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SDS, LG CNS, 쌍용정보통신, HIT(현대정보기술) 등 쟁쟁한 SI업체들이 혈투를 벌였던 육군 C4I사업(전술지휘통제 자동화사업)에 잡음이 일고 있다. 방산업체인 현대제이콤 이재숙 부회장에 대한 악성 소문의 진상과 그녀를 둘러싼 SI업체들의 갈등과 대립.
우리말로 전술지휘통제자동화사업으로 해석되는 C4I사업이란 컴퓨터와 유무선 데이터통신망을 활용해 지휘체계를 정보화하고 자동화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컴퓨터가 전투를 지휘하고 명령을 하달하는 지휘자동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C4는 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I는 Intelligence의 약자다. 육군이 먼저 시작했는데, 해·공군도 곧 뒤따를 예정이다. 3단계로 나눠 진행돼 온 육군 C4I사업이 시작된 것은 2000년 9월. 그해 11월 1단계 사업자로 삼성SDS가 선정됐다. 1단계 사업은 기반체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다.
미모의 독신 여사업가
이듬해 10월엔 쌍용정보통신(SICC)이 통신장비를 개발하는 2단계 사업자로 선정돼 국방부와 계약을 맺었다. 3단계 사업자 선정결과는 지난 6월 중순 발표됐다. 애초 삼성SDS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승자는 LG CNS였다. 3단계 사업은 응용체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다. C4I사업의 총사업비 규모는 전력화과정을 포함해 약 30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육군 C4I사업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흘러나온 것은 지난 7월 이후. 3단계 사업 탈락업체인 삼성SDS가 진원지일 듯싶은 이런 소문은 국방부와 정치권 주변에도 어느 정도 퍼져 있다.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C4I사업의 특성에 비춰 1단계 사업을 수주한 업체가 3단계 사업도 맡아야 한다는 것. 장비를 개발하는 2단계와 달리 1, 3단계 사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이다. 3단계 소프트웨어는 1단계에서 구축된 기초 프로그램을 응용해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업의 연속성 측면에서 1단계 사업자가 3단계 사업을 맡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선정업체인 LG CNS가 인력 관련규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다. C4I사업 관련규정에 따르면 제안서에 포함된 전문기술인력은 일정비율 이상 교체할 수 없는데, LG CNS는 사업자로 선정된 후 규정을 어겨 과도하게 인력을 바꿨다는 것이다. 삼성SDS가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인력 부문 평가에서 LG CNS측에 크게 뒤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로비의혹. 현대제이콤 부회장 이재숙(43)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 회사엔 회장이 따로 없다. 부회장 이씨가 실질적 소유주이자 경영주다. 방산업체인 현대제이콤은 HIT(현대정보기술)의 협력업체로 C4I사업 2, 3단계에 참여했다. HIT는 2단계 사업에서 주사업체인 쌍용과 대등한 지분을 갖고 컨소시엄을 구성했으며, 3단계에서는 40%의 지분을 갖는 조건으로 LG CNS와 손잡았다.
이재숙 부회장에 대한 소문은 한마디로 그녀가 C4I 사업자 선정과정에 군 고위층과 실무자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다. 이런 유형의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부풀려지게 마련이다. 하여튼 소문은 이렇다. 무기중개 로비스트 린다 김 뺨치는 미모의 로비스트가 국방부와 SI(체계통합)업계를 휘젓고 있다고. ‘린다 리’라는 별명도 붙어 있다. 기무사가 이와 관련해 내사를 벌였다는 얘기가 돌면서 이씨에 대한 소문은 더욱 그럴듯하게 포장된 상태다.
첫번째 문제 제기의 타당성을 짚어보기 위해선 먼저 육군 C4I사업을 둘러싼 SI업계의 합종연횡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1단계 사업 당시 삼성SDS의 협력업체는 LG전자였다. 쌍용정보통신은 HIT와 동맹을 맺었으나 삼성SDS에 패했다. 하지만 2단계 사업 수주로 1단계의 패배를 보기 좋게 설욕했다. 이재숙씨의 현대제이콤이 HIT의 협력업체로 C4I사업에 명함을 내민 것도 이때다.
