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공제회는 양우공제회법 없이 생겨난 조직
- 기조실장이 공제회 이사장 맡는 것은 국가공무원법 위반
- 양우공제회가 지급하는 연구비의 정체는?
- 양우공제회는 국정원 자체 감사조차도 받지 않는다
- 정부 예산과 비자금을 한데 넣어 운영한 안기부
- 대선 잔금 70억원 안기부 계좌에 숨겨놓은 金賢哲
- 지출관 직제 없앤 DJ 정부의 국정원
파크밸리는 삼양식품이 투자해 1996년 6월1일 개장한 것으로, 삼양식품의 자회사인 강원레저에서 운영해왔다. 삼양식품은 국내 최초로 라면을 생산한 기업. 그런데 1989년 공업용으로 분류된 쇠기름(牛脂)을 수입해 라면을 만들었다는 ‘우지라면 사건’에 휩싸이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이 사건은 삼양식품의 제품에 한정해서 발생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국내 최고(最古)의 라면회사는 매출액과 수입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사세가 위축되어가던 삼양식품에게 IMF 경제위기는 치명타였다. 정부는 기업에게 구조조정을 강력히 요구했다. 삼양식품은 주력인 식품 분야를 제외한 기타 업종은 매각한다는 자구책을 마련했다. 삼양식품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큰 매물(賣物)이 파크밸리였다. 2001년 말 파크밸리는 1차 입찰에서 유찰되고, 2차 입찰에서 국정원 직원 상조회인 양우(陽友)공제회에게 낙찰되었다.
2차 입찰에서 양우공제회가 제시한 가격은 500억원. 다른 경쟁자는 520억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경쟁자는 520억원을 매입 1년 후 분할해서 납부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반면 양우공제회는 즉시 500억원을 지불하겠다고 제의했다. 삼양식품과 채권단은 양우공제회가 제시한 조건이 훨씬 낫다고 판단해 양우공제회에 파크밸리를 매각했다.
소유주가 바뀌면 대체로 기업체의 이름도 바뀐다. 그러나 재개장한 파크밸리 운영사는 여전히 강원레저고, 삼양식품 자회사 시절 강원레저 대표를 하던 사람이 그대로 대표이사를 맡았다. 다만 이사진에는 약간 변동이 있었다. 국가정보원에서 비서실장과 ○○국장(1급)을 지낸 이모씨가 감사에 취임하고, 국가정보원 ○○지부장(1급)을 지낸 나모씨가 이사에 임명된 것이다.
2002년 3월 중순 몇몇 언론사에 국가정보원이 양우공제회란 유령단체를 내세워 골프장을 매입, 운영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가장 먼저 취재에 나선 것은 ‘H일보’였다. ‘H일보’는 파크밸리는 물론이고 국가정보원 관계자를 만나 취재했으나 기사화하지는 않았다. 양우공제회는 국가정보원의 위장 명칭이 아니라, 국가정보원 현직 직원의 상조회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현직 공무원과 공무원 단체는 이권 사업에 관여할 수 없지만, 군인공제회나 교원공제회 같은 공무원 상조회가 이권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H일보’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기사화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겨레’는 3월20일자에서 ‘국가정보원의 현직 직원 상조회인 양우공제회가 제3자를 내세워 500억원짜리 골프장을 인수해 경영하고 있다. 이는 국가정보원이 은밀하게 이권 사업에 손을 대왔음을 확인해주는 것이어서 충격적이다’라고 보도했다. 3월21일자 ‘중앙일보’는 좀더 노련하게 공격했다. ‘중앙일보’는 법적인 시비를 따질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한 듯 양우공제회가 골프장을 운영하는 것은 공무원의 품위를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두 언론은 ‘H일보’가 봉착했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불법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도덕성만 거론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즉각 유인희 공보관을 통해 “국정원 직원 상조회인 양우공제회가 골프장을 매입한 것은 법률적으로 하자가 없다. 양우공제회는 기금을 투자신탁이나 장기신탁에 투자해왔는데 IMF 사태 이후 원금을 손해보고 있어 골프장에 투자한 것이다”라고 반격했다. 국가정보원은 ㅇ법무법인으로부터 ‘양우공제회의 골프장 매입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자문을 받은 자료까지 제시했다. 두 신문이 퇴각하자, 양우공제회의 골프장 매입을 비판하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퇴각은 실수였다. 두 언론은 ‘하나는 보았으나 둘은 미처 발견하지 못해서’ 공격을 포기한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면 뱀 꼬리를 발견해놓고도 지렁이 꼬리라는 설명에 속아 고개를 돌려버렸다고 할까.
