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1미국 테러를 계기로 일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투수역에 자위대를 파병했다. 국방비 지출 세계 2위 일본 자위대의 힘은 어느 정도인가. 전차사단인 제7사단을 비롯한 11개 사단, 4개 여단으로 편성된 육자대, 헬기 4대를 탑재하는 1만3500t급 호위함 건조를 눈앞에 두고 있는 해자대, 공중급유기와 장거리 수송기를 독자 개발하고 있는 항자대…. 한국은 아시아 최강의 ‘주먹’인 자위대를 친구로 삼을 것인가 적으로 만들 것인가.
해자대의 본부인 해상막료감부(海上幕僚監部)는 도쿄(東京)에 있다. 그러나 작전과 관련된 주요 사령부는 요코스카에 모여 있다. 요코스카는, 해군작전사령부를 비롯한 한국 해군의 핵심 부대가 모여 있는 진해와 비슷하다. 요코스카에는 3성 제독이 지휘하는 요코스카지방대 사령부와 역시 3성 제독이 지휘하는 자위함대 사령부, 그리고 자위함대 사령부 예하이긴 하나 역시 3성 제독이 이끄는 호위함대 사령부와 잠수함대 사령부가 있다. 중장이 사령관인 미 해군 7함대도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한다. 때문에 요코스카에서는 해상막료감부보다 더 많은 해군 ‘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코스카에, 더구나 역사적인 행사가 벌어진 만큼 방위청장관이 참석하지 않을 리 없다. 출항식에 참석한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청장관은 “일본은 계속해서 미국의 테러 근절 활동을 지원할 것이다. 인도양으로 파견되는 해상자위대원들은 일본 국민의 대표로서 확실히 임무수행을 하고 전원 무사히 귀항할 것으로 믿는다”고 연설했다. 이날 이 행사를 보도한 한국 언론은 일제히,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염려한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이러한 염려를 의식한 듯 같은 날짜의 ‘아사히(朝日)신분’은 흥미로운 코멘트를 붙였다. ‘해자대의 인도양 출항에 대해 한국은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전략적인 시각으로 자위대 분석
그러나 이 날 일본은 인도양으로 함정을 처음 보낸 것이 아니다. 11월7일 이미 해자대는 사세보항에서 호위함 구라마(5200t)와 기리사메, 보급함 하마나를 ‘사전 조사’ 명목으로 인도양으로 출항시켰다. 그러니까 11월7일 출항한 것은 선발대고, 11월25일 떠난 것은 본대가 되는 셈이다. 애초 일본은 7250t의 공고(金剛)급 이지스함도 인도양으로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에서 반대 의견이 나와, 파견을 취소했다. 이지스함마저 파견했다면, 한국과 중국에서는 일본의 재무장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크게 터져나왔을 것이다.
9·11 미국 테러를 핑계로 일본은 재무장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그렇다면 일본의 ‘펀치력’은 어느 정도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공포심을 유발시키는데, 이러한 의문과 공포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막연한 공포와 무지로는 이미 군사대국이 된 일본을 슬기롭게 상대하는 방안을 찾아낼 수가 없다. 일본을 제대로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위대에 대한 무지부터 떨쳐 버려야 한다.
결론부터 밝히면 일본은 세계 2위의 ‘왕주먹’을 가졌으나, 한국 또한 매우 ‘매운 주먹’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자신감을 갖고, 자위대를 세부적으로 분석하는 전략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국방백서’와 ‘한국군 장비연감’, 일본의 ‘방위백서’와 ‘방위핸드북’ 등을 근거로 일본 자위대를 한국군과 비교해 조목조목 살펴보기로 한다.
육자대의 전신, 경찰예비대
먼저 일본의 육상자위대(육자대)부터 살펴보자. 육자대는 5개 방면대(군단과 비슷)-11개 사단-2여단(2개 혼성단 포함하면 4개 여단이 된다)으로 편성돼 있고, 총병력은 16만 4000여 명이다. 과거 육자대는 1부터 13까지의 13개 사단으로 편성돼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미 육군이 안보위협 요인이 줄어들었다며 12개 사단을 10개 사단으로 줄이자 육자대 역시 12·13사단을 여단으로 개편했다.
한국 육군은 3개 야전군-11개 군단-47개 사단-19개 여단이고, 총병력은 56만여 명이다. 사단 수에서 한국은 4.3대1, 총병력 수로는 3.4대1로 일본을 앞서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방위백서는 한국육군의 사단 수를 22개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25개 사단은 어디로 간 것일까.
사단에는 평시에도 사단 운용에 필요한 인원을 거의 갖추고 있는 완편(完編)사단과, 평시에는 최소인력으로 운용하다 전시가 선포돼 예비군이 들어와 완편하는 간편(簡編) 사단이 있다. 이러한 간편 사단을 한국 육군에서는 동원사단과 향토사단으로 부르고 있다. 일본 방위백서는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 육군은 22개 완편 사단과 25개 간편 사단을 갖고 있다. 그러나 완편 사단 수 비교에서도 한국은 2대1(22대11)로 일본을 앞서고 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육자대의 사단 역시 완편 사단이 아니다. 따라서 병력이나 부대 수에서 한국은 일본을 월등히 앞선다고 자부해도 좋다.
주지하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일본은, 맥아더 원수를 사령관으로 한 미군의 군정을 받을 때 ‘평화헌법(일명 맥아더 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 9조는 ‘일본은 전쟁을 포기하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일본에 주둔한 미 육군 부대는 4개 사단을 거느린 8군이었다. 1950년 한국에서 6·25전쟁이 일어나자 8군 전체가 한국으로 이동했다. 이로써 일본을 지킬 육군이 없자, 맥아더는 4개 사단 규모의 경찰예비대를 만들게 했는데 1954년 이것이 지금의 육자대로 바뀌었다.
자위대는 헌법에 근거한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일상적인 군사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병을 ‘보통과’, 포병을 ‘특과’, 방공포병을 ‘고사특과’, 공병을 ‘시설’로 부르고 있다. 5개 방면대 중에서 가장 큰 것은 홋카이도(北海道)에 있는 북부방면대다. 북부방면대에는 2사단·5사단·7사단·11사단의 4개 사단이 배속돼 있다. 북부방면대는 홋카이도로 상륙하려는 적 함정을 격퇴하는 것이 주임무다. 따라서 주로 지대함 미사일로 무장한 제1 특과단(포병여단), 제1고사특과단(방공포여단), 제1전차군(전차여단) 등이 직속돼 있다.
최강의 7사단과 北部方面隊
자위대에는 원스타(준장)가 없고 장성은 별 두 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육자대의 여단장(혼성단장도 마찬가지)은 소장이고, 사단장은 방면대 사령관과 같은 중장이다. 육자대의 투 스타는 ‘육장보(陸將補)’로 불린다(해자대에서는 ‘해장보’, 항자대에서는 공장보’로 불린다). 육자대의 스리스타와 포스타는 전부 ‘육장(陸將)’으로 불린다(해자대와 항자대에서는 ‘해장’ ‘공장’으로 불린다). 자위대는 참모총장을 ‘막료장(幕僚長)’으로 부르는데 별 넷을 단 육장·해장·공장은 각각 육상막료장·해상막료장·항공막료장을 맡는다. 합참본부는 ‘통합막료회의’라고 하고 합참의장은 ‘통막의장’이라고 한다.
