 이후의 정상회담에는 배석자가 있었다). 그런데 탈북자 A씨는 단 두 사람만의 단독 정상회담이 있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김대통령은 단독정상회담에는 응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배석자를 앉히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부인 이희호 여사를 동석시켜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오해를 피해 가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김정일은 역으로 그것을 노렸다. 한국 언론은 순안공항에 김정일이 나와 영접한데 대해 놀라워했는데, 허점은 깜짝 놀랄 때 노출된다.

    김정일은 공항 행사가 끝난 후 바로 김대통령의 차에 동승했다. 1호 차 상석에는 김대통령을 앉히고, 자신은 그 왼쪽에 앉아 외견상 최대한 예우를 갖추며 단독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배석자는 물론이고 이희호 여사, 찰거머리 같은 남한 기자를 완벽히 따돌린 것이다. 한국 언론은 두 정상이 한 차에 탄 50분 동안 덕담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측했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1호 차는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 유리를 올리면 완벽하게 둘만의 공간이 된다. 그 자리에서 김정일은 여러 이야기를 김대통령에게 했을 것이다. 김대통령이 도저히 수락할 수 없는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을 받아들여야 당신을 믿을 수 있다’고 퍼부었을 것이다. 김대통령은 어이가 없어 대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순안공항에서의 김대통령 표정과 김정일과 함께 1호 차를 타고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한 후의 표정을 비교해 보라.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한 후의 얼굴이 훨씬 더 어둡고 수심에 쌓여 있다.

    단 둘만의 이야기는 입밖에 내기 곤란하다는 것을 계산하고 김정일은 의도적으로 1호 차에 동승한 것이다. 그리고는 일없었다는듯이 백화원 영빈관에서는 농담을 하며 김대통령한테서 반격 기회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김대통령은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라,

    열정적으로 말을 쏟아붓는 김정일을 처음 대화에서는 이겨 낼 수가 없다. 김정일은 김대통령과 단 둘이 차안에서 대면할 수 있는 50분을 위해 공항에 나간 것이다.

    한국 언론은 김정일이 공항 영접한 것을 대단한 예우로 평가했지만, 북한 쪽 해석은 전혀 다를 것이다. 그날 김정일은 점퍼 차림에 선글라스처럼 색깔이 들어간 안경을 쓰고 공항에 나왔다. 그 다음날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닫긴 깃 양복’이라고 하는 북한 판 정장에 맑은 안경을 썼다. 이러한 복장 차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점퍼에 선글라스형 안경은 김정일이 군부대나 공장에 현지 지도 나갈 때 입는 것이고, ‘닫긴 깃’ 양복과 맑은 안경은 중국의 장쩌민(江澤民)주석을 만날 때 입는 정장이다. 순안공항 영접을 통해 김정일은 한국 사람들 과 김대통령에게는 감동적인 ‘깜짝 쇼’를, 북한 주민들에게는 김대통령을 지도한다는 이미지를 보여준 것이다. 김정일은 용의주도한 사람이다.”

    기막힌 역전극 연출한 DJ의 협상술

    1호 차에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두 정상만이 아는 일이다. 하지만 A씨의 분석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북한 공세에 대해 김대통령은 ‘그물 작전’으로 나갔다.

    그물 작전을 펼치기 위해 그는 김정일이 던진 낚시 바늘을 꿀꺽 삼켜주었다. ‘그래 낚시 바늘을 삼켜 줬으니 그물을 던질 수 있는 거리로 좀더 가까이 다가와 봐라’ 김대통령이 들고 간 그물은 30여 명의 ‘한국 기자단’과 남북 정상이 합의한 ‘공동선언문’이었다.

