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생화학무기 전력은 이미 미국의 도마 위에 올랐다 사실 북한의 생화학무기 문제는 핵과 미사일문제에 우선순위가 밀리던 주제였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탄저균테러가 터지면서 이 문제는 전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자: “양국 국방장관 모두에게 묻습니다. 평양이 알 카에다나 다른 테러리스트 그룹에게 생화학무기나 생화학 기술을 제공했다는 조짐이나 증거가 있습니까.”
럼스펠트 장관 :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 발표하고 싶지만, 발표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 사건에 대한 스크랩을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귀하께서 그 특별한 국가에 대해서, 그 특별한 주제에 대해서, 그 특별한 조직에 대해서 사전적 의미의 ‘증거(evidence)’가 있냐고 물었다면 제 대답은 그렇습니다.”
기자: “그러면 다른 무언가는 있다는 말입니까”
럼스펠트 장관: “우리는 북한이 테러 활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테러리스트 명단에 연루되어 있고, 다양한 기술을 가진 적극적인 테러리즘 전파자입니다.”
기자: “김동신 장관님, 이 문제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김동신 장관: “글쎄요, 우리 양국 정부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군사 정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제 대답도 럼스펠트 장관과 같습니다.”
기자: “럼스펠트 장관님, ‘북한이 미 본토 서부(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를 대륙간탄도탄으로 공격할 능력이 있다’면서 미국이 2004년까지 미사일방어체제의 일부를 만드는 것이 합당하다고 봅니까? 김동신 장관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북한의 위협이 현실적이라고 보십니까”
럼스펠트 장관: “알다시피, 미국의 전략은 으름장을 놓는 전략에서 실제 능력을 보유하는 전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탄 공격능력을 키우고 있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여러 나라에 미사일 기술을 수출하고 있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 위협 정도는 매우 심각합니다.”
김동신 장관은 북한의 생화학무기 관련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다. 럼스펠트 장관의 분명한 답변을 적당히 긍정한 채 얼버무리고 있다.
우리 국방부의 입장이 그렇다. 현재 국방부 관계자들은 북한의 생화학무기 전력에 대한 취재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외교통상부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열리는 북한 관련 각종 세미나에서도 정부 관련 부처 관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를 삼가고 있다. 정부의 이런 태도에는 이유가 있다.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확전이 예상되는‘테러와의 전쟁’불똥이 자칫 한반도로 튈 수 있기 때문이다.
BWC, 북한엔 무용지물
문제는 한국 정부의 염려와는 상관없이 북한의 생화학무기 전력이 이미 도마 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사실 북한의 생화학무기 문제는 지금까지는 핵과 미사일 문제에 우선순위가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미국 본토에서 탄저균 테러가 터지면서 이 문제는 전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 끝난 지 나흘 뒤인 11월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제5차 생물무기금지협약(Biological Weapons Convention, BWC)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미 국방부 군비통제차관보 존 보튼은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생물무기 테러가 벌어지고 있다”며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가 저지르는 이런 테러의 배후에는 테러를 지원하는 깡패국가(rogue state)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국가로 맨먼저 이라크를 지목한 뒤 북한에 대해 언급했다.
“북한 역시 생물무기금지협약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생물무기 전력을 갖추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역량을 기울여왔다고 믿습니다. 북한은 결정만 내려지면 수주 안에 군사적 목적으로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생물학적 매개물을 생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평양이 생물무기금지협약의 틀 속에 들어와 보조를 맞추기를 원하고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생물무기금지협약이 북한을 진정시키는 데 별 구실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2001년 7월 BWC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일방적으로 BWC 수용을 거부한 바 있다. 이 협정에 구멍이 너무 많아 실제로 위반 국가를 다스릴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BWC는 지난 5차 회의에서 검정의정서 초안의 제도적 결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북한의 협정 위반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북한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세번째 국가로 지목했다.
1968년 ‘18개국 군축위원회’에서 화학 및 생물무기 금지를 의제로 채택하여 협의를 개시한 후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를 분리하여 협약을 체결하자는 서방측안이 수용됐고, 1975년 3월26일 생물무기금지협약이 발효되었다.
이 협약에는 현재 14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 남북한은 각각 1987년 6월과 3월에 가입하였다. 이 협약 석상에서 미국이 특정국가를 지목하여 경고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게 탄저균 개발 원료와 기술을 넘겨준 데 북한이 관여하고 있다고 간주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무기금지협약(Chemical Wea-pons Convention, CWC)은 1988년 화학탄에 의한 쿠르드족 학살사건을 계기로 화학무기 금지를 주장하는 국제여론이 높아지면서 탄생했다. 이로써 1968년부터 20년 이상 논의되던 CWC 협상이 결실을 본 것이다.
