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남북 긴장 녹인 러브샷의 감격”

방북인사 14인이 말하는 감동의 순간

  • 특별취재반

    입력2006-09-22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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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대통령을 따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들. 그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파격적인 언행에 충격 받고 무르익은 남북화해 무드에 감격했다. 그들이 들려주는 방북 뒷이야기. 》
    “아마 외국 사람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한국인의 이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할 거요…”이번 남북 정상회담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다녀온 문정인 연세대 통일연구원장의 말이다. 지난 55년간 두 눈 부릅뜨고서 서로 으르렁거리던 남과 북이, 막상 한 자리에 앉자마자 수십 년 지기처럼 친밀해진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자리에 있던 당사자들마저도 ‘내 마음이 왜 이런지’ 어리둥절한 판에, 외국인이 어떻게 한국인의 그런 ‘오묘한’ 정서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문교수는 또 “만약 술과 노래가 없었다면 반만년 한국 역사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가 전하는 15일 고별 오찬장의 풍경 한 토막.

    전날 밤, 우리측이 주최한 만찬에서 ‘의전에 걸맞지 않게’ 걸진 술판을 벌였던 남북은 양측의 최고 안보책임자인 조명록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임동원 국정원장의 인사말이 끝난 후 다시 술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김위원장은 “모두들, 역시 김정일 위원장이 술 실력이 날카롭다고 하더구만” 하면서 “술실력이야 통일부장관이 나보다…”라고 공을 우리측 박재규 장관에게 넘겼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았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측 박지원 문광부장관에게 노래 한 곡을 청했다. 박장관이 ‘내곁에 있어주’를 멋지게 불러 젖히자 김위원장이 박수를 치면서 “한 곡 더 하라”고 권해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를 또 불렀다. 국가 간의 공식행사 자리가 아니라 마치 동네 잔치마당 같은 분위기. 술과 노래의 화학작용이 빚어낸 화합의 장이었다.

    문교수는 “어떤 점에선 정색하고 마주 앉는 회담장보다 이렇게 흉허물없이 술잔을 돌리는 자리가 남북 화합과 신뢰에 더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소감을 모아봤다.

    ●손길승(SK그룹 회장)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접해보니 ‘남북경협은 이 사람만 잡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며 결정권을 행사하는 듯 했다. 기업으로 치면 재벌그룹 오너 총수인 셈이다. 오래 생각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도 않았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건 거침없는 말투와 태도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14일 만찬 때 김정일 위원장의 처남인 장성택 조직1부부장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주로 남북경협과 관련한 얘기를 나눴다. 내가 “투자를 하는 기업인이 보기엔 북측의 제도 정비가 가장 중요하다. 투자협정 신분보장 조세문제 등과 관련된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장부부장은 대뜸 “위원장님이 저기 계시니 직접 건의하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위원장께 직접 얘기하겠느냐”고 했더니 그는 “다들 기분 좋은데 말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나중에 김위원장이 경제인들을 따로 불러내 술을 권할 때 같은 얘기를 꺼냈더니 “그렇게 해야지”라며 즉석 결재를 했다.

    만찬장에서 보니 김위원장은 자신의 지위나 격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듯 했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돌아다니며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라주고 받아 마시며 농담도 던졌다. 그 바람에 처음엔 다소 긴장돼 있던 분위기가 격의 없는 술자리로 변해 버렸다. 테이블간 구분도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술판이 거나해지자 박지원 문광부장관이 서로 술잔을 든 팔을 끼고 마시는 ‘러브샷’을 제의해 마시기도 했다. 누군가 “폭탄주도 한 잔씩 돌리자”고 제의했으나 적당한 잔이며 폭탄주 제조용 ‘장비’가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위원장은 테이블을 돌며 술잔을 주고받느라 상당히 과음했다. 술잔도 많이 받은데다, 받으면 곧장 ‘원샷’으로 잔을 비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김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취중에서도 매사 김대통령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이었다. 만찬에는 능구렁이술, 인삼주, 들쭉술 등이 나왔는데, 참석자들은 알코올 도수가 낮은 인삼주를 주로 마셨다. 김대통령이 술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김위원장은 인삼주보다 도수가 더 낮은 포도주를 가져오게 해 권했다. 술을 따를 때도 다른 사람들에겐 잔이 넘치도록 콸콸 부었지만, 김대통령 잔에는 조금씩만 조심스럽게 따랐다.