    6월14일의 백화원 영빈관에서 벌어진 2차 정상회담 때까지만 해도 김대통 령은 KO패에 가까울 정도로 김정일한테 밀린 듯한 분위기였다. 한국 방송에 비춰진 김정일은 카리스마를 갖춘 영웅인데, 김대통령은 북한이 안내하는 대로 끌려 다니는 ‘평양 관람객’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일찌감치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김대통령의 방북이 김정일만 영웅화하고 실질적인 성과물은 없는 ‘평양 투어’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2차 정상회담 때였다. 이날의 TV 화면을 유심히 살펴 보면 김정일은 기분이 매우 좋은 듯 웃으면서 덕담을 베풀고 있다. 그러나 그의 눈은 힐끔힐끔 김대통령을 쳐다볼 뿐 빳빳한 눈길로 김대통령을 정시하지 못했다. 반면 김대통령은 얌전히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이며 김정일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나 김대통령 눈길은 김정일 눈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역시 정치 9단”

    이때 김대통령은 무심결에 코를 만졌다. DJ가 코를 만지는 것은 일이 풀리지 않거나 뭔가로 긴장하고 있을 때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자들이 나간 후 열린 3시간 40분 동안의 마라톤 회담에서 김대통령은 집요하게 김정일을 설득했다. “합의서를 만들고 당신과 내가 사인하자” “내가 평양에 왔으니 당신도 서울에 와야 한다”로 시작된 김대통령의 그물 던지기가 성공한 것은 이날 밤 자정이었다.

    양 정상은 5개항의 합의문에 서명하고 자정을 넘겨 발표했다(6·15 선언). 이러한 장면은 한국 방송을 통해 전세계로 방영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때 국정원에서는 “와! 역시 DJ다. 과연 DJ는 협상의 명수다”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합의문 작성은 특보 자격으로 평양에 간 임동원 국정원장과 북한 아태평화위 위원장이자 노동당의 대남담당 비서인 김용순이 맡았다. 국정원에서는 합의문에 임동원과 김용순이 사인하면 평작이고 양 정상이 서명하면 홈런일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 결과는 홈런이 된 것이다.

    그물 던지기에 실패하고 서울에 돌아왔다면 ‘레드 컴플렉스’에 시달려온 김대통령은 심각한 정권 위기에 봉착했을 것이다. 한 수행원은 “김대통령에게 6월14일은 도쿄에서 납치됐을 때와 80년 신군부로부터 사형을 언도 받았을 때를 제외하곤 아마 가장 긴 하루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의 말이다.

    “DJ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말 바꾸기 때문에 그를 싫어했다.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해놓고 다시 대선에 나와 ‘대세론’을 펼쳐 대통령에 당선되고, 내각제를 한다고 해놓고 이를 뒤집는 것이 싫어서 미워했는데, 지금은 그런 능력 때문에 김정일을 옭아매게 되었다. 한 면만 보고는 사람을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김정일은 첫날 승리에 도취돼 흥분한 것 같고, 김대통령은 계속 말을 아끼며 연장자의 이점을 이용해 승리를 낚아챈 것 같다. 그는 역시 정치 9단이다.”

    그물을 던져라

    6월14일 밤 만찬장에서 보여준 김정일은 카리스마의 사나이가 아니라 ‘재미있는 아저씨’였다.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겠네”라고 촌평할 사람이 있을 정도로 쉬워 보이는 사내였다. 그만큼 김정일은 긴장이 풀려 있었다.

    양 정상이 서명하고 그 내용이 전세계로 중계된 이상 김정일은 전세계로부터 ‘왕따’가 될 것을 각오하지 않는 한 이 합의를 어길 수도 개방하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5개 항에 관한 남북 정상 합의를 국민들이 추인하는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내부 문제로 다가왔다. 김대통령이 합의하고 온 사항, 그리고 김대통령이 끌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과연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느냐란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내부 합의에 실패해도 김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고, 우리 사회는 북한이 적화통일을 실현하기 좋은 대상으로 전락할 수가 있다. 신동아는 이 문제를 짚어보고자 우리 사회의 지도적 인사 22명에게 10개 항의 질문을 던졌다.

    일부 인사에게는 서면으로 답변을 받았고 일부는 전화를 통해 대화식으로 ‘속내’를 들어보았다.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는 취지로 북한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물론이고, 탈북자와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까지도 조사 대상에 포함했다. 자유로운 답변을 유도하기 위해 솔직한 답변을 피하려는 사람에게는 익명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답변은 객관식이 아니라 전부 주관식으로 수집했다.

