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호

“국가안보는 필요 불가결 요소, 안보기관 악마화 가슴 아파”

[인터뷰] 장석광 전 국가정보원 대공수사처장

  • 최창근 에포크타임스코리아 국내뉴스 에디터 caesare21@hanmail.net

    입력2024-10-0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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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 안위 위해 헌신했건만…‘공포기관’ 불명예

    • 文 조직개편으로 안보 역량 약화…“허울만 남아”

    • 베테랑 요원 흩어지고 경찰서 안보망 붕괴되고

    • 해외 활동 법적 근거 없어 수사하면 ‘불법’

    • 국가 위해 더럽고, 꺼리는 일 하는 게 정보기관

    • 음지에서 양지 지향하는 이들의 노고 인정해 주길

    장석광 박사가 서울시청 남산 별관으로 사용하는 옛 국가안전기획부 제5국 청사 앞에 섰다. 이곳은 그의 옛 직장이었다. [홍중식 기자]

    장석광 박사가 서울시청 남산 별관으로 사용하는 옛 국가안전기획부 제5국 청사 앞에 섰다. 이곳은 그의 옛 직장이었다. [홍중식 기자]

    초로의 한 전직 ‘회사원’이 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불철주야 회사에 헌신했다. 매일 오전 6시 반 출근해 오후 9시 퇴근하는 나날이었다. 주말도 없었다. 자녀의 어린 시절 사진에도 그의 자리는 없다. 돌이켜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했었어야 했을까?’ 싶기도 하다.

    퇴직 후 그는 회사를 찾는 것이 싫어졌다. 기분만 언짢아지기 때문이다. 요즈음 사람들의 인식 속 옛 직장은 ‘나쁜 회사’로 각인돼 있다. 그가 몸담았던 회사는 최일선에서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지키는 일을 했고 그도 분명헌신했다고 자부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기억은 상이하고 특정 의도를 가지고 왜곡됐다고 느껴질 때면 분통이 터진다”고 말한다. 그의 이름은 장석광. 몸담았던 회사는 국가정보원이다.

    “국가안보는 공기(空氣)와 같아”

    그는 국가정보원 베테랑 대공수사관 출신이다.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인 1988년 입부해 28년간 국가안보 수호 최일선에서 일했다. 미국 연방수사국아카데미(FBI National Academy)에서 연수했고,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로 활동했다. 대공부서에 몸담아 대공수사처장을 지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퇴직 후 범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원, 동국대 법무대학원 교수로 연구·강의 활동을 했다.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최덕근 영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대표, 대한민국 구국혼 선양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민간 정보기업 JK 포렌식 인텔리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스파이 내전: 서커스 광대 두더지’ ‘국가정보원, 존재의 이유’(공저)가 있다.

    한여름 태양이 작열하는 8월의 한복판, 장석광 박사의 옛 직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울시청 남산 별관으로 사용하는 옛 국가안전기획부 제5국 청사다. 한 시간 정도 먼저 와서 여기저기 둘러봤다는 그가 말했다. “건물 역사를 설명하는 팻말에 ‘독재’ ‘인권 침해’ ‘고문’ ‘공포’ 등 온통 부정적 단어뿐이다. 서운하고 때론 화도 난다.”

    퇴직 후 장석광 박사는 저술, 언론 기고, 학술회의 등을 통해 왜곡된 회사의 명예를 회복하고 일반인에게는 긍정적 이미지를 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국가안보는 공기(空氣)와 같은 존재다. 대부분 사람은 공기가 나빠지거나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듯하다.”라고 말하는 장 박사를 만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국가안전기획부 입부 계기는 무엇인가.