    어디서건 김대통령이 노련한 몸가짐으로 말을 아끼고 행동을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한 데 비해 김위원장은 다변과 걸쭉한 농담, 큼직한 제스처로 좌중을 리드했다. 특이한 것은 그러면서도 공식 연설이나 성명 발표는 직접 하지 않고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사실이다.

    김위원장은 남한 정세를 매우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는 듯 했다. 누가 어떤 글을 썼고, 어느 장관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까지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는 북한 최고의 남한 전문가였다. 남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일은 김정일에서 시작해 김정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허갑범(대통령 주치의)

    나는 대통령 주치의인 까닭에 김대통령의 외국 순방 때 항상 동행을 한다. 보통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2∼3일 전에 행사진행 스케줄이 나오는데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달랐다. 평양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순간까지도 앞으로의 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라 방북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우리 세대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불안감이랄까.

    그런데 순안공항에 내려 보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나와 우리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쩐지 ‘이번에는 뭔가 일이 되겠구나’하는 직감이 왔다.

    두 정상은 마치 오랜 지기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두 정상 사이가 그렇게 화기애애하니까 우리측 수행원과 북측 사람들 사이에도 금방 친밀감이 형성됐다. 같은 핏줄, 같은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민족이란 참 대단한 것이란 생각도 했다.

    순안비행장에서 백화원 초대소까지는 20분 정도 거리라고 한다. 그런데 두 정상이 함께 탄 차가 평양의 주요 시가지를 주욱 돌아가는 바람에 50분쯤이나 걸려 도착했다. 그 사이 두 정상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

    도착 후에도 매일의 일과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김위원장이 나타나는 시간은 행사 진행표가 항상 빈 칸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얼마 후에는 빈 칸이 있는 시간에는 김위원장이 등장하는 것임을 짐작하게 되었다.

    내 직분이 대통령 주치의인 까닭에 가능하면 김위원장 주치의와 만남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아 만날 수가 없었다. 북한에서는 의사의 위치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받았다.

    김대통령 주최 만찬에서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아주 인물 좋은 인민배우와 외무성에 근무한다는 이, 그런 몇몇 사람들이 함께 했다. 내가 명함을 건네면 받으면서도 그들은 자기 명함을 내밀지 않았다. 뭐 하는 분들이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 중 누군가가 김위원장을 두고 “우리 장군님은 의리가 대단하십니다” 하고 자랑을 했다. 자신이 뱉은 말은 그대로 지킨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김위원장은 기분파 같았다. 내 아내가 평안도 사람이고 그 외에도 주위에 평안도 출신들이 많은데, 모두들 대체로 기질이 화끈한 편이다.

    만찬장에서 김대통령은 김위원장의 권유로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다. 옆에 있던 백낙환 인제대 이사장이 “대통령을 챙기라”고 말했지만 두 정상의 좋은 분위기를 깨뜨릴까봐 간섭을 자제했다. 다음날 아침 대통령 안부를 살폈더니, 잘 잤고 아침도 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번에는 대통령 주치의로서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외국 순방시 대통령 건강과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는 시차적응인데, 북한에 가며 그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실 김대통령은 국내에 있을 때보다 외국에 머물 때 더 활동적이 된다. 국내에 골치아픈 일들이 더 많아서일까. 해외에 나가 있으면 국내 일은 잠시 접어둘 수 있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모양이었다. 이번 방북의 경우에도 김위원장의 환대로 기분이 좋았고 첫날부터 일도 잘 풀려 마음이 편안한 듯 했다.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체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신명이 나면 힘든 것도 모르는 법이다.

