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의 볼거리는 축구경기에 그치지 않는다. 월드컵은 그 자체가 국가적 이벤트요, 민족간의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다. 축구가 모든 스포츠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역대 월드컵은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왔다. 월드컵 역사에 길이 빛나는 축구천재와 비운의 스타플레이어, 민족성이 담긴 고유의 축구 스타일, 급속도로 발전해온 기술과 전술, 축구강국을 울리고 웃긴 인연과 악연, 전세계 축구팬들의 탄성을 자아낸 숙명의 라이벌전…. 월드컵은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축구제전의 의미를 넘어 인류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 최고의 예술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이 21세기 첫번째 월드컵을 공동개최하는 것만으로도 축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추첨 결과 강팀들이 한쪽에 몰리는 ‘불공평한’ 대진표가 나왔다. 때문에 결승전보다도 치열한 16강전이 예고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조별예선이 끝나는 대로 A조와 C조가 일본으로 건너가고 E조와 G조는 한국으로 들어와서 토너먼트를 치른다. 따라서 16강전부터는 A C F H조가 한그룹이 되고, B D E G조가 또 다른 그룹으로 묶인다. 이에 따라 2연패를 노리는 프랑스의 행보가 험난해졌다.
포인트 1 ‘빅4’ 중 셋은 죽는다
프랑스가 A조 1위를 차지하면 16강에서 F조 2위와 만나고, A조 2위로 올라갈 경우엔 F조 1위와 대결한다. 그런데 F조는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가 속해 있는 이른바 ‘죽음의 조’. 프랑스는 조별예선 성적과 무관하게 16강에서 ‘죽을 고비’를 맞는 셈이다. 물론 지옥을 탈출하자마자 프랑스와 맞붙는 F조 2위도 억세게 재수가 없는 팀이다.
프랑스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기를 딛고 8강에 오르면 그곳에 브라질이 기다리고 있다. 브라질은 호나우두가 복귀한다는 전제에서 C조 1위가 유력하다. C조 1위는 16강에서 H조 2위와 붙는데, H조의 러시아 벨기에 일본 튀니지 중 브라질을 위협할 만한 팀은 없다. 그렇다면 프랑스와 브라질은 지난 대회 결승전 이후 4년 만에 재대결을 펼쳐야 한다.
프랑스가 이 고비까지 넘는다고 치자. 프랑스는 4강에서 F조 1위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F조 1위팀은 16강전과 8강전에서 비교적 쉬운 상대와 싸우는 반면, 프랑스는 초죽음이 돼서 4강전을 치러야 한다. 프랑스의 성적과 관계없이 일본에서 경기를 갖는 ‘빅4(프랑스 아르헨티나 브라질 잉글랜드)’ 중 한 팀만이 결승에 오른다는 사실은 최고의 결승전을 기대하는 팬들에게 실망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한국에서 토너먼트를 벌이는 그룹 중에서는 이탈리아가 가장 유리하다. 이탈리아를 위협할 팀으로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정도인데 이탈리아는 4강까지 이들을 피할 수 있다. 물론 이탈리아나 포르투갈이 서로를 피하기 위해 조별예선을 1위로 통과할 때 그렇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이탈리아는 토너먼트에 강하다. 예선에서는 무기력한 경기를 펼치다가도 16강에 오르면 전력이 급상승한다. 많은 축구전문가들은 이탈리아나 포르투갈이 결승에 오르더라도 프랑스나 아르헨티나를 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가 100% 컨디션으로 맞붙는 것을 가정한 분석이다. 아무리 강한 팀도 지치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축구의 상식이다. 이탈리아가 조추첨 이후 조심스럽게 ‘어부지리’ 우승을 꿈꾸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포인트 2 징크스는 깨진다
월드컵 우승팀에게는 세 가지 징크스가 있다. 이 가운데 2가지는 이번 월드컵에서 깨질 가능성이 높다.
첫째 징크스는 특정 대륙만 우승한다는 사실. 1930년부터 16차례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는 7개국. 유럽의 이탈리아 독일(서독 시절 포함) 잉글랜드 프랑스와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이다. 횟수로는 양쪽이 8번씩 정상에 올랐다. 준우승팀도 유럽과 남미가 독식했다. 유럽이 12번, 남미가 4차례 2위를 차지한 것. 이것은 그만큼 유럽과 남미가 세계축구의 강자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다.