1992년 제네바 군축회의에서 최종문안이 합의되었고, 1993년 유엔총회 결의에 따라 136개국이 서명한 상태에서 화학무기를 전면 금지하기 위한 조약이 채택되었다. 이 협약은 165개국이 서명하고, 90개국이 협약을 비준하여 1997년 4월29일 발효되었다. 한국 정부는 1993년 1월 원서명국으로 협약에 참여했다. 북한은 현재 이 협약에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의 생화학무기를 문제삼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이미 2001년 6월6일 부시행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다시 열겠다고 선언하면서 확인됐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 협의할 세 가지 어젠더를 새롭게 제시했다. 첫째, 핵계획 동결에 관한 기본합의의 개선된 이행(improved implementation) 둘째, 북한 미사일 계획에 대한 검증 가능한 억제(verifitable constraints) 및 미사일 수출금지 셋째, 북한 재래식 군사력 태세의 완화(a less threatening North Korean conventional military posture)다.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위협을 새로운 의제로 포함시킨 점으로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재래식 무기에 관한 한, 한국이 협상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미 국방부는 2001년 1월 미 의회에 낸 연례보고서에서도 북한의 생화학 전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생물무기:북한은 생물무기금지협약에 가입했지만, 1960년대 이후 생물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 평양에는 초보적인 생물공학 연구시설이 있다. 이 시설은 탄저균, 콜레라, 장티푸스, 페스트 같은 치명적인 생물무기 매개체와 독성물질 생산을 지원하고 있다. 북한은 생물무기 매개체를 무기화하고 실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군수품 생산시설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학무기:북한은 생물무기 제조 노력과 더불어 오랜 기간 화학무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북한의 화학무기 능력은 비록 노후하지만 신경·수포·질식·혈액 작용제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는 북한이 화학무기를 상당량 비축해 놓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무기들은 한반도에 전쟁이 터진다면 곧바로 투입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화학무기를 다양한 형태로 무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탄도미사일뿐만 아니라, 야포와 항공기, 다양한 재래식 무기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오랜 기간 비무장지대에 배치해온 장거리포와 탄도미사일에 화학탄두를 탑재할 수 있고, 이는 곧바로 주한미군과 동맹군을 공격할 수 있다.
북한군은 오랫동안 생화학무기에 오염된 환경에서 작전을 펴는 훈련을 해왔다. 그들은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화학전을 벌일 것이라고 교육받으며 화학방호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했다. 북한은 화학무기금지협약에 서명하지 않았고 가까운 시일 안에도 서명하지 않을 것 같다.
북한의 생화학무기 전력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승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비롯한다.
은덕군 군용 화학생산기지
북한의 생화학무기 전력은 지금까지 여러 경로를 통해 거의 다 밝혀졌으나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은 2001년 ‘신동아’ 8월호가 단독 보도한 탈북인민군 장성 이춘선의 중국 공안 진술서다. 인민군 작전부국장을 지냈다는 이춘선씨는 중국 공안 당국에 검거된 뒤 북한의 핵물질 생산기지 군용 화학생산기지에 대해 진술했다. 화생방무기 생산기지는 북한 전역에 퍼져 있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것은 함경북도 은덕군에 있는 곳이다. 그의 진술을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씨의 말에 의하면 함경북도 7.7연합 기업소는 북한의 화학공장이라고 한다. 101, 102, 103, 104공장 등 4개의 공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102공장은 현재 북한에서 유일한 군용 화학생산기지라고 한다. 이들 공장의 위치는 함경북도 은덕군 은덕읍에서 7.7연합기업소로 향하는 도로 북측 방향, 은덕읍에서 6km, 도로에서 3km 지점에 위치한 송림골이라고 하는 산골에 자리잡고 있다.
‘산 아래에서 산 앞쪽까지의 평평한 지역에는 2중 철조망이 쳐 있고, 두 철조망 사이의 거리는 약 2m 간격으로 추측된다. 기지의 출입구는 철조망으로 만들어진 문 하나뿐이다. 1개 경비대대가 24시간 경비를 책임지고 있다.