    김위원장의 건강에 대해서는 여러 말들이 돌고 있고 나도 들은 적이 있다. 지병이 있다는 소문인데 내가 보기에는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았다. 건강에 관한 한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차범석(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내가 극작가이니만큼 ‘피바다’나 ‘꽃 파는 처녀’ 같은 북한의 정통 혁명가극을 관람하고 싶었다. 그러나 볼 수 없었고 대신 어린이 공연을 비롯해 3개의 무용·연극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내용(주제)을 떠나 관객을 즐겁게 하고, 또 무대와 객석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당연히 박수 갈채도 뜨거워 부럽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작품의 높은 완성도 때문일 것이다. 기술적으로 뛰어났으며 연기면 연기, 무용이면 무용 할 것 없이 일사불란했다. 작곡, 안무 수준도 상당한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교육 무용’이라는 게 있다. 어린이들이 출연하는데, 우리 식으로 하면 ‘애들인데 뭐’ 하고 한 수 접어줄만한 무대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숙련돼 있었으며 실제로 뛰어났다. 씨름이나 마라톤 같은 것을 발레 스탭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린이들로서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그렇게 ‘생활’에 기반을 두고 ‘인민을 즐겁게 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것 또한 훌륭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예술’ 한다는 자기 만족에 들떠있을 뿐, 프로 의식이 부족하고 완성도도 떨어지는 남한의 일부 예술인들에게 자극이 될 만한 장점 아닌가. 무대에 오르려면 어느 수준 이상의 자기 검열, 치열성은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공연 외에 인상적인 게 있었다면 음식이었다. 보통 남한이 북한보다 음식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을까 추측하는데 직접 가 먹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냥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식들을 내오는 게 아니라, 음식 하나하나에 ‘창의성’이 깃들어 있었다. 특히 김치가 맛있었는데 담백하고 순수한 것이, 양념 맛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배추 등속과 같은 원재료의 풍미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조미료는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최고의 별미라면 통배 속을 파고 거기에 배추김치를 넣어 익힌 ‘배김치’였다. 그것을 순대처럼 똑똑 썰어 내오는데 시원한 배맛이 스며들어 말할 수 없이 맛깔스러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만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머가 풍부하고 허식이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면모도 엿보였다. 순발력도 대단했다. 배우가 됐어도 좋았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영화광이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김위원장이 아랫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격의없고 다정다감했다. 만찬 석상에서 북한쪽 인사 누군가의 의자가 불편한 듯 하자 “새 걸로 바꿔 갖다주라”며 직접 챙길 만큼 자상한 면모를 보여줬다. 처음 소개 받고 인사할 때 악수를 했는데 그냥 슬렁 쥐고 마는 게 아니라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손을 꽉 쥐고 “잘 주무셨습니까”하는 말까지 잊지 않고 건넸다. 그런 자세는 아무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물론 우상화 작업 탓이 크겠지만, 김위원장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는 리더십과 카리스마에 대한 일종의 ‘존경’의 표시가 아닐까 여겨지기도 했다. ‘인민을 위하는 지도자’다운 풍모가 엿보인다고나 할까. 공항에서부터 내내 환호를 보내던 북한 주민들은 오직 한 마디 ‘김정일’을 연호하고 있었다. 만일 김위원장이 서울을 찾아 우리 국민들이 환영을 나간다면 그렇게 뜨거운 표정으로 ‘김대중’을 연호할 수 있겠는가. 주민들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14일 저녁 만찬 때였다.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했는데 남북공동성명이 합의된 직후였다. 서명은 밤 늦게 했지만 이미 합의 내용이 만찬장에 알려진 까닭에 분위기가 참 좋았다. 남북은 동족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슨 말이든 ‘통역’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정상회담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이날 만찬은 한 나라와 다른 나라 대표의 공식 행사가 아니라 마치 친구나 이웃 간의 정 넘치는 모임 같았다. 격의 없었고 따로 복잡한 격식을 따지지도 않았다.

