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위기임박’ 한동훈, 황교안화 돼간다

[특집 | ‘점입가경’ 위기의 보수] 정치 빅데이터 풀어보기

  • 허만섭 국립강릉원주대 교수

    입력2024-11-26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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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로그 게시물·뉴스 3만7000건 분석

    • 20개월 여론조사 리뷰… 부정적 감성어 70%

    • 지도자 선호도 14%, 최저점 11% ‘근접’

    • 최저점 깨지면 회복 불능… 황교안·김무성 그림자

    •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 후 보수층 분열

    • 김건희 강박증, 맨날 윤·한 갈등, 당게(당원 게시판) 논란 실망

    • ‘이재명 민주당과 싸우는 댄디한 법무장관’ 보수 팬덤 여전

    • ‘윤·한 해빙 모드’ 후 다시 기대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재명 민주당의 사법방해 저지 긴급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재명 민주당의 사법방해 저지 긴급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국민의힘은 동료 시민에 대한 계산 없는 선의를 정교한 정책으로 준비해 실천할 겁니다. 국민들께서 그 마음을, 그 실천을, 그리고 상대 당과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아보실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2024년 1월 1일 신년인사회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현 당대표)이 한 말이다. 보수층 유권자는 이러한 워딩을 좋아했다.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줄 것처럼 들려서다. 결과는 양면적이다. 한동훈은 차세대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총선을 이끌었다. 결과는 역대급 참패였다. 곧바로 당대표 경선에 나와 대표가 됐다. 그는 전체 대선주자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두 번째로 선호도가 높다. 보수성향 주자 중엔 가장 높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1월 한동훈의 정치 기반인 보수층의 민심은 정초와는 사뭇 달라진 듯하다. 이에, 한동훈을 보는 보수층의 마음이 어떠해 왔는지 살펴봤다. 이를 위해 한동훈과 관련된 20개월간의 여론조사를 리뷰했고, 3만7000여 블로그 게시물과 뉴스 빅데이터를 분석했다.

    정초와는 다른 보수 민심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유권자의 심리는 일차적으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다. 공신력이 인정되는 몇몇 대형 여론조사기관은 대선주자에 대한 여론을 정기적으로 조사한다. 한국갤럽은 대선주자의 국민 전체 선호도를 공개해 왔다. 언론매체는 이런 내용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갤럽은 보수층 내 변화 추이까지 정리해 제공하진 않는다. 이 때문에 보수 진영 대선주자에 대한 보수층의 선호도 변화를 추적하는 뉴스는 거의 없다.

    보수층 여론의 변화 양상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갤럽 홈페이지의 ‘통계자료’에 접속했다. 이어 2023년 3월 1주부터 2024년 11월 1주까지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1000명 안팎 전화 인터뷰)를 수록한 모든 ‘데일리 오피니언’ 문서의 교차집계표를 수집했다. 한동훈을 포함한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는 2023년 3월 1주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료를 수집한 결과, 2023년 3월~24년 11월 한동훈에 대한 국민 전체의 선호도 추이와 보수층의 선호도 추이가 나왔다.

    국민 전체의 한동훈 선호도 추이는 11%(2023년 3월 1주), 11%(6월 1주), 12%(9월 1주), 14%(10월 2주), 13%(11월 2주), 16%(12월 1주), 22%(2024년 1월 2주), 23%(2월 1주), 24%(3월 1주), 15%(4월 3주), 17%(5월 2주), 15%(6월 2주), 17%(7월 1주), 19%(7월 4주), 14%(9월 1주), 15%(9월 4주), 14%(11월 1주)였다.

    한동훈에 대한 보수층의 선호도 추이는 21%(2023년 3월 1주), 23%(6월 1주), 24%(9월 1주), 31%(10월 2주), 26%(11월 2주), 31%(12월 1주), 41%(2024년 1월 2주), 51%(2월 1주), 45%(3월 1주), 32%(4월 3주), 34%(5월 2주), 28%(6월 2주), 34%(7월 1주), 35%(7월 4주), 30%(9월 1주), 30%(9월 4주), 33%(11월 1주)였다.

