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호

투자 활성화 위한 비상대책기구 만들라

한국경제 회생을 위한 제언

  • 글: 홍기택 중앙대 교수·경제학

    입력2003-11-26 17:3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기업의 투자 부진은 전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다.
    • 그런데도 정부는 출자총액제한 같은 전근대적 제도로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처럼 기업들이
    •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면 경제성장률이건 국민소득 2만달러건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3%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연초 정부목표인 5% 성장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치다. 한편 9월말 현재 실업자 수는 73만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12만5000명이나 증가하였다. 대졸 이상 실업자도 23만명에 이른다. 대학 졸업생의 40%만이 취업에 성공하는 현실에서 아예 졸업을 연기하는 대학생도 늘고 있다. 대기업 및 은행 등 금융권에서는 IMF환란 이후 최악의 대량 감원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이미 KT는 5000여 명을 명예퇴직시킨 바 있다.

    부동산 가격은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를 중심으로 폭등하여 민심이 흉흉해지는 등 사회불안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1년 이후 전국 주택가격 평균상승률은 30%를 넘는다. 서울 강남에서는 6억원 이하의 30평대 아파트를 구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일반 소비자 물가도 정부 억제선인 3%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주부들의 장바구니 물가는 일부 농작물을 중심으로 천정부지로 뛰었다. 이상기후로 인해 쌀 생산량도 198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4%로 떨어져 세후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상태다. IMF환란 이후 퇴직한 금리 생활자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측근 비리까지 터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급기야 재신임까지 자청하고 나섰다.

    집값은 뛰고 소비는 줄어들고

    물론 이 모든 것이 현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다. 많은 부분은 국민의 정부나 그 이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서 미숙한 정책운용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부분도 상당하다.

    먼저 물려받은 부분부터 살펴보자. 1997년도 외환위기의 주범은 기업의 부실이었다. 당시 외국금융기관들은 일제히 국내금융기관으로부터 대여금을 회수하려 했다. 국내기업의 부실이 심화되자, 이들 기업에 자금을 대출해준 금융기관의 동반부실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고 경제운영도 IMF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조속한 자금회수를 위해 IMF는 새로 들어선 김대중 정부에 대해 거시적으로는 초긴축정책과, 미시적으로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강요하였다. 이 결과 경제성장률은 급격히 둔화되었다. 그러나 경상수지가 큰 폭의 흑자로 반전됨에 따라 대외부채와 외환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 후 국민의 정부는 경기부양책을 가계부문에서 찾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개인의 신용카드 사용한도 제한을 완화하여 가계소비를 증대시키는 방안을 도입했던 것. 기업에 대한 부실 대출로 홍역을 치렀던 은행들도 대출대상을 가계로 돌렸다. 이에 따른 소비수요의 증가로 우리 경제는 다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올해 들어서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정부는 신용카드회사의 자산건전성 감독을 강화했고 신용카드사들은 대출을 급격히 회수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전체적인 소비는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결국 현재의 소비감소는 국민의 정부 당시 과도한 내수부양에서 이미 예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수의 또 다른 축인 투자가 부진한 데 대해서는 노무현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들어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년과 대비해 절대액이 감소하고 있다. 기업가는 불확실한 미래의 수익을 위해 위험 부담을 안고 투자를 한다. 그러니 불확실성이 증대되면 투자가 감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불과 8개월 사이에 국내경제 환경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혼란스럽다.

    첫째는 노동문제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사회 일각에서는 노동자 편향적인 정책에 대한 걱정도 많았지만, 역설적으로 노동계의 협력을 이끌어내 이를 기반으로 원만한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화물연대파업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정부의 원칙없는 대응으로 인해 노사분규는 더욱 악화되었다. 심지어 노동부 장관은 노동자들이 법을 무시할 수도 있다고 시사하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후 철도파업에는 보다 단호하게 대응하였으나 이미 혼란에 빠진 노사관계는 쉽게 회복되기가 힘든 상황이다.

