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이를 데려가세요”.
- 일부 학부모들이 급기야 ‘자녀 세일즈’에 나섰다. 미국 등 영어권 선진국에 자녀를 조기유학 보낼 수만 있다면 기꺼이 호적을 파내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에서만 3000여 건의 ‘유학형 위장입양’이 이뤄졌다고 한다. 제 자식을 돈 줘가며 해외 입양시키는 ‘멀쩡한’ 부모들의 속사정.
‘좀더 싸게 좀더 안전하게’ 미국 조기유학을 하는 방법으로 4~5년 전부터 위장입양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 미 현지 이민변호사들의 전언이다.
사무장 : “예, 말씀하십시오.”
기자 :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미국에 사는 친척집에 입양시켰으면 하거든요. 그런 업무도 해주시나요?”
사무장 : “자녀분 키우기가 힘든 형편인가요?”
기자 : “그런 건 아니고요, 미국에 유학을 좀 보내고 싶어서요.”
사무장 : “입양도 이민법의 한 분야로 다루기 때문에 업무를 보긴 합니다만, 이 케이스는 맡을 수 없습니다. 입양이란 형편이 어려운 아이에게 양육 환경을 제공하는 박애적 차원의 제도입니다. 그런데 사모님 댁에는 가정불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죠? 단지 유학이 목적이라면 입양법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 미국 당국에서는 유독 한인들 사이에서 자국 아이를 입양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점을 알고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괜히 단속에 걸리면 몇십 년 동안 미국에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정석대로 하라’는 겁니다.”
교포가 많이 사는 미국 대도시 한인 변호사 사무실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위장입양 업무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를 거절하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민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한 변호사 사무실의 한인 사무장은 단호하게 ‘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 사무장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고 한인 교포 사이에 이뤄지고 있는 위장입양 실태에 대해 물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위장입양을 문의하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많이 걸려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요즘은 하루 50여 통의 상담전화를 받는데, 그중 2∼3통이 입양 관련 문의라고 한다. 그는 “상대방이 ‘우리 조카를 입양하려는데…’라는 식으로 운을 떼면 ‘죄송합니다’라고 하며 전화를 끊는다”고 했다.
“LA 지역 한인 변호사들의 경우 문의가 워낙 많아 어쩔 수 없이 일을 맡게 된다고 합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낙태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시술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입양은 인도적인 제도라서 미국 법원에서 그다지 팍팍하게 굴지 않습니다. 그 점을 이용하는 거죠.”
최근 들어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 위장입양이 조기유학의 한 방편으로 성행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조기유학이 붐을 일으키면서 규제를 피해 미국 시민권자에게 자녀를 입양시키는 편법이 생겨난 것. 미국 LA의 장모 변호사는 “4∼5년 전부터 한인 교포 사회에서 위장입양이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자녀의 조기유학을 위해 국내 입양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부모들도 있다. 홀트아동복지회나 동방사회복지회 등 고아 입양을 알선하는 단체에 전화를 해 “내 아이를 미국으로 입양시켜달라”고 한다는 것. 동방사회복지회의 한 상담사는 “2∼3년 전부터 위장입양을 문의하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황당하죠. 올 들어선 문의전화가 더 늘었어요. 대부분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인데, ‘부모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왜 입양을 시킨다는 거냐’고 물으면 ‘조기유학을 보내고 싶은데 비자를 받기가 까다로워서’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호적에 올라 있는 아이는 해외 입양이 불가능합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학부모 최모씨는 최근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한 학부모가 위장입양에 성공하자 주변에서 위장입양 붐이 일었다고 전했다.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을 맡았던 엄마였어요. 지난 여름방학 때 아이를 자퇴시키고 미국에 갔다가 석 달 만에 돌아왔어요. 친척집에 아이를 입양시켰다면서 공짜로 공립학교에 다니게 됐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이 엄마에게 노하우를 얻어 자녀를 입양시키려는 부모도 몇 있습니다.”
앞에서 사무장이 언급했듯, 입양이란 친부모가 없거나 혹은 친부모가 양육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어린이가 안락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인도적인 제도다. 미국은 고아가 아니어도 친부모가 키우기 어려운 형편이라면 만 16세 미만의 어린이에 한해 입양을 허가하고 있다. 그런데 고국에 멀쩡한 친부모를 둔 아이가 단지 유학을 위해 미국 가정에 입양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오경환(가명)씨는 위장입양을 “충분히 가능한 일이자,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유학 방법”이라고 장담한다. 그는 지난 1999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딸을 미국 남부지역에 사는 처제에게 입양시켰다.