육자대의 사단은 대개 4개 보통과(보병)연대를 중심으로 1개 특과(포병)연대·1개 전차연대 등으로 편성된다. 그러나 치도세(千歲)에 포진한 제7사단만은 전차연대 3개·특과연대 1개·고사특과(방공포)연대 1개·그리고 보통과연대 1개로 편성된다. 7사단은 육자대 유일의 전차사단이다. 한국 육군에는 전차사단이 없고, 수도기계화보병사단(맹호사단) 등 기계화사단만 ○개 있다.
혼슈(本州, 일본 본토) 북쪽에 있는 동북방면대에는 6사단과 9사단이 배속돼 있다. 도쿄(東京)가 포함된 혼슈 중앙 지역을 담당한 동부방면대에는 1사단과 12여단, 그리고 일본 유일의 특수전 부대인 제1공정단이 배속돼 있다. 중부방면대는 혼슈 남쪽에 3사단·10사단·13여단을, 시고쿠(四國)섬에는 제2혼성단을 배치해 놓고 있다. 서부방면대는 규슈(九州)섬에 4사단·8사단을, 오키나와(沖繩)에는 제1 혼성단을 두고 있다.
한국과 가까운 쓰시마(對馬島)에는 어떤 부대가 배치돼 있을까. 서부방면대 예하의 제4사단은 쓰시마에 대대 규모로 추정되는 ‘쓰시마 경비대’를 두고 있다. 해자대는 육자대의 서부방면대와 방어수역이 비슷한 사세보(佐世保)지방대가 쓰시마방비대(防備隊)를 배치해놓고 있다. 쓰시마는 두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어, 해자대의 쓰시마방비대는 다시 상(上)쓰시마경비소와 하(下)쓰시마경비소로 나누어진다.
배치된 부대 수를 근거로 방면대를 규모가 큰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북부(4개 사단)-중부(2개 사단, 1개 여단, 1개 혼성단)-서부(2개 사단, 1개 혼성단)-동북(2개 사단)-동부(1개 사단, 1개 여단, 1개 공정단)방면대가 된다. 육자대는 도쿄가 있는 일본 중심부에는 가장 규모가 작은 동부방면대를 배치하고 국토 끝으로 갈수록 전력이 큰 부대를 배치해놓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홋카이도에 있는 북부방면대다. 북부방면대는 최강의 7사단을 포함한 육자대 전력의 3분의 1에 가까운 4개 사단을 끌어안고 있다. 북부방면대의 전력은 왜 이렇게 강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개화 이후 최근까지 일본은 러시아를 제1의 가상적국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홋카이도는 소야(宗谷)해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 땅인 사할린을 마주 보고 있다. 일본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러시아와 두 차례 전쟁을 치러 1승1패를 주고 받았다. 1904년 일본의 선공으로 러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중장이 이끄는 일본 육군 제3군(군단급)은 만주 요동반도에 포진한 러시아 육군을 6개월 동안 공격해, 1905년 1월1일 마침내 항복을 받아냈다.
러일전쟁과 2차 대전
1905년 5월27일부터 28일 사이엔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대장이 이끄는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가 쓰시마와 울릉도 사이의 동해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궤멸시켰다. 그리고 로제스트벤스키 제독까지 생포해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러일전쟁을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러일전쟁은 일본이 세계 강국으로 등장하는 계기였다.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섬 남쪽을 양도받았다.
일본은 남부 사할린을 ‘가라후도(樺太)’로 이름지었다. 일본은 가라후도에서 석탄을 캐내기 위해 조선인을 징용했다. 그러나 2차 대전에서 패전함으로써 가라후도는 다시 러시아 땅 사할린이 되었다. 이때 일본인들은 일본으로 철수했으나, 징용된 한국인들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해, ‘비극의 사할린 동포’가 되었다. 한국 진해의 해군작전사령부는 러시아풍의 붉은 벽돌 건물에 들어 있는데, 이 건물은 러시아가 패전한 대가로 일본 해군에게 지어준 것이다. 이처럼 러일전쟁은 한반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1945년, 이번에는 일본군이 소련군에게 항복한다. 1941년 진주만을 공격하기 6개월 전 일본은, 소련과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일·소 중립조약’을 맺었다.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내내 소련과 일본은 싸움을 하지 않았다. 1944년 독일을 항복시킨 미국은 일본을 굴복시키기 위해 소련에게 “일본과 맺은 중립조약을 파기하고 일본과 싸우라”고 요구했으나, 소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미국이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일본의 패배가 완연해진 1945년 8월11일, 소련은 ‘중립조약’ 파기를 선언하고, 만주와 남사할린 등에 있는 일본군을 공격했다. 그리고 8월15일 히로히토(裕仁) 천황이 항복을 선언하자, 만주와 가라후도, 38선 이북의 한반도에서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키게 되었다.
이로써 러시아는 러일전쟁에 진 빚을 갚게 되었다. 불과 5일간 참전한 전쟁이 승리로 귀결됨으로써, 소련은 남사할린을 되찾고 지금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남쿠릴 열도의 4개 섬도 점령하게 되었다. 이 4개 섬의 일본 이름은 하보마이(齒舞)·시코탄(色丹)·구나시리(國後)·에토로후(擇捉)인데, 일본은 이 섬을 ‘북방영토’로 부르고 있다. 일본의 방위백서는 ‘일본의 북방영토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 이 지역(동북아)은 여전히 불안정하다’고 밝히고 있다. 북방영토의 회복은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보통국가화 하는 것 만큼이나 일본이 학수고대하는 최대의 국가 과제다.
육자대가 북부방면대에 4개 사단을 배치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꽃놀이패’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1956년 일본과 수교한 이후 소련과 그 후신인 러시아는 “일본에 주둔한 외국군(미군)을 철수시키면 4개 섬 중에서 2개 섬을 돌려줄 수 있다”고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군 철수는 일본이 결정할 문제다. 그리고 4개 섬을 모두 돌려주어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북방영토 문제가 남아 있는 한 육자대는 북부방면대에 가장 많은 부대를 배속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특수전 전력이다. 한국 육군에는 ‘한국군 최강의 부대’로 꼽히는 ○개 특수전 여단이 있다. 그러나 일본 육자대가 보유한 특수전 전력은, 동부방면대에 배속된 제1공정단 하나뿐이다. 현대 지상전에서는 헬기부대와 전차·장갑차 부대를 혼합해서 돌진시키는 입체고속기동전이 중요해지고 있다. 때문에 헬기부대의 창설이 강조되는데, 한국 육군은 군단·사단에 흩어져 있던 헬기부대를 모아 ○개 여단으로 편성된 강력한 ‘항공작전사령부’를 만들었다. 그러나 육자대는 헬기부대를 ‘비행대’란 이름으로 각 사단에 흩어놓고 있어 육자대에는 제1헬리콥터단 한 개만 있다. 특수전뿐만 아니라 입체고속기동전 분야에서도 일본은 한국에 뒤처져 있는 것이다.
