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통신업계의 거물이자 스웨덴의 간판기업인 에릭슨(Ericsson)이 1876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기업 신용등급은 투기수준으로 추락했고, 주가는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뒤늦게 대량 감원에 나서는 등 몸부림을 쳐봤지만, 적자행진은 멈출 줄 모른다. 무엇이 에릭슨을 병들게 했을까. 에릭슨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에릭슨의 수치(羞恥)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7월26일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에릭슨의 기업신용등급을 ‘Baa3’에서 투자부적격(투기) 수준인 ‘Ba1’으로 하향 조정했고,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도 투자적격 등급의 맨 아래 단계인 ‘BBB-’로 떨어뜨릴 방침이다. 우리가 외환위기 때 신용등급이 투기등급까지 하락했던 것을 생각하면 현재 에릭슨은 기업으로서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는 셈이다. 주가도 연일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 중 하나로 인정받던 거대 통신기업이 왜 이렇듯 추락의 조짐을 보이고 있을까.
에릭슨은 ‘통신의 역사’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노벨상, 바이킹, 축구, 길고 음울한 겨울, 프리섹스…. 하지만 스웨덴의 기업을 말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볼보와 에릭슨을 떠올릴 것이다. 자동차 회사 볼보(승용차부문)가 미국 포드의 계열사로 편입된 터라 일반인이 꼽을 만한 스웨덴 기업은 이제 에릭슨이 거의 유일하다.
특히 세계에서 휴대전화 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를 들라면 대개는 북유럽 3국, 그중에서도 노키아의 핀란드와 에릭슨의 스웨덴을 꼽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틀린 답이지만, 스웨덴과 핀란드가 이동통신 등 정보통신 최강국의 반열에 드는 것은 틀림없고, 바로 그 중심에 노키아와 에릭슨이라는 거대 통신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에릭슨은 단지 규모에서만 세계적인 통신회사인 것은 아니다. 에릭슨의 기업사는 통신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에릭슨은 1876년 스웨덴의 L. M. 에릭슨(Lars Magnus Ericsson)이 전신기 제조를 위해 설립한 회사다. 에릭슨이 설립된 1876년은 벨(Alexander Graham Bell)이 전화기를 발명한 해이기도 하다.
1800년대 초만 해도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인구의 대부분은 빈농이었다. 소위 ‘산업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유럽의 여타 제국들이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국부를 축적하고 식민지 건설을 통해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 시기에도 스웨덴은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역사가 역설적으로 새로운 문물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전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에릭슨은 전화기가 발명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재빠르게 전화기 사업에 뛰어들었고, 전화 발명가이자 그의 경쟁자인 벨보다 더 싼 가격에 전화기를 공급하면서 시장을 넓혀갔다. 스웨덴은 유럽의 변방이었지만, 이처럼 기민한 신기술 수용능력을 바탕으로 전화가 도입된 지 12년 만인 1888년에 전국적인 전화망 구축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에릭슨도 거대 통신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스웨덴은 내수시장이 협소했기 때문에 에릭슨은 1890년부터 본격적으로 글로벌 사업을 전개했다. 독일, 러시아 같은 주변국은 물론 영국, 미국, 남미 등에 전화기와 교환기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멀리 중국으로까지 시장을 확대했다. 그 무렵 에릭슨은 한국과도 인연을 맺었다. 1896년 에릭슨은 고종황제를 위해 궁내부에 최초로 교환기와 전화기를 공급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도 이 전화와 관련된 대목이 있다. 1896년 백범이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인천감옥에 수감됐을 때 고종이 인천 감리에게 전화를 걸어 감형을 명령, 목숨을 살려줬다는 것.
우리나라에는 아직 근대적인 기업의 씨앗조차 뿌려지지 않았던 시기에 에릭슨은 앞선 통신기술과 글로벌 사업전략을 통해 동양의 변방인 우리나라에까지 시장을 넓혔던 것이다. 1897년 에릭슨은 전체 매출 중 19%만을 스웨덴에서 올렸고, 나머지 65%는 다른 유럽 국가, 16%는 미주를 비롯한 기타지역에서 기록했을 정도다.