102공장은 1989년 11월 무력부 작전국 전부국장인 김만년 소장의 책임으로 시공됐고(이춘선은 두 번 방문한 적이 있음), 함흥시 화학연구소의 이영희 박사(여자, 약 60세, 소련 모스크바대학 화학공학박사 학위 취득, 북한의 저명 박사 이성일의 딸)가 설비 설치업무를 구체적으로 지도해 건설한 공장이다.
102공장의 종사자는 약 200명인데 일반노동자, 관리자, 기술자로 구성되어 있다. 120명의 정치범들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위험한 일을 수행하고 있고, 관리자는 모두 군인으로서 50여 명이 있으며, 기술자는 1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공장 관리는 이영백 소령(남자, 약 55세)이 맡고 있다. 관리자, 기술자 및 주둔군 경비대대의 가족 사택은 은덕읍에서 7.7연합기업소로 향하는 도로의 남쪽 방향, 7.7연합기업소에서 3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들은 매일 한 대의 버스로 통근한다.
정치범들은 철망으로 둘러진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생필품을 구입하려 외출할 때도 반드시 경비대 및 관리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예전에 직원들에 대한 대우는 하루 달걀 1개, 식용유 200cc, 맥주 300cc, 쌀 800g 기준이었으나 현재는 거의 공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102화학공장의 생산과정은 다음과 같다. 102화학생산기지는 은덕읍 화학공장에서 7.7연합기업소로 수송하는 NH₃, NO₂수송관에 화학로를 설치하여 NO₂를 다시 유황로(SO₂) 내에 주입하여 가열함으로써 화학적 반응을 실행시키고, 또다시 수은 연소로를 거쳐 NO₂+SO₂+Hg 혼합물을 생성한다.
이렇게 생성된 혼합물은 밀폐된 두 개의 탱크로 이송되고, 탱크 내에서 가압처리를 거쳐 유리병에 주입된다. 그리고 헬기로 이송되어 자강도 강계시 108공장(포탄 생산공장으로, 대외적으로는 강계시 경운기 공장이라고 한다)으로 수송되어 포탄 내에 장진된다(포탄 1개의 무게는 45.8kg, 직경은 255mm).
현재 북한은 화학무기를 425, 815, 806 훈련소 등 3개의 훈련소와 1개의 폭격기 사단에만 실전 배치하고 있는데 각 부대당 50발만 지급되고 있다. 이 화학무기의 살상력은 엄청나서 사람이 가스를 흡입하면 기관이 타버리고 심장이 파열한다. 1994년 초 무력부가 기구를 개편하면서 102공장을 기술장비국에 이관하였는데 그해 말에 생산중단으로 다시 노동당 중앙 제2경제위원회(군수용 산업을 책임지는 부서)로 이관하였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학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러시아로 30만∼70만t, 그 다음은 미국으로, 4만여t을 갖고 있으며, 북한은 그 뒤를 잇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동안 제3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화학무기 보유국이던 이라크는 걸프전 이후 유엔 무기 특별위원회의 사찰로 다량의 화학무기를 폐기(충전된 화학탄 4500여 발, 비충전탄 7만5000발, 화학작용제 1만2000t)했기 때문에 현재는 화학전 능력을 거의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정전 직후인 1954년 화학전 부대를 창설하였고, 민족보위성(현 인민무력부) 산하에 화학국을 신설하고 각 군단에는 화학방호중대를 만들었다. 이 때부터 화학·생물학전에 대한 교육훈련과 연구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후 7년 뒤인 1961년 인민무력부 산하 총참모부에 핵·화학 방호국을 새로 만들고 본격적으로 화학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960년대 후반까지는 북한이 화생전력을 본격적으로 강화하지 않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북한은 정권 수립 이후 주요 군사 교리와 장비를 중국이나 소련으로부터 전수받았는데 화학무기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북한은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마이클 쉬한은 “북한이 소련의 화생 및 독소전 교리를 채택했지만 1970년대에는 방어적 성격을 강조했다”고 주장한다. 즉 한국군과 유엔군은 전쟁이 일어나면 화생 및 독소전을 시도할 것이라는 가정으로 연간 40시간 이상의 화생방 교육을 실시했고, 개인용 화학장비를 보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록 후방지역까지 화생방전 장비를 보급하고 훈련을 시키지는 못했지만, 북한은 이 시기에 화학방어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소련제 SHM-1 방독면을 병사들과 노농적위대에 보급했다고 한다.
