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 국회 동의만 남아
다른 부처와 협업 불가피, 늘 부탁해야
발전적 해체 없이 한계 넘을 수 없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양성평등 절실
남자도 육아휴직 편하게 써야 출산율↑
김현숙 장관은 11월 18일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소임은 무겁지만 양성평등 정책과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개인의 편함을 고려하지 않고 자리를 맡았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김 장관은 제19대 국회에서 여성가족위원회 간사로 활동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고용복지수석비서관으로 일하며 여가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업무를 다뤘다. 윤 대통령과는 대선 준비 과정에서 인연을 맺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이던 윤 대통령과 격의 없이 자주 소통하면서 저출산, 보육, 아동, 교육, 보건의료 분야 공약을 함께 만들었다.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신동아’와 만난 김 장관은 “여가부가 여성 인권 보호와 권익 신장에 기여한 면은 인정하지만 이제는 폐지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가부의 기능과 역할이 한계에 이르렀기에 소관 업무를 다른 부처로 이관하려 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게, 더 많은 국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대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경제학자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과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에서 각각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5년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한동안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캠퍼스로 돌아가 후학 양성에 힘썼다.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진 덕분에 저출산, 젠더 및 세대 갈등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끝이 아닌 새로운 변화의 시작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2022년 5월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원]
“밖에서 보면 피상적일 수밖에 없으니 직접 안에서 여가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성과와 한계를 잘 보라고 말씀했다. 폐지하더라도 부처에 대해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며 책임감을 갖고 일해 달라고 당부했다.”
폐지될지 모르는 부처를 맡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진 않았나.
“즐거운 마음은 아니었다. 막중한 업무이니만큼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여가부를 개편해 모든 국민의 양성평등을 추구하고 윤석열 정부의 성공에 기여하고자 개인적 편함을 고려하지 않고 이 자리를 맡았다. ‘부처 폐지’는 단순히 여가부가 하는 기능이나 업무를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민들께 정부의 서비스를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자 발전적 해체다. 여가부는 예산이 적고 역할이 제한적인 부처다. 하는 일에 비해 국민 인지도가 낮은 것도 문제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많다 보니 국민의 공감도와 체감도가 다른 부처에 비해 떨어진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좀 더 발전적 방향으로 부처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업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여느 장관들과 주어진 업무 자체가 달랐다. 2대 국정과제에 덧붙여 부처의 발전적 해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업무를 시작했다. 조직의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이 많아 공무원들과도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래서인지 일한 기간은 6개월여지만, 체감 기간은 더 길게 느껴진다. 이전에는 여가부 업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안에 들어와 일하며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적지 않다. 한부모·다문화가족,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학교 안팎 청소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하면서 여가부가 정말 중요한 일을 하는구나 새삼 느끼기도 했다. 동시에 여가부가 갖고 있는 예산과 인력, 권한의 한계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밖에서 거는 기대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여가부의 2대 국정과제는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 구현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 확립이다.
‘결혼은 선택’인 시대의 해법
‘여성’가족부라는 명칭 자체가 한계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영어로는 양성평등부인데 앞선 정부에서 권력형 성범죄를 겪으며 여가부를 바라보는 MZ세대의 사회적 인식이 나빠진 측면이 있다. 그때 여가부가 명확한 스탠스를 취했어야 한다. 2001년 여가부 출범 당시에는 실제 가부장적 문화가 여전했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았다. 이후 20여 년간 여가부는 호주제 폐지, 성폭력방지법 제정, 친고죄 폐지, 양육비이행관리원 설립 등을 통해 성차별 해소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본다. 다만 변화된 사회 환경과 청년층의 인식을 반영하지 못했고 기능이 아닌 ‘여성’ ‘청소년’ 같은 대상을 중심으로 정책을 수행하다 보니 다른 부처와 중첩되는 업무가 많아 실효성 측면에서 한계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부처명에 ‘여성’을 붙이는 것도 형평성에 맞지 않는 느낌을 준다. 이제는 양성평등의 관점이 시대정신에 맞는다. 취약계층과 여성만이 아니라 정책이 모두에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관으로서 느낀 한계는 어떤 것인가.