    그 때 내 오른쪽에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송호경 부위원장이 앉아 있었고 왼쪽에는 평양시 양만길 인민위원장이 있었다. 양만길 인민위원장은 평양시장인 셈인데 내 이름과 한자까지 똑같았다. 양위원장도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송호경 부위원장에게는 “지난번 평양에서 열려던 음악회가 무산돼 아쉬웠는데 이제 한번 잘 해보자”고 말했다. 그 역시 “잘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날 만찬에서 김위원장의 요청으로 시인 고은 씨가 자작시를 낭송했다. 그 아이디어는 내가 낸 것이다. 전날 고은씨가 어느 신문사의 요청으로 자작시를 지었다며 내게 보여주었는데 내용이 좋아 만찬장에서 낭송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광옥 비서실장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한실장이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에게 건의를 했던 모양이다.

    15일 오찬 분위기도 좋았다. 대낮인데도 술들을 좀 했다. 북쪽 사람들 술 실력이 상당히 좋았다. 내 옆에는 현석해라는 육군대장이 앉았는데 술을 아주 즐겼다. 모두들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김대통령은 우리 일행에게 포도주 한 잔씩을 따라줬고 김위원장은 산삼주를 돌렸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박지원 장관이 ‘우리의 소원’을 부르자고 제의했다. 모두 일어나 같이 노래를 불렀다. 무척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오찬을 마칠 무렵 김위원장이 “20분 후에 공항까지 배웅을 나가겠다”고 말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김위원장은 알려진 바와는 달리 상당히 소탈하고 담백한 사람이었다. 목소리도 우렁찼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의의는 남북한이 대결구도에서 화해구도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또 선언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남북 양쪽에 연락사무소를 둔다든지 하는 식의 가시적 성과가 나온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나는 평소 김대통령 집권기에 남북관계가 확대돼야 한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할 듯도 싶어 희망적이었다. 설사 다음에 보수적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남북 관계를 후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일정 수준의 진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선 양측 실무자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강성모(린나이코리아 회장)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은 놀라운 것이었다. 북한 당국은, 40만명쯤 나올줄 알았는데 짐작보다 20만명이 더 나왔다고 한다. 그동안의 이런저런 환영 인파라면 많아야 2줄이었는데 이번엔 3∼4줄로 늘어섰다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공항에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다들 설마 했다가 무척 깜짝 놀랐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14일 만찬석상에서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위로 치켜들었을 때였다. 그런데 주변에 사진기자가 없었다. 누군가 옆에서 “이건 무척 귀중한 장면이니 꼭 찍어 두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결국 두 정상은 사진기자들 앞에서 같은 동작을 한번더 연출해야 했다. 주변에서 일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3일 동안 충격의 연속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람을 웃기는 데 소질이 있다. 태도는 부드럽고 다정했다. 군사위원회 소속 간부들을 불러내 김대중 대통령에게 술을 권하도록 지시하는 등 북한쪽 인사들의 경직된 자세를 풀어주기 위해서도 애를 많이 썼다. 김대통령은 그들이 건네는 술잔을 다 받아 마셨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김성진(청와대 보도지원비서관)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합의문 서명의 역사적 순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합의문이라는 ‘최고 형태’로 일이 마무리지어지자 무척 감격스러웠다.

    또 한가지는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이었다. 물론 도착할 때의 60만 인파나, 떠나올 때의 40만명 모두 동원된 사람들일 것이다. 직장에 나가야 하는 남성이나 수업이 있는 중고등학생은 거의 없었다. 대개 여성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합의문 작성일과 귀경일에 오가는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 어린 인사와 친절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듯싶다. 손 흔드는 그들의 표정엔 따뜻함이 있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과거와는 많이 다른 듯 했다. 체재나 이념 논쟁 대신 시종 불편한 일은 없는지 챙기며 부드럽게 다가섰다.