예비전력 부문을 살펴보기로 하자. 1997년 육자대가 즉응예비자위관 제도를 도입했을 때도 한국 언론은 ‘일본이 재무장을 시도한다’고 보도했었다. 한국을 긴장시켰던 즉응예비자위관은 무엇일까. 즉응예비자위관은 한마디로 동원예비군과 비슷한 조직이다. 자위대는 현역 군인을 ‘자위관(自衛官)’, 예비군을 ‘예비자위관’으로 부르고 있다. 한국 육군이 예비군을 동원예비군과 일반예비군으로 나누듯이, 육자대는 다시 예비자위관을 ‘즉응예비자위관’과 ‘예비자위관’으로 나누고 있다. 한국의 일반 예비군에 비교할 수 있는 예비자위관 제도부터 살펴보자.
5700명의 즉응예비자위관
예비자위관은 1954년 육자대가 창설될 때 함께 생겨났다. 예비자위관은 자위관 전역자 중에서 지원자를 받아 선발·채용한다. 한국군은 예비군에게 봉급을 지급하지 않으나 일본은 예비자위관에게 소정의 급료를 지불한다(월 4000엔, 훈련소집시는 8100엔의 일당 추가 지급). 예비자위관은 매년 한 차례씩 ‘방위소집’을 받아, 5일간 군사훈련을 받는다. 예비자위관의 규모는 약 4만3000여 명이다.
자위관을 거치지 않은 일반인도 예비자위관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예비자위관보(補)’ 모집에 합격해야 한다. 예비자위관보는 자위대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을 늘이기 위해 만든 ‘홍보용 제도’다. 한국에 비유하면 ‘제2국민역’이나 ‘민방위대’ 정도에 해당해 군사력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예비자위관보로서 일정 기간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은 예비자위관 모집에 도전할 수 있다. 예비자위관보도 군사훈련을 받을 때는 소정의 급료를 받는다.
유사시 가장 신속하게 동원되는 즉응예비자위관은, 자위관 전역자나 예비자위관 중에서 지원자를 받아 선발한다. 일년에 30일씩 방위소집이 되는 이들은 현역 부대에 들어가 자위관과 함께 훈련을 받는다. 예비자위관은 그들끼리 훈련을 받으나, 즉응예비자위관은 현역 부대에서 자위관과 함께 군사훈련을 받는다. 즉응예비자위관에게는 예비자위관보다 더 많은 급료(월 4만2700엔)가 지급된다. 즉응예비자위관의 임기는 3년인데, 소집 및 근무 성적이 좋은 사람은 근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육자대 사단은 대개 4개 보통과(보병) 연대로 편성되는데, 이중 1개 연대의 완편율은 20% 정도다. 완편율 20%의 연대는 방위소집한 즉응예비자위관이 입소해야 비로소 완편 연대가 된다. 자위대는 약 5700명의 즉응예비관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육군은 일본의 즉응예비자위관보다 훨씬 더 많은 동원예비군과 상근예비역을 운용하고 있다(수치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육군력을 평가할 때는 병력의 과다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예비전력 분야에서도 일본을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육자대는 어떠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을까. 육자대는 구식인 ‘74식 전차’와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독자개발한 최신형의 ‘90식 전차’ 등 107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74식 전차는 105㎜ 주포를 달고 있으나, 90식 전차는 120㎜ 주포를 장착하고 있다. 한국 육군은 105㎜ 주포를 달고 있는 구식의 미제 M48 전차와 현대모비스(구 현대정공)에서 면허생산한 105㎜ 주포의 K1전차(일명 88전차), 그리고 120㎜ 주포를 장착한 K1A1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성능에 있어서 한국군 전차는 육자대의 전차에 밀리지 않는다. 한국 육군은 2360여대의 전차를 갖고 있어, 대수 면에서는 2.21대1로 육자대를 앞서고 있다.
육자대는 12.7㎜ 중기관총을 장착한 89식 등 690대의 장갑차를 갖고 있다. 한국 육군은 12.7㎜ 기관총을 장착한 K-200(대우중공업 독자개발) 등 2400여 대의 장갑차를 갖고 있다. 일본 육자대는 MLRS라고 하는 지대지 미사일을 갖고 있으나 한국 육군은 그보다 신형인 MLRS와 사거리 180㎞의 현무 지대지 미사일을 갖고 있다. 따라서 무기 면에서도 한국 육군은 일본 육자대를 앞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육자대는 한국 육군의 3군보다는 작고 1군보다는 약간 큰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군의 우세는 해군력 비교로 들어가면 완전히 역전된다. 한국은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육군력 육성에 노력해왔으나, 섬나라인 일본은 해군 투자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해군력 규모부터 살펴보자. 일본 해상자위대(해자대)는 4만5812명이고, 한국 해군도 엇비슷한 4만5000여 명이다(해병대 제외. 해병대를 포함하면 한국 해군은 6만7000여 명 정도가 된다). 한국 해군이 보유한 함정은 약 200여 척인데, 일본 해자대는 그보다 적은 160여 척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유한 함정의 톤수를 더한 ‘총톤수’를 비교해보면, 일본은 34만9000여t으로 14만7000여t의 한국을 약 2.4대1로 앞서고 있다. 척수는 적은데도 총톤수가 많은 것은, 해자대의 함정이 훨씬 크다는 것을 뜻한다.
월등히 큰 海自隊의 군함
한국 해군은 3000t 이상의 전투함을 구축함, 3000∼1500t 사이의 전투함은 호위함, 1500∼1000t 사이의 전투함은 초계함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해자대는 1000t 이상의 전투함을 전부 호위함으로 부르고 있다. 해자대는 1000t 이상의 전투함을 53척 갖고 있으나, 한국 해군은 40척 보유하고 있다(약 1.33대1). 이렇게 보면 양국의 해군력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으나, 세분해서 살펴보면 엄청난 차이가 발견된다. 한국과 일본이 보유한 1000t급 이상의 전투함 척수를 비교해 보면, 일본은 4000∼3000t급이 가장 많아 24척 보유하고 있으나, 한국은 2000∼1000t 사이의 전투함을 37척 갖고 있다. 일본은 배가 크고 한국은 작은 것이다.
해자대 호위함 중에서 주목할 것은 ‘공고(金剛)’로 불리는 7250t급 호위함 4척이다. 이 네 척의 호위함은 십 수 개의 항공기와 미사일이 날아와도 동시에 요격할 수 있는 이지스함이다(해자대는 공고급을 구축함으로 분류하다, 최근에는 호위함으로 부르고 있다). 공고급 호위함은 방공(防空)뿐만 아니라 잠수함을 잡는 대잠전(對潛戰), 그리고 적 함정을 공격하는 대함전(對艦戰) 능력도 탁월하다. 한국 해군은 함정의 크기에서 뿐만 아니라 함정의 성능 면에서도 해자대에 한참 뒤처져 있는 것이다.
