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인이 청와대를 쳐다보고 전투를 하면 백전백패합니다
- 장관님께서는 햇볕론자와는 거리를 두시기 바랍니다
- 인사부장·진급처장·진급계장에 왜 육사 출신만 보임합니까
- 육군 통계연보에 진급 결과를 공표하십시오
- 사관학교 출신에게 호봉 혜택을 주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 신라의 설계두 교훈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존경하옵는 장관님. 서해교전으로 인하여 국민들의 국가안보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국방장관의 중책을 맡게 되신 것을 다시 한번 축하하오며, 입각하신 이후 강력한 안보태세 확립을 위하여 노심초사하고 계시는 장관님의 크신 노고에 깊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중략)
장관님께서는 재임 기간중 국가안보를 위한 크신 뜻 펼치시고 역사에 길이 남는 장관님으로 기록되시길 충심으로 기원하면서 몇 가지 제언을 드릴까 합니다.
먼저, 군사대비태세 관련사항입니다. 지난 6월 말에 발발한 서해교전 시 우리 해군 장병들은 함정이 침몰해 가는 극한상황 속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무쌍한 투혼을 발휘하였지만, 정부와 군 지휘부는 확전 회피에만 집착한 나머지 “적의 도발은 무조건 격퇴해야 한다”는 군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조차 망각하고, 계속적인 대북지원 및 경제협력만을 고집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준 바 있습니다.(중략)
서해교전과 관련하여 “북괴의 도발에는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 일각에서 “그렇다면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는 흑백논리식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은 평생을 군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혹시 군내에서도 이런 시각이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기도 합니다.
단호한 대응이 전쟁을 불러온다는 논리는 패배주의와 비겁함의 발로일 뿐만 아니라, 국민적 의지를 약화시켜 정말로 전쟁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중략)
앞으로는 전투시 청와대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적만 보고 전투할 수 있도록 현재의 모호한 교전규칙을 단순·명쾌하게 재정비하고 북괴의 도발에 대한 대비태세를 확고히 함과 동시에 침체된 장병들의 사기를 회복시키는 일에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국토를 침범당하고 우리 해군 장병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태를 보고도 국방을 걱정하지 않고 소위 햇볕론의 손상만 우려하는 햇볕론자들과는, 어려우시더라도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을 부탁드립니다.(중략)
육사생도의 행진모습. 차원양씨는 육사 출신이 진급시 혜택을 받는 것이 우리 군을 약화시킨다고 질타했다.
특히 군의 사기는 급여를 인상하고, 주거지원 및 자녀교육 등 복지를 향상시킨다거나, 레저·휴양·스포츠·오락 등 문화욕구 시설을 확충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기의 원천은 공평무사한 인사관리에 있고, 그 중에서도 공정하고 투명한 진급관리가 핵심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육군의 진급제는 각 계급별로 특정 출신에게 진급자리를 우선 배정하는 할당제입니다. 특정 출신에게는 절대 다수의 진급공석을 할당해놓고, 남는 공석을 3사·학군·학사·기행·특간 등 비육사 출신들에게 할당하는 진급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정 출신 우선 배정 할당제’는 진급심사에 들어가기 전 진급계장과 진급처장·인사참모부장·참모총장이 출신별 진급공석을 미리 확정해놓는 것을 말하는데, 진급을 관리하는 핵심 네 개 직위에 비육사 출신은 지난 20여 년 동안 단 한사람도 보직된 일이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진급심사는 확정된 출신별 공석범위 내에서 극히 제한된 부분만 심사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혹시 확정해놓은 진급공석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다시 각 계급별 진급심사위원의 3분의 2 이상을 특정 출신으로 배치해놓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진급심사를 하고 있으니, 그 결과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현 육군 수뇌부의 방침은, 공개하지는 않고 있지만, 특정 출신은 대위에서 소령 진급과 소령에서 중령 진급은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전원을 진급시키고, 중령에서 대령 진급은 진급공석의 60%를, 대령에서 준장 진급은 70%를, 소장·중장·대장으로의 진급은 정원의 75∼83%를 장악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상위계급으로 올라갈수록 특정 출신 비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저는 육군 진급심사위원을 네 번이나 경험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진급심사 과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심사 때마다 진급심사제도의 모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했습니다만, 다수의 힘에 밀려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습니다.(중략)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계급별로 출신별 진급공석 결정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육사 출신은 완전 배제된 상태에서 특정 출신의 선후배 몇 명만이 관여하여 출신별 진급공석을 결정하고, 진급심사위원회도 특정출신이 전체의 3분의 2 이상을 장악하여 진급심사를 진행한다면, 어느 누가 옳은 제도라고 수긍하겠습니까?