    “우리는 보통 ‘입부’가 아닌 ‘입사’라고 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도 소속기관을 ‘회사’라는 뜻의 ‘company’ 혹은 ‘firm’이라 칭한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수사관 다수는 법학 전공자였다. 나도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몇 차례 실패 후 진로를 바꿔 입사했다. 당시 경쟁률은 100대 1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남산 청사’에서 주로 일했는지 물었다. 장 박사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정보학교 1년 신입 요원 교육 후 1988년 연말부터 1995년 서울 서초구 내곡동 현 청사 입주까지 약 7년을 남산에서 보냈다”고 답했다. 장 박사는 그 당시 내부 분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오늘날 (서울 예장동의) 서울유스호스텔이 국가안전기획부 본관이고 남산 일원에 별관 및 관련 시설물이 흩어져 있었다. 내가 몸담았던 대공수사국은 제5별관을 사용했고. 초년병 시절 당시 국장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일중독자였는데, 어느 날 매일 밤 9~10시에야 퇴근하던 국장이 7시도 안 돼서 퇴근하더라. 박사학위 취득 기념 만찬이 있다면서. ‘총알 나가고 탄피 빠지듯’ 휘하 단장, 과장, 계장이 차례로 빠져나가고 직원들도 귀가 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했더니 태풍 전야의 고요가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전날 저녁 행사에 갔던 국장이 식사만 마치고 8시 되기 전에 사무실에 돌아왔다는 거다.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누가 남았는지 체크하고…. 그 사건 후 젊은 직원들은 ‘평범하지 않은, 일중독자들만 모인 건물’이라는 의미로 ‘제5병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지킨다’는 애국심과 열정이 충만한 시절이었다.”

    1980년대 ‘남산’은 ‘남영동’과 더불어 공포의 대명사였다.

    “한국인 절대다수는 공안기관에서 조사받은 경험이 없다. 국가정보원 수사관, 대공 담당 경찰관을 직접 만난 경우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소설, 영화 등에서 디테일하게 이들 기관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공포의 대명사가 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내가 조사했던 한 시민운동가는 ‘국가안전기획부가 이런 곳인 줄 몰랐다. 재워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수사관들도 젠틀하다. 정말 고맙다. 밖에 나가면 술 한잔 꼭 사겠다’라고 했다. 훗날 그는 검찰에 송치됐는데, 구치소에 면회 간 동료들에겐 ‘남산에서 얼굴에 수건 덮고 그 위에 주전자로 물을 붓더라…’고 말했다더라. 기가 찰 노릇이다. 훗날 그는 공안기관의 악랄한 고문을 이겨낸 ‘영웅’이 됐더라.”

    간첩과 수사관이라는 대척점에서

    장석광 박사의 지기(知己) 중에는 민경우 시민단체 ‘길’ 상임대표도 있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으로 1995년부터 10년 동안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맡은 ‘거물급’ 스파이였다. 오늘날 장 박사와 민 대표는 막역한 사이다.

    피의자와 수사관이 친구가 된 셈인데.

    “민경우 대표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이던 1997년 여름, 처음 만났다. 간첩과 수사관이라는 대척점에서 만났지만 그가 지향하는 목표, 방향, 역사의식은 오래전부터 같았던 것 같더라. 민 대표를 처음 조사할 때 ‘왜 서울대 의예과를 그만두고 국사학과에 다시 입학했냐?’고 물었더니 ‘학생운동에 필요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고 답하더라. 대답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그 후로 조사받는 태도를 유심히 살폈봤다. 그 시절 주사파 학생은 소영웅심리, 권위의식을 바탕으로 허세를 부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는 달랐다.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이면 운동권 내에서 행세깨나 하는 자리였음에도 솔직담백했다. 증거를 제시하면 인정했고. 김일성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 표시도 없었다. 자연스레 호감을 갖게 됐는데, 그러다 그도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지금껏 교류하고 지낸다.”

