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호

환경은 국가경쟁력 핵심 요소

김명자 환경부장관의 ‘지속 가능 발전 세계정상회의’ 참가기

  • 입력2002-10-04 17: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전세계는 10년 전 리우 환경회의 이후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며
    •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해야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눈을 떴다.
    • 그로부터 10년 만에 열린 요하네스버그 지구정상 회의는
    • 구체적으로 분야별 실천계획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환경은 국가경쟁력 핵심 요소
    지난 8월26일부터 9월4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지구촌 최대규모의 매머드 국제회의가 열렸다. ‘지속 가능 발전 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 : 이하 WSSD)’라 이름 붙인 이 자리에는 88개국 정상(국가 원수급 52개국, 총리급 36개국)을 비롯하여 194개국, 86개 국제기구, NGO, 산업계 등 전세계로부터 4만∼5만명이 모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와 민간부문에서 400여 명이 정부간 협상회의, NGO포럼, 국회의원회의, 지방의제21포럼 등 갖가지 회의에 참가했다.

    공식집계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일본은 정부대표단 500여 명, NGO 300여 명 등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했고, 미국은 정부대표 164명, NGO가 2백여 명 정도 참가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우리나라 대표단도 참가규모로 따져서 상위 2∼3위에 드는 듯하니 ‘지속 가능 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지속 가능 발전’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어색한 번역투로 들리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처음 제시된 것은 노르웨이의 여성 총리 브란트란트가 위원장이 되어 작성한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에서였다. 이 용어는 20세기 최대의 국제회의였던 1992년 리우 환경회의에서도 지구촌 살림의 지향점으로 강조되었다.

    이 글을 쓰노라니, 두 해 전 UN에서 열렸던 지속 가능 발전위원회 회의에서 아이슬란드 여성 환경장관이 하던 말이 떠오른다. 국민이 지속 가능 발전이라는 용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해보았더니, 그 결과는 1% 남짓이었다는 것이다. 선진국인 아이슬란드의 형편이 이럴진대 다른 나라 상황은 어떻겠느냐, 환경장관이 둘러앉아서 지속 가능 발전을 논하는 것이 얼마나현실성이 있겠느냐 하는 얘기였다. 그말을 들으면서 동서는 달라도 생각은 똑같을 수 있구나 싶어서 신통했다.

    이번 WSSD는 ‘리우+10’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지금부터 10년 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과 발전에 관한 유엔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 UNCED)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정상들이 환경을 주제로 모여 ‘자연과 자원을 잘 보전해야 미래세대가 생존하면서 현 세대도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 발전을 지구촌 번영의 중심 이념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 널리 쓰인 지 10년이 지났건만 ‘지속 가능 발전’은 아직도 공허하게 겉돌고 있다. 어쩌면 그 용어가 시사하는 조화로운 세상이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어느 외국인 전문가는 ‘지속 가능한(sustainable)’이라는 수식어를 ‘지속되는(sustained)’이라고 아예 바꿔서 해석하는 것도 보았다. 이렇듯이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발전에 대한 집념은 강한 것인가 보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정책 결정자 가운데에는 지속 가능 발전이 환경문제와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실은 이 개념 자체가 ‘지구 환경위기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발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인류사회가 위기다’는 인식에서 태동했고, 환경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음을 천명한 것이었다.

    이렇듯 발전과 환경은 한데 묶여 있다. 그래서 환경문제 해결은 쉽지 않고 그 논의 또한 논쟁의 홍수 속에서 이렇다 할 묘수를 찾기 어려운건 지도 모르겠다. 리우회의만 봐도 선진국들은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개발도상국은 자국의 개발 권리를 내세워 선진국이 역사적 책임을 지고 더 많은 재정을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어렵사리 ‘지속 가능 발전’은 남과 북으로 갈린 두 세계의 공통된 미래이념으로 합의되었던 것이다.