    여기에 주5일 근무제에 대한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모든 당사자의 합의를 도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노사정 탈퇴로 시간만 낭비하고 결국은 기존 정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한편 법안 통과 지연으로 인해 개별기업 차원에서 주5일 근무제가 협상쟁점이 되는 바람에 노사문제는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가 좋은 사례이다. 결국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한 국제적 기준에 맞는 노동법 개정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이런 불투명한 노사관계가 국내기업의 해외이전을 가속화시키고 외국기업의 국내진출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 불신 가중시킨 부동산정책

    둘째, 일관성 없는 국책사업 추진이다. 환경단체의 반대 속에 공사가 지연되고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수도권 외곽순환도로도 사패산 터널을 둘러싼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이와는 반대로 위도 핵폐기장은 사전에 부안지역 주민의 여론수렴 없이 강행하는 바람에 화를 키웠다. 이 과정에서 부안군수가 집단 린치를 당하는 등 공권력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셋째, 현 정부는 인수위를 출범시키면서 지방분권, 동북아 경제중심, 신행정수도 건설, 소득분배 개선 등 중장기 과제 14개를 선정했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진행된 과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개념정리조차 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과제를 야심적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을 모두 추진하기 위해서는 행정수도 이전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총 170조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한해 예산의 1.5배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행정수도 이전은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는 사안이다.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건설투자를 비롯하여 우리 경제의 자원배분 방향이 상당부분 달라진다. 다시 말해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인해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은 가중되고 있다.

    넷째, 부동산정책 역시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켰다. 강남 재개발아파트를 중심으로 강남권 주택가격은 불과 몇 달 사이에 두 배 이상 상승하였다. 그러나 강남 이외의 수도권 지역 주택 상승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강남 이외의 수도권 주택소유자, 특히 중산층 이상의 불만이 고조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든 주택 가격이 폭등하였던 1980년대 말과는 달리 현재 강남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 상승은 서민의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정책당국자들은 예전처럼 투기지역 선정과 양도세 중과라는 전통적 정책을 답습하였다. 지금처럼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세금은 어떤 형태로든 구매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경제원론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올해 시행된 양도세 강화조치로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오히려 상승한 것은 세금의 전가에 따른 것이다.

    FTA 비준 서둘러야

    다섯째, 대외개방 문제이다. 대외무역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70%에 이르는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해외시장 확대가 필요하다. 대외개방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다자간 협정과 동시에, 많은 국가가 자유무역협정(FTA)에 의한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 상정되어 있다.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을 반대 없이 통과시킨 칠레 하원과 달리 우리 국회에서는 동의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 한·칠레 FTA는 그 실질적 내용 못지않게 상징성이 매우 크다. 우리가 최초로 맺게 되는 FTA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이미 작년에 FTA를 체결했으며 지난 8월에는 부시 대통령이 미국과 칠레, 미국과 싱가포르간 FTA에 서명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2005년까지는 전세계적으로 300여 개의 FTA가 발효될 전망이다.

    전세계적으로 FTA 체결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만 고립된다면 우리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실제로 FTA 체결 지연으로 이미 대(對)칠레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과 칠레간 FTA가 발효되면서, 칠레가 수입선을 EU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재벌개혁을 둘러싼 논쟁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각종 불공정거래와 재벌총수의 전근대적인 독단경영을 막기 위하여, 공정거래법과 금융관련 법안의 개정을 제시한 바 있다. 재벌의 금융지배를 막기 위한 금융회사 계열분리청구제, 계열금융사의 의결권 행사 제한, 증권관련 집단소송제의 조기도입 등이다. 또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상호출자금지, 채무보증금지제도는 유지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좌추적권은 연장하기로 하였다.

    현재 정부는 소송요건을 강화한 집단소송제도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고 있다. 이 법안은 자산규모 1조원 미만의 기업은 소송대상에서 제외하고 집단소송 안건도 허위공시 등으로 범위를 제한했다.