    대공 수사는 은밀함이 핵심이다. 용의자 추적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 중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시절 국가안전기획부가 수사해서 검찰로 송치한 피의자는 법원 재판 과정에서 담당 수사관이 동향을 파악했다. 피의자의 수사 과정 진술과 재판정 진술이 다를 경우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민 대표의 서울지방법원 공판 때 일인데, 법정 가장 뒷자리에서 방청하고 나오다 민 대표 지인과 마주쳤다.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돌아보니 나는 혼자인데 상대측은 수십 명이더라.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순간 그 지인이 반갑게 내 손을 잡으면서 ‘선생님! 고맙습니다. 바쁘실 텐데…’라고 하기에 나도 찰나의 기지를 발휘해 ‘걱정 많이 되시죠? 잘될 겁니다. 힘내세요. 바빠서 이만…’ 하고선 뒤도 안돌아 보고 도망쳐 나왔다. 그 지인은 저를 범민련이나 민주화운동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로 알았던 거 같다. 내가 민 대표를 쫓아다니다 보니 자연 낯이 익었던 모양이다(웃음).”

    지난날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오늘날로 이어졌다.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경찰 등 공안 기관에 대한 국민 전반의 인식이 나빠졌다. 이들 기관의 기능 또한 약화했다. 장 박사는 저서, 칼럼 등을 통해 ‘전반적인 국가안보 역량 약화’ 문제의 심각성을 꾸준히 지적해 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국가정보원 국내정보수집권 폐지, 안보 수사 기능 경찰 이관 등으로 안보 수사의 허점을 지적하는 분이 많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함께 해오던 안보 수사를 올해부터 경찰이 단독 전담하게 됐다. 국내 정보수집권에 이어 안보수사권까지 폐지된 국가정보원은 통합정보기관이라기보다는 해외정보기관에 가깝게 된 거다. 방첩, 테러 방지, 국제·마약 범죄 수사권 등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허울만 남은 셈이다. 예를 들자면 미국이 연방수사국(FBI) 기능을 정지하고, 이스라엘이 보안총국(신베트)을, 영국이 정보청 보안부(MI5)를 폐지한 것과 같다.”

    국가정보원 베테랑 대공수사관 출신인 장석광 박사는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인 1988년 입부해 28년간 국가안보 수호 최일선에서 일했다. [홍중식 기자]

    국가정보원 베테랑 대공수사관 출신인 장석광 박사는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인 1988년 입부해 28년간 국가안보 수호 최일선에서 일했다. [홍중식 기자]

    허울만 남은 국정원, 과부하 걸린 경찰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면서 답답함을 토로한 장 박사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의 권한 집중 현상을 지적하며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수사권을 대폭 줄이고 국가정보원 국내 정보수집권, 안보수사권을 폐지해 외견상 경찰에 권한이 집중된 듯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 권한 집중과 수사권·정보권을 독점하게 된 거대 경찰 조직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수사 부서에는 과부하가 걸렸다. 경찰이 사건 처리에 허덕이면서 수사 부서 기피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수사 지연으로 인한 국민 피해도 커지고 있고. 안보 수사도 다르지 않다. 경찰이 안보 수사를 전담하게 됐으면 수사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데 수사 역량은 약화됐다. 올해 안보수사대에 전입한 팀장급 경찰관 대다수가 국가보안법 관련 수사 경험이 없다. 조삼모사(朝三暮四)식 경찰 조직개편으로 베테랑 안보 수사요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일선 경찰서 안보망은 붕괴했다.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 중 강남 송파·수서·영등포·용산·종로경찰서에만 안보과 전담 조직이 존치한다. 정보 분야도 마찬가지다. 국가정보원 국내정보 수집 기능이 폐지됐으면 경찰 정보 기능이라도 강화돼야 하는데, 전국 259개 일선 경찰서 중 197개 경찰서에서 정보과가 폐지됐다.”

    현행 안보 수사 체제의 가장 시급한 문제를 꼽는다면.