    이번 WSSD에서 주요쟁점으로 떠올랐던 빈곤 퇴치라는 주제도 전세계의 빈곤계층이 환경 파괴의 가장 큰 피해자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지구환경은 더욱 파괴되어 선진국·후진국 할 것 없이 공멸한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즉 전세계 정상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논하려면 우선 빈곤을 이기는 방안부터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성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거기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지금처럼 지구자원을 마구 퍼 쓰고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면 인류사회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지속성의 원칙. △지구촌의 남과 북, 현 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의 공간과 시간을 꿰뚫는 자원 배분에 눈을 돌리지 않고서는 인류문명은 존속 자체를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형평성의 원칙. △또 자원의 공급 위주에 치우쳐 수요 관리를 소홀히하는 정책을 밀고 나가는 한, 인류사회 발전은 한계에 이를 것이라는 효율성의 원칙 등이다.

    최근의 국제회의는 유행처럼 환경·경제·사회라는 세 기둥을 조화시키는 균형 잡힌 발전정책으로 바꾸라고 권고한다. 이번 회의는 지난 10년 간 지구촌이 일궈낸 ‘지속 가능 발전’노력의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10∼20년에 걸쳐 국제사회가 할 일을 논의하고 결의하는 자리였다. 국가정책의 3개 기둥을 중심으로 빈곤퇴치, 지속 가능한 소비·생산, 자연자원 보전·관리를 논하되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행 수단을 내놓는 것이 이번 회의의 목적이었다. 그에 따라 재정과 무역에 관한 논의가 봇물 쏟아지듯했다.

    각국 대표들이 밤낮으로 협상을 벌인 결과 다행히 예상보다 많은 합의를 이루어냈다. 우선 2015년까지 빈곤층 인구를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는 그동안 4차까지 열렸던 준비회의에서 타결됐던 내용이나, 이를 위한 세계연대기금(World Solidarity Fund) 설치안은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다가 이번 회의에서 합의한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2020년까지 화학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자는 데 합의한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앞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국제규제가 까다로워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고, 이는 산업과 일상생활 깊숙이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 자연자원 보전·관리 방안도 이번 회의에서 깊게 논의된 주제였다. 중세 기술혁명의 막을 열었던 태양열, 풍력 같은 에너지원을 21세기에 되살려 그 비중을 크게 높이자는 주장이 큰 힘을 얻은 것은 이번 회의 또다른 성과 중의 하나였다. 이들 에너지원은 써도써도 동나지 않고 다시 생겨난다는 뜻으로 재생가능(renewable) 에너지라 불리고 있다. EU 국가 등 일부 선진국은 20세기 산업문명의 근간이던 화석연료 대신 이런 에너지 비율을 15%까지 올리자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논란 끝에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율이나 목표연도 등 구체적인 기준은 정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처럼 그 비중이 낮은 경우 단단히 준비하라는 경고 메시지나 다름없다.

    또한 지구상에서 생물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를 2010년까지 되돌리자고 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부패추방, 인권보호, 의사결정의 투명성 제고같은 제도적인 체제개선 토론과 세계화의 부작용 해소방안 논의도 빼놓을 수 없는 의제였다.

    재작년 ‘리우+10’회의 유치작업이 진행되던 당시 남아공 대표가 하던 말이 기억난다. 그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지구정상회의가 열려야 하는 이유로, 선진국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 아프리카에 와서 빈곤의 참상을 보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해법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나간 일이지만 환경부 장관으로서 나는 이 회의를 우리나라에서 유치하는 것에 대해 여러 원로 선생님들께 의논을 드렸고, 시민단체는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그러나 월드컵대회, 아시아경기와 시기가 겹친다는 국내 사정이 회의 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또 회의를 유치하는 실무 부처가 아닌 처지에서 일을 이룰 도리가 없었다. 환경부로서는 아직도 개발시대의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의 환경의식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계기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회의는 그렇게 해서 빈곤과 저개발로 고통받는 아프리카대륙에서 열려 난제 중의 난제인 빈곤 문제가 주요의제가 되었다. 나랏님도 못 구한다는 가난, 그것도 전지구촌의 빈곤을 극복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울까. 이미 리우 회의에서도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에게 GNP의 0.7%에 이르는 공적개발원조(ODA :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지원하라고 결의한 바 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선진국 가운데 그 목표대로 내놓은 나라는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등 5개국뿐이다. 우리나라의 ODA 공여규모는 2001년 기준으로 GNP의 0.06%(2억 6600만달러) 정도다.