전투함 다음으로 해자대가 많이 보유한 것은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掃海)함정이다. 기뢰(機雷·mine)는 수면이나 물 속에 떠 있다가 함정이 지나가면 스스로 접근해 자폭함으로써 함정을 침몰시키는 ‘수중 지뢰’다. 해군 작전에서는 적 함정이 원해(遠海)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제해권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기뢰는 제해권 확보를 위해 적 해군 기지를 봉쇄할 때 매우 유용하다. 또 적 해병대가 상륙해올 것으로 예상되는 해역에 부설해놓으면, 적 해병대의 상륙을 거부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적이 설치한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작전은 적 전투함을 격침시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해상 작전이 되고 있다.
해자대는 5700t급 소해모함 2척과 1000t급 소해함 3척, 그리고 500t 내외의 소해정 25척 등 30척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해군은 1000t 이상의 소해함은 없고, 520t급 소해정 5척과 370t급 소해정 5척 등 10척만 보유하고 있다. 소해함정 분야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뒤지고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의 掃海隊
2001년 11월 아프간전쟁에 참전하려고 인도양으로 간 일본 함대를 가리켜 한국 언론이 ‘2차대전 패전 후 최초로 일본이 전투수역에 함대를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완전 오보다. 1950년 해자대의 전신인 해상보안청(해상보안청에서 해자대가 갈라져 나왔다) 소속의 소해함정 21척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미군은 38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때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미 9군단을 빼내 다시 원산 지역으로의 상륙을 시도했다. 하지만 북한군은 이를 예측하고 원산 앞바다에 다수의 기뢰를 부설했다. 미군은 상륙작전을 연기하고 소해(掃海)작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소해함정이 모자라 일본 해상보안청에게 소해 작전에 참여하라고 지시했다. 이로써 해상보안청 소속 소해함정 21척이 1950년 10월10일부터 12월6일 사이 원산을 비롯한 한반도 수역에서 소해작전에 돌입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일본 해상보안청은 한국전 참전을 반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상보안청 관계자들은 ‘점령군(미국군)’의 지시 때문에 마지못해 한국으로 출동한다는 자세를 보였다. 10월17일 원산 앞바다에서 일본 제2소해대 소속 소해정 한 척이 기뢰에 부딪쳐 침몰해, 1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했다. 그러자 제2소해대장 노세 쇼고(能勢省吾) 중좌가 3척의 소해정을 이끌고 독단으로 일본으로 돌아가 사표를 던졌다. 일본과 미국은 일본 해상보안청 소해대가 한국전에 참전한 것을 오랫동안 비밀로 유지했다. 그러다 1978년 일본은 한국 수역에서 사망한 소해부대원에게 전몰자 서훈을 내림으로써 한반도 출병을 공식 인정했다.
소해함정과 반대 역할을 하는 것이 기뢰부설함이다. 기뢰부설함은 이름 그대로 기뢰를 부설하는 함이다(전투함과 잠수함도 기뢰를 부설할 수 있으나 그 양이 적다). 소해함정은 방어용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대로 기뢰는 전략무기이기 때문에 기뢰부설함은 공격용 무기로 분류된다. 해자대는 ‘무로토’로 명명한 4500t급 기뢰부설함을, 한국 해군은 ‘원산함’으로 명명한 3500t급 기뢰부설함을 각 한 척씩 갖고 있다. 자위대는 평화헌법에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공격무기는 보유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방어를 위해 이지스함과 잠수함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냈던 자위대는 ‘소해함정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기뢰부설함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 기뢰부설함을 보유하는데 성공했다.
평화헌법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위력을 갖춰 일본을 지키려는 일본 지도층의 노력은 대단하다. 1970년, 훗날 총리가 되는 나카소네(中曾根) 방위청장관은 “일본은 자위를 위한 최소한의 방위력을 보유하되, 상대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만 이 방위력을 행사한다”며 그 유명한 ‘전수방위(專守防衛)’론을 주창했다. 섬나라인 만큼 전수방위의 선봉은 해자대가 맡는다. 처음 해자대는 전수방위의 범위를 일본 영해 기선으로부터 1000해리(1852㎞)까지로 잡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범위를 2000해리(3704㎞)로 넓혔다. 일본을 위협하는 세력이 2000해리 안쪽으로 들어오면 쫓아가서 박살내는 것이 일본의 2000해리 전수방위 전략인 것이다.
해자대가 세번째로 많은 보유한 것은 잠수함이다. 해자대는 2750t인 오야시오급 3척과 2450t인 하루시오급 6척, 2300t인 유우시오급 7척 등 도합 16척의 중(重)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2500t인 ‘아사시오’와 2200t인 ‘세토시오’ 등 두 척의 훈련용 잠수함을 별도로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해군은 1200t인 장보고급 잠수함 아홉 척으로 훈련과 작전을 병행한다. 잠수함 척수에 있어서는 18대9(2대1, 훈련잠수함 포함), 총톤수에서는 4만3700t대1만800t(약 4대1)의 비율로 일본 해자대는 한국 해군을 앞지르고 있다.
잠수함도 공격용으로 분류된다. 같은 전범 국가인 독일은 최근까지도 잠수함 보유에 제약을 받았다. 그런데 왜 일본은 덩치 큰 중잠수함을 18척이나 보유하게 됐을까. 미 7함대는 일본 해군의 본향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고, 사세보도 기지로 사용한다. 때문에 요코스카와 사세보 주변에는 7함대의 동태를 추적하기 위해 중국이나 구 소련의 잠수함이 침투하곤 했다. 미 7함대는 자체 잠수함과 전투함만으로는 이러한 세력들을 막아낼 수가 없어, 해자대로 하여금 잠수함과 전투함을 늘여 공동 대응케 한 것이다. 일본은 구 소련과 중국의 공세를 이용해 공격무기인 잠수함을 방어 명분으로 다수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일본 해자대는 한국 해군을 어떻게 평가할까.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해자대는 한국 해군의 움직임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장보고급 잠수함과 기뢰부설함 원산함에 대해서만은 큰 관심을 기울인다. 1998년 림팩(RIMPAC) 훈련에 참가한 이종무 잠수함이 하와이까지 무보급으로 잠항에 성공했을 때, 일본 언론은 제법 떠들썩하게 이 사실을 보도했다. 한국 해군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997년 취역한 기뢰부설함 원산함에 대해서도 매우 궁금한 듯, 해자대는 여러 번 ‘기뢰 부설 및 소해 훈련을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8艦8機의 호위대군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해자대의 편성이다. 한국은 동·서·남해에 한 개씩 3개의 해역 함대를 두고 있다. 반면 일본은 방어할 바다가 더 넓은 섬나라이므로 요코스카(橫須賀)·구레(吳)·사세보(佐世保)·마이쓰루(舞鶴)·오미나토(大湊, 오미나토는 무쓰시 안에 있어 ‘무쓰’로 불리기도 한다)를 사령부로 한 다섯 함대를 두고 있다. 해자대는 이러한 함대를 ‘지방대(地方隊)’로 부르는데, 5개 지방대는 육자대의 5개 방면대처럼 일본 주변 바다를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은 3500t급 구축함 한 척에 1800t급의 호위함 한 척으로 구성된 1개 전단이 해역 함대의 주전력이다. 그러나 일본의 지역대는 한국형 구축함보다 덩치가 큰 호위함 2∼3척으로 구성한 ‘호위대’로 편성된다. 사세보와 오미나토 지방대에는 2개의 호위대가 있고 나머지 3개 지방대에는 1개 호위대가 있다. 크기와 척수에 있어 일본의 지방대는 한국 해역함대보다 훨씬 큰 것이다. 지방대는 일본 열도 근처로 침투한 적국의 잠수함을 퇴치하는 것이 주임무다. 5개 지방대와 별도로 구레에는 수상함 승조원을 양성하는 ‘연습함대’가 있다.