두 언론은 ‘국가정보원은 무슨 근거로 양우공제회를 만들었는가’란 근본적인 문제를 따졌어야 했다. 양우공제회는 국가공무원법 등을 지키며 적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추적했다면, 두 언론은 ‘국가정보원 개조’까지 거론될 수 있는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품어볼 수 있음직한 의문은 “김대중 정부의 국가정보원은 비자금을 운영하지 않았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그 어떤 관계자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국가정보원 재정 운영에는 제도상으로 허점이 있다는 것이 딥 스로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앞서 설명했듯 국정원에서 자금 관리를 책임지는 자리는 기조실장이다. 기조실장은 국정원의 자금관리를 책임지는 ‘재무관’을 겸하고 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재무관(기조실장) 밑에는 2급 공무원인 예산관과 지출관이 따로 있었다.
김기섭씨가 운영차장을 하던 시절에도 예산관(강모씨)과 지출관(김모씨)이 따로 있었다. 김기섭씨는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예산관과 지출관의 업무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예산관은 안기부의 각 부서로부터 예산 신청을 받아, 재무관인 나(운영차장)의 승인을 받아 예산을 배정한다. 그리고 예산 지출이 필요할 때는 역시 재무관인 나의 승인을 받아 지출관에 알려주면, 지출관은 돈을 지불해준다.”
예산관은 예산을 짜는 자리고 지출관은 안기부 돈이 나간 것을 마지막으로 체크하는 감독관인 것이다. 딥 스로트들에 따르면 과거 군사정권에선 대통령의 심복을 지출관에 임명했다고 한다. 지출관이 대통령의 심복이라는 사실을 알면 중정부장 혹은 안기부장, 기조실장은 돈문제에 관해서는 대통령을 속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의 국가정보원에서는 지출관 직제가 없어지고 예산관이 지출관을 겸하고 있다. 김영삼 정권의 안기부는 지출관이 있었음에도 안기부 계좌에 비자금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은 마지막 ‘골키퍼’(비록 실점률이 높기는 하지만)마저도 치워 버린 것이다.
김영삼 정권의 안기부가 부패한 이유 중의 하나는 YS의 측근이자 정치인인 김기섭씨를 운영차장에 임명한 데 있다(김기섭씨는 호텔신라 상무와 삼성전관 전무를 하다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의 특보가 되었다). 수시로 손을 벌리는 정치인과 가깝게 지낸 사람이 운영차장을 맡았으니 부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지출관이 사라진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에서는 두 명의 정치인이 기조실장을 지낸 바 있다.
지난 7월10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씨 비리를 수사해온 대검 중수부(金鍾彬 검사장)는 임동원(林東源) 전 국가정보원장과 신건(辛建) 현 국가정보원장이 김홍업씨에게 떡값 명목으로 각각 2500여 만원과 1000여 만원을 제공했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또 중수부는 국정원에서 발행한 7200여 만원 상당의 수표가 김홍업씨 관련 계좌에 여섯 차례 유입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장이 대통령 아들에게 떡값을 주고 국정원 자금이 대통령 아들에게 전달된 이유는 무엇일까. 2500만원을 떡값으로 주려면 국정원장의 판공비는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국정원 주변에서는 국방장관을 지내고 국정원장이 된 모 인사가 “국정원장의 판공비가 국방장관의 판공비보다 훨씬 더 많은데 놀랐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국정원측은 신원장이 홍업씨에게 준 떡값에 대해 개인 돈이라고 해명했다. 역시 홍업씨에게 떡값을 주었던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 임동원씨의 측근은 “임특보는 국정원장 재임시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대답을 전해왔다.
1부에서 밝혔듯 양우공제회 기금을 관리하는 총책임자는 국정원 기조실장과 예산관이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에서는 지출관 직제를 없애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딥 스로트들은 “과연 지금의 국정원은 국정원 예산과 양우공제회 기금을 분명히 구분해서 운영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이들이 이러한 의문을 던지는 이유는 요란하게 진행됐던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 개혁이 국정원 지배 계급만 교체한 ‘인적(人的) 개혁’에 한정되고, 국정원의 직제는 지출관을 없애는 등 개악을 초래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양우공제회와 국정원 비자금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국정원 관계자로들부터 “세계 어느 나라의 언론이 국가 정보기관을 낱낱이 취재하느냐. 이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다”라는 항변을 들었다. 국정원측은 양우공제회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충분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기자는 국가정보기관에는 공작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실제로 국정원 예산에는 용처를 정하지 않아 공작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당한 액수의 예비비가 편성되어 있다.
