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호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입력2003-11-28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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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룻밤 눈보라가 밀어닥쳐 온 세상이 바뀌는 한겨울. 그 소리만 들어도 어깨가 절로 움츠러든다. 이십년 넘게 아파트에 살다 산골로 처음 왔을 때, 그때는 오죽했을까! 일년에 반은 덜덜 떨면서 살았다. 이곳은 시월 말부터 추워지기 시작해 오월이 되어야 찬 기운이 사라지니까.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필자가 논에 볏짚을 깔고 있다. 논에서 나온 건 되도록 논에 돌려준다.

    처음에는 옷을 껴입을 줄밖에 몰랐다. 다행히 시골장에는 아직도 보온 내복, 솜 누빈 버선을 판다. 내복 입고, 면으로 된 티셔츠 입고, 털조끼 입고, 그 위에 헐렁한 스웨터를 입었다. 방안에 있어도 외풍이 있고.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밖으로 들락날락. 그러니 집안에서도 중무장을 하고 지냈다.

    추위 이겨내기

    그렇게 떨면서도 어느새 손발이 따뜻해졌다. 서울서는 늘 차가웠던 손인데. 그 손이 어느 순간 따뜻해진 거다. 손 움직여 일을 하니 손이 따뜻해지는구나. 그렇다면 춥다고 움츠리지 말고 몸 움직여 일을 해야지. 한겨울 내가 할 수 있는 일거리가 뭘까? 그때 떠오른 게 군불. 군불을 때보자. 잘 지필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보자.

    눈보라가 몰아치면, 하루종일 집 안에 머물게 된다. 뒷간 가기도 꾀가 나지. 그러다 보면 몸이 찌뿌드드하다. 가만히 있으니 더 춥고. 이런 날일수록 불을 더 따뜻이 때야 한다. 우리 집 안방은 구들방이다. 해 지기에 앞서 불을 때야 하루를 넘길 수 있다. 마음을 몇 번이고 다잡고 ‘끙’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다른 날보다 일찍.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면, 불 앞에서 마술처럼 굳었던 몸이 풀린다. 밑불이 잘 타면 장작을 가지러 일어난다. 그러면 몸이 절로 움직인다. 장작을 쌓기도 하고. 좀 떨어진 곳에 가서 잔가지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다 집 뒷산에 올라 검불을 끌어오기도 하고. 가까운 밭에 가서 고추 말목이라도 뽑는다. 불은 아궁이에서 타고 있지만, 밭에서 일하는 내게까지 온기를 가져다주나 보다.



    불 때본 적이 없으니 어설프다. 그런 실력으로 궂은 날 불 때려면 애를 먹는다. 하지만 자꾸 하다 보니 일머리가 생기지. 아궁이 옆에 며칠 불쏘시개 거리 챙겨놓고. 비 안 들이치는 곳에 잔가지 단도 쌓아놓고, 마른 장작도 따로 모셔놓았다. 그러니 언제라도 아궁이에 앉으면 불 때기 좋다. 그날 쓴 만큼 다음날 쓸 걸 챙겨놓고.

    밖에서 팔 다리 훨훨 내두르며 한바탕 일을 하고 들어오면 그날 저녁은 따스하다. 내 몸 속에 불을 지핀 셈이니까. 몸 움직여 일하는 맛. 그 맛을 알게 되었다.

    방안에 가만 앉았을 때는 할일이 없는 것 같다. 마음은 자꾸 딴 데로 간다. 어디 놀러갈까? 장날이니 장에 가볼까? 그러다 나가보면 어디나 일이 널려있다. 밭둑에 가시나무 쳐내야지. 과일나무에 거름도 줘야지. 낫 한 자루 들고 있으면 맘대로 낫을 휘두르며 마른 풀도 베고, 가시나무도 잘라낸다. 어쩔 때는 맨손이다. 그래도 어찌 그냥 지나갈 거냐. 무식하게 맨손으로 일을 한다. 내 속에 엉킨 잡념을 쳐내고, 묵은 감정도 베어낸다. 산골 다랑이밭. 밭보다 밭둑이 더 넓으니 이 일을 겨우내 해두어야 한다.