해자대는 2중 구조로 일본 열도를 방어한다. 일본 근처의 바다는 지방대가 지키고, 멀리 떨어진 원해(遠海)에서는 자위함대가 방어를 담당하는 것이다. 원해방어를 맡은 자위함대는 호위함대와 잠수함대·항공집단 그리고 소해대군으로 편성된다(전문가들조차도 자위함대와 호위함대를 혼동하는데, 자위함대 밑에 호위함대가 있다).
자위함대는 상급부대이지만 자위함대와 호위함대·잠수함대·항공집단의 사령관은 똑같이 3성 제독이다. 5개 지방대의 사령관도 3성 제독이다. 호위함대 예하의 4개 호위대군 사령관은 소장(해장보)이고 호위대군 밑에 있는 호위대 대장은 1등 해좌(一等 海佐, 해군 대령)다.
한국 해군은 규모가 작아 해역 함대 사령관은 소장이다. 한국 해군에서 중장이 지휘관을 맡고 있는 작전부대는 해군작전사령부(해작사) 하나뿐이다. 해역함대가 지방대에 비교된다면, 해작사는 자위함대에 비교해볼 수 있다. 해작사 예하의 성분(成分)전단·잠수함전단·항공전단·소해전대가 자위함대의 호위함대·잠수함대·항공집단·소해대군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작사 예하 전단의 전단장은 준장이고 전대장은 대령이다. 일본 호위함대는 3성 제독이 이끄나 그와 유사한 한국의 성분전단은 준장이 지휘한다는 것은, 성분전단의 규모가 훨씬 작다는 뜻이다.
호위함대는 4개의 ‘호위대군(群)’으로 편성되고, 호위대군은 다시 3개의 호위대로 나눠진다. 호위함대의 근간은 호위대군이다. 호위대군은 1977년 이후 3대의 헬기를 탑재하는 5000t급 호위함 1척, 1대의 헬기를 탑재하는 호위함 5척, 그리고 헬기를 싣지 않고 대공무기만 촘촘히 탑재한 1척의 방공(防空) 호위함과 역시 헬기를 탑재하지 않는 공고급 이지스함 1척으로 편성된다. 함정 8척에 8대의 헬기로 구성된 ‘8함8기(八艦八機)’ 체제이기 때문에, 호위대군은 ‘8·8함대’로 불리고 있다. 호위함대는 이러한 호위대군이 4개 모여 있다(32艦32機).
신형기함 16DDH
이러한 호위대군의 기함 중의 하나가 2001년 11월7일 선발대로 인도양으로 떠난 구라마(5200t)다. 나머지 호위대군의 기함은 구라마 동급인 ‘시라네’와 5000t급인 ‘하루나’와 ‘히에이’다. 2004년 호위대군은 새로운 도약에 들어간다. 순양함급인 1만3500t급의 호위함 2척을 2004년과 2005년 진수시켜, 30년이 넘은 하루나와 히에이를 교체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2004년은 일본 연호로 ‘헤이세이(平成) 16년’이라, 이 배는 ‘16DDH’로 불리고 있다. 16DDH는 잠수함을 추적하는 초계 헬기 3대와 수송 헬기 1대 등 4대의 헬기를 탑재한다.
16DDH는 항공모함처럼 전 갑판이 통해 있다. 때문에 함수 쪽에 있는 헬기를 함미로 옮길 수 있다. ‘브리지’로 불리는 함교는 갑판 한쪽에 섬처럼 모여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항공모함에서 흔히 보는 ‘아일랜드 하우스(island house)’방식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16DDH를 경(輕)항모로 보는 사람도 있다. 호위함대는 일본으로 침략하는 세력을 2000해리 원해에서 격퇴하는 전수방위의 핵심세력이다. 일본의 해상수송로를 위협하는 세력이 있으면 달려가 퇴치하는 기동함대 역할도 한다. 때문에 해자대는 호위대군을 상당한 거리를 두고 배치해놓고 있다. 4개 호위대군의 모항을, 5개 지방대가 사용하는 다섯 개 항구 중에서 러시아에 가까운 오미나토항을 제외한 요코스카·구레·사세보·마이쓰루항으로 배치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모항을 벗어난 4대 호위대군은, 동해에서는 거의 작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위대군은 중국·대만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센카쿠(尖閣)제도 부근의 남중국해로 가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기동함대인 호위대군이 동해나 남중국해로 진입하면, 남북한과 중국·대만이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거론하며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때문에 호위대군은 시비를 걸 나라가 없는 태평양으로 나가 작전하게 하고 있다.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고 조용조용 군비를 확충하는 것이 일본의 특징이다.
한국은 3500t급 구축함은 해역함대에 주로 배치하기 때문에, 해작사 예하의 성분전단은 대개 1800t급의 호위함으로 편성된다. 한국 해군도 형식상으로는 해자대처럼 2중으로 한국 해역을 방어하는 체제를 택하고 있다. 그러나 1800t급 호위함은 파도가 거칠어진 원해에서는 작전하지 못해, 2중 방어는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있다.
성분전단의 배를 키우고 척수를 늘리는 것이 한국 해군의 꿈이다. 한국 해군은 성분전단을 해자대의 1개 호위대군 규모로 키워 ‘기동함대’를 창설할 예정이다. 기동함대는 현재 건조중인 4500t급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X-2)을 중심 세력으로 한다. 그리고 2010년쯤 한국형 차차기 구축함(KDX-3)이라고 하는 7000여t급의 이지스함 한 척을 도입해 기함으로 쓸 예정이다.
항공집단은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는 적 잠수함을 찾아내 공격하거나, 호위대군이나 지방대에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해자대는 무력 100대의 P-3C 초계기와 SH-60J 등 118대의 헬기를 갖고 있다. 이러한 항공세력은 대개 7개 항공군(群)과 3개 항공대(隊)을 거느린 자위함대 예하의 항공집단에 배속돼 있다. 항공군과 항공대는 공군의 비행전대(육군 개념으로는 대대)와 비슷하다. 대개 3개 비행전대가 모여 한 개 비행단을 구성하므로, 항공집단은 대략 3개 비행단 규모가 된다.