정보기관에는 공작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자금은 정(情)-정(政) 유착 이라는 의혹을 받지 않도록 사용되어야 한다. 또한 국정원은 비자금 조성과 운영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개혁돼야 한다. 그래야 국정원 직원들이 상조회라는 양우공제회가 의혹의 대상이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정보원을 음습한 기구로 보고 있지만 국정원에는 정의감을 갖고 국익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상당히 진척되었음에도 국정원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여전히 국민으로부터 비난받고 있는 데 대해 답답해한다. 이들은 “국가정보기관이 비난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국가정보기관 내에 거액의 비자금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자금을 도려내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가정보기관으로 만드는 첫걸음이다”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정치권과 결탁해온 관행을 혁파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가정보기관을 만들 것”을 주장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이들은 지독하리만치 국정원 편이다. ‘국가정보기관 바로 세우기’를 위한 이들의 주장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국가정보원 직원의 상조회인 양우공제회를 적법한 기관으로 만들고, 국가정보기관의 음습한 비자금이 이곳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양우공제회가 미처 적법성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 국정원을 개혁하다 보면, 양우공제회도 개혁의 칼날을 맞게 되고 그 결과 직원들에게 돌아갈 혜택마저 줄어드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한다.
둘째는 더욱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들은 국가정보기관 내에서 비자금이 횡횡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라고 요구한다. 이들은 집권 세력과 국가정보기관이 야합하는 근본원인이 이 비자금에 있다고 본다. 정권 교체기가 되면 이 비자금은 국가정보기관 어디엔가로 깊숙이 숨어든다. 그리고 개혁의 폭풍이 지나간 후 나타나 순식간에 ‘정(情)-정(政) 유착’을 시도한다.
이들은 “정-정 유착은 국가정보기관을 장악한 세력이 비자금 운영권을 쥐는 순간 바로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정권 말기가 되면 ‘정-정 유착’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김은성(金銀星) 게이트 같은 각종 스캔들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국정원이 개혁되길 바라는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소신 있는 정보맨이 나올 수 없다. 정치인이 원하는 정보와 그들이 원하는 공작만 하는 비굴한 정보기관이 된다. 국가정보기관이 바로 서려면 공작금과 무관한 비자금을 원천적으로 도려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정원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거론하며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의 이니셜만 거론해도 국가정보원은 금방 추적해낼 수 있다. 따라서 이 기사에서는 이들을 ‘딥 스로트(deep throat·내부 고발자)’로 적기로 한다.
기자는 딥 스로트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다각도로 취재했다. 그 결과 그들의 주장은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딥 스로트들의 주장을 토대로 양우공제회와 국가정보기관 비자금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알아보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국가정보기관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모토는 ‘정보는 국력이다’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상당수의 국정원 직원은 ‘정보는 국력이다’는 말은 정보통신부에나 적합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국가정보기관의 모토는 역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정원과 관계된 조직 명칭에는 ‘양지(陽地)’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퇴직 직원 친목단체의 이름이 ‘양지회’고, 여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는 ‘양지회보’다. 국정원에서 발행돼 국정원 안에서만 유통되는 월간지도 ‘양지’란 제목을 붙이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의 상조회인 양우공제회도 볕 ‘양(陽)’자와 벗 ‘우(友)’자를 쓴다. 양우공제회는 김계원(金桂元)씨가 중앙정보부장(제5대)을 하던 1970년 9월 창설되었다.
양우공제회를 분석하기에 앞서 공제회 일반에 대해 설명해보자. 공제회란 상호부조를 위한 ‘계(契) 모임’에서 출발했다. 공제회는 크게 친목을 목적으로 한 ‘순수 공제회’와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 공제회’로 나눠볼 수 있다.
순수 공제회는 회원 부담금으로 마련한 기금을 어려운 일을 당한 회원에게 빌려주는 전통적인 계모임에 가깝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은행 거래를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제회 기금을 은행에 적립해 이자를 불리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행위로 판단하지 않는다.