    투자 활성화 위한  비상대책기구 만들라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9개월간 국내 경제환경은 혼란을 거듭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장에 의한 감시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보고, 소송대상 기업 요건을 완화하고 소송대상 안건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계는 아직 기업회계제도가 완전하지 못한 상황 아래서는 허위공시 여부의 판단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또한 일단 집단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소송결과와 상관없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어 기업경영의 위축이 염려된다고 주장한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의 그룹을 대상으로 계열사간 주식취득을 순자산의 2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상호출자를 통한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핵심 관련 산업에 대한 출자는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재벌관련 입법들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개혁론자들은 매우 실망하고 있다.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재벌개혁 방안들이 관료출신 장관들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낸다. 반면 재계는 이런 목소리들로 인해 언제 다시 재벌개혁안이 수면 위로 부상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최선의 분배정책은 고용증대정책

    경제정책의 난맥상으로 인한 혼란과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치가 확립되어야 한다. 현행 노동법은 노사 양측에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국제기준에 맞는 새로운 노동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노사문제에 대해서 현행법을 엄격하게 집행해야 한다.

    국책사업과 관련된 집단이기주의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공권력이 무력화되는 현상은 선진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사회질서를 회복한 이후 대화로 타협점을 모색하되, 이것이 불가능한 경우는 정부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신속히 집행하여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과제는 한정된 예산 내에서 실현가능한 과제 몇 개만 선정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여야 한다.

    부동산 거래시 실거래 가격에 따른 양도세 부과는 당연한 조치이다. 조세정의 차원에서 이 조치는 전국의 모든 부동산에 대해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재산세 과표도 시가에 맞게 현실화해 적정의 재산세율을 부과해야 한다. 이는 조세형평의 차원에서도 당연한 일이다. 고가의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은 그에 비례하는 고급 주택서비스를 받으므로 그에 해당되는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조세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양질의 주택 공급을 늘리고 강남 이외 지역의 교육 및 편의시설, 도로 등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것밖에 없다. 특히 내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사업에 대한 신속한 대규모 재정지출은 경기부양효과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 나라는 경기침체로 인해 극심한 실업사태에 빠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8개월 만에 전체 실업자는 10만명 가까이 늘어났다. 30대 실업자 수도 1년 전에 비해 3만명 이상 급증하였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도 명예퇴직 대열에 합류한 결과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경제목표는 일자리 창출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적한 바와 같이 최선의 분배정책은 고용증대정책이다. 실업이 장기화하면 실업자는 경제적 박탈감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잃게 된다.

    고용창출 쉬운 서비스산업에 관심을

    지난 20년간 정보통신산업은 급속히 발전하였고 이는 다른 산업에도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기업의 사무자동화 등 정보통신 분야 투자로 인하여 해당 기업의 생산성은 크게 증대되었다. 즉 예전보다 적은 인력으로 훨씬 더 많은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 뱅킹이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고용인원을 축소하고 신규채용은 억제하고 있다. 생산성 증대가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경우, 올 들어 2분기까지 연평균 3%대의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였지만 고용은 크게 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을 ‘일자리 없는 경기회복’이라고 한다.

    투자 활성화 위한  비상대책기구 만들라

    국제기준에 맞는 새로운 노동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노사문제에 관한 엄격한 법집행이 요구된다.

    현재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3%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수출이 두 자릿수로 증가한 덕분이다. 그런데 우리 수출품의 대종은 통신기기 등 전자통신산업 제품이다. 이들 산업은 급격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증대로 인해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

    따라서 고용증대를 위해서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야만 한다. 이런 산업은 주로 서비스산업이다. 최근 들어 산업의 구분도 모호해지고 있다. 게임산업과 같은 오락산업은 컴퓨터기술과 창의성이 합쳐진 지식산업이다. 전자업체인 일본 소니사는 미국의 영화사를 인수하고 게임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같이 핵심 산업을 지정하여 예외로 인정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전근대적인 제도이다. 모든 규제는 정부에 의한 직접적인 규제에서 시장에 의한 자율적 규제시스템으로 나가야 한다.

    현재 우리 금융시장에는 많은 불안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다. 개인부채 연체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고 신용불량자는 양산되고 있다. 10월말 현재 신용불량자는 350만명을 넘어섰다. 경제활동인구 6명당 1명 꼴이다. 이에 따라 대형 신용카드회사들은 적자규모가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SK글로벌 사태로 야기된 카드채 문제도 진정된 듯보이나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를 일이다.