    낫질이 좋아도 더 좋은 일이 있지. 겨울 산에서 일하는 맛이 좋다. 바람이 휘몰아쳐도 숲에 들어가면 안온하다. 참 신비하다.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어서 그럴까? 어쩌면 나무가 온기를 내주어서일까?

    겨울 산은 참 편안하다. 뱀이나 땅벌이 있을 리 없고. 어디 있어도 밖이 훤히 내다보여 길 익히기 좋다. 양지바른 산자락에 올라 가만 앉아 있는 순간 평화. 산에 오를 때는 빈손으로 허위허위 가도 돌아올 때는 한아름이다. 미안한 마음에 잣나무를 감싸고 올라가는 칡덩굴을 끓어주기도 하고. 너무 벌어진 가시나무는 친다.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땔감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봄에 산나물이 여기저기 돋아나듯 태풍에 넘어진 나무, 말라죽은 나무·마른 삭정이도 많다. 작은 나무면 통째로 끌고 오고. 삭정이는 주워, 칡덩굴로 묶어, 등에 진다.

    산에 오르면 네 발 짐승 다니는 길이 사방으로 뚫려 있다. 길이 말짱히 보여 그리로 가려면 나뭇가지에 걸리곤 한다. 개를 데리고 가면 자유자재로 돌아다닌다. 나도 몸을 숙여, 그러니까 고라니만큼 키를 낮추어 지나가보기도 한다. 산짐승이 다니는 길. 그 길을 다니는 마음으로 우리가 자연 속에 어우러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욕심을 부리곤 하지. 산에서 하루거리 얻어오면 될 걸, ‘조금 더’ ‘하나만 더’ 한다. 그러면 나무가 따끔하게 혼내줄 때가 있다. 욕심에 눈이 멀어 가시 덩굴이 있는지 모르고 움직이다, 한 대 얻어맞는 거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사람들은 휴가를 받으면 산으로 바다로 떠난다. 자연을 찾아가는 거지. 우리는 도시로 놀러간다. 도시로 가서 큰 책방에 가고, 영화 보고, 마트에 가서 ‘쇼핑’도 한다. 한 끼쯤 외식을 할 때도 있다.

    도시에서 자라난 나는 쇼핑 문화가 몸에 뱄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어가면 처음 간 곳이라도 어디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어떻게 해야 싸고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는지, 척척 움직인다.

    처음 시골로 내려와서는 가끔 도시로 놀러가고 싶어 안달을 했다. 핑계거리를 잘도 찾아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무진장’에서도 한가운데다. 무진장이란 무주, 진안, 장수의 준말로 산간오지의 대명사이다. 여기서 가까운 도시는 전주와 대전인데 거기까지도 꽤 멀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쯤 걸린다. 두 곳 다 낯설다.

    그래서 아예 서울로 가곤 했다. 내가 줄곧 살아오던 곳이고, 부모 형제가 살고 있는 곳. 그러니 가면 반갑게 맞아 먹여주고 재워줄 곳도 있다. 면소재지에서 한번에 가는 버스도 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 내려 지하철을 탄다. 전동차가 다가오며 나는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면 ‘음, 고향의 냄새’ 한다. 오랜만에 묵은 때 벗기고, 그 동안 참았던 일을 했다. 그리운 얼굴들 만나 수다 실컷 떨고. 도시 음식 먹고, 필요한 것들 찾아 충전을 했다. 그런 서울에서 이제는 사흘을 못 넘기겠다. 시골처럼 널널하게 거닐다간 다른 이들 걸음을 방해하게 생겼다. 먹는 것도 처음 한두 끼는 좋지만 하루가 지나면 싱싱한 푸성귀가 그립다. 무엇보다 시끄러워 정신이 없다. 한밤중에도 고요하지 않다.