“먼저 딸과 아내가 관광비자로 미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인 변호사를 선임해 절차를 밟게 했지요. 친부모는 입양 사유를 밝혀야 하는데, 변호사가 써준 영문 서류에 사인만 하면 됐습니다. 법무사 사무실에 가서 25만원인가를 주고 공증을 받아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뭐, 자세히는 모르지만 ‘친부모는 경제적 능력도 없고 아이를 키울 만한 정신상태도 아니다’고 쓰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씨는 “딸의 한국 호적 또한 살아 있다”고 털어놨다. 미 당국에서 입양아의 본래 호적이 깨끗하게 정리됐음을 입증하라고 요구하지 않기에 굳이 호적을 정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 오씨는 “딸이 성년이 되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선거권이 나올 것”이라며 “주민등록증을 만들라는 통지가 나올 때 딸이 한국에 없는 것이 유일한 걱정거리”라고 했다. 오씨는 처제에게 매달 100만원의 양육비를 보낸다. 그는 “월 100만원이면 거의 공짜로 미국에서 공부시키는 셈”이라며 흡족해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신중식 변호사는 위장입양 업무를 가장 활발하게 맡아주는 이민 전문 변호사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에만 미국 전역에서 3000여 건의 위장입양이 이뤄졌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지난 한 해 동안 100건 정도 상담했고, 40여 명을 위장입양시켰다”고 밝혔다.
신변호사에 따르면 위장입양을 시키는 부모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이라고 한다. 그는 “전문직 종사자나 대기업 임직원, 자영업자가 70%를 넘는다”며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만 부모가 미국에 와서 자녀를 뒷바라지할 여건이 안 될 경우 입양을 고려한다”고 했다.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8개월, 그리고 변호사 비용 2000∼3000달러만 투자하면 간단하게 자녀를 ‘미국 시민’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입양시키는 이유가 단지 교육뿐이라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에 신변호사는 “입양 사유가 문제된 적은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즉 주(州) 정부는 양부모가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능력을 갖췄는지만을 중점적으로 심사한다는 것이다.
“법원 판결을 받기 전에 주정부에서 양부모의 집으로 직접 심사를 나옵니다. 실제 함께 살고 있는지, 아이의 방이 있는지, 가정의 분위기는 화목한지 살펴보지요. 또 양부모가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는지, 아동학대 및 성추행 전과가 있는지도 확인합니다.”
신변호사는 자녀의 위장입양을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실한 한국 공교육에 분통을 터뜨리면서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원주민 수준의 영어 구사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전한다. 입양의 목적이 과거처럼 ‘가난한 살림에 숟가락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진 교육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
‘저렴하고 안정적인 유학생활’
이처럼 위장입양이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인 유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권자의 입양아가 되면 무료로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학에 진학할 때는 장학금과 수업료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비자 만료 등 신분 문제에 대한 걱정을 말끔히 털어버릴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영주권과 시민권을 자동으로 획득할 수 있다.
현재 학생비자를 발급받아 ‘정상적’으로 조기유학을 하려면 매년 3500만∼45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립학교 수업료, 기숙사비, 자녀 용돈은 기본이고, 부모 대신 아이의 대소사며 교사와의 상담, 학교행사 참가, 병원 동행, 비자 연기 신청 등을 현지에서 챙겨줄 보호자(guardian) 비용도 대야 한다. 더구나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자녀와 함께 미국에서 머문다면 비용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담 때문에 학부모들은 학비가 전혀 들지 않는 공립학교를 선호하지만, 미 공립학교는 외국인 입학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아예 미국 시민권자에게 자녀를 입양시키는 방법이 고안된 것이다.