    6·15 공동선언 서문에서 양 정상은 ‘평화통일 실현하자’, 제1항에서는 ‘자주적으로 통일하자’, 제3항에서는 ‘8·15에 즈음하여 이산가족을 교환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러한 타협은 평화정착-통일추구-이산가족 교환 순으로 양 정상이 합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신동아 설문에 응한 인사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 의제는 무엇일까(제1번 질문). 사람에 따라서는 3~4개 의제까지 거론했는데 가장 많이 나온 것은 ‘남북한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말자’는 평화체제 구축(13명) 제의였다.

    두 번째로는 ‘이산가족 문제부터 거론해야 한다’(5명)였고 ‘6·25전쟁 발발에 대한 사과부터 받아야 한다’는 대답이 세 번째로 많았다(4명).

    소수 의견으로 눈에 띄는 것은 ‘남북 만남을 정례화해 계속 만나게 하자’(2명)와 ‘NGO 교류를 활성화하자’(2명)가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6·15합의문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제2번 질문으로는 ‘평양 시민의 환영 의도가 무엇이고, 김정일이 서울에 오면 이를 반기겠는가’였다. 평양시민 환영에 대해서는 ‘동원된 것이다’라는 답변이 9명으로 가장 많고, 두 번째가 ‘김대통령 환영이 아니라 김정일 찬양’ (7명)이었다. 세 번째는 ‘통일에 대한 북한 주민 의지를 보여준 것 같다’는 류의 답변(5명)이었다. ‘동원된 것이다’와 ‘김정일 찬양이지 김대통령을 환영한 것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많은 것은 북한 주민의 환영 행사를 ‘쿨’하게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동원된 것이다’는 의견을 보인 이동복 전 자민련 의원은 “북한은 남측 언론 매체를 김정일 홍보수단으로 삼기 위해 주민을 동원한 것이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시인 김정란씨는 “북한 시민 환영에서는 조작 냄새가 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도 성의와 열의를 보인데 일정 정도 평가를 해야 한다. 솔직히 감격했다”고 답변했다.

    북한연구소 김창순 이사장은 “북한은 결코 공산주의 사회도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6·25 남침 범죄자라는 기억과 인상을 지워 버리기 위해 열기를 과시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민병돈 예비역 육군 중장은 “북한 주민들이 DJ를 어떻게 알아? 김정일이 김대통령의 방북을 주민들에게 알렸다는 것이 6월11일인데 그렇게 많은 시민이 나온 것은 전부 동원됐다는 뜻이다. 동원된 북한 주민을 보고 ‘측은하다’ ‘겁이 난다’고 하면 몰라도 ‘감동·감격했다’고 한다면 그는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에 진출해 사업을 하고 있는 모기업 대표 B씨는 남북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김정일이 서울에 오면 이를 환영해야 한다고 대답한 그는 “북한은 환영하라고 하면 환영하는 나라다. 하지만 북한은 이러한 환대에 대한 보답을 분명히 요구할 것”이라며 뜻밖의 사항을 지적했다.

    “6월13일 저녁 첫 공식만찬에 주인인 김정일이 나오지 않고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용순 비서만 나왔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특수하다고 해도 공식만찬에 주인이 안 나오는 것은 비정상이다. 김정일은 딴 생각이 있어 안 나온 것이다. 김대통령과의 회담 격을 떨어뜨리자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주빈인 김대통령은 ‘나도 오늘은 매우 피곤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좋았다. 그랬더라면 김정일도 깜짝 놀라 이후 대화 양상이 달라지고, 김대통령은 쉬 대화 주도권을 잡았을 것이다.”

    김정일이 서울에 오면 환영하러 나가겠다고 답변한 사람은 11명, 환영하지 않겠다가 6명, 대답을 피한 경우는 5명이었다. 대답을 피한 사람도 김정일 방문을 환영하지 않을 터이므로 ‘환영하겠다’와 ‘환영하지 않겠다’는 동수가 된다. 환영하러 나가겠다며 적극성을 보인 사람도 통일에 대한 희망 때문이지 김정일이 좋아서 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토를 단 경우가 많았다(4명).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외신은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이다. 핵이나 미사일 관련 기자회견에서 북한 대표는 이따금 “산께이(북한 사람들은 이렇게 발음한다) 기자가 있으면 나가달라”고까지 할 정도다. 산케이신문 한국 특파원인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반도 전문기자다. 그는 “김정일이 서울에 온다면 구경하러 나가겠다” 는 답변을 보내왔다.