1, 2단계 경쟁구도는 3단계에서 크게 바뀌었다. 3단계에서는 1, 2단계에서 라이벌로 맞섰던 삼성SDS와 쌍용정보통신이 손을 잡았다. 1, 2단계 주사업자가 연대한 것이니만큼 최강의 조합으로 비칠 만도 했다. 반면 2단계 사업 때 쌍용정보통신과 짝을 이뤘던 HIT는 3단계에서는 LG CNS와 힘을 합해 2회 연속 수주의 기쁨을 맛봤다. 이 컨소시엄엔 현대제이콤, LG전자, SK C&C가 협력업체로 참여했다.
삼성SDS와 쌍용정보통신 측 얘기만 들으면 3단계 사업을 이들이 따내지 못한 것은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삼성SDS의 한 관계자는 “1, 2단계 사업자 경험이 없는 LG CNS가 3단계 주사업자가 된 것은 사업을 새로 시작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1, 3단계는 소프트웨어 개발사업이므로 연속성을 지닌다. 노하우가 없는 LG CNS가 하려면 힘들 수밖에 없다. 1단계를 모르면 3단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단계 사업내용을 파악하는 데 걸릴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편법이기는 하지만 아예 1단계 소프트웨어를 다시 개발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업자 선정과정에 이상기류가 흘렀다”면서 “단계마다 사업자가 다르면 사업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주사업자로 나섰던 삼성 측과 부사업자였던 쌍용 측의 시각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쌍용정보통신은 탈락에 따른 불만은 삼성SDS와 비슷하지만 패배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C4I사업 실무책임자였던 한 관계자의 얘기.
“1단계 사업자가 3단계 사업을 맡는 게 당연하다. 3단계는 통합작업이므로 1, 2단계 사업내용을 완전히 소화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걸 염두에 두고 SDS와 손잡았다. 삼성SDS가 1단계를, 우리가 2단계를 맡았기 때문이다. ‘100% 수주’라고 확신했다.”
쌍용정보통신은 현재 2단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실무팀이 충남 유성에 있는 모처에서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이 점을 의식해선지, 아니면 패배를 깨끗이 인정해선지 이 관계자는 삼성SDS 측의 문제제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는 패인을 “상대 업체보다 제안서를 잘 쓰지 못했고 방심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2단계 사업의 실무를 맡고 있는 쌍용정보통신의 또 다른 관계자도 비슷한 논리를 폈다.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사실이다. 삼성에서 억울할 만하다. 하지만 1단계 사업을 맡았다는 것이 점수에 반영되지는 않으므로 논리적인 주장은 못된다. 어쨌든 제안서 내용이 평가에 가장 중요한 잣대이지 않았겠나.”
물론 승자는 패자의 항변을 ‘억지’로 간주한다. LG CNS 관계자는 “졌으면 깨끗이 승복해야 한다”며 삼성SDS에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3단계 사업자 선정이 끝난 직후인 6월 말 LG CNS에 입사한 이 관계자는 영관장교 출신으로 육군 C4I사업개발단에서 근무하며 1, 2단계 사업에 관여한 바 있다. 그는 “삼성SDS는 1단계 사업을 하면서 군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2단계 때도 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업자인 HIT가 LG CNS를 편들지 않으면 이상한 일일 터. HIT 관계자는 “뭔가 모자라는 게 있으니 진 것 아니냐”며 “만약 1단계 사업자가 반드시 3단계 사업자가 돼야 한다면 사업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단계를 나눠 사업을 진행한 것은 각 단계 사업자가 달라도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삼성SDS 측 주장을 반박했다.
LG CNS 측에서는 또 “1단계 사업 경험이 있는 LG전자가 협력업체로 참여했기 때문에 사업 연속성 측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편다. 이에 대해 삼성SDS 관계자는 “LG전자는 이름만 내걸었을 뿐”이라며 “1단계 사업 당시 실제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협력업체는 3단계 사업자 선정 당시 삼성SDS로 넘어왔다”고 반박했다.