회원 부담금을 은행에 넣어두었다가 길·흉사를 당한 회원이 있으면 꺼내 부조하는 공제회는 순수 공제회라고 판단한다. 순수 공제회의 범위를 굳이 좁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영리 공제회를 제외한 모든 공제회는 순수 공제회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영리 공제회는 오로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공제회다. 회원들이 낸 부담금으로 펀드를 운영하거나 주식 등에 투자하고 여기서 나온 이윤을 회원에게 돌려준다면, 이는 전형적인 영리 공제회에 해당한다.
두 가지 공제회 중 공무원은 순수 공제회에는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영리 공제회라면 가입하기 앞서 꼼꼼히 법적인 문제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유는 ‘공무원은 공무 이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는 다른 직무를 겸직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는 국가공무원법 제64조 ① 때문이다.
공무원의 영리 추구를 금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무원이 공무를 다루는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재테크에 활용한다면, 그는 빠른 시간 안에 축재(蓄財)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공무원법으로 영리 추구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산을 증식하고 싶은 것은 본능에 가까운 인간의 소망이다. 천편일률적으로 공무원은 영리를 추구할 수 없다고 제한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대통령령(令)과 같은 하위 법령으로 공무원의 영리 추구를 금지하는 범위를 규정해놓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하위 법령 중의 하나가 국가공무원복무규정 제25조인데, 이 규정의 문구는 난삽하기 그지없다. 이 규정을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복무과 측의 유권해석을 들어도 뭐가 뭔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무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 사기업체의 이사나 감사 등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 공무원은 현저하게 영리를 추구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도 없다고 규정해놓고 있다. 때문에 공무원은 영리 공제회에 가입할 때 법적인 문제를 곰곰이 검토해봐야 한다.
공무원의 월급은 ‘박봉(薄俸)’으로 알려져 있다(박봉은 일류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다. 공무원보다 적은 보수를 주는 기업도 부지기수다). 상대적으로 박봉인데 관계 법령 때문에 재산증식의 기회마저 빼앗겨버린다면, 공무원의 사기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공직에 진출하려는 젊은 엘리트도 크게 줄어들어 급기야 국정 수행에 차질을 빚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공무원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역대 정권이 도입한 것이 공제회 제도다. 이 공제회는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진짜 영리 공제회다. 때문에 공무원의 영리 추구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을 어겼다는 시비가 일 소지가 있으므로, 역대 정부는 공제회를 법률기관으로 만들었다.
1971년 박정희(朴正熙) 정부는 교사에게 재산증식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대한교원공제회법을 만들고, 1983년 전두환(全斗煥) 정부는 오지를 전전하는 군인을 위해 군인공제회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노태우(盧泰愚) 정부는 1990년 하위직이 많은 지방직 공무원을 위해 대한지방행정공제회법을, 1991년에는 경찰과 소방공무원을 위해 경찰공제회법과 대한소방공제회법을 만들었다.
이로써 공공성이 강한 다섯 개 분야의 공무원은 합법적으로 영리 공제회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국가공무원법과 규정의 금지조항을 지키기 위해 공제회는 철저히 비(非) 공무원 조직으로 구성된다. 퇴직 공무원은 공무원 정서에 익숙하지만 법적으로는 비 공무원이다. 퇴직 공무원으로 공제회 ‘이사회’를 만들고 회원으로부터 거둔 기금을 투자하는 실무부서는 투자 전문분야에 근무한 민간인을 영입해 구성한다면 국가공무원법을 지켜가며 공제회를 운영할 수 있다. 모법을 갖고 생겨난 공제회는 전부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상식을 토대로 양우공제회를 살펴보자. 대한민국 법전을 수백번 들쳐봐도 ‘양우공제회법’이나 ‘국가정보원 직원 공제회에 관한 법’을 찾아낼 수가 없다. 양우공제회는 가장 오래된 적법 공제회인 교원공제회보다 1년 앞서 생겨나, 32년간이나 존속해왔는데도 모법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영리를 추구하기 위해 골프장을 매입했으니, 국가정보원은 국가공무원법을 어겼다는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 현직 공무원들 이사로 등재
양우공제회를 설립한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국정원 측은 “법인 설립을 규정한 민법(제3장)에 따라 법인을 세웠다”고 답변한다. 국정원 측의 이러한 대답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정부 기관도 민법에 의거해 공제조합을 세운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공제회법이 없는데도 공개적으로 공제회를 운영하고 있는 중앙부처는 정보통신부와 철도청 두 군데다. 이곳은 공제회법이 없어서인지 공제조합(체신공제조합, 철도청공제조합)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양지공제회가 안고 있는 두번째 불법성은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진 전원이 현직 공무원이라는 점이다. 양우공제회의 현 이사장은 장종수(張悰洙)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이고, 기타 이사진은 국정원의 1급(국장)·2급(단장)·3급(과장)·4급 등 직원의 대표로 구성돼 있다. 과거에도 양우공제회 이사진은 항상 국정원에 근무하고 있는 현직 공무원이었다.
