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사회·경제적 요소를 고려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 국내에서도 책임 있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통해 성장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세계적 흐름과는 차이가 크다. ‘신동아’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CSR 리더 기업 6곳을 방문해 이들 기업이 지속성장의 핵심 요소인 미래가치를 어떻게 일궈가고 있는지를 보여줄 계획이다.
- 첫 회는 재보험업계에서 CSR을 선도해온 스위스리(Swiss Re)다. <편집자>
스위스리 직원들이 알프스산에서 청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풍부한 관광자원과 중립국이라는 이점을 살려 관광업과 보험·금융업이 발달해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보다 3 배 이상인 7만 달러에 육박한다. 관광업은 스위스 전역에 걸쳐 고루 발달한 반면 보험사와 금융회사들은 스위스 제1의 도시 취리히에 모여 있다. 취리히는 공항이 가까워 외국인이 드나들기 좋을 뿐 아니라 박물관, 미술관, 호수 등 볼거리도 많다.
‘미래가치가 핵심이다’ 시리즈의 첫 번째 주자인 ‘스위스리(Swiss Re)’도 취리히에 본사를 두고 있다. 1863년 취리히에 설립된 스위스리는 스위스 경제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온 세계 2위 재보험사다. 본래 재물과 상해, 생명, 건강 관련 보험 상품과 이에 관한 재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과 환경 살리기 캠페인으로 자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다. 신용등급도 매우 높다. 스위스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이 회사는 재무건전성과 리스크 관리능력이 뛰어나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와 무디스에서 각기 A+와 A등급을 받았다.
스위스에 사는 교민들에게 스위스리에 대해 묻자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중시하는 기업” “지역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기업” 등 칭찬 일색이었다. 도대체 스위스리는 어떤 방식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걸까. 이 회사가 긴 세월 동안 흔들림 없는 자본력과 명성을 이어온 비결이 뭘까. 스위스리의 친환경 비즈니스는 국내 기업의 그것과 뭐가 다를까. 지금부터 해답을 찾아보자.
깨끗하고 편리한 환경, 행복지수 높이는 데 일조
3월 마지막 주, 인천국제공항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목적지인 취리히에 도착하자 싸늘하지만 청량한 공기가 낯선 객을 맞았다. 스위스에서는 3월 31일까지를 동절기로 치지만 날씨는 한국보다 푸근했다. 초행길인데다 안내원도 없어 스위스에 도착하기 전에는 헤맬까 걱정이 앞섰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기우였다. 기차와 버스, 노면전차(트램), 유람선 등 여러 교통망을 하나로 연결한 스위스 트래블 시스템이 외국인을 위한 내비게이션 노릇을 하며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게 이끌어줬다.
기차와 트램을 이용하니 취리히공항에서 취리히 시내에 있는 스위스리 신사옥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스위스에서는 매연을 내뿜는 버스나 자동차보다 친환경 교통수단인 기차와 트램이 주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지역은 자동차 진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도로에 홈을 파 설치한 레일 위를 달리는 트램은 버스보다 속도가 느린 대신 더 자주 운행하고 노선이 다양해 한 지역 내를 이동할 때 편리하다. 스위스가 수많은 관광객의 왕래에도 ‘청정 관광국가’라는 이미지를 지킬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스위스리가 친환경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트램에서 내려 스위스리 신사옥까지 걸어가던 중 만난 한 스위스리 직원은 “깨끗하고 편리한 환경이 스위스의 최대 자산”이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예전에 비즈니스로 한국에 간 적이 있어요. 인심도 좋고 아름다운 나라더군요. 한국도 스위스처럼 국토가 넓지 않으니 전국 교통망을 하나로 연결해 코리아 트래블 시스템을 구축하면 일자리 창출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무심코 내뱉은 말이지만 총선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나뒹구는 숱한 뜬구름 잡기식 공약보다 훨씬 더 가슴에 와 닿는 제안이었다. 스위스리의 본사 바로 옆에 자리한 신사옥은 현대식으로 지어진 8층짜리 건물로 보안 차원에서 사전에 미팅을 예약한 방문객이 아니면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스위스리 홍보를 담당하는 롤프 태너(Rolf Tanner) 수석디렉터에 따르면 이곳과 본사 등 스위스 안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3500여 명이고 전 세계적으로는 그 수가 1만 명에 달한다. 스위스리 지사는 전 세계 60곳에 있는데 대륙별 점유율은 유럽이 65%, 미국 25%, 아시아와 기타 지역이 10%다. 이 회사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은 1956년부터다. 이후 스위스리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 중국, 인도,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사를 늘려나갔다. 이 지역 지사들을 관리 감독할 아시아본부는 홍콩에 뒀다.