1980년대 들면서부터 북한은 공격용 화학무기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가스를 포함한 화학작용제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고, 포와 항공운반수단 등 제한적인 수단으로 쓸 수 있는 화학탄을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상당한 수준의 화학무기 운용능력을 갖췄다고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는 1980년대에 들어 다른 제3세계 국가들에 화학전 프로그램을 확산시켰다는 데 있다. 영국의 군사정보 전문가 조셉 버뮤데즈가 쓴 ‘버뮤데즈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화학전 능력을 갖고자 희망하는 시리아와 이란에 중요한 기술을 원조했다. 북한은 시리아의 생물학무기 개발사업에도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중반 스커드B 미사일을 보유하면서부터 이 미사일로 운반할 수 있는 화학탄두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직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국가도 탄도미사일에 화학탄두를 장착해 공격한 국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라크가 이란과의 제1차 걸프전에서 포와 항공기를 이용해서 화학공격을 시도한 적은 있으나 미사일 공격은 없었다.
1985년 북한은 소련에게 영공 비행과 항구 이용을 허용한다. 북한은 이러한 협약을 체결하고 그 대가로 소련으로부터 화학전 기술을 전수받았다. 소련 국방차관 겸 민간방위사령관인 블라드미르 코포로프가 1987년 5월 북한을 방문하여 민간 방어분야에 대한 협조와 함께 사린(GB) 작용제가 장착된 항공폭탄 제공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들어 북한은 이란과 시리아에 스커드B 미사일과 SS21용 화학탄두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원조할 정도로 기술력이 성장했다.
1990년대에는 화학전 훈련을 크게 늘리고 화학장비 보급률도 높였다. 북한은 화학전 탐지 및 제독장비, 방호복, 탄약, 작용제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버뮤데즈는 “북한이 화학연구소 3개를 창설하고 안주·아오지·청진·흥남·만포·신흥·순천·신의주 등 전국 8개 지역의 생산시설에서 화학무기를 만들어왔으며, 산음리·황촌·삼산동·사리원·왕재봉 지역 등 6개 특별탄약저장소에 보관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한반도 전역 원거리 공격 가능
북한이 보유한 화학작용제는 사린(Sarlin, GB), 타분(Tabun, GA), 포스겐(Phosgene, CX), 아담사이트(Adamsite, DM), 머스터드 가스(Mustard gas), 염화시안(Hydrogen Cyanide, CK) 등이다. 이중에서 사린, 염화시안(청산가리) 및 타분은 신경작용제로, 머스터드 가스는 수포작용제로 사용된다. 이와 함께 콜레라, 페스트, 탄저균, 유행성출혈열 등 각종 생물학 작용제도 배양,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현재 군단급 부대에 화학대대, 사단급에는 화학중대, 연대에는 화학소대를 편성, 운영하고 있다. 평시에는 연간 4500t, 전시에는 연간 1만2000t까지 생산 가능하며 5000여t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북한은 각종 야전 포병의 화력지원체계를 이용하여 제한된 사거리 내에서의 공격용 화학탄을 발사할 수 있다. 또 육군은 화학탄두 장착이 가능한 프로그 및 스커드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화학탄두를 개발했다면 한반도 전역에 대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다.
1990년 8월부터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핵·화학방호국에서 근무하다 1994년 3월 한국으로 망명한 이충국(李忠國)씨의 증언에 따르면 핵·화학방호국은 지휘부 예하에 총 7개 부서(작전부, 훈련부, 기재부, 기술부, 정찰부, 32부, 갱도관리부 등)로 구성되어 있다. 또 지휘부가 직접 관리하는 3개의 연구소(55 연구소, 710연구소, 398연구소)가 있다(신동아 1994년 5월호 참조).
32부는 핵·화학 방호국에서 가장 비밀스런 곳으로 신형 화학탄 연구와 생산을 관장한다. 노동1호에 장착할 수 있는 화학탄두의 연구와 개발도 이곳에서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지휘부가 직접 관리하는 3개 연구소 중 ‘55연구소’는 ‘반핵·반원자 분석소’로 연구원은 약 70여 명. 핵·화학 오염의 시뮬레이션과 그 결과를 핵부대에 보고하는 것이 주임무다.
‘710연구소’는 레이저 무기를 연구개발하는 것이 주임무이고, 연구원은 약 250명이다. ‘398연구소’는 핵 및 화학무기로 오염되었을 경우 오염을 제거하고 소독 방법을 연구하는 곳으로 연구원은 약 250명이다.
국방부가 공식 확인한 북한의 화생방 전력은 다음과 같다. 2001년 국방부가 펴낸 ‘2001년 국방백서’ 가운데 북한의 생화학 전력에 관한 부분이다.