이는 ‘공무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의 임원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복무규정 25조 2호를 정면으로 어겼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바로 이 조항 때문에 모법을 갖고 있는 5대 공제회는 물론이고 파산한 체신공제회조차도 비공무원(퇴직한 공무원 등)으로 이사진을 구성하였다. “왜 현역 공무원이 영리 단체인 양우공제회의 임원을 맡고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 자신 있는 답변을 내놓은 국정원 관계자는 없었다.
양우공제회는 서울 강남의 ○○회관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양우공제회는 증권과 부동산 투자 전문가(비공무원)와 세금문제를 다루는 세무사(비공무원)를 고용했다. 그러나 양우공제회에는 이들 외에 현직 국정원 직원이 같이 일하고 있다. 현직 공무원이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에 근무하는 것은 ‘공무원은 영리를 추구함이 현저한 업무에 종사할 수 없다’고 규정한 국가공무원복무규정 25조 1호를 어겼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양우공제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가자 국정원 관계자는 “양우공제회는 박봉에 시달리는 하급 직원들의 퇴직 이후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부조단체다. 그러니…”라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양우공제회가 하급 직원을 위한 조직이라는 설명은 과연 옳은 것일까. 공무원 조직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국정원이야말로 고위직이 많은 조직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국정원은 대졸자를 대상으로 7급 직원을 뽑는데, 조기 퇴직을 선택하지 않는 한 대부분 4급까지 진급한다. 4급은 외교부를 제외한 일반 중앙부처에서 과장을 맡을 수 있는 고위직이다.
국정원은 대사급이 많은 외교통상부, 검사장급이 많은 법무부 그리고 장성이 많은 국방부를 제외하면, 1급 공무원이 가장 많은 부처다. 다른 부처에서 1급(관리관) 공무원은 기관실장을 비롯해 한두 명에 지나지 않지만, 국정원에는 ○○명인 본부 국장 전원, ○○명인 지부장 대부분이 1급 공무원이다.
국정원의 국장·단장·과장은 일반 중앙부처의 국장·심의관·과장보다 한 직급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위직원이 많다. 물론 국정원에도 운전을 하는 기사와 정문 방어를 담당하는 방호직 등 하급직 공무원이 있으나 7급 이상인 일반직에 비해 그 수가 적다. 이들을 핑계로 “양우공제회는 하급직을 위한 상조회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하급직을 위한 공제회는 오히려 모법을 갖고 탄생한 5대 공제회다. 군인공제회는 장기 하사부터, 경찰공제회는 순경부터, 소방공제회는 소방사(경찰의 순경에 해당하는 최말단 계급)부터, 지방행정공제회는 9급부터 가입을 허용한다. 하사나 순경·소방사·9급 공무원은 평생을 봉직해도 5급에 해당하는 직위에 오르기 힘들다(초등학교 교사도 비슷하다).
중앙부처 중에는 공제회를 갖지 않은 곳이 더 많다. 외교통상부·법무부·농림부·해양수산부·건설교통부·문화관광부 등은 공제회나 공제조합 없이, 공무원연금만으로 직원들의 노후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양우공제회의 불법성을 지적한 딥 스로트들의 지적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딥 스로트들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된 국정원 자금은 공개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양우공제회의 돈은 국정원 자금과 무관한, 직원들의 개인 돈으로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 돈은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하는데, 국정원은 양우공제회의 기금이 얼마인지, 감사가 이뤄지는 지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5대 공제회는 기금 운영을 공개하고 있다. 군인공제회와 교원공제회의 웹 사이트(mmaa.or.kr과 ktcu.or.kr/ktcu /index.html)는 회원들이 낸 기금의 총액이 얼마인지, 어디에 투자되었는지 등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5대 공제회는 자체 감사는 물론이고 국방부와 교육부 등 상급 기관의 감사를 받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기구인 감사원 감사와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국정감사까지도 받는다.