    ‌<그래프 1>은 이 두 선호도 추이를 필자가 시각화한 것이다. 이 그래프는 한동훈을 향한 보수층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21%에서 시작한 한동훈에 대한 보수층의 선호도가 총선 두 달 전인 2월 1주 51%까지 치솟는 점이 나타난다. 당시 상당수 보수성향 유권자가 그에게 호감과 기대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선호도가 추락하는 시점이다. 한동훈에 대한 국민 전체의 선호도는 총선 전인 3월 1주까지 계속 상승해 24%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러다 총선 참패가 확정된 4월 3주가 돼서야 떨어졌다. 반면, 한동훈에 대한 보수층의 선호도는 총선 투표일 훨씬 이전인 3월 1주에 45%로 이미 확연하게 꺾인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이전 이후

    당시 한동훈에 대한 보수층의 호감을 끌어내렸을 만한 큰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 간 내분이었다. 한동훈의 측근인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디올 파우치를 받은 문제와 관련해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부인인 앙투아네트는 혁명으로 왕정이 붕괴한 후 국고 낭비 등의 죄목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이 발언은 김건희 명품 백 사건을 대형 선거 이슈로 만들었다. 근대 유럽사에 대한 서양인의 집단기억을 자극해 해외에서도 대서특필됐다. 한동훈 위원장이 김경률 비대위원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자 대통령실의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 → 한 위원장의 거부 → 양측의 봉합이 이어졌다.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으로 윤석열-한동훈 내분이 격화하자 한동훈을 지지하던 단일 대오의 보수층은 윤석열 지지와 한동훈 지지로 분열했다. 보수층의 한동훈 선호도 추이를 보면, 이에 따라 보수층 내 한동훈 선호도가 낮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보수성향 대형 유튜브 채널 중 일부가 반(反)한동훈 성향으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한동훈에 고무적인 것은, <그래프 1>에서 확인되듯, 한동훈에 대한 보수층의 선호도가 11월 1주에 다소 회복세를 보인 점이다(9월 30% → 11월 33%). 윤 대통령의 여론 지지율이 10%대로 풀썩 주저앉자 보수층 일부는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선 한동훈을 대체재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 무렵 한동훈이 대통령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보수 진영 내 본인 선호도를 조금 끌어올린 요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11월 초까지의 선호도 추이는 한동훈에게 좋지 않다. ‘한동훈의 황교안화’ 위기가 임박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동훈에 대한 국민 전체의 선호도가 계속 낮아지는 점이 특히 문제다(7월 17% → 11월 14%).

    최저점 근접…황교안·김무성 그림자

    한동훈이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 처음 포함된 2023년 3월 1주에 한동훈의 선호도는 최저점인 11%를 기록했다. 2024년 11월 1주의 14%는 이 최저점과 3%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이 최저점이 깨진다면 한동훈은 회복 불능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예전 황교안·김무성이 그랬다. 두 사람은 보수정당 대표이자 유력 대선주자였다가 한번 지지율이 꺾인 후 영영 반등하지 못하고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대선주자 선호도와 주가는 비슷한 데가 있다. 일반적으로 증권사 전문가들은 “최저점을 이탈한 종목은 손절하라”고 권유한다. 급변하는 정국 속에서 차기 주자 선호도는 폭락 후 V자 반등이 주가보다 더 어렵다. 11%에서 이탈해 10%, 9%로 내려가면 “한동훈 효과는 끝났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보수층의 선호도가 동생이라면, 전체 국민의 선호도는 큰형님이다. 동생이 일시적으로 조금 올라도 큰형님이 하향 추세를 보이면 결국 동생은 큰형님을 따라가게 된다. 어떤 보수성향 대선주자의 국민적 선호도가 낮아진다는 건 그 주자가 보수 진영에 정권 재창출이라는 편익을 안겨줄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결국 보수층도 효용가치가 낮아진 그 주자를 지지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한동훈에게 11%는 절대로 깨져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이다.

    한동훈에 대한 보수층과 국민 전체의 선호도는 현재로선 낮아지는 추세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추세는 대중의 마음에 형성되는 그의 이미지와 연관돼 있는지 모른다.



    ‌빅데이터 분석 도구인 썸트렌드로 최근 SNS와 뉴스에서 한동훈이 주로 어떻게 인식되는지 알아봤다. 구체적으로, 10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한 달 동안 모든 블로그 게시물과 주요 매체 뉴스 3만7217건에 등장한 한동훈 관련 긍정어·부정어·중립어를 살펴봤다. 이 감성 분석 결과, <그림 1>에서처럼, 한동훈 관련 블로그와 뉴스에서 부정적 단어는 70.0%(2만6057건)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긍정적 단어는 25.2%(9382건), 중립적 단어는 4.8%(1778건)였다.