유·무선 아우른 경쟁력
에릭슨이라는 활동적이고 정력적인 기업을 통해 스웨덴의 정보통신산업도 점차 선진국 수준으로 다가갔다. 스웨덴은 1930년대만 해도 전화 보급률이 8%에 지나지 않았으나, 1950년대에는 23%로 상승, 미국 수준(27%)에 근접하는 통신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무선통신 부문에서도 스웨덴과 에릭슨은 콤비를 이루며 시장을 선도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이동통신은 전화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AT&T의 벨연구소(현재는 루슨트 산하)에서 처음으로 개념화했다. 그러나 무선통신은 산림으로 뒤덮인 광대한 국토를 가진 스웨덴에서 유선통신보다 더 적합한 통신수단이다. 스웨덴은 임업의 나라다. 숲에서 벌채된 나무는 강을 따라서 뗏목으로 운반하는데, 이 과정에서 목재회사들은 벌채목의 운송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이런 사정이 자연스럽게 무선통신 보급을 촉진했다.
그 결과 스웨덴에선 현대적인 의미의 이동통신이 보급되기 10년 전인 1970년대 초반에 거의 모든 산림지역을 커버하는 무선 네트워크가 구축됐고, 약 10만대의 차량에 무선장비가 장착됐다. 우리가 CDMA 상용화 과정에서 경험한 것처럼 자국 시장에서 기술과 제품혁신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그 분야 기업의 경쟁력도 높아진다. 에릭슨도 스웨덴 내수 시장의 넓고 탄탄한 무선통신 활용기반을 토대로 1981년 1세대 아날로그 휴대전화(자동차 전화)를 상용화하면서 이동통신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유선통신과 무선통신의 양대 영역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구축한 에릭슨은 1990년대 들어 이동통신과 인터넷 혁명을 계기로 세계적인 우량기업으로 도약했다. 특히 이동통신 기지국 등 장비부문에서는 루슨트, 모토롤라, 노키아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 기업으로 부상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휴대전화 신호의 40%가 에릭슨의 이동통신 장비를 통해 이뤄진다고 할 정도다.
에릭슨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비동기식 3세대 이동통신(WCDMA)을 주도하며 21세기 세계 최고 통신기업으로의 웅비를 준비하게 된다. 1999년에는 CDMA의 원조격인 미국 퀄컴사의 이동통신 장비부문마저 인수하면서 GSM(유럽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화한 이동통신 방식)과 CDMA(한국을 비롯한 환태평양 지역에서 사용되는 이동통신 방식)를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인터넷과 이동통신 붐이 시작되던 1995년, 에릭슨의 주가는 주당 2달러(주식분할과 배당금을 조정한 ADR 가격 기준)였다. 하지만 2000년 3월 초에는 주당 26달러로 올라 에릭슨은 시가총액 2100억달러의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스웨덴 GDP의 8%를 담당하는, 글자 그대로 국민경제를 지탱하는 ‘국가대표 기업’이 된 것이다.
스웨덴의 또다른 간판기업인 볼보가 미국의 포드에 인수되는 상황에서도 IT산업의 거인 에릭슨은 건재를 과시하며 스웨덴의 자존심을 지켰다. 에릭슨은 3세대 이동통신의 경쟁력을 발판으로 4세대 이동통신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블루투스(Bluetooth)와 같은 새로운 통신기술의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세계 통신산업의 중심축을 형성했다.
잔치는 끝났다?
버블(Bubble)은 기대가 기대를 낳는 몰입의 과정에서 발생한다. 역사상 최초의 버블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튤립 버블(Tulip mania)로 알려져 있다. 1635년경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의 구근 가격이 하룻밤에도 2∼3배씩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거품이 빠졌지만, 멋모르고 여기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꽤 오랜 기간 동안 경제적 후유증을 겪었다. 이후에도 철도버블, 방송버블, 전기버블 등 신산업의 태동은 항상 버블과 더불어 시작되곤 했다.
통신산업의 위기도 인터넷붐에서 촉발된 과도한 기대에서 비롯됐다. 통신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산되면서 인터넷 신천지를 꿈꾸는 수많은 통신서비스 업체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거품 가득한 주식시장에서 유입된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앞다퉈 광통신망 부설에 뛰어들었다. 수요나 경쟁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현금이 부족하면 주식이나 회사채를 발행하면 됐고, 그것도 어려우면 통신장비 업체에게 자금융통을 요청하면 해결됐다.