1단계 사업 당시 LG전자의 협력업체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도했던 모 벤처기업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삼성SDS 측 주장은 틀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관계자는 “1단계 때 LG전자 쪽에서 일했던 인력이 3단계 사업자 선정 땐 삼성SDS 밑으로 들어갔다. 최근 LG CNS로부터 인력파견을 요청받았으나 참여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며 “당연히 SDS가 3단계 사업자로 선정될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고 탈락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LG CNS의 전신인 LG EDS가 C4I사업에 앞서 C3I사업을 수주한 경험이 있으므로 C4I사업을 수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삼성SDS 측은 “C3I는 군단급 이상의 부대에서 운용하는 전략지휘체계이고 C4I는 사단급 이하 일선 부대에서 사용할 전술지휘체계이므로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C4I사업 진행과정을 잘 아는 ADD(국방과학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C3I사업과 C4I사업의 관련성을 인정하며 “(LG CNS가) 새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삼성SDS 측 주장엔 일리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삼성SDS가 하면 성공하고 LG CNS가 하면 실패한다는 법칙은 없으므로 ‘이유 있는 항변’은 되겠지만, 쌍용정보통신 관계자가 지적했듯이, 논리적인 주장은 못될 듯싶다. 육군 C4I사업개발단의 고위관계자는 사업자 선정 심사과정에 삼성SDS가 1단계 사업자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한번 맡았던 업체가 계속 맡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에 참고만 했다”고 밝혔다.
LG CNS가 계약조건을 위반했다는 두번째 의혹은 삼성SDS가 최근 새로 제기한 것이다. 삼성SDS 측이 확인한 바로는 LG CNS의 제안인력과 투입인력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 C4I사업 관련규정에 따르면 최초 제안서에 포함된 인력은 정당한 사유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뀌면 안된다. 또 개발기간중 전문기술인력의 변동은 전체의 10%를 초과할 수 없다. 단서조항이 붙어 있긴 하다. 정당한 사유로 개발단이 인정하거나 불가항력(본인 사망, 퇴사 등)에 의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것.
LG CNS와 삼성SDS의 점수 차이는 미미하다. 12개 분야에 대해 항목당 100점 만점 기준으로 평가했는데 종합평점에서 두 회사는 각각 73.71점, 72.39점을 받았다. 1.32점 차이다. 그런데 삼성SDS 측이 확인해보니 인력 부문 평가에서 8점이나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인력 부문은 체계통합 항목에서 30%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SDS에 따르면 LG CNS가 제안서에 적어낸 인력 중에는 점수를 높게 받기 위한 ‘포장용’ 인력이 많았다고 한다. 아울러 사업자로 선정된 후 사업수행계획서를 낼 때 특별한 이유 없이 제안인력의 30%가 바뀌었는데 이를 사업개발단에서 묵인했다는 것이다.
육군 C4I사업 1, 2, 3 단계에서 합종연횡을 거듭했던 대기업 SI업체들.
육군 C4I사업개발단의 고위관계자는 “인력 부문에서 8% 차이가 생겨 삼성이 패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LG쪽이 전반적으로 우세했다. 12개 항목 중 6개 이상에서 앞섰다”고 밝혔다. 인력 교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업개발단에서는 인력을 많이 바꾸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다. 1단계 사업 때도 인력이 많이 바뀌었다. 인력이 바뀌는 경우 개발단에서 심의하게 된다. 7월29일 LG CNS가 3단계 사업에 착수한 이후 아직까지는 인력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안다. 계약조건에 맞게 일을 추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개발단의 임무다. 타 업체에서 거론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리할 일이다.”
