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선조 25년) 5월7일 낮 12시경. 조선 함대는 옥포 포구에 정박하고 있는 적선 50여 척을 발견하고 이를 동서로 포위해서 포구를 빠져나오려는 적선들에게 맹렬히 포격을 가해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 싸움의 결과 아군은 별 피해 없이 적선 26척을 격침하는 큰 전과를 올려 최초의 해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이어 합포(合浦·경남 마산) 앞바다에서 적선 5척, 다음날 적진포(赤珍浦·통영시 광도면)에서 적선 11척을 불태우는 전과를 올렸다.” -두산백과사전 ‘옥포해전’
대우조선해양 조선소는 임진왜란 첫 승전지인 경남 거제시 옥포만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흔히 ‘옥포조선소’라 불린다. 거제도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옥포만은 바람이나 태풍의 영향을 적게 받아 배를 짓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1973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따라 옥포만에 건설 중이던 조선소를 1978년 대우그룹이 인수하면서 대우조선해양의 전신인 대우중공업이 탄생했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 당시 순환출자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워크아웃 상태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채권단이 제시한 5년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2년여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08년 한해 11조746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영업이익 1조316억원, 순이익 4017억원을 기록했다. 또한 118억달러의 영업실적을 기록해 3년 연속 100억달러 이상 수주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2008년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세계적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에는 수주 실적이 상대적으로 저조했지만, 일찌감치 수주해놓은 물량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2009년 11월30일 서울 코엑스 3층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46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대우조선해양은 ‘100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삼성과 현대 등 여러 산업 분야를 아우르는 대기업이 수상한 전례는 있지만, 조선과 해양을 전문으로 하는 독립기업이 100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한 것은 대우조선해양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982년 1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한 대우조선해양은 3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100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하이테크 고부가가치 선박의 대명사인 LNG선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건조해 전체 시장의 32%를 점유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운항되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Very Large Crude Oil Carrier)의 20%를 건조하는 등 세계적인 기술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웅장한 옥포조선소
서울 서대문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옥포조선소까지의 거리는 약 411㎞. 자동차로 5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김해공항에서 가더라도 육로를 이용하면 자동차로 2시간 가까이 가야 한다. 창원 마산을 지나, 고성과 통영을 거쳐 거제까지 143㎞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 조선소가 배를 짓기에 최적의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보니, 조선소를 방문하려는 이들에게는 교통이 다소 불편할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외 선주 등 국내외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김해공항에서 옥포조선소까지 전용 헬기를 운항하고 있다.
2009년 12월9일 오전 9시40분. 김해공항 계류장 우측에 있는 헬기장에서 옥포조선소로 향하는 대우조선해양 헬기에 탔다. 프로펠러 돌아가는 굉음과 함께 공중으로 떠오른 헬기는 곧바로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창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남해 바다가 나타났다. 10분 남짓 남쪽으로 내려가자 웅장한 옥포조선소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조선소는 삼면에서 산이 바다를 감싸안은 듯한 옥포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소 상공으로 진입하자 골리앗 크레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선소에는 900t급 골리앗 크레인 2대와 3600t급 해상 크레인 2대, 그리고 축구장 8개 넓이의 100만t급 드라이 도크 등 초대형 최신 설비들이 즐비했다. 약 429만㎡(130만평)의 드넓은 대지 위에 자리 잡은 조선소는 일단 그 규모면에서 보는 이를 압도했다.
대우조선해양에 선박 건조를 주문한 외국 선주들의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는 ‘Trust Hall’ 1층에서 회사 소개 비디오를 잠시 본 뒤 자동차를 타고 조선소를 둘러봤다. 걸어서 조선소를 돌아보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조립된 블록을 이어 붙이면 거대한 상선이 완성된다.
트러스트 홀 바로 앞에는 ‘그랜드 블록 숍’이 우뚝 서 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의 주차장으로 사용됐지만, 2007년 수주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노사합의를 통해 증설한 공장이다.
공장 안내를 맡은 홍보2팀 김형식 차장은 “그랜드 블록 숍은 새로운 노사문화를 상징하는 건물”이라며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대우조선해양의 생산능력을 높여 함께 발전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조선소는 ‘투쟁’의 대명사처럼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이른바 ‘골리앗 투쟁’이 가능한 곳이 조선소 아니던가. 그랜드 블록 숍은 선박의 각 부분 조각이 조립돼 블록으로 만들어지는 곳이다. 각자 따로 존재하던 부품이 모아져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랜드 블록 숍은 첨예하게 대립했던 노사가 과거 대결구도를 딛고 이제는 상생 발전의 파트너로 새로운 관계에 들어섰음을 웅변하는 듯했다.
제1도크로 향하는 조선소 곳곳에는 절단 작업을 마친 판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고, 조립된 블록을 운반하는 차량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하나의 상선이 만들어지는 데 들어가는 철판의 수는 대략 1만개로 비행기에 들어가는 철판 수보다 많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우조선해양은 고유의 생산방식에 따라 손실을 최소화하는 라인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신 IT 기술을 기반으로 전사 네트워크를 이용해 설계에서부터 생산, 인도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을 전산시스템으로 관리, 운영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외국 조선업체보다 선박을 빨리, 그리고 더 잘 만들 수 있는 비결이 효율적인 생산 공정 관리에 있는 셈이다.