    그 변화의 정점에는 두 정상이 있었다.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이 악수하고 포옹하고 같이 차를 타고 식사를 하고 농담을 주고받게 되다니. 곁에서 보면 누가 남이고 누가 북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정도였다. 오랜 지기 같은 느낌이었고 실제로 둘 사이가 상당히 친밀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외 몇가지 에피소드들이 기억난다. 김위원장은 프랑스산 포도주인 매독을 큰 잔에 따라 한 번에 주욱 들이켰다. 술 실력이 상당한 듯 했다. 함께 차를 탈 때는 꼭 김대통령이 상석인 오른편에 앉도록 배려했고 나란히 걸을 때도 자신은 항상 뒤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했다. 얼굴이 검게 타 있어 이유를 물으니 ‘현장 지도’를 많이 다녀서라고 했다.

    남쪽에서 TV를 시청하는 국민들은 간혹 들리는 ‘드르륵’ 하는 소음이 조금 짜증이 났을 것이다. 북측 기록담당요원이 사용하는 촬영기 소리였다. 기계가 낡아 그렇다는데 하도 시끄러워 “저 소리 좀 안 나게 해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2차 정상회담 때는 안 틀겠다”는 대답을 했다. 그 촬영기는 영화관 상영용 필름을 찍기 위한 것이었다. 보존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고 했다. 현장에는 물론 ENG 카메라도 있었다.

    촬영은 그렇게 많이 하지만 지금껏 방송에 나온 김위원장의 육성은 ‘조선인민군에 영광 있어라’는 한마디밖에 없다고 한다. 이번에 목소리까지 송출이 가능했던 건 나름대로 우리를 배려한 결과다.

    그렇더라도 북한 방송에서는 여전히 목소리 없이 김위원장의 모습만 화면에 비춰졌다. 우리가 가 있는 동안 특집 프로그램으로 김위원장의 중국 방문 모습이 나왔는데 역시 육성은 없었다. 촬영을 할 때도 김위원장 위주로 하고 김대통령은 꼭 필요할 때만 조금 찍는 수준이었다. 방송의 목적 자체가 ‘지도자의 말씀하시는 모습’을 생생히 기록해 놓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김재철(무역협회회장)

    김정일 위원장의 솔직하고 유머 넘치는 대화술, 북쪽 주민들의 진심 어린 환영이 인상 깊었다.

    6월14일 만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김위원장이 북한 군사위원회 간부들을 헤드 테이블 앞으로 불러내 김대통령에게 인사할 것을 지시하고 그에 따라 간부들이 즉석에서 김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던 광경이다. 15일 오찬에서는 내가 김위원장에게 먼저 술을 한 잔 권했다. 받아 마신 김위원장은 내게 “김대통령에게도 한 잔 권하라”고 했고 그래서 김대통령에게도 잔을 내밀었다. 그 직후 모두 일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백낙환(인제학원 이사장)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영접을 나오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대통령 내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북한에서 우리를 위해 배정한 차는 모두 벤츠 승용차였다. 한 대에 대표단 2명, 안내원 1명과 운전기사가 탔다. 나는 22호 차였다. 순안공항에서 평양 시내까지는 50km가량 됐는데 왕복 4차선 길은 아주 잘 닦여 있었고 주위 산의 조림도 훌륭했다. 논은 모내기가 다 끝난 상태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다른 지역 상황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황해 쪽으로 돌아 평양을 향해 날았는데, 밑으로 주욱 지나가는 산들은 헐벗어 있었다. 모내기도 절반 정도밖에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평양 방향 길 양쪽에는 시민들이 도열해 있다 우리 차가 지나가면 큰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 주었다. 18km 정도 길에 60만~70만 명쯤이 나와 선 것. 차가 워낙 천천히 움직여 그 표정을 소상히 살펴볼 수 있었다. 동원된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얼굴에는 자발적인 환영의 뜻이 떠올라 있었다. 억지로 웃는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화끈한 환영이었다.

    여자가 3분의 2, 남자가 3분의 1정도였다. 여자들은 모두 잘 생기고 표정도 밝았다. 이것이 가장 감격적이었다. 그렇게 환영하는데 그냥 있을 수 없어 양쪽 팔을 번갈아 가며 1시간 가까이 흔들었다.