전역 후 저는 잘못된 군 인사는 현역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발견하였습니다. 국방부의 차관보급 몇 개 직위와 대통령과 장관님께서 임명하거나 승인하시는 국방부 15개 산하 기관장 중 하나(남성대 체력단련장 사장)를 제외한 모든 자리가 특정 출신의 예비역 장성으로 보직되어 있음을 알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 이러한 인사관행 아래서 ‘군심결집(軍心結集)’이란 말은 허황한 구호일 수밖에 없습니다.(중략)
이 서신을 국방부나 육본의 인사책임자들이 본다면 틀림없이 사실을 왜곡 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록을 중단해버렸지만, 1993∼1998년도까지의 ‘육군 통계연보’상의 진급 선발결과(각 계급별·출신별 진급대상 인원과 진급선발 인원, 경쟁비율 명시)를 보시면, 장관님께서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장관님께서 현명하게 판단하시어 이 문제만큼은 국방개혁 차원에서 직접 챙겨주시기를 기대하면서, 몇 가지 개선방안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첫째, 진급관리 핵심 네 개 직위 중 참모총장을 제외한 인사참모부장·진급처장·진급계장 등 세 개 직위는 각 출신별로 균형되게 보직해야 합니다. 기왕이면 인사부장 직위에 비육사 출신을 기용하는 것이 어떨까요? 이렇게 하면 “특정출신 우선 배정 할당제”라는 말은 점차 사라지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현재 3사 출신이 맡고 있는 진급과장직도 진급 행정업무만 담당시킬 것이 아니라 조직기능에 맞게 진급관리 계선상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둘째, 각종 교육선발과 보직관리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진급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진급선발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교육과 보직인데 여기서의 불평등은 너무 심한 실정입니다. 2000년까지 있었던 육대의 선발과정은 소령자 중에서도 엘리트만 선발됐는데, 45명(±) 중에서 40명(±)을 특정 출신에게 할당하고 나머지 5명(±)을 3사·학군·학사 등에게 1∼2명씩 할당했었습니다. 공정경쟁과는 참으로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보직관리에서도 적잖은 문제가 있습니다. 위에 거론한 진급관리 핵심직위를 비롯해 사단·군단·군사령부의 작전참모 등 주요 보직이 특정 출신 위주로 보임되고 있는 사실은, 장관님도 잘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관행을 일소해버리고 임관 이후 모든 장교는 동일한 기준에 의하여 관리되고 평가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사관학교 출신은 사관학교에서 4년간 내무반 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같은 연도에 임관한 타출신에 비하여 봉급호봉을 1∼3호봉 더 높게 책정받고 있는 불합리함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교 보수체계는 임관 시부터 동일하게 출발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가 출신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군 단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셋째, 계급별 진급 심사위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육본이 답변한대로 반드시 출신별로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심사위원 15명은 육사·3사·학군 등 각 출신별로 균형있게 구성하고, 갑·을·병 3개 위원회의 위원장도 출신별로 한 명씩 고루 배분해야 할 것입니다. 선발위원장은 특정 출신에 치우치지 않도록 출신별로 순환 임명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참모총장과 인사참모부장·진급처장·진급계장에 의하여 사전에 결정되는 출신별 진급공석도 진급심사위원회에서 결정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전시에는 전투수행 능력과 그 결과가 사람을 판별하는 지배적인 요소가 되므로, 우수자를 판별해 내는 것이 용이합니다. 그러나 평시에는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우수자에 대한 변별력이 떨어집니다. 평시의 우수자 선발기준은 인사권자의 의도에 따라 바뀔 수 있고 얼마든지 호도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평시의 진급은 지금처럼 개인의 능력과 전문성·도덕성·장차 활용성에 기준을 두고 선발하는 것으로 하되, 특정 출신이 계급별 정원의 3분의 2를 초과하지 못하도록(영관급 장교는 2분의 1 초과 금지)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다섯째, 당해 연도 진급선발 결과는 매년 육본에서 발간하는 ‘통계연보’에 꼭 수록해야 합니다. 