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국가부채 408.1조 원 증가, 尹 정권 증가 지속
가계부채 1896조 원 역대 최다, 주담대 증가가 원인
대출 조이기 쉬쉬하다가… “골든타임 놓쳤다”
“월 상환금 513만 원, 편의점 음식 먹으며 ‘존버’”
“내 주변 다 빚내서 돈 벌어, 무서워하면 지는 것”
“과도한 부채 국가 위기로 이어져, 조치 취해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에 ‘가계·국가 부채 3000조’ 시대가 열렸다. [뉴스1, Gettyimage]
국가부채는 국채(국고채·국민주택채·외평채), 차입금, 국고채무부담행위 등으로 구성되며 이 가운데 국고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계부채는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을 더한 것이다.
8월 2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국가부채(지방정부 채무 제외)와 가계부채의 총합은 3042조 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2998조 원)보다 44조 원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 팬데믹이 나라를 휩쓸던 2021년 3분기(63조 원) 이후 7개 분기 만에 최대 폭 증가를 경신했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인 2401조 원의 127% 수준이자 올해 국가 예산(656조 원)의 5배에 달하는 액수다.
“전 정권 잘못” vs “특수 상황”
이에 대해 여야는 상대측에 책임을 돌리는 양상이다. 포문을 연 것은 정부다. 8월 26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때까지만 해도 660조 원이던 부채가 문재인 정부에서 400조 원 이상 증가, 현 정부가 일을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며 “국가부채의 절대 규모는 지금 1196조 원으로 예상되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선 2024년 예상치 기준 120조 원 늘어난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가부채는 최근 20여 년 동안 꾸준히 늘어난 가운데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크게 늘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309조 원이던 국가부채는 이명박 정부 489조8000억 원, 박근혜 정부 660조2000억 원까지 증가했다가 문재인 정부 때 408조1000억 원 늘어 1000조 원을 돌파, 1068조3000억 원으로 늘었다(각 정부 종료일 기준). 같은 기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노무현 정부 26.8%, 이명박 정부 32.6%, 박근혜 정부 36%로 늘다가 문재인 정부 때 50.2%로 치솟았다.<표1 참고>
또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가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감세 정책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윤 대변인은 “재정 부담이 늘었다면서도 부자 감세와 부담금 감면으로 세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건전재정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가부채는 1126조8000억 원, 올해 6월 말 기준 1145조9000억 원으로 문재인 정부 때보다 더 늘었다. 경기 부진 및 감세로 인해 2년째 세수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상반기 재정 집중 집행 기조가 더해지며 국고채 발행이 늘어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에만 정부가 국채 이자로 지출한 비용은 24조7000억 원이다. 국가부채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9월 4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부채는 올해 말 1195조1000억 원을 기록하고, 매년 늘어 2027년엔 1432조5000억 원에 달할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 1343조, 문재인 정부 1863조 원
가계부채도 역대 정권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김대중 정부 때보다 201조 원 늘어나 665조 원이 됐고, 이명박 정부 964조 원(298조 원 증가), 박근혜 정부 1343조 원(379조 원 증가), 문재인 정부 1863조 원(520조 원 증가)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표2 참고> 이 역시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기준금리는 전 세계적 고물가 현상과 미국 등 주요국의 통화 긴축정책의 영향을 받아 2021년 8월부터 오르기 시작, 문재인 정부 종료 때 1.5%를 거쳐 지난해 1월 3.5%까지 다다른 후 현재까지 동결 상태다. 기준금리 상승 기조에 따라 2022년 하반기~지난해 상반기 가계부채가 1700억 원가량 감소하며 증가세에 제동이 걸리는 듯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발(發) 금리인하 및 집값 상승 기대감 등이 반영되며 다시 불이 붙었다.
8월 2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2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가계부채는 1896조2000억 원이다. 1분기(1882조4000억 원)보다 13조8000억 원 더 늘어난 수치로 2002년 4분기 관련 통계 공표 이래 역대 최대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총 가구는 2273만 가구다. 이를 반영하면 한 가구당 빚은 평균 8340만 원이다. 특히 16조 원 급증해 1092조7000억 원에 이른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이 증가세를 견인했다.
이에 정부는 수도권 주담대를 대상으로 규제에 나섰다. 8월 20일 금융위원회는 “9월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시행하되 수도권 주담대에 대해 스트레스(가산) 금리를 예고된 0.75%포인트 대신 1.2%포인트를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는 주담대 한도를 더 조이겠다는 취지다.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대출 등을 이용하는 차주가 대출 이용 기간에 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에 대비해 DSR 산정 시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부과해 대출한도를 산출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 소재 사립대 경제학과 A 교수는 “현 정부 들어 ‘시장경제’에 맡긴다는 명분으로 부동산 규제와 같은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저금리 대출을 내놓는 등 가계부채 상승세를 꺾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2단계 스트레스 DSR도 원래 7월 시행 예정이었다가 시행 일주일 전 9월로 미뤘다. 가뜩이나 집값이 오르는 추세인데, 이게 ‘막차’ 타라는 뜻이 아니고 뭔가. 대응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라고 꼬집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집값 안정이라는 근본적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2단계 스트레스 DSR 도입 예고는 오히려 대출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스트레스 DSR 도입이 예고·연기된 시기 주담대는 큰 폭으로 뛰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7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주담대 잔액이 7조5975억 원 늘어나며 월별 대출 잔액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한 은행 관계자는 “7~8월 주담대 상담 고객이 평소보다 30%는 늘었고, 실제 대출로 이어진 고객도 10%는 늘었다”고 말했다. 집값도 함께 뛰었다. 8월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서울 아파트값은 6월보다 1.19% 올랐다. 특히 준공 5년 이내 신축 아파트는 2.34% 올라 2012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정부 규제가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8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118로 7월 대비 3포인트 상승하며 집값 상승세가 가파르던 2021년 10월(12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주택가격전망 CSI는 100을 기준치로 이보다 더 높을수록 소비자들이 향후 1년 동안 주택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경향이 강함을 나타낸다. 이에 대해 황희진 한국은행 통계조사팀장은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 연기 후 주담대와 주택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부부 월수입 780만 원, 월 상환금 513만 원
9월 11일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에서 한 시민이 매물 정보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윤 씨가 받은 주담대 액수는 약 9억 원이다. 대출 조건은 금리 4.3%, 상환기간 20년에 원리금 균등 상환 방식이다. 부부는 모두 사무직 근로자이며 연봉 합은 1억2000만 원쯤 된다. 월 상환금으로 약 513만 원을 내야 한다. 윤 씨의 말이다.