김형식 차장은 “중국이 값싼 인건비로 무장해 조선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 우리를 따라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며 “수많은 공정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길이 531m에 달하는 제1 도크에서는 두 대의 배가 동시에 조립되고 있었다. 앞에 있는 배는 선체가 모두 완성된 형태로, 뒤에 있는 배는 절반만 만들어진 채로 블록이 조립되고 있었다. 이른바 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최초로 시도한 ‘Tendem 공법’이다. 조선업계에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으로까지 칭송받는 이 공법은 이제 웬만한 조선소에서 모두 따라 하고 있을 정도로 그 효용성이 입증됐다.
생산관리팀 강승우 이사는 “도크의 길이가 충분하기 때문에 두 대를 동시에 건조할 수 있다”며 “마무리 작업을 거쳐 앞에 있는 선박을 내보내고 나면, 뒤에 있는 선박을 앞으로 이동시켜 선체를 완성하고, 곧바로 뒤쪽에서는 새로운 선박을 조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박 한 척을 건조하다보면 소요되는 인력이 공정마다 달라, 어느 때는 많은 사람이 투입되고, 또 다른 공정에서는 인력이 남는 불균형이 생기는데, 두 척을 동시에 건조하면 인력을 고르게 안배해 효율적으로 도크를 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우조선해양은 효율적인 생산 공정관리로 선박을 더 빨리, 더 잘 만들 수 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워크아웃에 들어가야 할 만큼 위기를 겪기도 했던 대우조선해양이 빠른 시일 내에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LNG선 등 고부가가치 사업 분야로 사업 다각화를 꾀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상선 한 대의 가격이 8000만달러에서 1억달러 정도 할 때, LNG선은 1억6000만달러에서 2억달러로 두배 가량 비싸게 가격이 형성돼 있었다.
경영전략팀 안호균 부장은 “상선 건조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품 브랜드 전략을 편 것이 바로 LNG선에 대한 투자였다”며 “고난도를 요하는 고부가가치 분야인 LNG선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기술 개발과 함께 선투자를 했던 게 적중하면서 워크아웃을 조기에 졸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워크아웃 졸업과 함께 대우조선해양은 ‘LNG선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리며 재기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해양플랜트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난이도가 높은 대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부장은 “우리 회사는 2012년까지 조선과 해양을 중심으로 재도약하고, 2020년에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종합중공업 그룹으로 발전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며 “이를 위해 기존의 조선해양 중심에서 해양플랜트와 에너지 사업 분야로 사업 영역 확장을 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의 해양플랜트 사업 비중은 현재 30~40% 수준이지만, 향후 50~60%로 그 비중을 차츰 높여나간다는 것.
최근 에너지 가격이 올라가면서 해양플랜트 분야에 대한 전망은 더욱 밝아졌다. 과거 대륙붕에서 석유와 가스 등을 캐냈다면, 해양플랜트선이 건조되면서 이제는 심해에서 원유를 채굴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안 부장은 “광구개발에 지분투자를 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우리 회사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광구개발로 유전이 발견되면 설비를 발주하게 될 텐데, 그때 우리 회사가 이니셔티브를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First, Fast, Formula
풍력과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분야는 대우조선해양이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는 신성장동력 분야다. 모터를 돌려 만들어낸 에너지가 프로펠러를 돌려 추진력을 얻는 상선의 운항 원리를 정반대로 한 것이 바로 풍력발전이기 때문이다. 즉 바람의 힘으로 프로펠러를 돌려 여기서 생기는 에너지로 모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게 풍력발전의 원리다. 대형 상선의 강력한 엔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풍력발전을 위한 우수한 기술과 설비를 이미 갖추고 있는 셈이다.
남상태 사장은 “조선과 해양산업 분야의 시장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며 “기존에 우리 회사에서 잘해왔던 분야를 응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풍력발전”이라고 했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은 ‘업계 최고(First) 수준의 경영목표를 달성하고, 일하는 방식을 빠르게(Fast) 전환하며, 회사의 규정과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선(Formula)하자’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F1 전략’을 수립해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이 F1 전략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은 공격적인 시설 투자와 기술 개발에 주력했고, 세계 최초로 블록의 대형화를 통해 건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한 ‘링타입(Ring-type) 블록 탑재 공법’을 개발했다.
2009년 9월에는 성인 남자 200만명을 한꺼번에 바다에 띄울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 부유식 도크 ‘로얄 도크 Ⅳ’를 건설했다. 이밖에 선상에서 바로 LNG를 기화해 이용할 수 있는 LNG 재기화운반선(LNG Regasfication Unit·LNG-RV)과 해상 풍력터빈 설치 선박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선박 건조는 물론 플랜트 건설과 신기술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두를 달려왔다.
대우조선해양은 F1 전략의 성과에 힘입어 2009년 13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 세계 1위의 조선해양기업으로 올라섰다. 또한 업계 1위에 만족하지 않고 2010년부터 2020년까지 F2 전략을 가동, ‘토털 솔루션 제공 종합 중공업 그룹’으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대우조선해양은 사업구조 혁신을 통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력을 높이는 한편 △투자 및 사업개발 △통합설계 △제조 등 각 분야에 필요한 역량을 확보할 방침이다. 이밖에 연관사업의 다각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효율적인 자원 재배치를 통해 신규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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