한국 해군은 P-3C 8대를 비롯해 70여 대의 항공기를 갖고 있다. 70여 대의 항공기는 한 개 비행단을 구성하는 규모이므로, 한국 해군은 항공전단 한 개를 갖고 있다. 현대 해전에서 항공기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데, 한국은 양적인 면에서 218대70(약 3.1대1)으로 일본에 뒤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은 3면이 바다인 만큼 세 개의 항공전단을 만들고, 항공전단을 지휘할 항공사령부를 창설해 동서남해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일본의 잠수함대와 소해대군 분야 또한 앞에서 설명한 대로 한국을 월등히 앞서고 있다.
해상보안청이 상대하는 한국 해군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의 해자대와 해상보안청을 혼동하곤 한다. 이유는 일본과 면한 동해에서는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이 주로 남북한 함정과 대치하기 때문이다. 해상보안청은 해양경찰(해경)에 유사한 조직인데, 일본은 남북한을 포함한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동해의 먼바다로는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주로 내보내고 있다. 동해에서 일본 영해를 침범한 한국 어선을 나포하는 것은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이고, 1999년 3월 일본으로 접근하던 북한의 공작선을 발견하고 추적했던 것도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이었다.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은 독도 주변 수역으로 자주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막아서는 한국 해군 함정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독도 수역으로 나오는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은 무려 5000t급이다. 그러나 한국 해군은 북한과의 대치 때문에 3500t의 구축함이나 1800t의 호위함을 독도 근해로 보낼 수 없다. 때문에 가장 척수가 많은 1200t급의 초계함 한 척을 한국 영해인 독도 앞바다 12해리 앞으로 보낸다. 날씨가 좋으면 두 함정간의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날씨가 나빠지면 현저한 차이가 나타난다.
영유권 다툼 때문에 온 것인 만큼 두 함정은 ‘아무리 파도가 거칠어도 상대가 돌아설 때까지는 귀항하지 말라’는 임무를 띠고 왔다. 따라서 황천(荒天)이 되면 두 함정은 버티기 경쟁에 들어가는데, 이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덩치가 큰 순시선이다. 그러나 애국심으로 뭉친 군인이 경찰에게 질 수는 없는 법. 한국 초계함은 ‘악으로 깡으로’ 높은 파도를 타며 버틴다. 이러한 기싸움은 신기하게도 덩치가 작은 한국 초계함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본 순시선이 돌아서면, 그제서야 초계함은 모항인 동해항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악천후 때의 동해는, 대개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람이 분다. 따라서 서쪽(일본쪽)으로 가는 것보다 동쪽(한국쪽)으로 항해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고 한다. 불행히도 울릉도에는 초계함이 정박할 항구가 없다. 때문에 울릉도 서쪽에서 잠시 바람을 피한 후, 동해항을 향해 힘겹게 전진한다.
순시선과의 기싸움에서 진을 뺀 다음이라 이때부터는 노련한 고참 수병들도 게우기 시작한다. 한국 해군 함정이 ‘악으로 깡으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상대하는 이 비극은 2002년 2월에야 사라질 전망이다. 2000년 7월20일 해경이 드디어 현대중공업에서 5000t급 경비함 ‘삼봉함’을 진수했기 때문이다(일본 해상보안청은 순시선이라고 하는 배를 한국 해경은 경비함으로 부른다).
삼봉함은 조선시대 독도를 ‘삼봉’으로 불렸다는 기록에서 따온 이름인데, 2002년 2월부터는 해군 초계함 대신 이 배가 독도 경계에 투입된다. 해군으로서는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이고, 일본과 비슷한 크기의 해경 경비함을 투입하게 된 한국으로서는, 국가 체면을 세우게 된 것이다. 독도 경계에 해군 함정 대신 해경의 경비함이 투입되면, 독도는 군대가 출동하지 않아도 되는 영유권 다툼이 없는 수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일본은 항공모함을 건조해, 1941년 12월8일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했던 나라다. 1942년 6월5일 4척의 항모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기동함대는 역시 4척의 항모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기동함대와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인, 항공모함이 참여한 함대 결전을 벌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으니 일본의 해군력은 당연히 한국을 앞설 수밖에 없다. 중국 해군의 함정 총톤수는 90만5000t으로 34만9000t의 일본을 2.6배나 앞서고 있지만, 원해 작전 능력에서는 일본에 크게 뒤지고 있다.
해군력 중에는 한국이 앞선 분야도 있다. 해자대에는 해병대와 특수전부대가 없으나, 한국 해군에는 육군의 상비 사단보다 강한 2개의 해병대 사단과 1개의 해군 특수전여단(UDT)이 있다. 해병대와 해군 특전수여단을 상륙시키기 위해서는 상륙함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상륙함 세력에서도 한국은 일본을 앞서고 있다. 해자대가 보유한 가장 큰 수송함(상륙함)은 오스미(8900t·LPD)다. 오스미는 전차는 물론이고 대형 헬기도 탑재할 수 있다. 때문에 1996년 11월16일 오스미가 취역하자 한국 언론은 이 배를 ‘항모급 수송함’으로 과대 평가했다. 그러나 오스미를 헬기 수가 적어 경(輕) 항모로 보는 것은 무리다. 오스미보다는 2004년 취역하는 16DDH가 오히려 경항모에 가깝다. 해자대는 오스미를 비롯해 8척의 대소 수송함정을 갖고 있다. 일본은 해병대가 없기 때문에 전차사단인 7사단을 상륙군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해군은 고준봉급(4200t급)의 상륙함(LST) 네 척을 갖고 있다. 이 네 척의 총톤수는 1만6800여t으로, 해자대가 보유한 8척의 수송함의 총톤수 1만3460t보다 많다. 한국은 오스미와 비슷한 상륙함(LPH·9000t급 이상)을 설계하고 있어, 상륙함 분야에서는 계속 일본을 앞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해병대를 상륙함에 태워 상륙시키려면 그전에 제해권을 확보해야 한다.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투함과 잠수함 세력이 강해야 하는데 한국은 이 분야가 취약하다. 한국은 미 해군·해병대와 협력해 유사시 상륙작전을 한다는 작전 개념을 갖고 있어, 해군은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강한 해병대를 갖게 되었다.