“지금 여가부의 발전적 해체에만 집중하는 건 아니다. 기존에 하던 청소년과 가족 관련 정책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다른 공공기관과의 업무협약(MOU)에도 신경 쓰고 있다. 여가부는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니 교육부와 협업이 중요하다. 교육부, 교육청과 협업해 기존에 하던 업무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무엇보다 청소년 문제 해소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장관이 열심히 뛰어다니고 공무원들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현재 형편으로는 제약이 따른다. 직무의 범위는 넓은데 정책의 몸통이 다른 부처에 있어 연계가 불가피하다. 늘 찾아다니면서 사정하고 부탁해야 한다. 여가부는 타 부처가 메우지 못한 틈새를 다루기 때문에 업무를 크게 확장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다. 청소년 마약 문제가 심각해도 여가부가 대책 마련을 주도할 수 없다.”
한국의 합계출산율(가임기간인 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2021년 기준 0.81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보육과 저출산 문제 해소에 공을 들이는데도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정부가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정부 정책이 먹히지 않는 건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 탓이다. 여성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결혼이나 자녀가 아닌 자신의 일과 직업으로 완전히 이동했다. 직업은 필수, 결혼은 선택이 됐다. 지난 정권에서 심화한 젠더 갈등도 원인을 제공했다. 남녀가 서로 피해자라며 결혼을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국민의 의식수준 변화를 정책이 못 쫓아가는 것도 문제다. 사실 보육 서비스는 거의 완성 단계인데 아이들이 줄어서 시설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이제는 아이를 국가가 같이 키워주고 남편이 같이 키워야 한다. 중소기업엔 여성 근로자가 많다. 근로자의 83%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일하는데, 이런 곳은 재택근무나 육아휴직 같은 걸 활용하기 어렵다. 남자든, 여자든 육아휴직을 편하게 쓰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출산율이 높아진다. 출산율이 높은 선진국은 하나같이 가로축 보육과 세로축 육아휴직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 보건복지부, 일부 고용노동부 이관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7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왼쪽)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형제 많은 집에서 자라 아이를 좋아한다. 아기를 많이 낳고 싶었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가 어릴 때 체중이 줄 정도로 아픈 적이 있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데 내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 아픈 아이를 포대기로 업은 채로 엎어져서 밤을 샌 기억이 난다. 잠든 아이가 깰까 봐 옆으로 누울 수도 없었다. 밤새 그러고 있었더니 너무 힘들었다. 보육의 고충을 온몸으로 느꼈다.”
남편의 도움을 받지 못했나.
“남편이 예전엔 금융권에서 일해 무척 바빴다. 그때 나는 교수라서 상대적으로 덜 바쁜 편이었다. 지금은 반대가 됐다.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돕고 음식도 하고 그런다. 남편은 스스로 양성평등 인식이 굉장히 강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이기에 차별받은 경험도 있나.
“내가 들어간 경제학과 정원 223명 중 여학생이 4명뿐이었다. 굉장히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살다 보니 여성은 더 노력해야 했다. 내 또래 여성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남성보다 몇 배로 노력해도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이 낳고 퉁퉁 부은 상태로 육아휴직도 못 쓰고 출근했다는 사람도 있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분인데 출산 후 일주일 만에 출근했다고 하더라. 그때는 여자가 남자보다 일을 못한다는 편견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조직의 ‘발전적 해체’는 언제 이뤄지나.
“여가부 조직개편과 관련한 행정안전부의 정부조직개편안이 2022년 10월 발표됐다. 이어 11월에는 여가부 폐지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됐다. 법 개정 사항인 만큼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여가부의 기능이 강화되고 새로운 거버넌스를 통해 정책 영역도 확장되는 만큼, 국회 논의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입법을 지원해 나갈 것이다. 조직개편은 조직의 상징성보다 실용성, 효율성에 방점을 뒀다. 여성 고용과 폭력 피해자 지원, 가족·청소년 정책이 더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방향으로 안을 마련했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공무원들은 어떻게 되나.