‘현재 북한은 8개의 화학공장에서 생산한 신경성, 수포성, 혈액성, 구토 및 최루성 등 유독작용제를 6개의 시설에 분산 저장하고 있으며, 보유량은 약 2500∼5000t으로 판단된다. 또한 탄저균 등 생물무기를 배양·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다양한 화학탄 투발수단을 보유, 전방지역에는 구경 100mm 이상 박격포·야포 및 방사포·프로그 미사일 등을 이용하고, 후방지역 스커드 및 노동미사일·전투기·폭격기·AN-2기 등을 이용하여 전·후방 동시 화학탄 공격이 가능하며, 아울러 특수부대를 이용하여 후방지역에 생물무기를 은밀히 살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북한군은 연대급까지 화학소대를 편성하여 화생방 작전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군인은 물론 준군사 부대요원과 민간인까지 화생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화생무기는 생산비용이 저렴하여 경제성과 효율성이 뛰어나고 증거인멸이 쉽기 때문에 세계적인 금지 추세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한 북한으로서는 그 능력을 계속 보유하려 할 것이다.
화학무기가 이렇다면 생물학무기는 어떨까. 현재 북한의 생물학무기 생산능력에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마이클 쉬한은 북한군이 여러 가지 이유로 생물학 및 독소전 무기에 대한 관심이 화학무기보다 덜하다고 주장한다. 우선 생물학무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북한이 한국에 견주어 기술이 뒤떨어져 있는데다 독소전 무기들은 통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쉬한은 북한이 생물학무기에 관한 한 방어용 무기를 개발하는 데만 관심을 쓰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미 의회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북한의 생물무기 생산역량은 1966년 생물학연구소를 만들어 운영할 당시만 해도 매우 열악한 상태였고, 생화학기술도 우려할 만하지 않았으나, 1968년부터 일본에서 주요 기술과 배양균을 들여와 197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과학자들이 B형간염 백신 개발에 성공한 점을 볼 때 예상보다 훨씬 발전한 생물학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미 의회는 북한이 흑사병, 콜레라, 장티푸스, 천연두, 탄저병, 황열(yellow fever),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 등의 전통적인 생물무기를 생산하는 데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미 의회는 아직까지 북한이 유전자를 변형해서 돌연변이나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한 신종균을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는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쉬한은 “북한의 생물학전 프로그램은 외부 원조에 힘입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거의 자체 노력으로 흑사병, 간상균, 비브리오균, 살모넬라균 등 세균 13종류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측한다.
생물학 및 독소무기는 일반적으로 화학무기보다 이용도가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특별한 조건에서는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생물학무기나 독소전 무기는 은밀한 침투작전에 가장 알맞다. 소모전에서 견고한 적 진지를 공격할 수 있고, 적의 후방 깊숙한 지역이나 중요 목표를 공격할 때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적의 항공모함이나 군함을 공격할 때에도 유리하다.
생물학 작용제는 박테리아, 리케차, 바이러스 또는 세균과 같이 살아있는 미생물이다. 이것들은 인체 또는 동식물에 침투하여 숙주를 쇠약하게 하거나 치명적인 발병 원인을 제공한다. 화학무기가 공격받는 대상의 전투력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한다면, 생물학 작용제는 전염병을 일으켜 결국 죽게 만든다는 데 차이가 있다. 또 생물학 작용제는 화학작용제보다 훨씬 적은 양으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미국은 특히 북한이 러시아의 화학무기 폐기 결정에 따라 해고된 기술자로부터 기술을 익히거나, 테러집단과의 거래를 통해 생물학무기를 확산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 특히 북한의 특수8군단 등 고도로 훈련된 병력이 생물학 테러로 한·미 연합방위시설이나 후방 민간시설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적은 양으로 치명적 타격
그러나 북한의 생물무기 보유 현황에 대해 정확한 증거를 포착하기 힘들다. 생물무기는 화학무기나 핵무기처럼 대규모 생산시설이 필요하지 않아 소규모 연구시설에서도 만들 수 있다. 생물무기나 독소작용제 개발은 단순한 전염병이나 독극물 연구로 위장하기 쉽다. 미리 탄두로 만들어서 비축할 수도 없어 보유량을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다. 특정 시점에 세균을 배양하여 양산하는 무기기 때문에 북한의 생화학 기술과 생산능력을 보고 간접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회의 대북자문위원회가 1999년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연간 4∼5t의 생물학무기를 생산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소 작용제가 군사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세한 물방울과 같은 에어로졸 형태로 살포되어야 한다. 세균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저장, 수송, 보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미생물이 파괴되지 않는 방법으로 뿌려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세균과 독소는 열과 화학적인 폭발로 쉽게 파괴되며, 공기중의 자외선과 높은 온도, 오염된 공기에서 독성이 빠르게 감퇴한다.