삼성SDS 관계자는 “1단계 사업 때도 제안인력과 투입인력이 많이 달랐다”는 지적에 대해 “1단계 때는 인력 교체를 제한하는 조건이 없었으며 지금과 달리 평가규정에 포함돼 있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C4I사업과 관련해 현대제이콤 이재숙 부회장을 둘러싼 소문은 업계뿐 아니라 군과 정치권 주변에서도 감지된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머잖아 이재숙 스캔들이 터질지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국방부 정보본부와 정보화기획실 실무자들치고 이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업자 평가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군 연구소 주변에서도 이씨에 대한 소문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의 대부분은 그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재숙씨에 관한 소문은 대개 이런 것이다. ▲LG CNS 컨소시엄이 C4I 3단계 사업권을 따내는 데는 이재숙의 로비가 작용했다 ▲국방부 고위층과 자유자재로 골프를 친다 ▲군 장성들을‘오빠’라고 부른다 ▲군 장교들을 술자리에 불러낸다 ▲기무사 요원을 앞세워 군 실무자들에게 접근한다 ▲ADD 관계자들에게 사업과 관련해 압력을 가했다 ▲육군 C4I사업 3단계 사업자 선정 이후 LG CNS 고위관계자가 접대 차원에서 이씨와 골프를 쳤다 ▲주로 고위층을 상대했던 린다 김과 달리 이재숙은 실무자들에게 접근해 로비한다 ▲3단계 사업자 선정 직후 국방부에 투서가 들어갔는데 거기에 이씨와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 ▲기무사가 투서 내용에 대해 내사를 벌이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단했다.
이런 소문에 대해 이재숙씨는 인터뷰를 통해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완강히 부인했다(상자기사 참조). 특히 로비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린다 김을 자신과 비교하는 데 대해 매우 격분했다. 그녀의 분노는 언뜻 타당해 보인다. 린다 김은 전문 로비스트지만 그녀는 사업체를 갖고 있는 경영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항간에서 그녀와 린다 김을 연결시키는 것은 군납업계에서 여성 사업가가 귀한 데다 미모가 돋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부산에서 태어난 이씨는 대구여고를 나와 한양대를 졸업했다. 20대 후반에 광고회사를 운영하다가 결혼할 남자가 병으로 죽는 바람에 회사를 잠시 접기도 했다. 그후 그녀는 독신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현대제이콤 외에 J&Partners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J&Partners는 해외마케팅 전문 회사로 통신장비 등을 판매한다.
현대제이콤의 모태는 현대전자다. 현대전자의 후신인 하이닉스가 지난해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통신 및 보안장비를 만드는 특수사업팀을 분사시켰는데 이것이 현대제이콤이다. 자본금 26억원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경기도 이천시에 본사 공장이 있으며 서울 가락동에 연구소가 있다. 직원 수는 122명. 연 매출액은, 이씨 말에 따르면, 100억원대다.
현대제이콤의 1대 주주는 유무선 통신장비 생산업체인 기산텔레콤(대표이사 박병기)으로 38.1%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재숙씨의 지분은 14%. 대표이사는 김무호씨지만 경영권은 이씨가 쥐고 있다.
현대제이콤은 HIT의 협력업체로 C4I 사업에 뛰어들었다. 2단계 사업에서 HIT는 주사업체인 쌍용정보통신과 대등하게 50%의 지분을 가졌는데 그 중 15%가 현대제이콤의 몫이었다. 2단계 사업에 필요한 장비는 8품목. 그 중 3 품목을 현대제이콤이 개발한다.
3단계에서 현대제이콤은 23억원 규모의 장비 납품권을 따냈다. 현대제이콤이 생산하는 통신장비나 보안장비가 아니라 서버 네트워크 등 기존의 상용장비다. C4I사업 2단계와 3단계의 사업비는 각각 72억원, 286억원이다. 1단계 사업에는 99억원이 소요됐다.