    14일의 김위원장 초청만찬은 전날 벌어졌던 김영남 상임위원장 초청만찬 때와는 달리 경호가 매우 엄격했고 절차도 까다로웠다. 사람이 많아 원래 시나리오에는 김위원장 입장 때 박수만 치기로 돼 있었는데 예정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김위원장이 일일이 악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

    김위원장은 얼굴이 작고 배가 나온 비만형이었다. 들으니 요즘은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최근 담배를 끊었고 술도 포도주만 마신단다. 당뇨 등 여러 가지 병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던 줄 아는데 가까이서 보니 모두 잘못된 소문 같았다.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키가 작고 목이 짧은 비만형인 것이 뇌졸중을 일으키기 쉬운 체질로 보였다. 그것 하나만 조심하면 별 문제는 없을 듯 했다.

    김위원장은 주위에 술을 자주 권하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독주가 아니라 포도주였다. 원래 김대통령은 술을 잘 못한다. 그럼에도 김위원장이 계속 권하니 어쩔 수 없이 여러 차례 잔을 비웠다. 의사로서 걱정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대통령 주치의 허각범 교수와 친한 사이다(허각범 교수가 후배). 그래서 허교수에게 “주치의가 뭐 하는 거요. 이럴 때 의사가 나서 제지해야 하지 않겠소” 하고 말했다. 김위원장이야 늘 저렇게 마신다지만 대통령은 술을 잘 못하는 분이라 자꾸 마음이 쓰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람 됨됨이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매우 솔직하고 활달했다.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는 느낌도 받았다. 여성들도 유연하고 당당했다. 대화하는 것이 즐거웠다.

    이희호 여사와는 하루 동안 동행을 했는데(여성 수행인은 나 한 명뿐이었으므로)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며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북쪽 사람들도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 여사를 곁에서 지켜보면 ‘착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그쪽 사람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으리라 여겨진다.

    만찬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남북 사람들이 어울려 농담도 주고받으며 시종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장 감격적인 순간은 역시 합의문을 발표할 때였다.

    ●이해찬(민주당 정책위의장)

    직접 만나본 김정일 위원장은 활달하고 소탈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원만해 보였다. 어울리다 보니 14일 만찬 때는 술을 제법 많이 마셨다. 장성택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군사위원회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장부부장은 공식석상에 얼굴을 잘 안 내미는 편이라는데, 그날은 통일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는 등 이야기도 많이 했다. 13일 만찬에서는 김용순 비서와 나란히 앉았다.

    나는 특별수행원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귀경길 교통 수단이 자동차에서 비행기로 바뀐 경위 등 자세한 일정 관리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일반 수행원들은 백화원에 머물렀지만 특별 수행원들은 교함산이라는 곳에 격리되었다. 그래서 신문에 다 난 일들도 모르고 지나친 경우가 많았다.

    ●이원호(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60만 평양시민의 열렬한 환영이 가장 놀라웠다. 물론 동원된 군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들의 광적인 환호를 받으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주로 ‘김정일’을 연호했지만 간혹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붉은 색 조화도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장면은 14일 밤 우리측 주최 만찬석상에서 두 정상이 남북합의문이 타결됐다며 맞잡은 두 손을 번쩍 들던 모습이다. 15일 고별 오찬에서 남과 북이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던 것은 이번 회담의 백미가 아닐까.

    ●이완구(자민련 국회의원)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이 짧은 시간에 어쩌면 저렇게 인간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두 사람 모두 상황판단이 빠르고, 남북문제에 정통해 서로의 심중을 꿰뚫어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정상회담이란 한 나라와 또 다른 나라의 대표가 갖는 회담인데, 이번 두 정상의 만남은 마치 오래 헤어졌던 가족 또는 형제의 상봉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고은(시인)

    14일 만찬 때 시 낭독을 했다. 김위원장은 다음날 오찬 석상에서 내게 ‘북에 다시 오길 바란다’는 초청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2년 전 방북 때 만났던 인사들 중 재회한 사람들도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그때와는 뭔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사람들 태도가 이전보다 훨씬 솔직하고 친근해졌다.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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