서울 서초구의 학부모 김모씨는 지난 여름방학을 이용해 중학생인 딸을 미국 시카고에 사는 남동생에게 입양시켰다. 김씨는 공립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매달 급식비 70∼80달러와 약간의 용돈을 부치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서너 개의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훨씬 저렴할 뿐 아니라, 훨씬 질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창한 영어실력까지 자연스레 갖추게 될 테니 부모는 아이의 성(姓)이 바뀌는 것만 감수하면 된다는 것. 김씨는 딸에게 “미국에 불법 체류하다 잡히면 그대로 끌려나온다. 입양말고는 미국에서 학교 다닐 방법이 없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불법 체류하고 있는 조기유학생에게 위장입양은 불안한 신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매력적인 편법이다. 현재 미국에는 공립학교에 다니는 조기유학생이 부지기수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불법체류자라고 한다. 관광비자로 입국해 미국 거주자를 보호자로 등록해놓으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공립학교에 입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외국인 학생이 불법 체류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뉴욕 소재 공립고등학교 교사인 김경남씨는 “조기유학생들이 미국에 머물기 위해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한다. 입양 정도는 별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미국에 불법 체류하고 있는 조기유학생이 많은 현실에서 입양은 시민권까지 보장해주는 위험한 유혹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유학을 목적으로 한 입양은 입양법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다. 또 양부모가 입양아를 양육할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지게 되는데, 위장입양의 경우 친부모가 양육비용을 거의 전적으로 부담하므로 양부모가 입양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또한 한국에 입양 사실을 통보해야 함에도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하지 않는 점이 위장입양의 적발 근거가 될 수 있다. 미 LA 주재 한국영사관의 손홍기 영사는 “미국에 입양되면 영사관을 통해 그 사실을 통보해야 하는데도 그런 신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며 “이는 양부모가 실제로 아이를 입양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변호사와 양부모, 입양아는 입양의 본래 목적을 숨긴 채 입양 절차를 밟는다. 그래서 주정부와 법원, 그리고 이민국에 몇 가지 거짓말을 늘어놓아야 한다. LA의 한 변호사는 친부모, 양부모, 입양아가 각각 거짓말을 ‘역할분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정부에 입양 신청서를 내면 공무원이 양부모의 집을 방문해 입양아와 양부모를 인터뷰합니다. 최소 세 차례 정도는 만나야 해요. 이 과정에서 양부모는 아이를 입양하고 싶고 부양능력이 충분하다는 의사를 밝혀야 합니다. 아이는 입양에 동의하며 양부모 집에서 사니까 ‘해피(happy)하다’고 말해야 해요. 절대 공부하러 왔다고 하면 안 됩니다. 변호사가 이 점을 사전에 단단히 교육시키죠.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친부모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양육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물론 미 당국은 친부모가 아이 양육비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죠.”
한편 LA의 또 다른 변호사는 어른들과 모의해 거짓말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고 털어놨다.
“정부나 법원이 아이에게 ‘이제 이 어른들이 네 부모가 된다. 양부모와 살기를 원하니?’라고 물을 때마다 아이는 ‘예스, 예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상황에 큰 충격을 받는 것 같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기 안쓰럽지요.”
위장입양은 위법의 부담만 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위장입양의 부작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는 게 한인교포 사회의 중론. 대개의 경우 한국 친지들이 아이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미국에 보내므로 교포들은 ‘마지못해서’ ‘거절하면 서운해할까봐’ 아이를 맡게 된다. 그러나 교포들은 대개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갑작스레 낯선 환경에 놓인 아이에게 세심하게 신경써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LA한인회 하기환 회장은 친척집에 맡겨진 조기유학생들의 실태를 이렇게 전한다.
친부모-양부모 갈등 잦아
“아이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 학교나 경찰로 출두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일하느라 바쁜 교포들에겐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 한국의 친부모와 교포 간에 양육 책임 공방이 벌어지면서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도 많지요. 그래서 대개는 친척집에 한동안 얹혀 살다가 고등학생쯤 되면 집을 나가 자취를 합니다. 친척이 가까이 사는 데도 부모 역할을 해주는 보호자를 돈을 주고 고용하기도 합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영주권을 받기 전까지는 ‘공항 이민국에서는 불법 체류자, 주정부에서는 시민권자의 입양아’라는 이중적 신분이기 때문이다. 영주권을 받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때껏 불법 체류한 사실이 발각되어 재입국이 불허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신중식 변호사의 홈페이지에 ‘저는 입양아입니다’란 제목의 글을 남긴 ‘Jeanie’라는 학생은 “관광비자로 미국에 들어온 지 5개월 만에 법적으로 입양됐지만, 아직 2년이 채 되지 않아 시민권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한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며 상담을 의뢰했다. 이에 대해 신변호사는 “불법 체류 사실이 적발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9·11테러 이후 강화된 입국 심사도 영향을 끼쳤다.
LA 이민 전문 변호사 사무실의 한 사무장은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면 입양은 절대로 고려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돈을 들여서라도 자녀를 정식으로 유학 보내거나 보호자가 함께 와 아이를 보살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시민권을 획득하면 한국의 본래 호적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뿐더러 법적으로 완전히 남인 친부모를 미국에 초청할 수도 없다.