3단계 사업이 마무리되면 전력화 단계로 접어든다. 2004년부터 시작될 전망인데, 2000억원 이상의 사업비가 추가 투입될 전망이다. 전력화 사업은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앉힐 장비를 구입하는 사업이다. 이재숙씨의 행보에 업계의 눈길이 쏠리는 것은 이때 납품될 장비 중에 보안장비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씨를 견제하는 측에서는 현대제이콤이 보안장비 개발업체이니만큼 C4I 전력화 사업에서 상당한 구실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C4I사업과 비슷한 성격의 사업으로 통합정보처리체계사업과 장비정비체계사업이 있다. 둘 다 500억원대의 사업이다. 통합정보처리체계사업의 경우 올 하반기 1단계 사업자가 선정될 예정인데, C4I사업 3단계 사업을 수주한 LG CNS와 HIT가 다시 컨소시엄을 구성해 응찰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이콤은 C4I사업 때와 마찬가지로 HIT의 협력업체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1단계 사업비는 약 30억원. 이재숙씨는 이 사업에 대해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장비정비체계사업의 규모도 통합정보처리체계사업과 비슷하다. 업계에서는 HIT를 유력한 후보로 꼽고 있다. 그래서인지 HIT와 동업관계인 현대제이콤도 수주경쟁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숙씨는 이 사업에 대해 “우리가 개발하는 장비와 아이템이 달라 뛰어들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씨의 로비의혹은 소문만 있지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SI업계 관계자들은, 삼성SDS 측만 빼고는, 대체로 이씨에 관한 의혹이 근거가 희박하고 음해성 소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쌍용정보통신 관계자는 “이재숙이라는 이름만 들었을 뿐 그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히 모른다”고 말했다. HIT의 한 간부는 “C4I 사업자 선정과 이재숙씨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이씨의 역할을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이씨에 대해 “로비스트가 아니라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사업가”라고 평했다.
쌍용정보통신에서 C4I사업을 담당했다가 벤처업계로 옮겨간 A씨는 이씨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재숙씨에 대해 말이 많은 것으로 안다. 독신에 미모의 여성사업가니 그런 소문이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내가 알기로 이씨는 사업과 결혼한 사람이다. 프로페셔널이다.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사업가다. 경쟁에서 패한 쪽에서 그런 얘기를 흘리는 모양인데 결코 뇌물을 주면서 로비할 여자가 아니다. 삼성은 실력이 없어 떨어진 것이다.”
LG CNS 관계자는 “이재숙 부회장은 사업을 위해 열심히 뛰는 사람이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오해와 욕을 듣고 있다”며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삼성SDS 측이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이재숙씨를 끌어들이기 위해 애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사업자 선정이 끝난 후에도 이씨를 접촉했다. 하지만 이씨가 거절했다. 삼성SDS는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이 관계자는 “그 얘기는 이재숙씨가 그만큼 영향력이 있다는 뜻이냐”는 물음에 “현대제이콤이 2단계 사업에 참가해 현재 연동장비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답변했다.
한편 국방부 정보화기획실의 한 관계자는 “지나가는 말로 이재숙씨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C4I사업과 관련해 국방부에 접수됐다는 투서 내용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육군 C4I사업개발단 고위관계자는 “이재숙씨를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며 “그녀를 두고 ‘린다 김 아니냐’고 말하는데, 웃기는 얘기다”고 말했다.
이재숙씨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 중에서 사실로 밝혀진 것은 별로 없다. 다만 투서의 실체는 드러났다. 앞서의 육군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관에서 조사했는데 음해성 소문임이 밝혀졌다”며 실제로 투서가 있었고 그에 대한 내사가 벌어졌음을 인정했다. 쌍용정보통신의 한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로비의혹과 관련된 소문이 전혀 근거 없지는 않은 셈이다.
이재숙씨가 C4I 3단계 사업자가 선정되기 전에 ADD 관계자를 만난 사실도 확인됐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C4I사업이 아니라 다른 사업 때문에 만났다”고 주장한다. ADD 관계자는 “업무협조 차원에서 업계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편인데 이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간에 다리 놓은 사람을 통해 ‘얼결에’ 이씨와 만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ADD 관계자는 “이재숙씨가 열심히 뛴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귀띔했다.