“이관되는 부처로 자리를 옮긴다. 거의 대부분이 복지부로 가고 일부는 고용노동부로 간다. 복지부의 인구정책실과 여가부의 이관된 조직이 하나로 통합돼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다시 태어난다. 1차관, 2차관 외에 본부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조직을 개편할 수 있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디테일하게 처리할 일이 많다.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 직제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한 협상에 장관의 역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본부를 어떻게 구성하고 관리하느냐가 조직개편의 성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양성평등·청소년 안전망에 특별한 관심
여성가족부가 수행하던 양성평등, 경력단절여성 지원,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가족·청소년 지원 정책은 앞으로 어느 곳에서 다루게 되나.“양성평등 정책은 복지부 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수행할 것이다.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는 여가부가 수행하던 가족·청소년·양성평등·폭력 피해 대응 같은 기존 업무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이를 복지부의 영유아, 아동, 노인 업무와 결합해 양성평등 관점에서 형평성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복지부에서 관련 정책을 통합하면 좀 더 합리적으로 양성평등 문화를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사실 초등학교엔 남자 선생님이 너무 없다. 여성이 절대 다수인 간호사 직군에도 남녀 균형이 필요해 보인다. 사회 곳곳에 양성평등이 자리 잡으면 좋겠다. 여가부의 조직개편으로 양성평등의 수혜를 국민 모두 느끼기 바란다.
경력단절여성 지원과 같은 ‘여성 고용’에 관한 기능은 통합적 지원 차원에서 고용노동부로 이관된다. 아동-청소년, 가족 돌봄-보육 등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달 체계도 통합된다. 이를 통해 복지부와 노동부는 질 좋은 서비스를 더욱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전달하게 될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장관으로서 일하며 가장 잘한 일이 뭐라고 생각하나.
“여가부의 기존 업무를 강화하고 지평을 넓히기 위해 부처 개편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여가부의 정책과 서비스가 국민에게 더욱 체감 있게 작동하면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마련했다. 여가부 정책 가운데 국민 체감도가 가장 높은 것은 아이돌봄서비스인데 이를 민간 영역까지 넓힐 수 있도록 2025년까지 국가자격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아이 돌보미를 17만 명으로 늘리기 위해 사전 준비 차원에서 민간 육아 도우미 약 100명을 대상으로 교육 시범 사업을 실시했다. 이태원 사고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에게 심리상담을 지원하기도 했다. 지금도 수도권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중심으로 특별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 가족센터 244개소를 중심으로 생애주기별 가족 문제를 조기에 예방하도록 돕는 일도 한다. 또 행정복지센터 등 지역 내 유관 기관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해 지원 대상을 적극 발굴하며 가족지원서비스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아파도 기댈 사람이 없는 1인 가구를 위한 병원 동행 서비스나 간병 서비스 등이 좋은 예다.”
새해 여가부 예산이 소폭 늘었다고 들었다.
“2023년 여가부 소관 예산안은 총 1조5505억 원으로 전년 대비 855억 원(5.8%)이 증가했다.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 속에서도 여가부는 2대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부모가족, 위기 청소년 같은 취약계층 지원을 강화하고,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을 늘리고, 스토킹 등 폭력 피해자 지원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예산을 편성했다.”
여가부의 마지막 장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뭔가.
“자기 부처 폐지해 달라는 장관은 처음이라고 어떤 분이 얘기하던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이 더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 조직이 개편돼 일부가 아닌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차별받지 않는 양성평등을 누리길 바란다. 마지막 장관이 일을 잘해 이념에 그치던 양성평등이 실생활로 확산됐다는 평을 듣고 싶다. 미래의 주역인 소중한 청소년이 어디에 있든 대한민국이 확실하게 보호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런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으면 행복할 것 같다.”
신동아 1월호 표지.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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