국가정보원에는 감사관실과 직원들의 비리를 추적하는 감찰관실이 있다. 양우공제회는 국가정보원의 산하기관이므로 국가정보원 감사관실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양우공제회는 국정원 감사관실의 감사는 물론이고 감찰실의 감찰도 받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양우공제회에는 이사회 멤버인 감사가 실시하는 내부감사만 있다.
딥 스로트들은 양우공제회의 기금이 국정원 직원에게서 나온 것인 만큼 국가정보원 감사관실의 감사를 받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딥 스로트들은 ‘블랙머니(국정원 비자금)’가 양우공제회로 숨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시에는 비공개를 전제로 감사원의 감사와 국회 정보위의 국정감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몇몇 딥 스로트로부터 퇴직시 양우공제회로부터 받은 ‘연구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공제회는 퇴직으로 인해 회원이 탈퇴할 때 그가 불입한 부담금(원금)에 소정의 이자를 더한 금액만 지급해 주어야 한다.
그외 정관이 정한 특별 상여금이 있으면 더 지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기금 유지를 위해서라도 선심성 지출을 삼가야 한다. 그런데 양우공제회는 1급 직원으로 퇴직한 사람에게는 월 120만원, 2급 퇴직자에게는 월 100만원, 3급 퇴직자에게는 월 80만원 정도의 연구비를 6년간 지급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구비가 회원이 불입한 부담금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공무원연금처럼 직급별로 연구비 액수가 결정될 이유가 없다. 기자는 연구비의 정체를 밝히려 했으나 실패했다. 연구비의 정체는 국정원을 조사할 수 있는 국회 정보위나 수사권을 가진 기관에서 추적해보아야 할 것이다.
행정부에서 법조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곳은 법제처 법무관리관실이다. 법제처 법무관리관실의 ㅈ씨는 “정부기관이 공제회법 없이 공제회를 만들 수 있는가”란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공무원 몇몇이 사적으로 공제회를 만들고 큰 문제없이 운영한다면 용인할 수 있다. 그러나 부처 공무원 전체가 관여한 공제회라면 모법을 가지는 것이 좋다. 법인 형태로는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양우공제회가 적법하게 운영되려면 우선 양우공제회법부터 제정해야 한다. 양우공제회는 이사진과 실무진을 전원 비공무원(국정원 퇴직자나 투자 전문가)으로 교체하고, 국정원 감사관실 등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스로트들은 양우공제회가 관리하는 돈 중에는 국가정보기관의 비자금이 섞여 있을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과연 그러한가. 그러나 국가정보기관의 예산 내역도 알기 어려운 터에 비자금까지 알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몇몇 사건을 통해 국가정보기관 비자금이 꼬리를 드러낸 바 있으므로 그 사례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국가정보기관의 비자금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현된 민주화가 아니었으면 꼬리가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탄생할 정도로 민주화는 거듭되는데, 정보기관은 구태(舊態)를 반복하다 제 스스로 비자금을 드러내고 말았다.
2000년 여름 검찰은 2000억원대의 국가안전기획부 비자금을 발견했다. 이 비자금은 1995년 6월27일 지방선거가 치러지기 직전과 1996년 4월11일 15대 총선이 실시되기 얼마 전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에 주로 제공되었다.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비자금을 폭로한 것이 1995년 10월19일이었다. 안기부는 박의원이 폭로하기 전에 지방선거를 위해 257억원을 신한국당에 제공했고, 노씨 비자금이 만천하에 공개된 다음인데도 ‘겁도 없이’ 무려 940억원의 블랙 머니를 또 다시 살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 돈은 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일로 덜미가 잡혔다. 경찰대학 5기 졸업생인 이상식 경정(현재 경찰청 수사1계장)은 외무고시에 합격한 실력파다. 경찰은 고시 합격자에게는 바로 경정계급을 부여한다. 1994년부터 이경정은 홍콩 주재 총영사관에 치안관(영사)으로 나가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중국계 폭력조직인 ‘삼합회(三合會)’가 한국으로 마약을 밀수출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때문에 이경정은 삼합회를 추적하는 홍콩경찰의 형사수사국과 마약 유통을 단속하는 마약수사국 관계자들을 자주 만났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1995년 11월, 이경정은 알고 지내던 홍콩경찰청 마약수사국 자금조사과 요원으로부터 “한국과 관련된 아주 이상한 첩보가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일단의 금융 거래 자료를 건네 받았다. 홍콩 금융기관은 관계 법령에 따라 200만달러 이상이 입·출금된 계좌가 있으면 그 계좌에 관한 정보를 홍콩경찰에 통보한다. 동시에 예금주에게 ‘당신의 거래 명세를 사정기관에 알려줬다’고 통보해야 한다.