진급선발 결과에 대한 비난이 높다고 하여 진급결과를 공표하지 않는 것은 국가기관으로서 비겁하고 떳떳하지 못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급제도가 공정·투명하게 운영되면 육사 출신 중에서도 실력과 능력·양심이 있는 장교들은 크게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육사 출신 장교들은 현재와 같이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한 진급제도로 인하여 자신들이 열등자와 같이 ‘집단 이기주의자’로 매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전임 김동신(金東信) 장관님과 현 김판규(金判圭) 참모총장께서도 저와 독대하는 자리에서 제 의견에 상당부분 동의해주셨으나, 실제로는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아마 인사분야를 관장하는 주요 참모들이 특정 출신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이들이 기득권 손상을 우려하여 올바른 보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항상 측근을 조심하라. 직언(直言)하는 측근을 가져라’고 언급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존경하옵는 장관님, 저는 장관님과 같은 훌륭하신 분을 만났기 때문에 성공적인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34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여러 장교들과 접촉해보고, 특히 최근 2년 동안 육본의 일반 참모부장으로 재직하며 전후방 각지의 많은 사람들과 대화해본 결과, 비육사 출신 장교들이 진급제도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이 위험수위에 육박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육사냐 비육사냐를 떠나서 평생 군 생활을 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진급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이들의 불만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라 설계두 사례의 교훈
신라의 설계두가 지적했듯이, 신라는 골품제 때문에 나라가 망했습니다. 반면 고려 태조 왕건은 3국통일을 이룬 즉시 신라와 후백제의 인재를 고루 등용해서 민족의 대화합을 이루었고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다졌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설계두는 신라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활동한 무인이다. 육두품 출신인 그는 진골 출신이 아니면 대신과 장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몰래 당나라로 건너갔다.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칠 때 종군을 자청해 안시성 부근 주필산 밑에서 고구려 군대와 격전을 벌이다 전사하였다. 당 태종은 그가 신라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옷을 벗어 시신을 덮어주고 대장군의 관직을 내렸다고 한다.-편집자). (중략)
현재 육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정 출신 위주의 교육선발과 보직관리·진급제도는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군의 단결과 화합을 해치며, 싸울 수 없는 군대로 만드는 최대의 원흉이 되고 있습니다. 인사제도, 특히 진급제도가 일체의 불평등 요소를 없애고 우수자를 발탁할 수 있도록 공정·투명하게 운영될 때, 군의 사기는 충천할 것이고 안보역량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중략)
장관님께서 과거와 같이 특정 출신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장관 역할만 하신다면 전임 장관들과 똑같이 실패한 장관님으로 남으실 겁니다. 특정 출신을 위한 장관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군 전체의 장관님이 되셔서 대한민국 국군사에 길이 빛나는 위대한 장관님으로 기록되시길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장관님을 정점으로 한 전 장병의 굳은 단결과 국방분야의 한 차원 높은 개혁을 기대하면서, 장관님을 존경하는 옛 부하가 충언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 가정에도 평안함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예) 육군소장 차원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