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자동차 10대 중 1대는 수입차다. 최근 수입자동차시장이 급성장한 데는 2010년 도입된 수입자동차 유예할부 제도의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올해 들어 중고 수입자동차시장에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 소비자의 목을 옥죄는 유예할부 제도 등 수입차의 불편한 진실을 취재했다.
중고차 매장에 나온 중고 수입자동차들.
수입차는 신차와 중고차의 소비자층이 뚜렷하게 나뉘는 경향이 있다. 신차의 경우 20~30대 고객이 많아졌지만, 중고차 구매자 중엔 예전에 비해 신중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고객이 더 많아졌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10년 전만 해도 자영업자, 소상공인들도 수입차를 많이 몰았어요. 그런 분들이 이곳 중고 수입차 매장 주 고객이었죠. 요즘은 그런 분이 눈에 띄게 줄었어요. 오히려 진짜 돈이 있는 분들이 자기 필요에 의해 수입차 구입을 고려하는 예가 많습니다. 수입차는 국산차에 비해 감가상각비 면에서 불리해요. 4000만 원대의 신차가 매장 문을 나서는 순간 3000만 원대로 떨어지는 게 수입차거든요.
그런데 여기 중고차들은 비닐만 벗겨냈다뿐이지 새 차와 다름없으니까 실속파들에겐 가치가 있는 겁니다. 인기가 높죠. 젊은 분들은 요즘 유예할부 제도 때문에 신차 구입이 쉬워 새 차 기분을 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돈 있는 분들은 오히려 그런 제도에 눈을 안 돌립니다. 이자만 내다 만기가 도래하면 원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게 유예할부 제도예요. 법망을 교묘하게 이용한 사기행각에 가깝다고 봅니다.”
‘유예할부’로 부채 수렁
매월 20만~30만 원만 내면 외제차를 탈 수 있다는 말만 내세워 판매한 후 3년간 이자를 꼬박꼬박 받다 원금을 일시 납부하라고 종용하는 게 유예할부 제도라는 것이다.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지만 유예할부로 차를 사는 사람이면 대개 원금을 상환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차 시장뿐만 아니라 중고차 시장에도 할부 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돈 있는 사람이 뭐하러 비싼 이자 내가며 일반할부도 아닌 유예할부를 하겠습니까.”
유예할부 제도 이용자 대다수의 연령층이 경제적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20, 30대인 이유다. 우선은 큰돈 들이지 않아도 되니 ‘나도 외제차 한번 굴려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입차를 구입했다가 3년이 지나자마자 원금 상환 압박의 철퇴를 맞는 것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2009년 6만993대였던 우리나라 연간 수입자동차 판매 대수는 이듬해인 2010년 9만562대, 2011년 10만5037대, 2012년 13만858대로 급증했다. 전체 자동차의 5%대였던 비중 역시 10%대를 넘어섰다. 매출액 기준으로 환산하면 전체 내수시장 판매액의 30%에 육박한다. 수입차의 평균 판매가가 국산차의 3배에 달한다는 결론이다.
수입차 수리비는 국산차보다 훨씬 높아 자동차 보험료 인상요인이 되고 있다.
중고 수입차의 경우 물량 증가 폭이 더 커졌다. 중고차 매매업체인 SK엔카에 따르면 2013년 4월 말 기준 수입 중고차 비율은 12.2%로, 2009년 7.8%에 비해 4.4%p가량 증가했다. 주목할 것은 경매물건으로 나온 수입차의 증가다. 2008년 78건에 불과하던 중고 수입차 경매 매물이 2009년에는 157건, 2012년에는 400건으로 증가했다. 전체 물건 중 수입차의 비율로 따지면 그 폭은 더 증가한다. 경매로 넘어간 차량의 총 대수가 줄었음에도 수입차는 늘어났기 때문이다. 2008년 경매로 나온 차량 총 대수는 4044대, 2012에 나온 차량 대수는 3682대다. 이 중 수입차의 비율을 따지면 1.98%에서 10.86%로 4년 사이에 5배나 늘어났다.
“더 큰 문제는 수입차의 채권자 대부분이 캐피털 회사라는 데 있습니다. 차량을 경매로 내놓은 속사정을 일일이 알 수는 없으나 구입 대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나온 매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그런데 경매에 붙여진 수입 중고차의 경우 낙찰가가 50%대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낙찰됐다 해도 낙찰가가 캐피털사에 갚아야 할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 경우 차는 차대로 넘어가고 차주는 여전히 빚더미에 앉게 돼요.”
경매전문 업체 지지옥션 하유정 연구원의 말이다. 차량은 부동산에 비해 감가상각비가 낮아 처음 구입한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거래되기 일쑤다. 수입차는 그 차이가 더 크다. 지난해 2005년식 람보르기니가 1억9000만 원의 감정가로 경매에 붙여졌다가 2번의 유찰 끝에 1억4360만 원에 낙찰된 사례가 있다. 채권자는 우리캐피탈로, 경매비용을 제외한 채권금액만 1억7770만 원. 경매로 물건을 넘기고도 갚아야 하는 부채가 3500만 원가량이나 남은 셈이다.