    제3번 질문 ‘김정일이 서울에 오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전원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라고 대답했다. 이와 함께 몇몇은 특정 장소를 들었는데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성남에 있는 새마을 연수원에 데려가 새마을 지도자 열변을 듣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은 “NGO 활동상을 보여주고, 남북 대결로 죽어간 순국 선열을 모신 성지를 순례시키자”는 답변을 보내왔다.

    대북 교섭을 위해 수 차례 비밀 방북했던 C씨는 “국립묘지부터 참배시켜야 한다”고 대답했다. YS시절 교육문화수석을 지낸 김정남씨도 “역설적으로 펼쳐진 야만이 우리를 어떠한 비극과 슬픔으로 몰았는지 보여주고 또 이를 참회케 하기 위해 김정일을 국립묘지로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병돈 예비역 육군 중장은 “전쟁은 제 아버지가 벌였다고 하더라도, 김정일은 300만 북한 주민을 아사(餓死)시키고 대한항공 858기와 아웅산 폭파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그런 그가 이제 와서는 김대통령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을 후보로 거론되는데, 웃기는 이야기다. 반인륜적 범죄를 범한 그를 재판장에 세우고 싶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엇갈리는 보안법 처리문제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는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가장 치열한 주제 중의 하나였다. 제4번 문제는 국가보안법에 관한 질문이었다. 전화 통화가 이뤄진 일부 답변자에게는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보고, 김정일을 이 단체의 수괴로 보고 있다. 그러한 단체의 수괴가 서울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을 어긴 것인데, 국가보안법 철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가장 많은 대답(10명)은 ‘보안법을 유지하자’는 것이었고 ‘폐지하자’는 두 번째인 5명, ‘폐지하지는 말고 개정하자’는 4명이었다(3명은 무응답). 보안법을 유지와 개정 내지는 폐지 주장이 균형을 이뤘다.

    김일성대 출신 탈북자 A씨는 “북한 노동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 10대 원칙에 김정일이 바라는 대남사업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원칙이 살아 있는데 왜 보안법을 해체하는가? 보안법이 통일에 반대하는 반통일법인가?”라고 반문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은 “보안법은 수 차례 고쳐서 지금은 마지노선에 와 있다. 북한 노동당 규약에는 남한을 적화통일 대상으로 본다고 박혀 있는데 어찌 우리 보안법만 폐지하는가. 남과 북이 다른 체제를 유지하는 한 보안법은 철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철폐 의견을 보인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 자체가 보안법을 사문화한 것이다. 보안(保安)문제는 다른 법을 보완(補完)해서 풀어 나가고, 보안법은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란 시인은 “적성국가인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한다면 보안법에도 분명 변화가 있어야 한다. 보안법은 점진적으로 철폐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개정 의견을 표시한 대북사업가 B씨는 “대통령 방북과 김정일 서울 방문은 보안법 차원을 넘는 고도의 통치행위에 속한다. 김정일의 서울 방문은 보안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 면제 대상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헌법 이하 모든 법률은 분단 상황에 맞춰진 것이다. 따라서 상황변화에 따라 법을 개정한다면 헌법부터 고쳐야 한다. 또 북한에도 보안법 이상의 법 조항이 있으므로 북한 변화를 봐가며 대처해야 한다. 보안법을 당장에 철폐하는 것은 곤란하고, 시대 변화를 보면서 고쳐 나가야 한다. 보안법은 외국 간첩을 다루는 법으로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6·15공동선언은 제2항에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자’고 합의했다. 이러합의는 한반도에 각기 다른 체제를 가진 두 개 국가(2국2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장차 국가를 통합한 후(1국가 2체제, 세칭 ‘일국양제’) 하나의 국가 하나의 체제(1국1제)로 가는 통일을 지향하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의견 분분한 1국양제

    따라서 이 합의의 성공 여부는 ‘현재 2국2제인 남북한이 1국양제로 발전할 수 있느냐, 남과 북의 주민들이 1국양제를 수용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김정일이 중국 방문에서 1국양제에 관심을 보였다는 보도도 있었던 만큼, 제5번 질문으로 ‘선생님은 1국양제를 거쳐 통일로 가는 것에 찬성하십니까’를 던져 보았다.