이런 투발 조건의 민감성 때문에 발사시 높은 열이 생기는 다연장로켓이나 탄도미사일에 생물무기를 장착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사람이 살포탱크 노즐로 직접 살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따라서 생물무기나 독소작용제는 자외선이 없는 야간에 특수부대를 이용하여 후방 군사지역에 은밀히 살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 같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과 저장의 위험성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생물 무기의 효용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화학무기는 상대적으로 운용하기가 쉽다. 앞서 설명한 대로 북한은 화학탄을 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실전 배치한 스커드 미사일 600기 중 4분의 3에 해당하는 탄두에 화학작용제를 장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북한의 휴전선 근처에 배치된 장사정포로 야포공격을 할 때 시간당 5만 발 이상을 쏠 역량을 갖췄다고 본다.
그러나 일단 북한이 화학전을 감행한다면 그 즉시 한국군과 미군이 화학무기 관련 시설이나 비축장소, 연구소를 무차별 공격할 것이다. 북한은 제공권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공습을 감수해야 한다. 생산비용이 적게 들고 효율성이 뛰어나며 증거를 인멸하기 쉽다는 이유로 화생무기를 개발했다지만 북한이 이를 사용한다면 전면전을 각오해야만 한다.
하지만 화학무기는 화학장비를 갖추지 못한 적에게 기습적으로 사용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북한이 화학무기를 동원하여 공격할 경우 아군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사상자의 수는 개인별 보호장구의 상태와 화생방 방호훈련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문제는 생물무기의 경우, 피해 범위가 화학무기 사용 때보다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조기경보 수단을 가동하여 적절히 대처한다면 사상자를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탄저균과 같은 세균무기의 경우 파괴력이 매우 크다.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 민간인들은 화생방 테러에 극히 무력하다. 하물며 한국에서는 화생방 테러에 대한 대비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민방위 훈련에도 공습에 대비해서 지하실로 대피하는 훈련은 하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화생방 테러에 대한 훈련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처럼 북한의 화생무기는 미국이 문제 삼고 있지만 사실 우리 코앞에 닥친 위협이다. 국방전문가들은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는 군비통제다.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을 본질적으로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북한을 화학무기금지협약에 가입시켜 화학작용제 개발과 생산을 통제하고,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를 폐기 처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안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핵문제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북한은 화학무기금지협약 가입에 상응하는 경제적·외교적·안보적 이익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둘째는 북한에게 자신들이 기습적인 화학전 도발을 감행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군사적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하여 화학무기 사용을 억제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화학방호능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화학방호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화학무기 사용을 재빨리 탐지할 수 있는 조기경보체제 구축 ▲개인보호장비 구비와 비축 ▲화학작용제에 오염되었을 때 이를 제거할 수 있는 제독장비 확보 ▲작용제에 노출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 확보 ▲화학전에 대비한 개인과 집단에 대한 철저한 교육 및 훈련 등이 필요하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서서히 종결하면서 다음 목표를 겨누고 있다. 그 목표물에 북한이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 심각성을 북한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최근 북한이 영변 핵사찰을 다시 받겠다고 밝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은 최근 비공식적인 통로로 미국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관계자가 2001년 11월 워싱턴 미 국무부에 두 번 왔다 갔다. 북한대표부 관계자는 국무부 당국자에게 생화학무기 등 최근의 북미관계 현안과 관련해 협상할 용의를 비쳤다. 이 자리에서 국무부 관계자는 북한의 태도를 믿을 수가 없으니 먼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부터 받으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강하게 나가는 미국의 기조에 북한이 협상의 여지를 보인 것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이후 새롭게 전개되는 국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숙명여대 정치행정학부 홍규덕 교수는 “한국은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다시 시작할 때 화생 무기 위협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인지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화생위협에 대한 공동 대처 방안이 미국의 신안보전략에 포함되도록 요구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은 북한에게도 한·미·일과의 신뢰구축 차원에서 화생무기를 포기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외교적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현재의 방침이라는 것은 그저 ‘쉬쉬’하는 것. 그러나 이렇게 나가다가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끼어 자칫하면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강하게 나가고, 북한은 꼬리를 내리는데, 한국은 북한을 감싸고 덮어주느라 외교 협상력을 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