    서울에 가면 사흘을 못 넘기고 ‘가자, 가자’ 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아이들도 바뀌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서울서 자란 큰애는 서울에 꽤 가고 싶어했다. 가서 하고픈 것도 많았다. 그런데 여기 삶이 자리잡히면서, 많이 바뀌었다. 한마디로 지금 삶에 만족한다. 어디 가지 않아도, 뭔가 색다른 게 없어도 지금 여기가 좋은가 보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면서 이렇게 바뀐 듯하다. 한 해 두 해 세 해, 점점 뚜렷해진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묻는다. ‘피자 먹고 싶어서 어떻게 하니?’ ‘인터넷 못해서 어쩌니?’ 한데 아이들은 그런 욕구가 별로 없다. 욕구가 없으니 그런 것 없이도 잘산다. 물론 피자가 눈앞에 있으면 달게 먹고, 인터넷이 있으면 신나게 한다. 하지만 그것말고도 맛난 것, 재미있는 게 많다.

    우리 아이들이 산골에서,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는 걸 받아들이는 분도 이렇게 묻곤 한다. ‘심심해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니?’ 그러면 아이들은 말문이 막힌다. 하루가 얼마나 바쁜지. 심심할 겨를이 없이 지내는데 이렇게 물으니까. 그렇다고 하루에 하는 일을 시시콜콜 다 들어 보일 수도 없고.

    아이들은 하고픈 게 많다. 나무로 수저를 깎고 싶기도 하고. 산에 가서 고추 말목을 해오고도 싶고. 도끼질하고 군불 때고, 뒷간 지붕에 올라가 눕고 싶기도 하다. 하루 세 번 끼니때가 되면 무얼 먹을까 그걸 찾아내 준비해야지. 책 읽어야지. 그때그때, 마음이 가는 대로 몸 움직여 이것저것 한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 여기 있으면서 멀리 있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아이들이 먼저 자기중심을 찾아갔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아이들 핑계를 대고, 아이들을 유혹한 건 바로 나였다는 게 드러났다. 그런데 사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쉬운가. 아이들이 바로 선 걸 모르고 과거처럼 하다가 호되게 당하곤 했다. 그래 한동안 우리 집 문제아는 바로 나였다.

    동장군이 밀어닥칠 때다. 겨울 같지 않게 화창하다가 하루 저녁 바람 불기 시작하면 밤새 기온이 뚝 떨어진다. 말 그대로 밀어닥친다. 그러면 온 세상이 얼어붙는다. 추워지기 시작해 바람 맞으며 허둥지둥 갈무리를 하려면 서글프기만 하고 일도 제대로 안 된다. 배추를 날로 먹으려 놔두었다가 꽁꽁 얼리지를 않나, 토마토 병조림이 얼어 터져 모두 내다버린 적도 있다. 짐승 우리 바람막이를 제대로 안 해줘 밤새 걱정을 하기도 하고. 수도가 얼면 겨우내 물 고생은 어떻고. 그러니 날 따실 때 미리 갈무리를 해야지.

    저녁에 일찍 누워 아침에 늦도록 자고

    11월에는 물이건 땅이건 새벽에는 얼었다가도 한낮에 해가 비치면 녹는다. 하지만 대설에 접어들어 얼면 봄이 올 때까지 얼어붙을 각오를 해야 한다. 땅 얼고 물은 얼어도, 산 속 옹달샘 물은 얼지 않고 퐁퐁 솟아난다. 신비한 일이다. 우리 집은 앞산 옹달샘에서 솟아나는 물 먹으니, 그 신비함 덕을 톡톡히 보고 산다.

    우리가 ‘고구마 할머니’라 부르는 할머니가 있다. 농사 처음 할 때 그 할머니께 고구마 모를 얻었기에 그리 부른다. 그 할머니는 혼자 사시는데 겨우내 집을 안 비우셨다. 자식네를 한바퀴 둘러보고도 싶지만 집을 못 비우는 까닭이 있단다. 전에 집을 비우고 며칠 다녀오니 고구마 씨가 얼었단다. 고구마는 온기가 있는 곳에 두어야 한다. 그래 할머니는 고구마 씨를 방 윗목에 모셔놓고 겨우내 지켰다. 이렇게 집집이 고구마 씨 간직하며 겨울을 난다.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안방 아궁이 앞에 앉은 작은애 규현이. 불을 살피며 아궁이 앞에서 논다.