이재숙씨는 LG CNS 고위관계자와 함께 골프 친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당사자의 부인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사례 차원의 골프회동이었다는 소문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이씨를 둘러싼 소문의 속사정은 대부분 이와 비슷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렇게 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여자가 사업하면 안 되냐”는 이씨의 격앙된 반응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군 고위층에 아는 사람도 없고 로비할 이유도 없다"
9월9일 이재숙 현대제이콤 부회장과 통화가 됐다. 비서를 통해 질의 내용을 전해들었는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녀는 “(C4I 3단계 사업에) 겨우 9.8% 지분을 갖고 참여했다”며 “주사업자도 아닌 내가 로비할 이유가 뭐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그녀는 또 “왜 린다 김과 나를 비교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9월11일 이부회장과 만나 세 시간 가량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항간의 의혹을 단호히 부인하는 한편 군 관련 사업에 대한 의욕과 사업가로서의 포부를 드러냈다. 사생활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털어놓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태도였다.
-C4I사업단 고위관계자와 골프를 친 적이 없나.
“나는 그 사람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투서 얘기를 들어봤나.
“작성자 이름도 없는 투서가 여기저기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확인도 하지 않고 나에 대해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군도 많이 깨어 있기 때문에 사업단장 등 고위층과 알고 지내도 소용없다. 심사위원이 각계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로비가 통할 여지가 없다.”
-HIT와는 어떤 관계인가.
“내가 현대제이콤을 인수하고 보니 육군 C4I사업과 관련해 HIT와 MOU(양해각서)가 체결돼 있었다. 같은 현대 계열사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3단계 사업까지 함께한 것이다.”
-3단계 사업에서 현대제이콤이 맡은 일은?
“개발하는 장비는 없다. 기존 장비를 구입해 납품하는 것이다. (이윤이) 남지도 않는다. 단지 이름만 걸어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3단계 사업에 참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SI업체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내년에 진행될 해군 C4I사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속 이름을 걸어놓아야 한다. 또 외국에서도 C4I사업은 알아주기 때문에 사업참여 경력이 해외 마케팅에 크게 도움이 된다.”
이부회장은 “이 업계가 참 웃긴다”며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C4I 2단계 사업은 하드웨어 개발이다. 그러면 하드웨어 업체에 직접 (용역을) 주면 되는데, 군에선 우리 같은 벤처 회사는 작은 회사라서 믿을 수 없다며 대기업인 SI업체만 상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드웨어 업체가 SI업체에 줄을 설 수밖에 없다. 결국 SI업체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양쪽에서 다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국방부 실무자들에게 기무사 직원을 앞세워 접근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적 없다. 기무사에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다.”
-현대제이콤 김사장이 기무사 직원을 내세워 국방부 실무자와 접촉해 “이재숙 부회장을 한번 만나 보라”고 말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랬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만난 적이 없다.”
-군 고위층에 로비한 적이 전혀 없나.
“군 고위층 중에 아는 사람도 없지만 로비할 이유도 없다. 우리 같은 벤처기업들은 SI업체들에만 잘 보이면 된다. 영업은 SI업체가 하고 기술은 벤처기업이 대는 것이다.”
이부회장은 올 하반기엔 정보처리체계사업에, 내년 상반기엔 해군 C4I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욕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러면서 삼성SDS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삼성SDS와는 어떤 사업이든 끝까지 맞붙어 꼭 승리하겠다고 ‘전의’를 다졌다. 실력이 없어 떨어져놓고는 있지도 않은 로비의혹에 책임을 돌리는 비열한 기업이기 때문이란다.
-삼성SDS 측에서 동업을 제의한 적 있는가.
“그쪽 관계자가 비슷한 제안을 한 적이 있는데 거절했다. 벤처업계에서는 삼성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
-해군 C4I사업도 HIT와 동업할 것인가.
“MOU에서 풀리기 때문에 꼭 HIT와 동업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유리하게 해주는 업체와 손잡을 것이다.”
이부회장은 자신을 린다 김과 비교하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비교할 게 따로 있지”라며 몹시 불쾌해 했다. “나를 린다 김과 구별해 달라”고 강조했다.
-왜 회장 직함을 쓰지 않나.
“아직 회장이라고 하기엔 회사 규모가 작고 부족한 점이 많다.”
-독신 여성 사업가로서 난처한 점이 있을 텐데.
“그런 것 없다. 내가 명확히 선을 긋기 때문이다.”
-사업이 적성에 맞는가.
“사업은 내 남편이다.”
그녀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사별한 약혼자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