    최근 환경이 새로운 국제질서 규범으로 자리잡으면서 환경협력의 국제무대에서도 기금 조성에 앞장서는 나라가 대우받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지구촌 일원으로서, 더욱이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ODA를 비롯하여 각종 환경기금을 조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이바지할 필요성을 회의때마다 느끼곤 한다. 이렇듯 국제사회에 재정으로 기여하는 것은 인도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향력과 위상을 높이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기후변화와 교토의정서

    우리 대표단이 요하네스버그 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동안 CNN뉴스와 그곳 일간지는 한국의 태풍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는 소식을 사진과 함께 알렸다. 1년 동안 내릴 비의 반 이상이 몇 시간 만에 퍼부었으니 막대한 피해가 나는 것은 불가피했으나, 그 피해가 너무 심하다는 사실에 옷깃이 여미어졌다.

    이는 기상이변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기상이변은 1990년대 들어 부쩍 세계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회의 연설에서 슈뢰더 독일 총리는 올해 유럽, 아시아, 미국을 강타한 폭우와 강풍은 기후변화가 이제 참혹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고, 따라서 교토의정서를 가능한 한 빨리 비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국 대표단은 그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지금 이대로 화석연료 사용을 늘려간다면, 그 피해는 우리와 자손에게 닥친다는 염려는 가설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국제사회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이를 막으려 노력했다. 수많은 논의 끝에 세부이행방안을 담은 교토의정서 발효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교토의정서를 비준하겠다고 선언할 때마다 큰 박수를 받았던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대표 연설에서 올해 안에 국회를 거쳐 교토의정서 비준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므로 가급적 10월 말부터 인도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석하기 이전에 비준되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번 회의의 결실인 ‘이행계획’은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국가에 의정서 비준을 촉구한다’는 선에서 문안이 확정되었다.

    이번 회의 참석을 계기로 필자는 몇몇 대표와 양자회담, 다자회담을 가졌다. 그 가운데 국제기구들과 함께 동북아 황사방지사업을 하자고 합의한 것은 주요성과라 하겠다. 우리나라 환경 행정사에서 이런 국제적 합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70년∼80년대까지만 해도 환경 행정이라고 하면 대청소나 하수처리 정도로만 생각하던 현실에서 동북아지역의 국제협력사업을 일구어냈기 때문이다. 지난봄 상상을 초월하는 황사로 우리나라는 큰 피해를 입었다. 황사는 이제 환경문제가 국경을 훌쩍 넘어 인접국가와의 협력 없이는 풀 수 없는 현안임을 절감케 해주었다. 국내에서 환경 행정을 잘한다고 해도 황사의 침입에서 벗어날 길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황사문제를 풀려고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노력했다. 그 중 한·중·일 3국 환경장관회의는 2년 전부터 TEMM(Tripartite Environment Ministers'''''''''''''''' Meeting) 프로젝트를 출범시켜 황사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는 황사관련 최고위급 회의체로 자리를 굳혔다. 또한 황사관련 국제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유엔환경계획(UNEP), 유엔아·태경제이사회(ESC AP), 아시아개발은행(ADB), 몽골과 연대 협력사업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황사모니터링과 황사방지사업을 할 수 있는 기틀도 마련하게 되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필자는 동북아시아 지역 황사방지사업을 세부적으로 논의하려고 클라우스 퇴퍼 UNEP 사무총장, 김학수 ESCAP 사무총장과 각각 양자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지구환경금융(GEF)이 지원하는 동북아시아 황사대응사업안을 채택했다. 오는 10월중에 GEF 승인을 얻어 올해 안에 총 100만달러 규모의 황사방지사업에 착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 사업은 예비사업이고 앞으로 본사업을 시작하면 훨씬 큰 규모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황사라는 용어 사용 자체를 꺼리던 중국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최근 국제기구들은 앞다투어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강조한다. 작년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이 각국의 환경지속가능성지수(Environmental Sustainability Index: ESI)를 발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이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거의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워낙 좁은 국토, 부족한 자원에 밀집한 인구가 압축경제성장을 하다보니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국가 주요정책 전반에 걸친 문제라서 해결하기가 쉽지않다. 그런데 다행히 금년에 처음으로 발표된 환경성과지수(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 EPI)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즉 환경정책으로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따지면 희망적이라는 뜻이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유엔이 발표한 ‘의제21 이행보고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환경보전과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핵심사안인 빈곤퇴치와 보건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각각 미국 독일 핀란드와 나란히, 그리고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과 함께 체계적으로 ‘의제 21’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대통령 직속 ‘지속 가능 발전위원회’를 만들고, NGO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참여해서 지방의제21을 이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이런 사실을 국제사회에 충실히 홍보한 탓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우 환경회의에서도 그랬지만 요하네스버그에도 가장 많이 모인 그룹이 NGO다. 이들은 심포지엄, 이벤트 등 갖가지 형태로 지구온난화, 빈곤퇴치 문제를 다루면서 세계 각국이 선언에서 행동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런 분위기는 개막식에서도 뚜렷했다. 어린이들이 나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어른들은 지금 바로 말이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고 낭랑하게 외쳤다. 여기서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다. 인류사회의 미래와 지구의 앞날을 생각하는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그 어느 나라 정상의 수사학적인 연설보다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 민간단체도 23개 단체에서 186명이 글로벌NGO포럼에 참가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한국 참가자들은 회의기간중 8월28일을 ‘한국의 날’로 선포하고, 기념식과 심포지엄을 열어 각국 참가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또 다양한 퍼포먼스로 그들의 메시지를 요하네스버그 중심가 샌턴(Sandton)에서 열리고 있는 정부대표 회의에 보냈다.