量 위주의 한국, 質 중심의 일본
육군에서는 한국 우세, 해군에서는 일본 우세, 그렇다면 공군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병력으로 비교하면 항공자위대(항자대)는 4만5000여 명이고, 한국 공군은 6만3000여 명이다. 병력은 한국이 1.4대1로 많다. 해자대의 핵심전력이 자위함대에 모여 있다면, 항자대의 주전력은 항공총대에 몰려 있다. 한국 공군도 주전력을 공군작전사령부(공작사)에 모아 놓고 있으므로, 항공총대와 공작사는 상당히 유사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항공총대 밑에는 북부·중부·서부항공방면대와 남서항공혼성단의 4개 방면대가 편성돼 있다. 4개 항공방면대 밑에는 다시 1∼2개의 항공단(한국 공군 개념으로는 전투비행단)과 1개의 경계관제단(레이더 사이트를 운영하는 방공관제단), 1∼2개의 고사군(호크 미사일 등으로 무장한 방공포병 부대) 등이 있다. 일본은 동북에서 남서로 길게 뻗은 나라이기 때문에 항공총대에서 통합지휘할 수가 없어, 4개 항공방면대라는 중간사령부를 두었다.
공군의 규모는 비행단 수로 비교해볼 수 있다. 항자대는 항공총대 예하의 북부·중부·서부 항공방면대에 2개씩의 항공단을 두고, 남서항공혼성단에는 1개 항공대를 배치하고 있다. 한국 공군의 공군교육사령부와 유사한 ‘항공교육집단’에는 2개 항공단과 3개 비행교육단(훈련비행단)이 있고, 지원부대인 ‘항공지원집단’에는 3개의 수송항공대(1개 수송비행단 규모)와 1개의 특별항공 수송대가 있다. 따라서 항자대는 총 11개 항공단(비행교육단 포함)·1개 항공대·3개 수송항공대·1개특별항공수송대의 규모가 된다. 한국 공군은 항자대보다 약간 더 많은 전투비행단(훈련비행단 포함)을 갖고 있고 수송대는 약간 적다(비행단 수는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체적인 비행단 수에서는 한국이 조금 앞서고 있다.
항공총대는 6개 항공단·1개 항공대 규모인데도 4개의 중간사(항공방면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항자대보다 더 규모가 큰 한국 공군은 북한이라는 단일 위협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는 부담과, 남한은 일본과 달리 국토가 한데 모인 모양이라는 이유 등으로 인해 공작사가 모든 전투비행단을 지휘하게 되었다.
공작사는 전투비행단뿐만 아니라 방공관제단과 방공포병사령부 등도 지휘한다. 따라서 공작사의 지휘 부담이 너무 커, 최근에는 항공방면대처럼 중간사령부를 두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중간사령부 창설 후보지로는 오산(중부중간사)과 대구(남부중간사)가 거론되고 있다. 4개 항공방면대 사령관은 항공총대 사령관과 똑같은 3성 장군이다. 그러나 한국 공군이 창설을 검토하는 중간사령부 사령관에는 소장이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공군의 전투비행단장은 준장이나 항자대에는 준장이 없으므로 ‘공장보(空將補)’로 불리는 소장이 취임한다.
항공총대의 북부항공방면대는 일본으로서는 최전방인 홋카이도와 동북지방으로 불리는 혼슈(本州) 북쪽 지역(육자대 9사단 배치 지역)을 담당한다. 도쿄가 포함된 혼슈 정중앙은 최강으로 꼽히는 중부항공방면대가 맡는다. 서부항공방면대는 혼슈 남쪽(육자대 13사단 배치 지역)과 규슈 지역을 커버한다. 그리고 오카나와에 본부를 둔 남서항공혼성단은 규슈 바로 남쪽의 작은 섬에서부터 대만에 가까운 센카쿠(尖閣)제도까지를 담당한다.
한일 공군력은 전투기의 수로도 비교해볼 수 있다. 한국 공군은 540대의 전투기를 갖고 있고, 항자대는 353대의 전투기를 갖고 있다. 전투기 대수에는 한국이 일본을 1.5대1로 앞서고 있다. 그러나 전투기의 성능 비교에 들어가면 한국은 크게 뒤진다. 항자대가 보유한 353대의 전투기는 구체적으로 F-15J 203대, F-4 104대, F-1 46대다. 일본은 한국이 단 한 대도 보유하지 못한 세계 최강의 제공기 F-15를 203대나 보유하고 있다. 한국 공군은 157대의 F-16과 160대의 F-4, 그리고 220여 대의 F-5를 갖고 있다. 이제서야 한국은 F-15급 전투기 40대를 도입하는 FX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 한국에서 면허생산한 F-16을 KF-16이라고 하듯, 일본은 일본에서 면허생산한 F-15(이글)를 F-15J라고 한다.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은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현재의 보잉)사의 기술을 받아들여 F-15J를 면허생산했다. 항자대는 F-15J를 100대만 공급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100대 제작 후 미쓰비시중공업이 일감이 없어지자, 추가 생산을 주문해 모두 203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항자대가 103여 대의 F-15J 추가 주문을 내 공장 가동을 도와주는 사이, 미쓰비시는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F-2 지원전투기를 공동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03대의 F-15J 보유
항자대가 그 다음으로 많이 갖고 있는 F-4(팬텀·104대)는 F-15와 크기가 비슷한, 탑재무장이 매우 큰 전폭기다. 이 전투기도 맥도널 더글러스에서 개발한 것인데 역시 미쓰비시중공업에서 면허생산했다. 미쓰비시는 일본 방위산업의 중추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쓰비시는 전투함과 잠수함 등 첨단 대형 무기도 생산하고 있다. 1970년대 초 미쓰비시는 T-2라는 고등훈련기를 독자 개발한 후, 이를 개량해 F-1이라고 하는 전투기를 만들었다. F-1은 1975년부터 항자대에 공급되었다. 그후 F-15J가 도입되자 항자대는 F-1은 F-15J를 지원하는 데 쓴다는 뜻으로 ‘지원 전투기’로 이름 지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개발한 함재기(艦載機·항공모함에 탑재하는 해군기)인 ‘영식(零式) 전투기’는 미군 전투기와 함정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걸작이다. 이러한 전통이 살아 있는 일본에서 지원 전투기를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F-1 지원전투기의 수명이 다해가자 항자대는 미쓰비시에게 새로운 지원전투기 개발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미쓰비시는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FS-X(이것이 훗날 F-2가 된다) 개발에 착수했다. 그런데 FS-X 개발이 늦어지자 항자대는 미쓰비시가 생산라인을 유지하도록 F-15J 추가 주문을 내면서까지 기다려주었다.
‘天眼通’ 조기경보기 보유
오랜 노력 끝에 2000년 10월 미쓰비시는 F-2 지원전투기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F-2는 록히드마틴사가 개발한 세계적인 걸작 F-16C/D(파이팅 팰컨)와 외관이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길이가 길고 날개도 약간 더 넓다. 미쓰비시는 이 전투기에 일본 기업체가 독자개발한 항법장치를 탑재했다. 따라서 외관만 F-16C/D와 비슷하지 내용(항법장치)은 완전히 다른 전투기가 되었다. 미쓰비시는 최소한 130대의 F-2를 생산할 예정인데, 이 전투기는 북부항공방면대 예하의 제3항공단과 서부항공방면대 예하의 제8항공단부터 배치돼 구식의 F-1 지원전투기를 대체한다.