    겨울에도 우리 집에는 기르는 게 있다. 밭에 밀, 보리, 마늘, 양파가 자라고 있으니 그것이 첫째다. 하지만 땅이 얼어붙는 이즈음 할 일이 많은 건 아니다. 닭과 오리도 돌보아야 한다. 겨울에는 짐승들에게 물주는 일도 큰일이다. 전날 준 물은 밤새 모두 얼어붙어 있기 때문이다. 닭은 아침마다 한 바가지씩 물을 주어야 하고. 오리는 목욕할 물까지 넉넉히 길어다 주어야 한다. 이렇게 짐승도 식구다. 짐승을 키우려면 사람이 집을 비우지 않아야 한다.

    오리와 닭에게 푸성귀 주는 일도 만만치 않다. 닭이나 오리가 푸성귀를 얼마나 좋아하나! 싱싱한 배추 잎을 주면, 냠냠거리듯 아주 맛나게 먹는다. 한데 한겨울에 어디서 푸성귀를 하나?

    저장해둔 배추가 있으면 그걸 주기도 하고. 눈을 돌려 양지바른 밭에 가 푸성귀를 해서 주기도 한다. 이맘때면 겨울 나물이 한창이다. 눈이 녹고 난 뒤나 겨울비가 오고 난 뒤면 더욱 싱싱하다. 광대나물, 고수덩이, 냉이, 벌금자리…. 뭐든 푸른 풀은 모두 먹을 수 있다. 햇살 좋으면, 겨울나물을 하러 간다. 나물을 한 바구니 하고 나서, 흔하게 있는 개별꽃 잎을 양껏 뜯어 닭과 오리 준다. 오리 좋고 사람 좋고.

    집안에서는 콩나물, 엿기름을 기른다. 엿기름은 얼면서 말라야 달고 맛나다. 그래서 한겨울 한가할 때 엿기름을 기른다. 밀이나 겉보리를 물에 하루 불려, 콩나물 기르듯 물을 주어가며 싹을 낸다. 밀싹은 이맘때 별미다. 싹이 난 밀을 밥에 놔먹어도 좋지만, 날로 집어먹어도 향긋하고 달큰하다. 어른들 술안주로 한 접시 내놓으면 인기다. 날이 차니 며칠 길러야지, 다 기르면 그걸 밖에 펴서 시나브로 말려야지. 그런 일을 하노라면 어느새 동지(冬至)가 다가온다.

    옛 의서 ‘황제내경’을 보면, “겨울은 모든 문을 닫고 집안에 틀어박히는 계절이니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은 늦도록 자리에 누워 해가 떠서 일어나고 마음을 안정시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누르고 조용한 마음가짐으로 늘 만족하라” 한다.

    우리는 겨울이 되면 아침에 해가 떠야 일어난다. 해 뜨기 전에 바깥은 너무 추워 일할 수 없을 뿐더러, 이불 밖도 춥다. 그러니 어떻게든 해 뜰 때까지 이불 속에서 지낸다. 그리고 해지기 전에 집안으로 들어온다. 해 떨어지고 식구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니 저녁을 먹지.

    저녁 일찍 먹고 치우고 시계를 봐도 여섯 시가 겨우 넘었다. 그때부터 식구들 나름대로 각자 자기 할일을 한다. 텔레비전이 없으니 우리 집 저녁은 고요하다. 어떨 때는 식구들 모두 책장 넘기는 소리만 난다.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모두 모여 몸 푸는 운동을 할 때도 있다.