    성공? 실패?

    4차에 걸쳐 각료급 준비회의를 하는 동안 이번 회의의 주요의제는 원만하게 타결되지 않았다. 빈곤퇴치에는 합의했으나, 기금 조성에서는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입장과 주장이 갈렸다. 따라서 이번 회의의 성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으나 그런대로 많은 합의를 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할 것이다. 9월4일 회의는 세계 정상들이 ‘정치적 선언문(Political Declaration)’을 발표해서 지속 가능 발전에 대한 각국의 정치 의지를 재확인하고, ‘이행계획(Plan of Implementation)’을 채택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의미는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세 가지 개념인 환경 보전·경제적 효율성·사회 통합이 균형 있게 진전될 수 있도록, 앞으로 10년∼20년간 국제사회가 실천할 방안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요하네스버그 회의를 가리켜 환경단체와 언론은 10년 전 리우 환경회의보다 후퇴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리우에서 꽃피운 희망이 10년 간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환경위기의 시간이 더욱 앞당겨졌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리우 회의의 열정이 뜨거웠던 만큼 이번 회의 결과가 더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국가 이익을 위해 일하는 짧은 임기의 정치인들이 해결할 도리가 없는 주제를 논의하기 때문에 실패는 당연하다고 냉소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 정부의 교토의정서 탈퇴와 부시 대통령의 불참은 이번 회의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부추겼다.

    높은 이상과 긴박한 위기에 견주면 기대에 못미치지만 회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결과를 단순히 실패라 할 수는 없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와 가장 못사는 나라들이 모두 모여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니 속시원한 결론이 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한계 속에서 최빈국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새로 세계연대기금을 세우기로 했고, 그동안 불확실했던 중국, 러시아가 교토협약을 비준하겠다고 약속해 연내 교토의정서 발효 가능성이 높아졌다. 생물다양성 분야에서도 2010년까지 종의 손실을 크게 줄여나가자고 결의했다.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을 높이고, 화학물질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규정한 것도 새로운 국제규범을 제시한 회의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전세계는 10년 전 리우 환경회의 이후 자연생태계와 공평하게 조화를 이루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눈을 떴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열린 요하네스버그 지구정상회의는 21세기 지구촌의 존립과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분야별 실천계획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번에 합의한 152개 분야 이행계획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10년∼20년간 지구환경문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이행계획 발표 후에 “요하네스버그 회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는 이번 회의 자체를 ‘성공이냐 실패냐’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더 광범위한 효과를 생각해본다. 2주가 넘도록 ‘지구환경’과 ‘지속 가능 발전’이 이처럼 전세계 언론의 핵심뉴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세계인에게 지속 가능 발전이란 용어를 소개한 적은 없었다.