중고 수입차의 감가상각비가 떨어지는 이유 중에는 비싼 수리비가 한몫한다. 게다가 수리보증기간이 국산차에 비해 길지 않고, 서비스센터도 적어 사고가 나거나 고장이 발생하면 비용 부담이 크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 주요 부품 가격부터 국산차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데다 공임 산출의 명확한 기준이 없어 ‘부르는 게 값’인 경우도 허다하다. 수입차 판매사가 판매보다는 정비를 통해 돈을 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수입차의 1건당 평균 수리비는 국산차와 비교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가 발표한 손해보험사의 2010년 사고 1건당 수리비 지급 통계에 따르면 수입차는 291만6000원으로 국산차 83만5000원보다 3.5배나 높았다. 2006년 241만6000원에 비해 0.4배 높아진 수치다. 부품 값도 수입차는 국산차 대비 5.4배(2009년 기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증수리 기간이 끝난 중고 수입차는 그 가치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화재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해 대물배상 최고 보상금액은 1억7000만 원(손해액 기준)에 달했다. 수입차 등록대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수입차에 대한 손해보험사들의 수리비 지급 사례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수입차에 대한 보험료 인상 폭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것이 보험사들의 주장이다. 손보사 업계 1위인 삼성화재가 밝힌 지난해 12월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107%, 동부화재는 102.5%, 현대해상은 99%, 메리츠화재는 104%로 업계 상위권 업체들마저 적정 손해율인 77%를 크게 웃돌고 있는 실정이다.
탈세 활용되는 법인 차량
지난 3월 8일 보험개발원은 수입차의 높은 손해율을 반영해 BMW, 벤츠, 아우디를 비롯한 17개 수입차의 차량모델 등급(자차보험료 산정 시 기준)을 상향조정했다. 등급이 높을수록 자차보험료는 올라간다. 이에 따라 다음 달부터 BMW 3·5시리즈와 아우디 A6모델은 7.7%, 벤츠 C·E클래스는 8.7% 정도 자차보험료가 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등급 상향조정에도 보험사가 실제 지급하는 수리비에 비해 수입차 보험료 수준은 턱없이 낮다. 차량모델등급제도의 1회 조정한도가 2등급에 불과해 수입차 보험료를 현실화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가격대의 국산차와 비교해보면 수입차 보험료는 여전히 2배도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 상위 10개 모델과 비슷한 가격대의 국산차의 최초 납입 보험료를 비교해본 결과 수입차는 국산차 대비 1.3~1.7배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차 가격이 6880만 원인 ‘에쿠스 VS380’ 모델의 최초 보험료는 99만5000원. 수입차 판매 1위인 ‘BMW 520d’의 신차 가격은 6260만원으로 에쿠스 VS380과 큰 차이가 없지만 보험료는 156만2000원으로 1.6배에 불과하다. 4000만 원대 국산차인 제네시스의 최초 보험료와 ‘BMW 320d’(수입차 판매 4위), ‘폭스바겐cc’(수입차 판매 10위)를 비교해봐도 각각 1.5배와 1.7배였으며, 3000만 원대에서는 1.3~1.5배에 불과해 국산차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차 등록대수가 급증하면서 손보사에서 지급해야 하는 수리비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결과적으로는 손해보험사가 지급하는 수입차의 수리비용 상당부분이 국산차 운전자의 보험료로 충당되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수입차가 대중화하기 전인 몇 년 전만 해도 국산차 고객의 대물배상 가입금액은 1억 원 미만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5년간 절반 이상의 고객이 2억 원 이상을 가입하고 있다. 이는 고가의 수입차와 충돌사고가 나면 두 차량 수리비의 합계금액에서 과실비율에 따라 부담하기 때문에 국산차 고객이 예상외의 고액 수리비를 부담할 수도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판매된 수입차 13만 대 중 법인용으로 등록된 차량 대수는 5만4588대로 41.7%에 달한다. 브랜드별로 분석해 보면 BMW, 벤츠, 아우디 등 독일 럭셔리 브랜드는 법인 비중이 각각 49.2%, 54.7%, 53.1%로 평균을 상회하고 있고 특히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은 법인 비중이 85% 이상을 차지한다. 고가 차량일수록 법인 비중이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7000만~1억 원대의 경우 법인 비율이 65%, 1억~1억5000만 원대는 79%, 1억5000만 원대 이상의 수입차는 87% 이상이 법인차량으로 등록됐다. 2011년 5월 국토부 자료(당시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에 따르면 람보르기니, 포르쉐, 페라리 등 업무용 차량으로 활용될지 의심스러운 초고가 수입 스포츠카의 상당수도 법인 소유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사업자가 업무 용도로 수입차를 리스할 경우 리스 비용 전액이 비용 처리되고, 연말정산 시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개인사업자나 전문직 종사자, 법인 등이 구매하는 수입차의 경우 탈세나 소득 감추기 목적으로 이용되는 예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업 목적이 아닌 다른 용도로 써도 확인하기 어려운 제도적 약점이 있어 법인 명의로 구매 후 가족이나 지인 등 특수 관계인들이 사용한다는 것. 현행 제도대로라면 고액 세금 체납자의 타인 명의 리스, 렌트를 통한 고가 수입차 이용도 제재를 가하기 어려워 수입차가 탈세의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입차업체들 역시 할부금융사를 자회사로 두고 리스 등을 통해 급격히 성장하는 추세다. BMW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토요타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수입차 리스회사들이 2011년 올린 매출은 9782억 원으로, 국내 57개 캐피털 회사 전체 수익 10조 원의 약 1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관계 당국이 제도를 보완해 용도 증빙에 대한 조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무용 차량 손비 처리의 법적 취지를 최대한 살리면서, 역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산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무분별한 고가차량 구입을 제한하는 ‘리스 비용 손비처리 상한제’를 도입하고 스포츠카 등 업무 용도로 부적합한 차종의 원천 규제와 보유기간 중 업무 용도 입증 요건을 강화하고 조세제도를 보완해야 얌체 법인족의 불법 탈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