축구팬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여덟번째 우승팀’이 나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전망한다. 그들이 꼽는 ‘다크호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것은 프랑스 아르헨티나 브라질 잉글랜드 등 우승후보들의 대진운이 나쁘다는 점에서 나온 분석이다.
둘째 징크스는 개최 대륙에서 우승팀이 나올 확률이 93.8%에 달한다는 점.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한 기록을 빼면, 모두가 개최대륙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58년 대회 때도 유럽 7개국이 8강에 올라 강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펠레 디디 바바 가린샤 자갈로 등이 엮어낸 브라질의 ‘스웨덴 신화’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개최대륙에서 우승팀이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환경과 관련이 깊다. 음식과 기후, 시차와 생체리듬 등에서 ‘안방’이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한국이 객관적 열세를 인정하면서도 16강진출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 것도 바로 홈 어드밴티지 때문이다.
2002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남미와 유럽이 아닌 대륙에서 열린다. 지금까지 월드컵은 유럽에서 9번, 남미에서 4번, 북미에서 3번 열렸다. 아시아 축구의 현 수준을 감안할 때 이번 월드컵에서 개최대륙이 우승하는 징크스가 깨질 것은 자명하다. 비록 역대 월드컵에서 홈팀이 우승한 확률이 38%(6회)에 이르지만, 한국과 일본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는 남미와 유럽 중 어느 쪽이 유리할까. 일단 시차와 음식에서는 우위를 가리기 힘들다. 다만 더위에는 남미, 장마에는 유럽이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징크스는 전대회 우승팀이 개막전에서 고전했다는 점. 이것은 전대회 우승팀의 경우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실전 감각이 떨어지는데다, 컨디션 사이클을 16강 이후로 맞추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불가리아와 비겼으며,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카메룬에 0대1로 패했다.
하지만 2002월드컵에서는 그런 ‘이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대회 우승국 프랑스의 파트너는 아프리카의 세네갈이다. 세네갈은 월드컵에 처녀 출전하는데다가 주전들이 대부분 프랑스 리그에서 뛰고 있다. ‘사고’를 치기에는 전력이 너무 많이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는 여유있게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 같다.
포인트 3 生卽死요, 死卽生이라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아마도 2002월드컵 F조에 속한 네 팀 감독들은 이 말을 되새기고 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 어느 팀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모두 16강은 물론 8강까지 올라갈 만한 전력을 갖추었지만, 16강 티켓은 두 장뿐이다. 우승후보랍시고 컨디션을 조절하다가는 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더구나 조 2위가 되면 16강에서 프랑스와 만나게 돼 있어 F조 1위 싸움이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축구팬들은 F조에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2강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F조의 운명은 스웨덴이 쥐고 있다. F조에 편성된 4팀의 상대전적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990년 이후 펼쳐진 4팀간 A매치에서 스웨덴은 무패를 기록했다. 잉글랜드에 2승3무, 나이지리아에 1승의 우위를 보인 것. 특히 잉글랜드에는 지난 33년간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한편 스웨덴과 아르헨티나는 1934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맞붙은 게 유일하다. 당시 스웨덴은 아르헨티나를 3대2로 물리친 바 있다.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파워축구를 구사하며 실점이 적기로 유명하다. 어느 팀이든 스웨덴을 만나면 득점을 올리지 못해 쩔쩔 맨다. 94미국월드컵 준결승전이 대표적이다. 후반 35분 호마리우가 극적인 헤딩골을 터뜨리지 못했다면, 브라질의 네번째 우승은 물거품이 됐을지도 모른다.
잉글랜드가 F조 예선에 더욱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스웨덴전이 첫 경기(6월2일 사이타마)로 잡혀 있기 때문. 만일 이 경기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아르헨티나와의 라이벌전(6월7일 삿포로)에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된다. 반면 스웨덴은 아르헨티나전이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에 잉글랜드보다는 다소 유리한 상황.