    이에 대해 일부 인사는 1국양제보다는 2국양제, 느슨한 국가 연합을 거쳐 통일로 가야 한다고 대답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을 1국양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분류할 경우 찬성한 사람은 12명이고, ‘현실성이 없다’며 반대한 사람은 10명이었다. 찬성 의견을 보인 사람들은 대개 무력 통일이 아닌 한 1국양제 외에는 통일 방안이 없지 않느냐는 의견을 보였다. 흥미 있는 것은 반대 의견을 보인 이들의 논리였다.

    이동복 전 자민련 의원은 “한반도 통일은 북측 주민이 시장경제와 서구식 민주주의에 적응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린 만큼 북한 주민이 적응력을 갖출 때까지는 1국양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북측의 고려연방제는 남측이 사전에 공산화 내지 용공화되는 것을 전제로 하므로, 이는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 1국양제는 현재의 북한 지도체제가 살아있는 한 실현가능성이 없고 북한 지도체제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사업가 B씨는 “남한 60만 대군과 북한 100만 대군을 그대로 두고 국호만 합친다고 통일이 되는가. 현재의 분단은 군사 충돌로 생긴 것인데, 이러한 군사 요소를 그대로 두고 1국양제와 2국양제를 논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국이 홍콩을 상대로 1국양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홍콩에 군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은 그래도 최소 폭이 160㎞나 되는 자연 분계선인 바다가 있어 1국양제나 2국2제를 해볼 만하지만, 우리는 땅으로 맞붙어 있는데 어떻게 양제를 할 수 있겠는가. 우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1국양제와 2국2제를 거론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라고 지적했다.

    대북 밀사로 활약했던 C씨도 “베트남이나 독일, 예멘을 보면 그 어떤 분단국도 단계를 밟아 통일로 가지 못했다.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설득 방안이라면 몰라도 1국양제가 유일한 통일방안이어서는 곤란하다. 현실을 직시하라”고 지적했다.

    남북 통일을 위한 통일 회담은 복잡한 주제인만큼 여기서 잠깐 중간 점검을 하기로 하자. 각각의 질문에서 1등과 근소한 차이로 2등이 된 것을 조합해 보면, ‘한반도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체제 구축이다. 평양시민의 환영은 동원된 환영이었고 김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일을 찬양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김정일이 서울에 온다면 적극적으로 우리가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 국가보안법은 일부 조항을 개정하더라도 (당분간은) 유지해야 한다. 1국양제 통일안은 해볼만 하나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가 된다.

    대북 경제 지원은 해야

    이러한 결론은 전체적으로 급격한 통일보다는 차분한 통일을 바라는 의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견은 김대통령의 통일 방향이나 6·15 남북공동선언과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제6번 질문은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규모와 이러한 지원이 김정일 정권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인가’란 내용 이었다.

    가장 적은 숫자가 나온 것은 경제 지원을 하지 말자는 쪽이었다(4명). 나머지 18명은 지원하자는 쪽으로 훨씬 많았다. 그러나 적극적인 지원 또는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단 2명이었다. 나머지는 인도주의적 교류, 남과 북이 오고가는 교류 차원의 지원 등을 지지했다.

    대북 경제지원이 통일을 방해할 것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단 2명이고, 두 사람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사람(8명)은 “대북 경제지원은 일차적으로는 김정일 권력을 공고히 하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대답을 보내왔다. 순수하게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한 사람은 6명이었고, 김정일 권력 강화에만 도움이 된다고 대답한 사람은 4명이었다(무응답 4명).

    응답자들의 이러한 판단은 김정일을 통일협상 파트너로 인정해서 김정일 체제하의 경제를 어느 정도 부흥시켜 주자는 것으로 정리된다.