롤프 씨는 “보안문제도 있고 일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사무실 안에 들어가 직원들과 개별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건 허용이 안 된다”고 전제한 뒤 넓고 쾌적한 실내를 빙 둘러볼 수 있게 안내했다. 서류뭉치를 들고 지나가는 직원,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와 씨름하는 직원, 미팅 룸에서 회의하는 직원 등 저마다 뭔가에 열심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분주하거나 다급해보이지 않았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동료와의 경쟁구도 속에서 늘 긴장하며 사는 한국의 샐러리맨들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취재에 동행한 전문통역사 문보경 씨는 “스위스 사람들은 원래 서두르지 않는다”며 “개인소득과 상관없이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행복지수가 세계 6위”라고 귀띔했다.
오피스 투어를 마친 뒤 롤프 씨는 내방객이 들어갈 수 없는 옥상으로 기자를 데려갔다. 1년에 한두 번 연회장소로 활용한다는 이곳에서는 취리히 시내와 취리히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건물 옆 본사 건물도 훤히 보였다. 149년의 역사를 간직한 본사 건물은 외형은 조금 낡았어도 그 나름의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냈다. 롤프 씨는 “본사 건물은 하도 오래돼서 누가 설계했는지 모르겠지만 신사옥은 1950~60년대에 굉장히 유명했던 건축가가 설계했다”며 “이 건물을 허물고 2017년까지 새 건물을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 직원이 함께한 친환경 프로젝트 ‘COyou2‘
“신축건물에는 에너지 효율 1등급의 건축시공방식을 적용할 거예요. 건물 전체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게 만들어지는 거죠. CSR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향하는 스위스리의 가장 중요한 의제인 만큼 신축 건물이 에코하우스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각별히 공들여 지을 계획이에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이니셔티브인 유엔글로벌콤팩트(UNGC·UN Global Compact)에 가입한 스위스리는 1998년 환경 보고서를 시작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성과를 연간 보고서를 통해 정기적으로 공시해왔으며 주요 지속가능성 지수에서 해마다 높은 등급을 받고 있다. 세계 유수의 기업이 스위스리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하고, 스위스리가 세계 1위 재보험사인 독일 뮤니크리(Munich Re:뮌헨리)보다 대외 이미지가 좋은 이유도 CSR을 기업의 핵심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스위스리는 20여 년 전부터 기후변화를 지속가능한 성장을 저해하는 주요 난제로 파악하고 이후 줄곧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스위스리의 신념은 ‘그룹 복무규정’에 담겨 있으며 전 세계 모든 직원은 이를 따라야 한다. 그룹 복무규정은 다음과 같다. ‘스위스리는 법규를 준수하고,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스위스리의 이해 당사자들(당사의 직원, 주주, 고객, 정부 규제기관, 일반대중)을 공평하며 전문가다운 방식으로 대우하는 조직임에 자부심을 가진다.’ 스위스리는 이를 바탕으로 모든 면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 직원이 다 같이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감축에 힘쓰자는 취지로 만든 ‘COyou2’라는 프로그램이다. 2007년부터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스위스리 직원이 CO₂ 배출량이 많은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사면 구입비용의 일부를 대주는 방식으로 환경 살리기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도록 이끌고 있다. 현재 보조금 지원 한도는 5000CHF(스위스프랑·621만5000원)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환경 친화적인 생활을 위해 들어간 비용의 최대 50%까지다. 이러한 혜택의 기회는 최소 1년 이상 스위스리에서 근무한 모든 직원에게 열려 있다. 롤프 씨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조금을 지원받은 직원은 전 세계에 걸쳐 3000여 명에 달한다. 다음은 그의 부연설명이다.
“지난해까지 5년 동안은 보조금으로 4000CHF(497만2000원)을 지원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올해부터는 1000CHF(124만3000원)을 더 주고 있어요. 친환경생활을 위해 직원들이 가장 많이 산 제품은 자전거와 하이브리드 자동차예요. 일부는 자동차를 없애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어요. 집안에 열펌프나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한 직원도 적지 않고요.”