    구체적으로, 부정적 단어는 의혹(2605건), 우려(1788건), 갈등(1705건), 논란(1548건), 비판(1411건), 걱정(844건), 범죄(720건), 위기(631건), 불만(528건) 순이었다. 긍정적 단어는 해소하다(885건), 해결하다(551건), 적극적(613건) 순이었다. 빈도수가 높은 중립적 단어는 호소하다(486건) 정도였다.

    부정적 어휘로 이미지화

    결론적으로, 블로그와 뉴스에서는 주로 부정적 상황·맥락과 연결해 한동훈을 인식한다고 할 수 있다. 뉴스를 소비하고 블로그에서 활동하는 보수층도 대체로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에 대해선 밝고 즐겁고 생산적 이미지보다는 어둡고 우울하고 갈등하는 이미지를 더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추가적 분석 결과, 부정적 감성 어휘가 현저하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양상은 한동훈 관련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렇게 한동훈의 이미지가 부정적 어휘로 둘러싸이게 된 것은 그가 집권 여당의 대표임에도 주로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와 갈등을 쟁점화 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정책·민생 문제를 의제로 만들고 해결하는 모습은 극히 적었다.

    ‌<그래프 2>의 연관어 분석 결과를 보면, 블로그와 뉴스에서 한동훈의 연관어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인 단어는 대표, 국민의힘이었다. 이는 한동훈의 직책과 소속 정당을 나타내므로 별다른 함의가 없다. 그다음으로 높은 빈도를 보인 연관어는 대통령, 윤석열, 김건희, 여사, 윤석열대통령, 기자, 국민, 민주당, 김, 대통령실, 국회, 윤대통령, 김여사 순이었다. 실질적 함의를 지닌 한동훈의 연관어 중에서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표의 진한 서체)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 확인된다.

    김건희 편중, 보수 분열, 당원 게시판

    이번 분석에 사용된 블로그 게시물과 뉴스의 내용에서는 보수층이 한동훈에 실망하는 요인과 그를 지지하는 요인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먼저 한동훈에 대한 실망 요인과 관련해, 보수층 상당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상태다. 한국갤럽의 11월 1주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전체 국민의 17%만이 “잘하고 있다”라고 응답했다. 보수층 중에서도 34%만이 “잘하고 있다”라고 했다. 윤석열을 지지하지 않는 보수주의자가 늘어날수록 윤석열과 대립하는 한동훈을 선호하는 보수주의자가 늘어나야 할 텐데 현실은 그 반대다. 윤석열 지지율과 한동훈 선호도는 함께 하락하는 추세다. 윤석열에서 떠난 보수층이 한동훈으로 가지 않는 이유는 한동훈에 대한 실망 요인과 겹친다.

    보수 색채의 블로그 게시물들에 따르면, 한동훈에 대한 일부 보수층의 실망 요인은 △김건희 편중 △보수 분열 △당원 게시판이라는 세 키워드로 대표된다.
    김건희 편중과 관련해, 한동훈이 대통령에게 김건희 의혹 해소를 요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많다. 다만 블로그와 뉴스의 흐름을 보면, 한동훈의 의제는 김건희 문제 하나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었다. 이런 모습은 보수층 네티즌에게 ‘떨쳐버리고 싶은데도 시도 때도 없이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강박증 상태’로도 비치는 것이다.

    ‌블로그와 뉴스에서 한동훈과 김건희의 상관성은 매우 높게 나타났다. 썸트렌드를 사용해 10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한 달 동안 블로그 게시물과 주요 매체 뉴스에서의 한동훈 출현 빈도와 김건희 출현 빈도를 일별로 비교했다. 그 결과, <그래프 2>처럼 여당 대표와 대통령 부인이 블로그와 뉴스에서 동반 출현하고 동반 퇴장하는 이색적 경향성이 뚜렷이 나타났다. 54개 매체 뉴스를 수록한 빅카인즈의 같은 기간 키워드 트렌드에서도 마찬가지로 한동훈과 김건희 사이의 상관계수(최대 1.0)는 0.775로 나왔다. 0.7~1.0 사이는 ‘강한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이와 관련해, 분석 대상이 된 한 뉴스는 “여당 대표가 영부인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도 제가 정치 생활 21년 차이지만 처음 본다”라는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우려를 소개했다. 몇몇 보수 색채 블로그 게시물도 김재원과 같은 논조를 폈다.