    “경찰은 법적·제도적·현실적으로 해외 연계 간첩을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정치권은 경찰이 안보 수사를 전담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여건은 마련해 주지 않은 채 수사권만 넘겼기 때문이다. 경찰 업무 관련 법규 어디에도 경찰의 해외 정보활동의 법적 근거를 유추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일례로 2021년 1월, 국가수사본부 출범 당시 정비된 경찰 4개 법규 △형사소송법(법률) △수사준칙(대통령령) △경찰수사규칙(행정안전부령) △범죄수사규칙(경찰청훈령) 어디에도 경찰의 해외 채증을 합법화하는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해외 연계된 간첩 수사의 공백은 필연적이다. 해외 연계 간첩 수사는 경찰이 해도 불법이고 국가정보원이 해도 불법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간첩 사건은 5년에서 10년까지 지속적인 집중 수사를 통해 밝혀지는 것”이라며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조사권도 박탈하자는 정반대 주장하는데. 어떻게 보나.

    “지난 21대 국회에서 행해진 ‘국가정보원 수사권 폐지’나 22대 국회의 ‘국가정보원 조사권 폐지’를 반대하는 편에 서 있는 사람들 상당수는 해당 법안을 발의한 의원의 개인적 성향에 주목한다. 발의 참여 의원 대부분이 지난날 학생운동권 출신이거나 국가보안법 전력자들이다. 이들의 ‘사상에 기초한 보복성 입법’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는 지나치게 순진한 접근법이라 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특정 세력’이 큰 그림을 그리고 시행해 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다만 국군정보사령부 기밀 유출 사건, 수미 테리 사건 등 일련의 사건으로 간첩법제의 정비 필요성에는 여야 모두 공감하는 듯 보이나 이는 여론을 의식한 것일 뿐 실제 타결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해외 주요 국가는 첩보기관과 특수수사기관이 분리되거나, 정보기관과 방첩기관이 분리돼 상호 견제가 가능한 조직을 운영한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도 있을 거 같은데.

    “2018년 국회 연구용역보고서 ‘정보기관 수사권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통합형이 분리형보다 많다. 분리형으로 운영하는 대표 국가인 미국의 경우 2004년 12월, 분화된 16개 정보기관을 통합하는 정보공동체 ‘국가정보장실(DNI)’을 창설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전 세계 정보기관은 해외 정보와 국내 보안 기능을 통합하려는 추세다.”

    합법성만 강조한다면 비겁자

    해외 정보기관 현황을 설명한 장 박사는 자신도 지난해까지는 통합형 정보기관이 낫다고 주장해 왔으나 올해 들어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국가정보원 안보수사권, 국내 보안 정보 수집 기능이 폐지됐다. 경찰의 안보 수사 기능, 정보 수집 기능도 약화했고. 현 시점에서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복원하거나 경찰이 안보 수사 기능과 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할 현실적 여건은 못 된다. 국가정보원은 해외 정보기관으로 두고 별도 국내 보안정보기관을 창설하는 것이 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정보·방첩기관은 합법·불법·탈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활동하는데 ‘합법성’만을 강조했을 경우 나타나는 문제점은 뭔가.

    “사람은 이슬만 먹고살 수 없고 사회에는 군자(君子)만 있지 않다. 누군가는 힘든 일, 하기 싫은 일, 더러운 일, 피 묻히는 일을 해야 국가와 사회가 운영된다. ‘고유의 존재가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정보기관은 ‘더러운 일’을 기만적 방법으로 은밀하게 수행하는 곳이다. 국익을 위해서다. 적어도 문명국가에서 국가기관은 국가 경영 혹은 국가 이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국가 정보기관은 그런 일을 하는 곳이다. 국가 정보기관에 합법성만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위선자이거나 비겁자라고 생각한다.”

    장 박사는 퇴직 후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의 강약점, 장단점을 더 잘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이스라엘 정보특수작전국을 해외 모범 사례로 들었다. ‘모사드’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곳은 세계 최고 정보기관으로 꼽힌다.

    이스라엘 모사드 시스템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뭔가.

    “정보기관 개혁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이구동성으로 모사드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스라엘 보안총국인 신베트(Shin Bet)의 존재다. 모사드가 세계 최고 해외 정보기관으로 알려져 있듯 신베트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내 보안정보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사드의 배후에는 강력한 신베트가 있고, 신베트의 배후에는 세계 최고의 모사드가 있다. 한국에는 현재 국내 보안·정보기관이 없다. 있던 것도 없앴다. 그러면서 국민, 정치인은 모사드를 추앙한다.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따로 없다.”