스위스리에서는 직원이 살거나 일하는 곳을 단순한 장소가 아닌 지역 공동체사회로 여긴다. 지역 공동체사회에 속한다는 것은 일방통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직원들은 자선구호나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지역공동체 삶에 적극 참여한다. 이럴 경우 회사에서는 지원비 외에도 시간과 지식이라는 의미 있는 가치를 전달한다. 직원 자원봉사 프로젝트에 참여하든, 전문지식이 동원된 재해 대비 프로그램 안에서든 가장 중요한 목표는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지역사회에 이러한 가치를 환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페루 초등학교 건물의 내진 보강공사 지원
시간과 지식이라는 선물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지만 스위스리는 그것들이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종종 증명한다. 전 세계 다양한 장소에서 일하는 스위스리 직원들은 그들의 여가 중 많은 시간을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할애한다. 미국 뉴욕에서 코트를 수거하는 일, 인도 방갈로에서 나무를 심는 일 등이 그것. 롤프 씨는 “우리 직원들은 단순히 열정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기부하는 것 외에도 회사의 자원봉사프로그램에도 적극 참여한다”며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리는 언제나 존경받는 지역 비영리 단체나 정부조직과 협력해 우리의 사회기여 활동이 최대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해요. 또한 국제사회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직원들과의 파트너십 강화 도구로 활용하죠. 직원들이 주도해 자선 구호품 수집 활동을 벌일 때도 뒷짐 지고 있지 않아요. 최종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이 회사의 국제사회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낙후지역 개발 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프로그램은 기나긴 경작 활동에 비유된다. 스위스리는 오래전부터 NGO(비정부국제기구)와 협력해 자연재해가 빈번히 일어나는 저개발 국가를 돕고 있다. 지난해 페루 초코스 지역의 한 초등학교 건물을 지진에 잘 견딜 수 있게 고강도 플라스틱 철망으로 보강한 일이 한 예다. 페루는 지난 수세기 동안 여러 차례 지진을 겪었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이나 위기의식이 부족하고 내진 공법 기술도 갖춰져 있지 않아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스위스리는 먼저 초코스 지역의 건물 대부분이 모래나 점토에 짚을 섞어 말린 아도비 벽돌로 지어져 작은 지진에도 쉽게 금이 가거나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가 많은 초등학교를 보강공사의 대상으로 선택했다. 아울러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학교 교사와 지역 건설업자를 대상으로 지진 피해 예방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지난해 8월 끝난 이 학교의 보강공사는 전문지식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초코스 지역민들의 안전의식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인도 슬럼지역에 안전한 식수와 위생 시설 제공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인도도 스위스리의 도움을 받았다. 현재 인도에서는 1억3000만 명 이상이 식수 문제로, 8억 명 이상이 위생시설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방갈로르와 하이데라바드 지역은 슬럼화가 날로 심해져 식수와 위생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스위스리는 할리우드 영화배우 맷 데이먼이 공동 설립한 비영리단체 ‘워터(water.org)’의‘워터크레디트’프로그램을 통해 올 2월까지 인도의 방갈로르와 하이데라바드 지역민 7000여 명에게 깨끗한 물과 위생시설을 공급하는 한편 수인성 질병 확산을 사전에 막기 위한 대대적인 위생교육서비스를 제공했다.
스위스리는 해외 저개발 국가를 다양한 방식으로 돕고 있다.
스위스리가 이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다채롭게 펼쳐온 CSR은 뿌리가 깊다. 그 뿌리의 한 축을 이어온 것이 문화지원 활동이다. 스위스리는 창립 이래 줄곧 본사가 자리한 취리히 내의 저명한 문화기관과 미술전시, 음악회, 연극 등의 문화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지역사회와 역동적이고도 친밀한 관계를 다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취리히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사회의 매력을 높이는 가치 있는 환원을 하고 싶다’는 스위스리의 진정성은 이러한 문화지원활동으로 발현되고 있다. 스위스리에서 CSR 분야를 총괄하는 디렉터인 데이비드 니클라우스 브레셔 씨는 “지속적인 문화지원 활동이 지역사회와 스위스리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라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취리히에 거주하는 스위스리 직원은 문화행사 할인티켓이나 무대 견학 등의 혜택을 통해 예술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이 더 굳건해집니다. 또 지역민들은 스위스리가 지원하는 품격 높은 문화행사를 즐기며 스위스리에 대한 연대감과 무한한 신뢰감을 갖게 되고요. 이는 다시 스위스리의 이미지 제고와 성과 증진으로 이어지고, 스위스리는 거기서 얻은 수익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선도하게 되는 거죠. 이것이 바로 스위스리가 CSR,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온 세상이 무대다”라고 말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스위스리가 키워낸 든든한 파트너십과 평판은 이 말에 딱 들어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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