    한동훈 이슈의 김건희 편중은 보수 분열 문제로 연결됐다. 한 보수 색채 블로그 게시물은 “윤 대통령 한동훈 권력투쟁, 죽어가는 이재명에 대통령 탄핵 빌미 제공”이라는 우려를 담았다. 다른 분석 대상 뉴스는 “대통령실 향해 압박 강도 높인 韓…야권 탄핵 공세 빌미 될라 우려도”라는 제목을 달았다. “맨날 윤·한 갈등”이라고 피로감을 호소하는 내용도 가끔 있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동훈 관련 블로그와 뉴스에서는 ‘우려’ ‘걱정’ ‘갈등’ ‘의혹’ ‘논란’ ‘비판’ ‘위기’라는 부정적 감성 어휘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래프 3>의 일별 감성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동훈 관련 부정어가 블로그와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한 날은 10월 30일이었다. 이날 한동훈은 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의혹을 화두로 제시했다. 그다음으로 부정어가 많이 등장한 날은 10월 21~22일이었다. 이때도 10월 21일 윤석열-한동훈 회동 및 22일 한동훈-친한동훈계 회동을 통해 한동훈발(發)로 김건희 의혹 관련 메시지가 쟁점화했다.

    韓, 김건희 문제 부풀리나 해결하나

    이렇게 한동훈이 김건희 문제에만 집중할수록 한동훈에 관한 부정적 어휘와 부정적 이미지가 온라인상에 누적됐다. 또, 이것이 보수층 일각의 한동훈 선호도 하락으로 이어지는 양상이었다. 이러한 연결 구조는 ‘한동훈은 김건희 문제를 부풀리나, 해결하나’ 하는 보수층 내부 논쟁에서 비롯됐다.

    예를 들어, 한동훈 측근 김경율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은 보수성향 블로그 게시물에서 두 가지 상반된 측면으로 평가됐다. 첫째, 이 발언은 여권의 쇄신 노력으로 평가됐다. 이에 따르면 한동훈에 대한 대통령실의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는 지나쳤다. 둘째, 이 발언은 한동훈 측이 너무 나간 표현으로 김건희 문제를 범국가적 사안으로 키워버린 내부 총질로 평가됐다. 이렇게 보수성향 사람들은 전자 쪽 해석과 후자 쪽 해석으로 갈리게 됐다. 김건희 편중과 보수 분열이 보수의 한동훈 선호도 하락으로 이어지는 점이 이해될 수 있다.

    보수층 일각은 한동훈이 집권 여당 대표로서 의제 설정 및 관리에 미숙하다고 느꼈다. 한동훈은 당대표 경선 때 대법원 등 제3자 추천 방식의 채 상병 특검안을 제시했다. 원희룡 경선 후보는 “채 상병 사건 수사가 무혐의로 나왔는데도 특검을 아직도 주장하면서 야당이 깔아놓은 탄핵으로 가는 위험한 주장을 계속하는 점에 대해 절박성을 당원들에게 호소한다”라며 한동훈 후보를 비판했다. 원희룡은 “채 상병 특검 주장을 철회할 수 없느냐”고 요구했고, 한동훈은 거부했다.

    한동훈은 대표가 된 뒤 한동안 채 상병 특검을 이슈화했다. 반면, 대통령은 진행 중인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며 특검 도입에 반대했다. 원희룡의 주장처럼, 채 상병 특검법 통과는 대통령의 거부권 무력화 및 탄핵 절차의 개시로 여권에서 인식되기도 했다. 야당의 채 상병 특검안은 ‘2023년 발생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사고의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 등에 의한 권력형 수사 외압 논란이 있으니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하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경찰 수사 발표 후 채 상병 특검은 명분이 소진되는 모양새를 보였다.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채 상병 특검법은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왔고, 재표결 끝에 부결됐다. 재표결 통과를 위해선 여당에서 8명의 이탈표가 나와야 했는데 4명의 이탈표만 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이후 이 이슈는 명태균 파문 등 다른 이슈에 묻혔다.

    한동훈의 에토스

    정치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는 에토스, 즉 공신력이다. 이 공신력은 전문적 역량을 갖추는 전문성, 상대를 속이지 않는 신뢰성, 상대의 처지를 자기 일처럼 여기는 선의로 형성된다.

    블로그 등에서 친윤석열 성향 사람들은 한동훈 방안을 포함한 채 상병 특검 이슈가 유야무야 상태로 접어드는 상황을 지켜본다. 그런 끝에 ‘한동훈이 조선제일검이라더니 채 상병 사건 수사와 법리를 제대로 검토한 뒤 특검을 수용한 게 맞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한동훈의 전문성에 흠집이 난 것이다. 이러한 의구심은 ‘한동훈은 국민 눈높이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특검을 받아들인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한동훈의 신뢰성도 흔들린다.