    제7번 질문은 ‘주한미군은 통일 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하는가. 주한미군은 통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까, 아니면 부정적인 요소일까’란 내용이었다. 남북 정상은 6·15 남북공동선언 제1항에서 ‘통일문제는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고 합의했다. 북한이 조국통일 3대 원칙에서 말하는 ‘자주’란 ‘주한미군 나가라’는 뜻이라고 주장해온 만큼 우리 의견을 세심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이 통일이나 현재의 한국 체제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쪽으로 대답한 사람은 압도적으로 많은 19명이었고, 미군 주둔이 통일에 방해가 된다고 응답한 사람은 2명이었다. 대답을 피한 사람은 1명이었다.

    ‘통일 후에도 미군이 주둔해야 하는가’란 질문에는 11명이 주둔해야 한다고 대답했고, 7명은 철수를, 그리고 4명은 “통일 후에 생각할 문제다. 지금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대답을 보내왔다.

    기독교 인터넷방송 사장인 인명진 목사는 “주한미군 문제를 통일 문제와 연관지어 생각해서는 안된다. 미군은 우리 민족에게 도움이 된다. 민족 자존과 연관지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일본과 독일에 미군이 있다고 해서 그 나라에 자주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15대 재벌군에 속하는 모그룹 대표 D씨는 “통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존립이다. 주한미군이 대한민국 존립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왜 내보내느냐”고 대답했다.

    윤광웅 예비역 해군 중장과 조건환 예비역 공군 준장은 “통일 이전에는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 그러나 통일 이후에는 주한미군 문제가 한국과 미국 간의 문제로 축소되므로 나갈 수도 있다고 본다. 통일 후 슈퍼 파워는 미국뿐일 텐데, 그런 상태에서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미국 이익에만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냈다.

    6월15일 서울에 돌아온 김대통령은 귀국연설에서 “이제 더이상 4강을 제국주의로 봐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6월14일 백화원 영빈관 회담에서 김정일은 무심결에 “적(敵)들은…”이라고 언급했다가 “외신(外信)들은”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양 정상의 이러한 언급은 모두가 주변 4강의 반응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6·15 공동선언에서도 양 정상은 제1항에서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자고 합의했다.

    그래서 제8번 질문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는 통일회담을 반길 것으로 보는가. 그러지 않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로 제시했다.

    ‘4강이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20명이었고, ‘한반도 통일은 4강의 국익에 큰 해를 주지 않으므로 4강은 한반도가 통일되든 말든 개의치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1명, 무응답이 1명이었다. 4강이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을 때의 돌파 방법에 대해 16명은 ‘설득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고, 3명은 ‘눈치보지 말고 우리 식으로 후다닥 통일을 해치워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러한 답변 중에서 관심을 끈 것은 ‘4강 중에서도 특히 중국과 일본이 한반도 통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이었다(4명). 이런 응답자 중 한 명인 대북 밀사출신의 C씨는 “그러니까 통일 한반도는 4강 어느 한 나라로부터도 ‘왕따’를 당하지 않도록 재빨리 영세중립국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통일과 관련한 4강 외교에 신경쓰는 견해가 많다는 것은 뜻밖의 결과였다.

    김정일을 통일협상 파트너로

    남북정상회담 후 몰아친 ‘김정일 신드롬’은 대단했다. 이러한 신드롬은 자칫 김정일을 영웅화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제9번 질문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라진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였다.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은 14명이었고, ‘위험하다’ ‘우려된다’는 답변을 보낸 이는 8명이었다.

    긍정적인 답변을 보낸 이들은 대부분 김정일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김순권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인상을 바꾸지 않고는 남북이 화해할 수가 없다. 물론 북쪽도 변해야 한다. 남북의 지도자를 비난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뱉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김일성대 출신의 탈북자 A씨는 “웃는 지도자 얼굴에 환호하는 것은 거품이다. 김정일을 제대로 알려면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인민 얼굴을 보면 된다. 히틀러도 3000만 명을 희생하고 웃었고, 네로도 로마를 불태우며 웃었다. 김정일의 웃는 얼굴을 보고 좋게 평가하는 것은 환상이다”고 대답했 다.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은 “김정일이 개방적인 지도자라면 저렇게 북한 주민 인권을 탄압하고 굶주림에 허덕이게 하겠는가. 화면에 나온 얼굴이 아니라 김정일 본심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10번 질문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사회는 진보 대 보수로 나눠져 시끄러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합의를 모으는 방안은 무엇인 가’였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백화제방식의 답변이 나왔는데, 가장 많은 것은(5명)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것이 왜 문제인가. 보수와 진보는 방법과 노선이 다를 뿐 결국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므로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민화협 이승환 사무처장은 “대북 인식의 차이가 진보와 보수 기준이 될 수 없다. 민족을 토대로 세계로 나가는 ‘열린 민족주의’가 분단 시대와 통일 초입 시대의 기본 토양이 돼야 한다”고 대답했다.