최근에는 조카를 입양한 한 시민권자가 입양 자녀에게도 유산을 물려줄 법적 의무가 있음을 알고는 이 의무를 회피하게 해달라며 변호사를 선임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교포들은 입양한 친척 아이를 평생 자기 자녀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며 “굳이 입양시키려면 자녀와 법적으로 완전히 남이 된다는 점, 양부모와의 사이에 불화가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성행하고 있다는 ‘대가성 위장입양’, 즉 돈을 받고 입양하는 행위는 특히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입양거래’ 과정에서 사기 등 갖가지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 홈스테이 가정으로 입양돼온 대학생 A씨가 그러한 경우다. 한인교포였던 양부모는 그를 입양한 뒤 2년이 지나도 영주권 신청 절차를 밟아주지 않았다. 영주권을 포기하면 미국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기에 A씨의 친부모는 양부모가 달라는 대로 돈을 주었다. 2년 전에야 겨우 시민권을 획득한 A씨는 거의 8년 만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그간 이민국에서는 불법 체류자로 분류됐기 때문에 그는 친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도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대가성 입양’도 성행
서울 노량진경찰서 정보1계 김시화 경위는 지난해 서울청 외사계에 근무하면서 위장입양 브로커를 내사한 적이 있다. 한 재미교포가 방학을 이용해 서초·강남·송파구 일대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내고 입양시킬 아이를 모집했다. 이 브로커를 통해 자녀를 입양시킨 학부모와 접촉한 김경위는 ‘이 브로커가 보스턴에 6명의 입양아를 데리고 있고, 입양 대기자도 4∼5명에 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경위는 “브로커는 친부모로부터 매년 교육비와 생활비, 그리고 입양대가를 받아 챙기면서도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영주권도 신청해주지 않는 등 아이를 사실상 방치했다”고 전한다.
위장입양 실태에 대한 공식 통계는 아직 없다. 유학 목적으로 입양시킨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길 뿐 아니라 입양 허가를 받아도 그 사실을 한국에 통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 법무부는 위장입양에 관해서는 ‘금시초문’인 실정이다. 더욱이 위장입양은 미국 현지에서 이뤄지기에 주한 미 대사관도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버나드 알터 총영사는 “종종 미국에 있는 친척에게 자녀를 입양시키기 위해 친부모들이 양육권 포기각서를 공증해달라며 찾아온다”면서 “이럴 경우 유학을 목적으로 한 변칙 입양으로 간주해 공증을 거부하는 동시에 미 당국에 이같은 사실을 통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입양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 현지의 전언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러시아 등에서 입양을 통해 가족 전체가 이민 오려는 입양 사기가 크게 늘자 입양 심사가 까다로워졌다.
LA에 거주하는 조모씨는 “단속 대상에 한국도 끼여 올해 초부터는 위장입양이 어려워졌다”며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LA 지역에서 단속이 심하다”고 했다. LA의 김모 변호사는 “미 대사관이나 이민국 입장에서는 유학을 목적으로 입양하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며 “위장입양 사례가 늘수록 단속도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빗나간 ‘孟母三遷之敎’
최남희(가명·여)씨는 외동아들을 친구에게 입양시키려다 포기했다. 3년 전 최씨 가족은 수입이 꽤 짭짤했던 의료사업을 정리하고 온가족이 뉴욕으로 이민을 했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은 기대와 현실이 꽤 달랐다. 청소부나 슈퍼마켓 점원말고는 딱히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반면 생활비는 한국에서보다 몇 곱절 더 들었다. 결국 최씨 부부는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교육환경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아까웠다. 마침 미국 시민권자인 절친한 친구가 아이를 입양해주겠다고 나섰다.
“막상 친구네 집에 머물면서 보니 입양시킬 생각이 사라지더군요. 세탁소를 운영하느라 정신 없는 양부모가 남의 자식에게 잘해주면 얼마나 잘해줄까 싶었습니다. 친구도 ‘얘가 하기 나름이지, 뒷바라지는 못 해준다’고 못을 박더군요. 한인교회에 나갔더니 입양된 아이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포들이 ‘공부 때문에 편법을 써서 입양시켰다’ ‘친부모가 가난한 형편에 욕심을 부렸다’며 쑥덕거리더라고요.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상처받지나 않을까 안쓰러웠습니다. 당당하게 많은 돈을 들여 엄마와 함께 사립학교로 유학 온 아이들과 비교되기도 하고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김세훈(가명)에서 박세훈으로 성이 바뀌는 것도 꺼림칙했습니다.”
‘학원에 가서 배우라’는 허술한 공교육, 가계를 위협하는 사교육비, 영어교육에 대한 압박, 날로 치열해지는 입시경쟁은 아이들을 ‘좀더 나은 교육기회’를 찾아 비행기에 오르게 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조기유학생 수는 1999년 1839명에서 2001년 7944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조기유학생 수는 아직 공식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2001년의 두 배가 넘는 규모일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교육부의 레이더망을 벗어난 조기유학생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영어권 선진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몽골 등 조기유학 목적지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열망을 한반도 안에서 해소할 수 없는 이상, 위법과 편법을 넘나드는 ‘자녀 세일즈’는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