    아직까지 국가정책이라면 경제성장, 개발이라고 생각하는 전세계 정책결정자들에게 지속 가능 발전이란 용어와 개념을 이렇게 일러준 적이 없었다. 이 회의가 정책결정자들을 국경 없는 미디어를 통해 21세기 발전 패러다임을 가장 대규모로 교육하고 훈련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들뜬 열기는 모자랐다 할지라도 ‘지속 가능한 발전’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인식하고 다시 한번 신발끈을 묶는 기회를 주었다면 인류에게 소중한 경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제 지속 가능 발전은 국제사회의 최우선 규범으로 천명되었다. 남은 것은 그 전환을 위한 실천이다. 우리는 정부 부처는 물론, NGO, 산업계 등을 아우르고 후속조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지속 가능 발전 이행계획’ 등 이번 정상회의의 결과물에 대해 정밀하게 분석하고, 사회 모든 부문이 참여하는 구체적인 중장기 실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 발전을 구현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 기업과 국민은 환경친화적 생산구조와 녹색소비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전세계는 숱한 쟁점이 얽혀 있다. 이 속에서 평화롭고 정의롭고 합리적인 미래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번 회의가 아프리카에서 열리면서 빈곤 타파가 핵심 쟁점이었지만, 회의장 주변은 아프리카라기보다는 유럽의 여느 도시 못지않게 화려했다.

    필자는 회의장 주위만 맴돌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요하네스버그 근교로 조금만 벗어나면 낮에도 접근하기 힘든 빈민가가 널려 있고, 경작할 농지도 없이 양철지붕으로 얼기설기 지은 집이 가득 차 있다 한다. 그런데 부자들은 몇 천 평짜리 집에서 전기방범 담장을 치고 살고 있다. 흑인 실업률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높은 범죄율은 필연적일 지도 모른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평등, 부정부패가 사회불안을 높이고 환경파괴를 앞당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와 개발도상국의 모습이다.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은 이들 문제의 책임을 선진국에 돌리고 있다. 반면 선진국 지도자들은 민주주의, 부패방지, 의사결정 투명성 등 ‘훌륭한 관리체제(Good Governance)’를 갖추지 못하는 한, 원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많이 원조한다 해도 민주적인 정부가 공평하고 투명하게 쓰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훌륭한 관리체제’는 환경회의마다 강조되는 개념으로 세네갈을 중심으로 구성된 아프리카 국가들의 새로운 연대(New Partnership for African Development: NEPAD)는 선진국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빈곤과 환경문제를 어떻게 함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개발도상국이 스스로 민주적인 정부와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만들 때 빈곤과 불평등, 환경문제는 해결의 길이 열릴 것이다. 선진국의 원조는 물론 개도국이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일도 중요하다. 세계화의 혜택을 크게 본 우리나라도 세계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잘 관리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을 점차 확대해야 할 위치에 있다.

    환경은 국제적 윤리

    세상이 바뀌어서 환경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처지를 내세워 목소리 높이기가 난처한 경우가 많다.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선발개도국으로 외환위기도 거뜬히 극복했고, 월드컵도 세계가 놀라게 치러 냈으니 위상으로는 떳떳하다. 그러나 환경에 있어서는 별로 그렇지 못하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10위권의 OECD 가입국이면서도, 환경협약에서는 개발도상국쪽에 서 있고 의무부담은 지지 못하겠다고 버티니 그 모양이 국제사회에서 좋게 보일 리 없다. 이번 회의에서 재생가능에너지와 환경기술, 환경산업의 강국인 독일 슈뢰더 총리가 재생가능에너지 행동계획(Initiative)을 발표하면서 개도국에 대한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이 부러워보였다.



    이제 환경은 국제적인 윤리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요소로 자리잡았다. 환경친화적인 기술과 산업을 가진 나라는 경제적 이익과 국제적인 리더십을 함께 누릴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나라는 국제적인 비난과 경제적인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토니 블레어 영국수상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해결책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의지이다.”

    우리는 세계가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번 요하네스버그 회의에 참가한 한국의 NGO와 대표단은 한결같이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말하고 느꼈다. 정보통신, 치안, 수송 등에서 한국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제 21세기 신조류에 맞추어 경제성장과 환경보전을 함께 고려하는 지속 가능 발전으로 나아간다면 거기에 바로 선진화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