“세금 떼고 나면 나와 내 와이프 월급 합이 780만~790만 원이다. 여기서 이자를 내고 나면 30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둘이 나눠서 써야 한다. 월급의 70%가 상환금으로 나간다고 보면 된다. 식비, 공과금, 차량 유지비, 경조사비 등 쓸 곳이 많아 살림살이가 정말 빠듯하다. 사람들과 약속을 줄이고 편의점 음식이나 집밥을 먹으며 비용을 절감한다.”
윤 씨를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은 집값이 결국 오를 거라는 믿음이다. 그는 “문재인 정권 시기 집값이 많이 오를 때, 내 주변 친구들은 다 ‘영끌’해서 집을 샀고 대부분 2배 이상 수익을 올렸다. 잠시 집값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오르더라”며 “그때 나는 빚을 내면서까지 집을 사진 말라고 말렸는데, 나만 바보가 됐다. 빚내는 것을 무서워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말했다.
4월 경기 안양시에 주택을 구매한 공모(39) 씨도 “생활이 빠듯하긴 해도 결국 버티면 집값은 오르게 돼 있다”고 말했다. 공 씨의 주담대 금액은 6억 원. 대출 조건은 금리 4.5%, 상환기간 30년에 원리금 균등 상환 방식을 택했다. 1년에 약 3700만 원, 월 310만 원가량을 상환한다. 부부의 연봉 합은 약 1억 원. 월 600만 원 중반대 수입을 올린다. 3살짜리 딸이 있어 육아 비용을 더하면 살림살이는 더 빠듯해진다. 이에 자신의 자동차를 팔고 남편의 자동차를 함께 이용하고 있다.
공 씨가 집을 산 근거는 우리나라의 자가보유율이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자가보유율은 61.3%(전국 기준)다. 수도권 기준으론 55.8%다. 공 씨는 “절반 넘는 사람이 집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집값을 떨어뜨리냐”며 이렇게 말했다.
“집값이 지금 비싸다는 사람이 많고, 정부도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집값이 크게 떨어질 일은 없다고 본다. 사람들이 집을 살 때 대부분 ‘영끌’한다. 집값을 폭락시키면 그 사람들부터, 돈 빌려준 은행까지 줄줄이 생길 문제를 어떻게 감당하겠나. 집값이 떨어지면 무주택자야 좋겠지만 집 가진 사람은 손해다. 무주택자만 국민도 아니고, 집 가진 사람이 더 많으니 표를 의식해서라도 정부가 집값을 적극적으로 낮추려곤 안 할 것 같다.”
대출을 더 받지 못해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다. 5월 서울 금천구에 주택을 구입한 김모(35) 씨는 “연봉이 많지 않아서 대출이 많이 안 나오더라. 대출을 좀 더 받을 수 있었다면 더 좋은 지역, 더 좋은 입지의 주택을 구매했을 것”이라며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지금 빚 많이 내서 좋은 집 산 사람들이 결국 더 돈을 벌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의 연봉은 약 5000만 원이며 주담대 금액은 3억 원이다. 금리 4.5%, 상환기간 30년에 원리금 균등 상환으로 돈을 갚아나간다. 월급은 약 300만 원대 초반, 월 상환액은 155만 원가량이다. 여행을 가는 등 목돈이 필요할 때엔 부모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김 씨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건 좀 부끄럽지만 어차피 부모 도움 없인 집 사기 힘든 세상”이라며 “그나마 집을 샀으니 ‘벼락 거지’가 된다는 공포는 줄었다. 진짜 부자들한텐 상관없겠지만 나 같은 서민에겐 대출이 그나마 동아줄”이라고 말했다.
“더 늘면 위험, 재정안전성 확보 시급”
8월 20일 경기 수원시 한 은행에 대출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늘어난 가계부채는 국가 부담을 심화한다. 대출자의 상환 부담을 더해 가계 소비 여력을 위축시키고, 이는 내수 둔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8월 한국은행은 나빠진 내수 상황을 반영,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로 0.1%포인트 낮췄고, KDI도 같은 이유로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채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빚이 늘면 상환 부담 등으로 인해 내수가 부진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부채를 줄이고 세수를 늘려 재정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 교수는 “대출을 조이되 주택공급을 늘리는 등 가격 안정을 동반해야 한다”며 “집값이 계속 오르면 ‘막차’를 타야 한다는 심리에 대출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다. 아직까진 ‘국가 부도’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더 늘어나면 위험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은 내수 침체·성장 둔화를 겪을 만큼 과다한 수준”이라며 “정부가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고, 내수 회복 및 가계부채 줄이기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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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열아, 더 나빠질 것도 없다. 소신껏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