이경정이 받은 자료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홍콩지점에 개설된 한국인 ‘만석최’씨의 계좌와, 홍콩의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에 개설된 ‘기춘호’씨의 계좌 자료였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만석최 계좌에는 1994년 11월24일과 1995년 5월12일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100만달러가 프랑스 파리에서 입금된 사실이 찍혀 있었다. 만석최 계좌에서는 1994년 12월9일과 1995년 6월에 모두 386만달러가 빠져나가,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의 기춘호 계좌로 들어가 있었다(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기 직전 자금 이동이 있었던 것이다).
홍콩경찰은 이 돈이 마약거래 자금일 것으로 추정하고 내사했으나 예금주가 홍콩에 살지 않는 한국인이라 이경정에게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 달라”며 자료를 넘겨준 것이다. 그 즉시 이경정은 두 사람의 여권번호와 은행 거래 명세 등을 적은 세 쪽짜리 첩보 보고서를 만들어 경찰청으로 보냈다.
이때 이경정은 ‘만석최’는 성(姓)을 뒤로 보낸 영어식 표기니 한국 이름은 ‘최만석’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기춘호도 ‘호기춘’이 돼야 하는데, ‘기춘호’란 어감이 너무 자연스러워 첩보 보고서에 그대로 ‘기춘호’로 적는 실수를 범했다.
이것이 바로 경부고속전철 로비를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이 첩보를 토대로 경찰 외사3과와 서울지검 외사부가 차례로 내사에 나서 어느 정도 자료를 축적했다. 두 기관에서 추적한 내사 자료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1998년 3월 대검 중수부로 넘어갔다. 서울지검 외사부가 내사할 때부터 검찰은, 최만석씨가 고속철도 차량 공급업체인 프랑스의 알스톰사를 위해 일했으며 김영삼 정부의 실세그룹인 상도동계와 아주 가깝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있었다.
중수부가 내사에 들어가자 최만석씨는 이를 눈치채고 재빨리 영주권이 있는 미국으로 도주했다. 이런 가운데 알선수재죄로 기소할 수 있는 시효 만료일이 다가오자 대검은 신병이 확보된 호씨만 먼저 기소했다. ‘나 홀로’ 법정에 선 호씨는 “모든 로비는 최씨가 알아서 했다. 나는 최씨를 알스톰에 소개만 했다”고 주장했다(호씨는 알스톰사 한국지사장인 프랑스인과 재혼했다).
호씨는 2000년 10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2001년 2월에는 서울고법 형사3부에서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43억80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 2년도 함께 선고받아 확실히 풀려나게 되었다.
▶ 외환은행 퇴계로지점의 안기부 계좌
호씨 사건이 일단락되는 사이 중수부는 최만석씨 계좌에서 나온 돈을 좇다가, 최씨의 돈이 황명수(黃明秀) 당시 새천년민주당 고문의 계좌로 흘러간 사실을 포착했다. 그 돈의 송금처를 따라가자 1995∼96년 민자당 후신인 신한국당의 사무총장을 지낸 강삼재(姜三載) 의원이 관리하는 계좌가 나왔다.
그런데 강의원의 계좌로는 엄청난 뭉칫돈이 들어왔다가 잘게 쪼개져 신한국당 지구당위원장들에게 보내진 사실이 포착됐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995년 6월의 지방선거 직전 강의원 계좌에서는 257억원이 유입됐다가 신한국당 후보들에게 흘러갔고, 1996년 4·11총선 직전에는 940억원이 흘러들었다가 총선에 출마한 신한국당 후보 174명과 국민회의 후보 3명, 자민련 후보 2명 그리고 무소속 후보 1명에게 흘러갔다. 중수부는 누가 이렇게 많은 돈을 주었는지 따라갔는데 어이없게도 국가안전기획부의 계좌가 발견되었다.
안기부의 책임자는 부장이다. 그러나 안기부에서 돈을 만지는 이는 ‘재무관’ 타이틀을 갖고 있는 운영차장(지금의 기조실장)이다. 안기부에서 신한국당 강삼재 의원 계좌로 1197억원을 보낼 때의 안기부 운영차장은 김기섭(金己燮)씨였다. 대검 중수부는 김기섭-강삼재 커넥션과 안기부가 관리하는 계좌를 찾아낸 것이다.