    한국 ‘간첩법’은 북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제3국의 국내 첩보 활동 방지, 처벌에는 취약하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 간첩법제는 △적국을 위하여(형법) △적을 위하여(군형법)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그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때(국가보안법)에만 ‘간첩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북한을 제외한 외국인은 간첩으로 처벌할 수 없다. 다른 나라 간첩법제와 비교하면 상당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내외국인 막론하고 국가 기밀을 탐지·수집하는 행위를 간첩법으로 처벌한다. 간첩법으로 처벌이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 외국대리인등록법(FARA)까지 두고 있다. 중국도 간첩죄를 외국인에게까지 적용하고 있다. 국가안보나 국가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모두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해서 미국 간첩죄보다 훨씬 엄격하다. 국가 간 간첩죄 처벌 규정이 불균형이 될 경우 처벌 규정이 약한 국가는 외국 간첩 활동의 온상이 될 것이다. 이는 국제관계 안정성 측면에서도 국가 간 외교관계를 더 긴장시키고 국제 협상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간첩죄 처벌이 약한 국가는 동맹국으로부터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대안을 제시한다면?

    “형법 제98조를 개정해 현행법상의 ‘적국’을 적국, 외국 및 외국인 혹은 외국인 단체로 확대하고, 이들이 탐지·수집한 정보가 국가 기밀이 아닌 경우 개정된 형법(98조)으로도 처벌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제정해야 한다. 영원한 우방이라는 미국도 한국 협조자를 외국대리인등록법으로 기소하지 않았나.”



    우방국은 있어도 우호적 정보기관은 없다

    미국 내 대표적 북한 전문가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5월 29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미국 내 대표적 북한 전문가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5월 29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그렇다. 한국계 미국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기소됐다. 한국 정보기관 해외 요원들의 업무 미숙 문제도 지적받고 있다.

    “수미 테리 박사와 회동했던 주유엔한국대표부, 주미국한국대사관 소속 국가정보원 요원은 이른바 ‘화이트(white) 요원’이다. 공개 스파이다. 화이트의 정보수집 활동은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에 활동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표부·대사관 화이트 요원들은 수미 테리와의 접촉을 비밀공작이 아닌 일상적 정보활동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주지할 점은 이들의 활동이 모두 상대국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다는 거다. 정보활동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정보활동의 기본 원칙에도 소홀했고….”

    장 박사는 ‘모스크바 원칙(The Moscow Rules)’에도 소홀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냉전 시대 목숨을 걸고 모스크바에 부임했던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사이에 구전으로 비전(祕傳)되던 원칙이다. △아무것도 가정하지 마라 △직감을 거스르지 마라 △행동 패턴을 다양하게 하고 위장 신분에 걸맞게 행동하라 △적을 자극하지 마라 등 10가지가 있다. 한국 요원들은 상대 정보·방첩기관을 자극한 우를 범한 거다. 수미 테리 사건의 경우 적법성 여부를 떠나 연방수사국(FBI)의 사건 경고가 있었다. 국가정보원 요원들도 이를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있고. 경고를 무시한 것 같다. 우방에 대한 지나친 믿음, 비밀 정보활동이 아니라는 과도한 자신감이 원인이었을 거다. 헨리 키신저는 ‘우방국은 있어도 우호적인 정보기관은 없다’라고 했다. 정보 세계의 만고불변 진리다.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다시금 새겨들어야 할 금언이기도 하다.”

    국가정보원을 보는 외부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지는 한국 국가 정보기관의 부정적 측면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겠다. 국가정보원 원훈(院訓)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처럼 정보기관은 합법적 활동만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태생적 음습(陰濕)함을 지니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역사를 오늘을 사는 우리의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눈으로 접근해야 객관적으로 보일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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