이동통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간 40%이상 성장하던 시장환경을 근거로 미래 수요에 대한 예측은 하루가 멀다 하고 널뛰기를 거듭했다. 가령 2001년의 수요에 대해 1999년 말에는 약 2억2000만대 정도로 전망했지만, 2000년 초가 되자 6억대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다. 업체들은 누구나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하고 화상통신을 하는 미지의 세계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누구도 이러한 장밋빛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유럽의 거대 통신기업들은 3세대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에서 무려 12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써넣었다.
이처럼 과도한 투자는 공급과잉과 기업의 부채확대로 이어지며 업계의 채산성을 옥죄기 시작했다. 공급과잉은 특히 광통신 부문에서 극심했다. 북미에서만 2000억달러 이상이 과잉투자되어 장거리 광통신망의 경우 전체 용량의 4∼7%만 사용할 정도였다. 기업들이 기술발전 속도와 시장증가 속도를 함께 고려하지 않아 생긴 결과였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전세계 광통신 수요는 1998년에서 2001년 사이에 4배 가량 증가했으나, 광통신 용량은 무려 500배나 늘었다고 한다. 당연히 통신요금이 급락했고, 무리한 투자로 사업을 확장한 기업들은 과도한 부채와 현금부족으로 위기를 맞았다.
이동통신 부문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업계는 고성장하는 휴대전화 시장만 믿고 생산증대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동통신 보급이 포화점에 이르면서 시장은 일순간에 정체되며 급기야는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재고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이것이 손익악화의 주범이 됐다.
더욱이 이동통신 서비스업체는 주파수 경매를 위해 끌어다 쓴 빚 때문에 생존마저 위협받게 됐다. 전세계 통신 서비스 업체들의 빚이 100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따라 서비스 업체들이 줄이어 도산하면서 부실채권이 쌓여갔고, 수주량도 급전직하했다. 이제 통신주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도 어려워졌다. 특히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들이 3세대 사업을 잇따라 연기하고 나서자 지난 10년간 3세대 기술개발에 매진해온 에릭슨은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드디어 파티가 끝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업분리, 감원으로 안간힘
2001년 중반을 넘어서자 거대 통신기기 업체들이 하나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세계 최대 통신기업의 하나인 루슨트는 파산직전에 몰리면서 프랑스의 알카텔에게 인수될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전자산업의 기초를 닦았고, 레이저를 개발해 광통신 시대를 열었으며, 이동통신 기기를 만들어 정보통신혁명에 기여한 루슨트의 추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동통신의 총아라 할 만한 모토롤라도 미국내 휴대전화사업의 대부분을 축소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이밖에 캐나다의 노텔(Nortel)은 사상 초유의 190억달러 분기 손익을 기록했고, 성장의 대명사였던 시스코도 적자로 돌아섰다.
에릭슨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에릭슨의 위기는 휴대전화 사업에서 시작됐다. 2000년까지만 해도 에릭슨의 휴대전화는 세계 3위의 글로벌 사업이었다. 휴대전화 전문기업인 노키아와 아날로그 시대의 선두주자인 모토롤라를 제외하면 에릭슨은 세계 최강의 휴대전화 업체였다. 그러나 지난해 휴대전화 시장이 갑자스레 축소되자 에릭슨은 대규모 재고부담에 시달리며 분기마다 수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휴대전화 업체가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으나 노키아와 삼성전자만은 예외였다. 노키아는 휴대전화 사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우수한 경영능력을 갖췄다. 모토롤라나 에릭슨 같은 전통적인 통신기업들이 각기 다른 설계를 가진 수십, 수백종의 휴대전화 모델을 가지고 사업을 운영할 때 노키아는 불과 몇 종류의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외부 디자인만 변형시킨 ‘플랫폼’이라는 컨셉트를 도입해 부품 조달과 관리, 원가 등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모델은 수백 가지라도 기본설계는 유사하기 때문에 부품의 공용화가 가능했고 자재관리도 용이했던 것이다.