    남북교류를 투명하게

    국정원 국장 출신으로 최근 대북 송금사업을 이룬 정영철 유니온커뮤니티 사장은 보다 구체적으로 “남한 사회에서 국민 동의를 모으는 방법은 남북 교류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다. 남북 교류 과정에서 이면(裏面)보상 같은 것이 없다면 충분히 합의를 모을 수 있다”는 대답을 보내왔다.

    이세기 전 한나라당 의원은 “이번 회담은 우리 민족사에 큰 진전을 이룬 것으로 김대통령의 노고가 크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성과를 올리기 위해 조급히 서둘면 자칫 국론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점만은 김대통령이 유의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보내왔다.

    후반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종합하면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은 해야 한다. 이러한 지원은 일단 김정일 정권을 공고히 하고 이어서 통일을 여는 초석이 될 것이므로, 김정일을 카운터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는 통일협상 과정에서 논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을 뿐더러 통일 후에도 일정 기간은 주둔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 4강에 대해서는 통일 한국이 결코 당신들에게 해(害)가 되지 않는다고 열심히 설득해야 한다. 정상 회담을 계기로 몰아친 김정일 신드롬은 우려할 바가 아니다. 통일회담으로 우리 사회의 분열은 우려되지 않는다’가 된다.

    이러한 결론들도 김대통령이 합의한 6·15 남북공동선언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역으로 6·15선언은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뤄진 것이니 이를 기초로 김대통령이 대북 협상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김대통령에 대해 무조건 우호적인 답변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여당 의원은 제외했는데도 그런데도 이러한 결론이 나온 것이다.

    다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큰 주제로 돌아가자. 지금까지 한국이 겪었던 급변 상황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0·26과 12·12로 하루 아침에 지도자가 죽고 정권이 바뀌는 위기를 겪었고, ‘광주사태’라는 중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유혈사태도 겪었다.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전대미문의 대사고도 겪었다. 이러한 사건·사고가 우리 사회에 준 충격은 엄청났지만, 결국 그 충격을 모두 흡수해 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남북정상회담이 준 충격도 잠시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겠지만, 우리에겐 기존의 방향성을 놓치지 않는 자신감이 있다는 것을 신동아 설문조사로 확인했다.

    얼굴이 굳어 있는 김용순 비서

    북한은 어떠할까. 북한 역시 김일성 사망이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을 극복해낸 저력이 있다. 보도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많았을 텐데, 모두 이기고 지금에 이르렀다. 이러한 맷집을 믿고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에 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던져 놓고 간 자유주의 사상을 과연 그들 사회는 흡수할 수 있을 것인가.

    TV를 통해 정상회담 과정을 눈여겨본 시청자라면 김정일 옆에 있던 대남담당 비서 김용순의 얼굴이 내내 굳어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김용순은 노동당에서 대남 공작을 담당하는 4개 부서를 관장하는 비서이자 아태평화위 위원장으로 대남 사업을 총괄해왔다. 북한에서 그보다 남한 문제를 잘 다룰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그가 얼굴이 굳어 있었다는 것은 정상회담 과정에서 받은 충격이 적지 않았다는 의미 일 수도 있다.

    그가 느낀 큰 가장 충격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서울 답방이 포함된 6·15 남북공동선언에 직접 서명해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는 김정일이, 김대통령이 낚시 바늘을 깊이 삼켰다고 방심하다 남조선이 던진 거대한 그물에 걸렸다고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개발독재의 ‘모범생’이라는 박정희도 결국은 18년 만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으며 권력을 내놓았다. 과연 김정일은 박정희보다 더 훌륭히 개발독재 시대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한 북한 전문가는 “앞으로는 이번 남북정상회담보다 더욱 역사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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