조기경보기 분야로 넘어가면 한국 공군의 질적인 열세는 더욱 뚜렷해진다. 항자대는 한국 공군이 단 한 대도 보유하지 못한 조기경보기를 17대나 보유하고 있다. 그중 13대는 미국에서 함재기용으로 개발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E-2C이나, 나머지 4대는 육상 기지에서 이착륙하도록 제작돼 덩치가 큰 E-767이다. 일본은 대미(對美) 수출흑자가 100억달러를 넘길 때 대미 흑자를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첨단 조기경보기 E-767을 수입했다.
전투기는 덩치가 작은 관계로 출력이 큰 레이더를 탑재하지 못한다. 전방위를 보지 못하고 전방 100°정도만 살핀다는 문제도 있다. 전투기가 갖고 있는 이러한 사각(死角) 지대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주는 것이 E-767 조기경보기다. E-767은 반경 600㎞ 정도의 전방위 하늘을 살펴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이라, 수십 대의 전투기를 지휘하는 공중 지휘소 역할도 한다. 한국은 이제서야 4대의 공중조기경보기를 도입하겠다며 EX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예산부족 때문에 FX사업이 끝난 후에야 추진할 예정이다.
일본은 수송기도 독자생산하고 있다. 가와사키(川崎)중공업은 미쓰비시에 이어 둘째로 중요한 방산업체인데, 1981년 이 회사는 전술 수송기 C-1을 독자 개발했다. 이에 뒤질세라 미쓰비스도 다목적 경수송기 MU-2를 개발해 항자대에 공급했다. 가와사키는 현재 C-1의 뒤를 이을, 항속거리가 무려 7000㎞인 새로운 수송기를 개발하고 있다. 그외에도 미쓰비시는 해자대가 사용하는 해상초계기 P-3C 후속기도 개발하고 있다.
항자대와 한국 공군은 모두 공중급유기는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공중급유기와 수송기 기능을 겸하는 대형 항공기 개발에 이미 착수했다. 한국은 FX와 EX사업이 완료된 이후에나 공중급유기를 도입하는 KX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공중급유기가 도입되면 작전 공역(空域)이 더욱 넓어져, 항자대는 일약 ‘전략 공군’이 된다. 이미 대양해군을 성장한 해지대에 이어 항자대마저 전략공군으로 성장한다면 당분간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필적하는 군사력을 가진 나라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중국은 3000여 대의 정찰기, 425대의 수송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여러 곳에 분산 배치돼 있고 성능도 크게 떨어져 항자대에 비해 전투력은 크게 뒤진다).
공군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대공미사일 전력이다. 미국이 개발한 F-15는 다른 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는 단 한번도 격추되지 않았으나, 대공포에 걸려 2대가 격추된 적이 있다. 현존 대공 전력 중에서 최고는 미국이 개발하고 있는 THAAD(전구고고도공역방어) 미사일 시스템이다. 이 미사일은 미국이 구축하려는 MD(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무기로 대기권으로 재돌입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하는데 쓰인다. 따라서 전투기 요격에는 부적당하다.
지상으로부터 10∼20㎞의 상공을 날고 있는 탄도미사일이나 전투기를 요격하는 것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이다. 1993년 5월29일 북한은 동해상으로 노동1호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1998년 8월31일에는 ‘광명성’이라는 조그만 위성을 띄운 후 일본 열도를 지나 북대평양에 떨어진 대포동1호 로켓을 발사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일본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항자대는 미국으로부터 120기의 패트리어트 PAC-2 미사일을 도입했다. 이로써 전투기나 미사일 위협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철모’를 쓰게 되었다. 최근 일본은 더 정교한 능력을 가진 패트리어트 PAC-3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공군은 패트리어트가 없다. 때문에 적기가 날아오면 전투기를 띄워 공중전으로 막아야 한다. 그러나 항자대는 패트리어트가 있으므로 전투기가 많지 않아도 충분히 영공을 방어할 수가 있다. 최근 한국은 패트리어트 PAC-3를 도입하기 위해 SAM-X 사업을 벌였으나 예산부족으로 연기하고 있다.
패트리어트는 정교한 레이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우방국과 해외주둔 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하려는 TMD(전구 미사일 방어체계,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것은 그냥 MD다)의 중심축이 된다. 해자대가 도입한 4척의 이지스함은 해상광역미사일방어체계(NWD)의 핵심이다. 패트리어트와 이지스함 도입으로 일본은 미국이 추진하는 MD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셈이 되었다. 실제로 일본은 미국의 MD 개발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향후 일본의 방공망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공군력에서 한국은 양적으로는 대등해도 질적으로는 한참 항자대에 뒤처져 있다. 한국은 방어적 성격이 강한 육군 전력에서는 우세를 점하나, 공격 전력인 해군과 공군력 분야에서는 일본에 뒤처져 있다. 여기서 아주 유치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일본 자위대와 한국군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가?’ 정답은 ‘일본 자위대가 이긴다’다. 그러나 한국군 또한 육군을 중심으로 착실히 전력을 키워 왔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 자위대 전력으로는 절대로 한국을 점령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1910년 한국은 부끄럽게도 일본에 합방된 경험이 있다. 그런데 더욱 창피한 것은, 일제 36년 동안 일본이 한반도에 주둔시킨 부대는 2개의 육군 사단(서울과 함남 나남)과 해군 경비부(진해)가 전부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은 중국과 동남아·태평양에서 연합국과 싸우고 있었으므로, 후방인 조선에는 약한 부대를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한국은 3만 명에 불과한 일본 군에 눌려, 독립운동다운 독립운동을 펼치지 못했다.
한·일 군사협력 모색해야
36년 동안 일본에 완패를 당했다는 열패감 때문에 한국은 일본 자위대 움직임에 대해 히스테릭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은 열패감의 장막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으로 계속 몰리고 있다. 뚜벅뚜벅 다가오는 통일의 기운이 한국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통일을 하려면 북한은 물론이고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의 상황을 냉철하게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위대는 매우 강한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면도 적지 않다. 한국은 육해공군이 독자적으로 사관학교를 운영하나, 일본은 단일 사관학교(방위대학) 체제다. 흥미로운 것은 방위대학의 인기와 수준은 우리의 사관학교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위대가 일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군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높지 않다.
일본은 일본대로 어려운 문제를 두고 씨름하고 있다. 일본은, 안으로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고, 밖으로는 UN 안보리 이사국이 되는 것을 국가 목표로 삼고 있으나,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이해와 동의 없이는 이루기 어렵다.
이제 한국은, 일본이 “국제테러를 조절하는 국제적인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인도양으로 해자대를 파병했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주어야 한다. 일본이 군국주의 부활시키기 위해 파병했다는 상투적인 해석으로는 변화한 한일 관계에 도저히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예상되는 국제테러를 방지하려면 한국과 일본은 군사와 정보 분야에서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협력을 한반도 재통일을 위한 협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20세기에 일본에게 당한 열패감을 발전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제 한국은 일본과 자위대를 전략적인 관점에서 자신 있게 분석하고 이해할 시기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