반면 에릭슨이나 모토롤라는 제품 구색마다 서로 다른 부품을 구매하고 조달해야 했기에 재고처리, 하청업체 관리 문제 등으로 생산의 효율화를 달성할 수 없었다. 시장형편이 좋던 시절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시장이 위축되고 휴대전화 가격이 떨어지면서 흑자기업과 적자기업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게 됐다. 결국 에릭슨은 독자적인 휴대전화 사업을 포기하고 소니와 50대 50의 합작사를 설립해 사업을 분리했다.
하지만 골칫거리였던 휴대전화 사업을 분리한 후에도 에릭슨의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이동통신 장비 수주가 계속 격감하고 적자가 누적되자 에릭슨도 감원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에릭슨은 10만명을 헤아리던 인력을 8만명 수준으로 줄이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그렇게 안간힘을 썼건만 에릭슨은 결국 매출 221억달러, 적자 20억달러로 지난해를 마감했다. 실적으로만 보면 모토롤라가 300억달러 매출에 39억달러 적자, 루슨트가 205억달러 매출에 162억달러 적자, 노텔이 175억달러 매출에 273억달러의 적자를 냈기 때문에 에릭슨이 선방(善防)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환경변화에 둔감
그러나 에릭슨의 근본적인 문제는 최근 들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에릭슨과 마찬가지로 홍역을 치렀던 모토롤라 같은 업체들은 백지상태에서 다시 출발, 재기의 가능성을 보이며 선전하고 있는데 반해 에릭슨은 올 들어서도 1·4분기, 2·4분기 연속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회생 가능성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확산시켰다.
이런 상황은 주가하락으로 직결됐다. 지난 1년간 모토롤라와 노키아의 주가가 35% 안팎씩 하락한 데 비해 에릭슨은 무려 90% 가까이 떨어졌다. 노키아의 시가총액이 약 600억달러기 때문에 노키아 주식 12% 정도를 살 돈이면 에릭슨 전체를 살수 있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에릭슨의 부진은 눈에 띄게 나타난다. 에릭슨이 시장 주도자를 자신했던 3세대 분야에서는 노키아가 강력하게 도전하며 시장을 양분하기 시작했고, 휴대전화 분야에서도 삼성전자가 세계 3위로 뛰어오르며 에릭슨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급기야 신용평가기관들이 에릭슨의 신용등급을 투기수준으로 낮췄고, 이는 다시 금융비용 증가, 주가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현재 에릭슨의 주가는 주당 90센트대로, 1993년 초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말 그대로 ‘잃어버린 10년’을 겪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해지자 에릭슨은 얼마전 일렉트로룩스(Electrolux)에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해 ‘단칼’이란 별명을 얻은 마이클 트레스초우를 회장으로 영입, 전기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저서 ‘성공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는 상당수의 성공한 기업이, 과거에 이룬 성공이 실패의 원인이 되어 몰락하는 과정을 기술했다. 이 책에 나온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라는 용어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성공기업이 변화하는 환경에 의외로 늦게 적응해 실패한 사례는 쉽게 발견된다.
대부분의 성공한 기업들은 자신의 사업방식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외부의 변화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작은 기업, 후발 기업들은 환경변화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므로 변화양상을 꼼꼼히 지켜보며 대응방안을 찾으려 하지만, 거대한 공룡기업들은 스스로가 미래를 선도한다고 생각하고 외부의 바람은 미풍쯤으로 무시하기 쉽다. 그러나 정보통신처럼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분야에서 미풍은 때때로 태풍이 되기도 한다. 결국 기업들은 환경변화를 등한시함으로써 뒤처지게 되고, 이것이 위기와 나락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에릭슨도 정보통신산업의 강자로서 미래에 대해 확신과 자신을 갖고 있었다. 1980년대 초부터 3세대 이동통신의 비전을 제시했고, 남들보다 앞서 4세대 이동통신 연구에 착수했다. 표준에 의해 시장 주도권이 결정되는 통신산업에서 에릭슨의 비동기식 3세대 이동통신은 곧 세계 이동통신산업의 미래처럼 비쳐졌다. 따라서 에릭슨의 부상(浮上)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만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정보통신산업의 위기 조짐이 드러났던 시점에도 에릭슨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취하지 않았다. 분석가들은 3세대 이동통신이 2002년부터는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고, 이 분야의 부진도 2002년 말부터는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니 에릭슨으로선 굳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할 필요를 못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듯 다소 느긋한 대처가 지금의 위기를 야기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에릭슨의 처지에선 약 2만명의 감원, 휴대전화 사업의 분리 등을 통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미흡했다. 