    한참을 이렇게 보내 밤이 깊어져도 아홉 시. 아무래도 일찍 잠자리에 든다. 식구 모두 잠자리에 들어 불을 끄면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다. 이렇게 겨울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기도 한다.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어제는 옆 마을에 사는 이웃에게 놀러가 낮술을 먹었다. 마음이 복잡하여서다. 감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농사 이야기를 하며 한 잔 두 잔. 그러다 땅거미가 내리니 집안으로 들어가 다시 한 잔 두 잔. 편하게 웃고 이야기하며 답답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

    시골 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돈도 아니고, 일이 힘들어서도 아니다. 조금 전까지 만족하며 살다가 하루아침에 여기를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 변화. 그건 인간관계다.

    우리 마을은 1998년부터 도시에서 귀농한 집이 하나 둘 모여 한 마을을 이루었다. 지금도 두 집이 새로 들어와 살고자 집을 짓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시골과 달리 우리 마을은 새로 사람이 모이는 마을이다. 또 대부분 젊은 부부라,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만도 여섯이나 된다.

    도시를 떠나 이곳으로 살러온 이들이기에 공감대가 있다. 당장 시골 생활에 적응하고, 농사하고 집 짓는 일에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받는다. 가끔 모여서 놀기도 하고.

    시골은, 도시하고 달리, 삶이 온통 드러난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그 집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는데 그 새끼가 다시 누구누구네 가서 어떻게 지내는지. 다 안다. 그런데 우리 마을 사람 모두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이 다 다르다. 여기서 살고자 하는 삶도 다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용도 다르다. 처지가 다르니 한 가지 일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살다 보면 이웃 사이에 이해가 얽히는 일도 생긴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시골로 내려와 소박하게 살고자 마음먹은 사람이 싸우기도 한다.

    며칠 전 쓴 일기다. 밤에 잠은 안 오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어 쓴 글이다.

    전에는 참고 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이렇게 나를 억누르며 내가 지고 말았는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냥 느껴지는 대로 표현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 이번에 이웃과 다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한테서 오만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우리와 얽힌 묵은 이야기. 전해 들은 이야기까지. 마음이 편치 않아, 몇날 며칠을 잠을 못 자고, 반대로 계속 자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게 결국 말과 행동의 차이. 말은 근사한데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해서 생기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의 모든 게 드러나는데, 그걸 감당하기가 참 힘드네요. 심지어 내가 모르는 일까지도. 그러니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고. 늘 밑지고 살아온 것 같은데 남들 눈에는 내 것만 챙기는 사람으로 보이니 억울하고. 잘난 척하면서 실제는 모순덩어리고.

    나는 본디 참 단순한데. 살아오면서 복잡해진 것 같아요. 속생각을 잘 말하지 못하고, 어쩔 때는 내 속생각이 무언지 나도 헷갈리곤 했으니까. 그게 바로 ‘거짓 자아’ 때문이겠지요. 좀더 근사해 보이고자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지금까지 나는 누가 나를 근사한 사람으로 알아주기를 바라고 살아왔으니까요.

    시골로 내려와 ‘이웃집 아줌마’로 살아가려니 처음에는 솔직히 서운했어요. 도시에서는 대접받고 살았기에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는 기분마저 들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게 참 편해요. 나는 이웃집 아줌마일 뿐. 이웃집 아줌마는 그냥 편하잖아요. 논밭에서 혼자 일하면서 내 세계에 푹 빠져 살고 있다가, 집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면 많이 걸려요. 문득 내가 푹 빠져서 사는 세계가, 지금까지 ‘신동아’에 쓴 이야기가 어쩜 판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알고 보니, 나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서울을 떠나 이곳으로 올 때 얼마나 두려워했나. 아이들 차례차례 학교 그만둘 때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나.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나를 욕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 안에서 나대로 살고 싶다. 그렇다면 이웃은 무엇일까? 더불어 살아간다는 게 무언가?

    이제 농사도, 집도, 아이들 교육도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간다고. 내 삶에 취해 자만했나 보다. 혼자서 자기 잘난 줄 알고 살다가 이번 일을 겪으며 보니 그렇지 않구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참 힘들다. 넘어야 할 산이 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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