    여기에 대한투신증권, 한국투신증권, 현대투신증권 등 전환 투신증권사의 경영개선약정도 12월이면 끝난다. 그동안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이들 투신증권은 모두 6조원 가까운 부실을 안고 있다. 따라서 금융시장에 조금만 충격이 가해져도 대량 환매사태로 이어져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실업자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 아래서는 개인부채의 연체는 늘어만 가고 개인금융을 담당하는 소비금융회사들의 수지는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금융기관은 재무건전성 개선기준을 맞추기 위해 개인대출을 회수하여야 하고 연체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이 와중에 소비는 더욱 줄어들고 경기는 더욱 악화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면 금융시장은 붕괴되고 IMF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경기가 살아나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그나마 수출증가에 힘입어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지만 내수경기의 활성화 없는 경기회복에는 한계가 있다.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내수부문, 특히 고용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이 살아나야 한다. 이를 위해 적자재정을 무릅쓰고서라도 대규모 소득세 감면정책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대폭적 소득세 감면에 힘입어 국내소비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3분기에 7.2%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주 5일 근무제 도입과 더불어 국민의 레저 서비스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졌다. 이에 발맞춰 관광산업뿐만 아니라 사회체육시설에 대한 투자도 확대되어야 한다. 건전한 소비는 장려할 필요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골프산업이다. 골프는 부자들만의 게임이라는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골프를 치기 위해 일년에 수만 명씩 해외로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골프산업은 수입대체산업이다. 골프장에 대한 중과세는 철폐해야 한다. 또한 골프장 건설에 대한 제한도 완화해야 한다.

    부자들 소비부터 늘게 해야

    돈 있는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야 돈이 돌기 시작한다. 현재 상황에서는 소비가 최대의 미덕이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100억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내수증대가 국제수지에 주는 부정적 효과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오히려 경상수지 흑자 폭을 감소시켜, 원화환율 절상압력을 완화시키는 순기능도 있다.

    국내투자 감소는 매우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투자증대 없이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저투자 기조 아래 2만달러 국민소득시대 조기달성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투자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민관합동 비상대책기구의 설립을 고려해야 한다. 이 기구에서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과 투자 촉진방안을 파악하고 가능한 방안은 무엇보다도 먼저 실행해나가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과 집행력이 요구된다. 과거에는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부처간 마찰이 있을 경우 청와대 경제수석을 통해 대통령이 조정해왔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청와대는 정책실을 중심으로 중장기 과제 개발에 중점을 두는 체제로 바뀌었다. 현안 정책들은 해당부처에서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하였다. 부처간 조정이 필요할 때는 국무총리실이 개입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책임제 아래서 국무총리실의 조정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경제문제는 여러 부처의 업무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책임지고 현안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이 저하되었다. 각 부처 장관들의 경제철학이 서로 다를 경우 자발적 조정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국정의 난맥상도 대부분 이러한 조정능력의 결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경제부총리에게 전권 위임해야

    현재와 같은 시스템 아래서 일관된 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경제부총리에게 경제정책에 관한 전권을 위임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노대통령은 미국식 대통령제를 선호한다고 하였다. 미국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법안 통과를 위해 입법부에 대해 로비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법안통과에 반대하는 의원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초대하거나 전화로 설득작업을 벌인다. 의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대통령도 당연히 따라야 할 관행이다. 이라크에 대한 추가파병이 확정될 경우 국회비준 동의안이나,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정치개혁 없이 선진경제 진입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순간에 도약이 가능한 정치와 달리 경제는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한번 위기상황에 빠지면 정상을 회복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사실을 우리는 IMF 경제위기 때 몸으로 겪은 바 있다. 정치개혁은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이뤄져야 한다. 현재와 같이 대선자금 문제를 놓고 모든 정당이 죽기살기로 이전투구하는 상황은 최악의 경제환경이다. 기업들이 직접적인 수사의 대상이 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상황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경제에는 증폭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기업경영전략은 당장 필요한 투자 이외에는 투자를 확대하지 않는 것이다. 위험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위험부담이 과다하면 투자는 있을 수 없고, 투자가 없는데 성장이 있을 수 없으며, 성장 없이는 일자리 창출도 없다. 실업의 증가는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정치개혁을 그만큼 지연시키는 요소가 된다.

    사회주의의 몰락은 정치 사회개혁이 부족한 데서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개혁 구호가 나온 데서 비롯되었다. 삶의 기본틀을 제공해줄 수 있는 일자리 창출에 실패한 결과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