F조에서 나이지리아가 약세로 평가되는 이유는 상대전적 때문. 1990년 이후 A매치에서 나이지리아는 아르헨티나에 1무1패, 잉글랜드와 스웨덴에 각각 1패씩 기록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는 94미국월드컵과 98프랑스월드컵에서도 조편성의 불리함을 딛고 16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1994년에는 불가리아, 1998년에는 스페인과 불가리아를 물리쳤다. 만일 이번에도 나이지리아가 선전할 경우, F조의 16강티켓은 마지막 경기가 끝나야만 가려질 것이다.
2002월드컵에서는 모두 64경기가 벌어진다. 조별예선과 16강 토너먼트(3·4위전 포함)가 각각 32경기씩 열린다. 어느 경기나 관심을 끌겠지만, ‘별 중의 별’은 역시 6월7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리는 F조 예선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전이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우를 보면 축구가 ‘축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양국 국민은 맞대결을 펼칠 때마다 1982년 발발한 포클랜드전쟁을 떠올린다. 그래서 승패가 가려지면 마치 전쟁이 끝난 것처럼 반응한다. 이것이 바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축구전쟁을 벌이고, 한국과 일본의 축구시합이 폭발력을 갖는 원리다.
포클랜드전쟁은 잉글랜드의 ‘절반의 승리’로 끝났다. 잉글랜드가 아르헨티나의 항복을 받아냈지만, 포클랜드의 소유권을 차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 치러진 4차례의 축구전쟁에서는 아르헨티나가 2승2무를 기록했다. 특히 월드컵에서는 1986년과 1998년 두 번 맞붙어 아르헨티나가 모두 이겼다.
잉글랜드로서는 설욕전을 맞이한 셈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상 아르헨티나가 다소 앞선다는 게 축구전문가들의 평가다. 잉글랜드는 화려한 플레이에 비해 실속을 챙기지 못하는 반면, 아르헨티나는 속이 꽉 들어찬 알짜배기 팀이라는 분석.
‘조국이냐 명예냐.’ 이번 월드컵에서는 적국의 사령탑으로 모국과 싸워야 하는 감독들이 많다. 잉글랜드 최초의 외국인 감독 고란 에릭슨이 대표적인 경우. 잉글랜드는 첫 경기에서 16강진출의 분수령이 될 스웨덴과 만나는데, 에릭슨 감독의 모국이 바로 스웨덴이다.
세계 최강 프랑스와 개막전을 치를 세네갈도 프랑스 출신 브루노 메추 감독이 이끌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90여 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세네갈로서는 축구에 ‘독립전쟁’의 의미까지 부여하고 있지만, 워낙 전력 차이가 커서 90이탈리아월드컵 당시의 카메룬 돌풍을 재현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독일에서 태어난 빈프리트 셰퍼 감독이 이끄는 카메룬도 독일과 예선에서 맞붙는다. 예전 같으면 카메룬이 독일을 넘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독일의 전력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카메룬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이래저래 카메룬은 아프리카팀 가운데 16강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팀이다.
‘16강 청부업자’로 불리는 중국의 밀루티노비치 감독도 ‘친정팀’을 상대로 1승을 노린다. 밀루티노비치는 멕시코(86년), 코스타리카(90년), 미국(94년), 나이지리아(98년)를 모두 16강에 올려놓은 명장. 중국은 C조에서 코스타리카를 잡아야만 16강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밀루티노비치 감독은 코스타리카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포인트 5 4-4-2와 3-5-2의 대결
역대 월드컵을 통해 세계축구의 흐름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비보다 공격’ ‘투지보다 기술’ ‘체력보다 속도’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로2000과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나타난 세계축구의 신조류 역시 ‘속도의 급상승, 기술의 정밀화’로 압축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포메이션에서 앞서간 나라는 ‘오렌지군단’ 네덜란드다. 1970년대 네덜란드 축구의 전성기에는 요한 크루이프라는 빼어난 플레이메이커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수의 구분을 없애버린 이른바 ‘토털축구’다. 네덜란드는 10명 전원이 공격과 수비에 가담하는 전술로 두 차례나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네덜란드의 ‘토털축구’는 이후 세계축구의 방향을 결정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도 네덜란드 축구는 빛났다. 우선 공간 활용도와 다양한 공격루트에서 다른 팀을 압도했고, 미드필드 운영도 돋보였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이번 월드컵에 나오지 못한다. 무엇보다 최상의 멤버로 예선전을 치르지 못한 것이 예선탈락의 가장 큰 이유다. 그렇다면 네덜란드가 없는 가운데 열리는 2002월드컵에서는 어떤 포메이션이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할 것인가.