    이어, 이들은 ‘한동훈은 채 상병 특검이 현실화할 때 윤석열이 직면하게 되는 난국을 자기 일처럼 걱정해 주고 있을까? 한동훈은 과연 윤석열과 같은 편이 맞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이들의 마음속에서 한동훈의 동지 의식, 선의에 대한 믿음도 흔들린다. 이 무렵부터 보수층 일각에선 한동훈을 염두에 둔 듯한 제2의 유승민, 제2의 이준석, 배신자 프레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동훈이 아닌 한동훈 측근이 한 말이지만,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 역시 친윤 성향 보수주의자의 마음속에서 한동훈의 공신력이 떨어지는 계기가 됐다. 발언자도 인정한 부적절한 공개 발언이었으므로 정치인으로서 전문성이 실추됐다. 여권 쇄신을 위해 그렇게 말했다는 발언 의도도 의심받게 됐다. 신뢰성도 낮아졌다. 이 사안은 고가의 선물을 받은 대통령 부인의 잘못된 처신이 근본적으로 문제였다. 그러나 친한동훈계 여권 인사의 이러한 내부고발성 자극적 표현이 같은 당 대통령의 처지를 배려했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친윤 성향 사람들의 관점에선 선의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렇게 제3자 채 상병 특검안,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 같은 주요 사건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친윤 성향 사람들은 한동훈을 점점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17%로 많이 낮아졌다고 하나, 그래도 친윤 성향 17%는 한동훈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여전히 큰 숫자다.

    블로그 게시물과 뉴스에 담긴 한동훈 관련 부정적 어휘 중 ‘범죄’는 당원 게시판 논란 및 여론조성팀 논란과도 연관돼 있었다. ‘당게(당원 게시판)’ 논란은 한 대표와 그 가족 구성원들의 이름으로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를 비난하는 글 다수가 국민의힘 당원 전용 게시판에 올라와 논란이 된 사안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서 “당원 게시판에 대통령 부부를 욕하는 게시물이 당대표 가족 이름으로 수백 개가 게시됐다면 당은 즉시 수사 의뢰해서 사안의 진상을 규명할 생각은 하지 않고 쉬쉬하며 그냥 넘어갈 일이더냐?”라고 썼다. 국민의힘 측은 “당원 게시판 관련 한 유튜버의 허위 사실 유포는 명백한 사실이 아니므로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론조성팀 논란의 경우, 당대표 경선 때 원희룡 후보는 한동훈 후보가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조성팀을 운영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은 댓글팀 의혹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동훈 후보는 “자발적 지지자들이 댓글을 단 것이 잘못인가. 불법이 아닌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범죄인 양 폄훼하는 것이 정치인의 자세인가. 누구를 돈 주고 고용하거나 팀을 운영한 적 없다”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분석에 따르면, 사실의 진위를 떠나 ‘당게’ 논란과 여론조성팀 논란이 발생한 것은 한동훈에 대한 보수층 일각의 불안감을 조금 높이는 작용을 했다. 한동훈이 ‘법치’와 ‘쇄신’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아왔기에 더욱 그렇다.

    33% 지지와 보수 팬덤

    한동훈이 보수층으로부터 33%의 지지를 받는 근저에는 그를 “이재명 민주당과 싸우는 댄디한 법무장관”으로 보는 보수 팬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팬덤은 보수 색채 블로그 게시물에서 여전히 확인된다.

    한동훈을 선호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되는 것입니다”라는 정치 신인 한동훈의 말에서 신선함을 느낀다. 또, “여의도에서 일하는 300명만 쓰는 고유의 어떤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문법이라기보다는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요? 저는 나머지 5000만이 쓰는 언어를 쓰겠습니다”라는 그의 말에서 정치개혁의 비전을 발견한다.

    한동훈은 11월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 후 대통령 비판을 자제한다. 친한계 인사들은 “대통령이 사과했고 인적쇄신을 진행한다. 여사도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대통령도 민심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래프 3>의 맨 우측 막대그래프를 보면, 이 ‘윤·한 해빙 모드’ 시기에 한동훈 관련 부정적 어휘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보수 일각에선 한동훈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자라난다. 한동훈은 공직선거법·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를 앞둔 이재명을 향해 오랜만에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의 장외 집회에 대해 “왜 한 사람의 범죄가 자유민주국가의 법체계에 따라 단죄받는 것을 막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의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가?” “판사 겁박 무력시위로 대입 수험생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라고 했다.

    한동훈은 2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제 인생이 꼬이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런 그를 보는 보수층의 마음도 한동안 계속 복잡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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