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지역갈등 해소의 적임자
- 다음 정권은 ‘화합과 전진’의 정권 돼야
- 한번 맺은 인연 먼저 끊지 않아
- 당내 경선만 통과하면 이회창 꺾는다
김중권(金重權) 민주당 상임고문은 국가운영에 실제 관여해본 경험이 자신의 결정적 자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거칠지만 자신감에 찬 어조로 당내 ‘젊은 경쟁자들’을 겨냥한 듯 “패기나 혈기만으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란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국가에 이득이 되고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희생의 자리, 봉사의 자리입니다. IMF를 극복했다고 하지만 아직 그 후유증이 큽니다. 이럴 때 패기나 의욕, 혈기만으로는 국정운영이 안됩니다. 영남과 호남간의 갈등, 보수와 개혁세력 간의 갈등,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갈등, 중앙과 지방 간의 갈등이 심합니다. 나는 이같은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할 수 있는 적임자입니다. 나는 호남 분들이 좋아하는 영남사람이며 보수세력이 유일하게 안심하고 인정하는 개혁세력이고, 가난을 극복하고 커 온 소년가장 출신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진정으로 아는 보통사람입니다.”
김고문은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할 과제는 역시 ‘국민화합’이라고 말했다.
“지난 10년은 변화와 개혁의 시대였습니다. 민주화가 정착되고 인권이 존중되고, 개혁의 제도적 틀이 어느 정도 완성된 시기입니다.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아 우리는 무한경쟁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변화와 개혁의 흐름을 내실화하는 한편 국가경쟁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경제를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화합과 단결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정권은 ‘21세기 강한 한국, 하나된 민족’이라는 목표 아래 ‘화합과 전진’의 정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고문은 “김대중 대통령의 4대 개혁과 대북 햇볕정책의 방향과 큰 틀은 옳다”고 강조했다. “그 방법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나라당이 집권했더라도 햇볕정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고문은 자신의 최대 장점으로 ‘온건하고 합리적인 성품’을 꼽았다. 이런 장점을 근거로 김고문은 자신을 ‘21세기형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지칭했다. “토론과 조정력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 ‘민주적인 것이 가장 강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과 민주당 대표 시절에도 회의를 주재하면서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해 탁월한 결론을 유도함으로써 민주적인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인정받았습니다. 앞으로의 리더십은 한 사람의 지시에 의해 이끌려가는 방식은 통용되지 않고 함께 가는 리더십, ‘코리더십(co-leadership)’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고문의 좌우명은 ‘무거운 돌을 내가 먼저’이다. 그는 이 좌우명이 든든하고 묵직한 자신의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나는 일단 결론이 내려지면 강력하게 밀고 나갑니다. 또 한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지키는 성품입니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보좌진을 바꾼 적이 없습니다. 함께한 비서진들은 지금까지도 저를 따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단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고문은 ‘정이 많은 것’이라고 했다.
“남을 헐뜯지 못하고 남에게 악한 행동을 못합니다. 아무리 잘못이 있어도 스스로 반성하도록 유도하지 직설적으로 나무란 적이 없습니다.”
김고문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지난 9개월 간의 여당 대표시절을 돌이켜보면, 김고문은 인내심에 관한 한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것 같다. 대표 취임 직후 노무현(盧武鉉) 당시 해양수산부장관으로부터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었을 때도 무덤덤하게 받아넘겼다. 2001년 5월 민주당 쇄신파동 때 일부 의원들의 비난 발언 또한 무표정하게 듣고 넘기는 여유를 보여줬다. ‘은근과 끈기’의 소유자이지만 그렇다고 고민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당내 경선 통과라는 ‘험악한’ 과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김고문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당내 경선만 통과하면 대선에서는 큰 문제 없이 이길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곧 김고문이 당내 경선 승리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얘기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대의원들은 정권 재창출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합니다. 당의 최고 엘리트들인 대의원들은 본선인 대선에서 누가 이회창을 이길 것인가를 근거로 투표할 것입니다. 민주당은 민주당 지지표만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합니다. 전체인구의 3분의 1인 영남지역과 그리고 전체인구의 60%인 보수층의 표를 많이 얻어야 이깁니다. 당내 후보 가운데 나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김고문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먼저 남북문제.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최근까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향후 남북관계 전망을 묻는 질문에 김고문은 “북한이 자신의 입장이 아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는 북한을 중심으로 한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와 긴밀히 연결됩니다. 9·11 테러 이후 북한은 여러 경로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해온 게 사실입니다. 일례로 2001년 11월3일 북한은 반테러 국제협약 2개에 추가로 가입의사를 밝혔고, 이로써 북한은 총 7개의 반테러 국제협약에 가입했는데, 북한 역시 반테러 국제연대에 동참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판단합니다. 물론 요도호 납치범을 아직도 보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로 볼 때, 북한은 이 문제 역시 해결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수로 건설의 진전에 따라 북한은 언젠가 핵사찰을 받아야할 것입니다. 남북문제 역시 북한의 입장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북미관계의 진전과 남북관계의 진전은 불가분의 함수관계이기 때문에 핵사찰을 비롯한 미국의 주된 요구사항에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남북관계도 속도조절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회복을 위한 대책에 대해 김고문은 ‘성장과 분배의 조화로운 균형’을 강조했다.
“과거 근대화시대에는 효율만 강조하고 형평을 무시해 장기적으로 사회불안의 원인이 됐고, 발전의 저해요인이 되었습니다. 반면 민주화시대에 접어들면서 형평을 효율보다 우선하는 경향이 있어 전반적으로 시스템작동의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학생선발권은 대학에 줘야
따라서 앞으로는 효율과 형평, 성장과 분배가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노사정 합의를 존중하되 법집행은 엄격히 해야 합니다. 사회안전망 구축은 철저히 하고, 노동자 삶의 질은 높이되,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확보해야 합니다. 경기침체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인데, 다행히 우리의 경쟁상대인 싱가포르, 대만 등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데 반해 우리는 그나마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기반을 다져온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현재의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수경기 활성화 시책들을 꾸준히 추진함과 동시에, 내년 하반기로 예상하는 세계경기 회복시점에 맞춰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프라 구축 등 지원시책도 병행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수년 안에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중국과의 협력관계 내실화 방안도 더욱 심도 있게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만능선수를 길러내기보다는 개성 있는 선수를 발굴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과 같은 일률적인 수능제도에서는 이런 방향 설정이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장기적 안목으로 학생의 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점수 중심으로 서열이 매겨진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입시기관이 돼버린 중·고교 교육은 이를 통해서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김고문이 존경하는 인물은 백범 김구(金九)선생이다. 김구 선생은 여야, 보수, 개혁을 막론하고 대권주자들이 존경하는 인물인데 김고문도 이런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김구 선생의 저작 ‘백범일지’를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꼽았다. 좋아하는 노래는 노사연의 ‘만남’. 좋아하는 연예인은 현재 TV사극에서 맹활약중인 유동근·전인화 부부.
좋아하는 영화는 1959년에 제작된 ‘벤허’다. 이 대목에서도 드러나듯 김고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일요일이면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에서 보낼 정도인데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에도 이 원칙은 지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