결국 에릭슨은 올해에도 대대적인 인력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강자들은 변화에 수동적일 뿐 아니라 고집이 세다는 특징도 있다. 물론 사업을 추진하는 데 적당한 고집이 필요하지만 변혁기에는 이것이 독이 되기도 한다. 이는 자기 부정의 메커니즘이 부족하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아무리 성공경험에 근거한 노하우가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그것을 스스로 부정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토롤라의 최근 행보가 이러한 전략의 유형을 잘 보여준다. 모토롤라는 이동통신산업의 위기가 현실화하자 휴대전화 사업을 ‘디자인과 라이선스’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했다. 휴대전화 설계기술이 모토롤라 휴대전화 사업의 핵심 경쟁력임에도 불구하고 모토롤라는 휴대전화 설계기술을 제3자에게 라이선스료를 받고 제공한다. 이것이 모토롤라의 휴대전화 사업을 위협할 수 있음에도 누구나 모토롤라의 설계를 받아 사업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대신 모토롤라는 휴대전화용 반도체와 혁신적인 디자인을 도입한 고가(高價) 휴대전화를 생산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선회했다. 즉, 자신의 사업영역을 스스로 파괴하여 더 나은 위치로 이전해가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웃나라 핀란드의 노키아도 무선인터넷, 소프트웨어 등으로 사업을 전환하면서 자신의 강점을 지속적으로 파괴,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는 열성과 노력을 보여왔다.
그러나 에릭슨은 이처럼 ‘파괴적인 재창조’보다는 물리적인 구조조정에 주안을 뒀고, 이것이 에릭슨을 위기에서 흔들리게 만든 것이다.
또한 에릭슨의 보수적인 기업문화도 장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에릭슨이 휴대전화 사업을 소니와 합작하기로 발표하던 날, 이 자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두 회사의 합작사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휴대전화가 이미 청소년 중심의 유행산업처럼 변해가고 있는데도 에릭슨 관계자의 발표자세와 어투는 지나치게 딱딱하고 도식적이고 단조로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 등장한 소니의 발표자는 유쾌하게 좌중을 리드하며 유머와 재치로 합작사의 미래와 강점을 소개했고, 이것을 본 참석자들이 비로소 소니와 에릭슨의 합작사에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 단순한 우스갯거리 에피소드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는 에릭슨의 기업문화와 풍토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에릭슨뿐 아니라 대부분의 통신회사들이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 이는 급변을 거듭하며 패션화하는 통신산업 환경에 부적합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노키아는 젊고 도전적인 기업문화를 적절하게 유지해온 사례로 들 수 있다. 노키아는 상·하간 조직계층을 축소해 신속한 의사소통을 촉진시켰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적 토양을 구축해 항상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청년기의 기업문화를 간직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에릭슨이 현재 위기를 겪으면서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보다 브랜드 가치가 낮고, 휴대전화 사업에서도 밀리고 있다. 과연 에릭슨은 난관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이대로 몰락하고 말 것인가.
분명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에릭슨은 여전히 통신산업에 있어 중심축을 이루는 기업이다. 매출의 20% 정도를 R&D에 쏟아 부을 만큼 기술을 아는 회사다. 3세대 이동통신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블루투스 등의 새로운 산업표준을 리드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에릭슨이 처한 위기는 에릭슨을 장기적으로 좀더 강건한 회사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자존심 상하는 투기등급 평가를 받았지만, 이것이 오히려 구조조정을 촉진시키고, 꿈보다는 현실의 사업에 매진해 실속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는 항상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특히 우리와 같은 후발주자들에게 변화는 도약의 발판을 제공할 수도 있다. 산업사를 통해 보더라도 새로운 강자들은 대부분 변화의 시기에 태어났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 강자들이 등한시하다 놓친 기회들을 찾아내 이를 사업도약의 모멘텀으로 활용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IT산업 불황은 우리에게도 분명 위기지만, 이는 역으로 새로운 산업의 발전 패러다임을 제공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반도체, LCD, CDMA 등도 대부분 산업의 혼란기나 침체기에 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변혁기가 주는 기회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준다. 변화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