정보기관은 비밀을 생명으로 하는 조직이라, 예산과 인원 조직 등은 철저히 비밀로 한다. 때문에 정부에서 나온 예산도 수십번 세탁한 후 사용한다. 돈 세탁은 매우 복잡한 것 같지만 실제론 단순하다. 돈은 주 거래은행에 그대로 둔 상태에서, 서류상으로만 이 은행 저 금고의 수많은 통장을 거치며 수십번 쪼개졌다 합쳐졌다 하면서 흘러가는 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많은 통장은 전부 ‘깡통’이고 진짜는 주거래은행에 있는 한 개 혹은 몇 개 계좌에 불과하다. 안기부가 갖고 있었던 진짜 계좌 중의 하나가 외환은행 퇴계로지점에 세기문화사란 이름으로 개설된 계좌였다.
이 진짜 계좌 속에는 매년 정부에서 보내주는 안기부 예산이 들어온 흔적이 있었다. 정부 예산은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국고 수표로 입금되기 때문에 중수부가 이를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 진짜 계좌에는 국고 수표말고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돈이 들어온 흔적이 있었다. 중수부는 여기서 수사를 멈췄다. 진짜 계좌로 들어온 정체불명의 돈이 어디서 왔는지는 추적하지 않은 것이다.
2001년 1월 검찰은 김기섭·강삼재씨가 국고 1197억원을 유출했다며, 두 사람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과 안기부법 위반 혐의로도 기소했다. 그러나 김기섭씨는 검찰과 법원에서 일관되게 “국고는 헐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국고와 비자금이 안기부 계좌에서 ‘짬뽕’되기는 했지만, 총액 개념으로는 단 한푼의 국고도 축내지 않았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었다.
김기섭씨는 왜 안기부 계좌에 비자금이 들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김기섭·강삼재씨 변호를 맡고 있는 변호사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런데 변호인의 설명에서 새로운 사실 이 추가됐다. 변호인 말을 옮긴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金賢哲)씨가 관여한 나라사랑운동본부(나사본)는 14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남은 대선 잔금 70억원을 갖고 있었다. 나사본은 이 돈을 외환은행 퇴계로지점에 넣어 세탁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고 있어 마땅히 돈 세탁을 할 곳이 없어 나사본은 안기부 계좌를 이용했다. 안기부 계좌니까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안기부 계좌에는 국고 수표뿐만 아니라 나사본 돈 같은 다른 돈도 들어와 있었다. 그러니 총액 개념으로는 국고를 단 한푼도 축내지 않았다는 김기섭씨의 주장은 사실이다.”
형사재판은 검찰이 기소한 것만 가지고 유무죄 여부를 따진다. 중수부는 김기섭씨가 안기부 비자금을 조성한 데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고, 국고를 축낸 것만 문제 삼아 기소했다. 따라서 국고를 축내지 않았다는 것만 증명하면 두 사람에 적용된 특가법 위반혐의는 무죄를 받아낼 수도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변호인 측은 안기부 비자금 부분을 공개한 것이다. 안기부 비자금은 이 비자금과 연루된 사람들 스스로에 의해 폭로되고 있는 것이다.
공금횡령죄에 대한 시효가 소멸되기 직전인 2001년 1월22일 국정원은 법무부장관을 소송 대리인으로 지정해 신한국당의 후계자인 한나라당과 김기섭·강삼재씨를 상대로 4·11 총선 전에 안기부에서 나간 940억원과 그 이자를 돌려달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1995년 총선 때 지원한 257억원은 이미 시효가 지나 소송을 낼 수 없다). 국정원이 이러한 소송을 냈다는 것은 940억원을 국고로 보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들은 ‘국고를 여당에게 지원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신한국당에 간 돈은 정부 예산이 아니라 안기부가 조성한 비자금이라고 주장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비자금 모금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지방에 있는 국정원 지부는 대개 시내에 있었다. 그런데 도시가 커지면서 시내가 복잡해지고 보안 문제까지 생겨 외곽으로 지부를 옮긴 곳이 많았다. 시내는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외곽에 더 넓은 땅을 사서 좋은 건물을 지어도 돈이 남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해서 남은 돈은 재정경제부로 돌려줬어야 하는데, 안기부는 돌려주지 않고 비자금으로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