1994년 미국월드컵 이후 선진축구의 포메이션은 4-4-2가 주류다. 1994년에는 브라질이, 1998년에는 프랑스가 4-4-2로 세계 정상에 섰다. 물론 두 팀이 쓰는 4-4-2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윙백의 공격가담과 공간을 활용하는 스타일은 닮았다. 두 팀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4-4-2로 우승에 도전한다. 이밖에도 스페인 포르투갈 잉글랜드 스웨덴 등이 4-4-2 포메이션으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축구도박사들이 우승후보 1순위로 꼽은 아르헨티나는 3-5-2 포메이션을 쓴다. 아르헨티나의 3-5-2는 과거 독일 등에서 썼던 3-5-2와 다르다. 다분히 공격 중심이며 미드필드를 두텁게 운영하는 것이 특징. 이것은 선수 개인의 능력이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때 가능한 포메이션으로 새삼 아르헨티나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선진축구에서는 상대에 따라 포메이션을 적절하게 바꾸는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다. 실례로 프랑스는 4-4-2와 4-5-1, 포르투갈은 4-4-2와 4-3-3, 터키는 3-6-1과 3-5-2를 섞어 쓴다. 이것은 특정 포메이션에 집착할 경우 ‘창의적인 축구’가 어렵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월드컵이 끝나면 새로운 포메이션이 나타날 것이고, 그것이 향후 세계축구의 주류로 떠오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포인트 6 한·일전 3라운드
한국과 일본은 2002월드컵 공동개최국으로서 세 가지 종목에서 자웅을 겨룬다. 우선 축구대결이 최대 관심사. 양국은 98프랑스월드컵에서 한 차례 간접대결을 벌였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성적으로는 1무2패의 한국이 3패를 당한 일본에 우위를 보였지만, 경기내용에서는 일본이 앞섰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2002월드컵 전망은 대조적이다. 일본이 내심 조 1위까지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반면, 한국에서는 16강진출이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국 조에는 포르투갈이라는 절대강자가, 일본 조에는 튀니지라는 약팀이 속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세네갈에 0대2로 패한 일본이 세네갈보다 강한 튀니지를 잡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다음 문제는 누가 더 안전하게 월드컵을 치르냐다. 이 점에서 한국은 미국이 부담이고 일본은 잉글랜드가 화근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테러의 표적이 되고 있다. 다행스럽게 미국과 회교국가(이란)의 정면대결은 피했지만, 미국이 경기를 갖는 수원 대구 대전 등은 테러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98프랑스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는데, 여기에는 잉글랜드 훌리건과 독일의 우익계 청년이 유난히 많다. 이번 월드컵의 경우 두 팀은 공교롭게도 일본에서 조별예선을 치른다. 특히 잉글랜드는 경기마다 살얼음판이어서 결과에 따라 훌리건의 난동이 예상된다. 한편 독일은 예선을 통과할 경우 한국에서 16강 토너먼트를 하게 돼 있어 한국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마지막으로 한·일간의 흥행대결이 관심사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반전은 한국, 후반전은 일본이 유리하다. 우선 한국은 이번 월드컵의 최대어로 꼽히는 중국을 낚았다. 더구나 중국의 경기가 서귀포, 광주, 서울 등으로 잡혀 있어 관광특수도 톡톡히 누릴 전망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죽음의 조’인 F조 경기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 것이다.
16강이 끝나면 상황은 역전된다. A, C조 1위가 유력한 프랑스와 브라질이 일본으로 건너가면,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은 일본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망의 2002월드컵 결승전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다. 일본이 한국에 개막전과 FIFA 총회를 내주면서도 끝까지 결승전을 고집한 ‘속셈’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