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호

주목하라! 액티브 시니어가 뜬다

“우리를 ‘실버’라 부르지 말라!”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3-05-23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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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 관심 많고 여가 즐기는 50대 베이비부머
    • 어려 보이고 유행에 민감한 영캐주얼 브랜드 선호
    • 오프라인 매장 ‘돋보기’, 온라인몰 ‘전화주문결제’ 인기
    주목하라! 액티브 시니어가 뜬다

    유한킴벌리가 최근 진행한 액티브 시니어 비즈니스 스쿨 워크숍.

    #1 중소기업 부장으로 명예 퇴직한 박봉규(54) 씨는 아내와 함께 제빵 기술을 배워 창업에 성공했다. 집 근처에 소규모 매장을 열고 ‘브랜드 제과점보다 싸고, 친절하게’ 박리다매한 것이 비결이다. 퇴직 후 바로 낸 소갈비집이 망해 퇴직금을 몽땅 날린 박 씨는 “실패를 거울 삼아 초기 투자비용을 줄이고 주변 상권의 틈새시장을 공략했다”고 말했다. 팔다 남은 빵은 양로원이나 노인정으로 보내고, 매주 일요일엔 문을 닫는 것이 이 가게의 철칙. 그는 “일요일마다 아내와 등산을 한다”며 “건강과 젊음을 흥청망청 소비한 것이 후회돼 등산도, 일도 신나게 즐긴다”고 했다.

    #2 서울 송파구 잠실에 사는 주부 이정남(52) 씨는 댄스스포츠를 5년째 배우고 있다. 40대 중반까지 60kg을 육박하던 체중은 그 사이 52kg으로 줄었고, 출산 후 부쩍 늘었던 군살도 쏙 빠졌다. 이 씨는 어딜 가든 제 나이로 안 본다며 “이게 다 댄스스포츠 덕분”이라고 했다.

    “아이 둘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나니 인생 뭐 있나 싶더라고요. 치맛바람 날리며 과외공부 시키고 같이 밤잠 설쳐가면서 원하던 대학에 보내놨더니 엄마 고마운 줄도 모르고…. 남편도 애들도 만날 늦게 들어와서 집 지키는 강아지 신세였는데 댄스스포츠를 배우면서 모든 게 달라졌어요. 몸매가 예뻐진 건 작은 변화에 불과해요. 사는 게 한결 재밌어지고 뭘 해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빵집 사장님 박 씨와 주부 이 씨처럼 50대에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하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가 최근 부쩍 늘었다. 액티브 시니어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연장자라는 뜻.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 버니스 뉴가튼이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 다르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 신조어다. 보통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1차 베이비부머 세대를 가리킨다. 현재 액티브 시니어의 인구는 714만여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3%를 차지한다.

    1000만 흥행 이끈 주역



    액티브 시니어는 건강과 외모에 관심이 많고 소비와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한다는 점에서 실버 세대와 구분된다. 경제적 기반이 탄탄해 경기 영향을 덜 받고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구매욕이 큰 것이 특징. 이들은 △미용과 운동을 통한 자기관리 △외국어와 컴퓨터 활용 교육을 통한 자기계발 △여행이나 공연관람 같은 문화생활을 즐겨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어 올 초 개봉한 ‘7번방의 선물’로 이어진 1000만 관객 돌파 행진 뒤에는 액티브 시니어의 힘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평론가인 심영섭 한국영상응용연구소장은 “최근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선 50대 액티브 시니어를 사로잡아야 1000만 고지를 밟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며 ‘50대의 특수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심 소장의 부연 설명은 이렇다.

    유통업계 경쟁 불붙여

    “50대는 정서적으로 시대에 뒤처져 있지 않고 영상 문화가 낯설지 않다. 문화에 대한 향수가 강하며 사회 정의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세대다. 30~40대엔 아이를 키우느라 집에서 비디오로 영화를 즐겼지만, 경제력과 시간적인 여유를 다 갖춘 50대 액티브 시니어는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관람하는 문화생활을 즐긴다. 이들은 사회성 짙은 영화, 이를테면 ‘부러진 화살’‘도가니’ 같은 영화에 열광한다. 삶의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웃음과 해학과 품격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주목하라! 액티브 시니어가 뜬다

    중년배우 유지인이 ‘디펜스 스타일팬티’의 편안한 착용감을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은 GS샵이 4월 중순 오픈한 액티브 시니어 전용 인터넷쇼핑몰 ‘오아후’.

    액티브 시니어가 극장가 흥행을 이끄는 숨은 주역임을 간파한 할리우드에서는 이들 50대 관객을 겨냥한 영화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메릴 스트립, 토미 리 존스 주연의 ‘호프스프링스’가 대표적이다. 결혼 30년차 섹스리스 부부가 일주일간 ‘부부관계 힐링캠프’에 참여하면서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지난해 개봉한 육상효 감독의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도 액티브 시니어를 타깃으로 했다. 감동과 공감을 중시하는 대신 아무르, 누아르, 스릴러, 액션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것도 액티브 시니어의 특징이다. 심 소장은 액티브 시니어의 이런 성향이 “시대적 아픔과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가 흥행하고 꾸준히 제작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시장 규모가 2010년 44조 원에서 2020년 148조 원으로 3배 넘게 커질 전망이다. 액티브 시니어를 겨냥한 유통업체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이유다.

    GS샵은 4월 17일 50대 전용 인터넷 쇼핑몰 ‘오아후(oahu.gashop.com)’를 오픈했다. 오아후는 ‘오십대부터 시작하는 아름답고 후회 없는 삶’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쇼핑몰이라는 의미다. 온라인 쇼핑몰이지만 50대 고객이 인터넷 구매를 꺼린다는 점을 고려해 전화로 상담, 주문, 결제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쇼핑 중 애로사항이 있을 때 연락처와 전화통화가 가능한 시간을 남기면 상담원이 이에 맞춰 전화하는 ‘콜백 서비스’와 컴퓨터 조작이 힘든 고객을 위해 고객의 컴퓨터를 상담원이 원격 제어를 통해 쇼핑할 수 있도록 돕는 ‘원격 서비스’ 등도 제공한다. 이 회사의 조인찬 오아후팀장은 “무엇보다 전화 상담원을 통한 주문과 결제 서비스의 만족도가 높다”며 “오아후의 등장이 액티브 시니어의 인터넷 진입 장벽을 낮추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민 해결에서 일자리까지

    CJ 오쇼핑은 ‘에클레어 바이 휘’라는 여성복 브랜드를 2011년 11월 론칭했다. 고급스러움을 지향하면서 합리적인 소비를 원하는 중년 여성이 타깃이다. CJ오쇼핑과 중견배우 이휘향이 함께 기획한 브랜드로 고객의 80% 이상이 50대다. 론칭 이후 현재까지 누적 주문고가 300억 원을 넘었다. 지난해 CJ오쇼핑이 액티브 시니어를 염두에 두고 다채롭게 선보인 헬스·가전제품 매출은 전년보다 2배 가까이 뛰었다.

    헬스·가전제품의 경우 지난해까지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많았지만 올 들어서는 가격 부담이 적은 대여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대여 비용도 한 달에 4만~5만 원 선으로 저렴해지는 추세다. 현대홈쇼핑은 2월 ‘장수 흑침대’를 업계 최초로 대여 방식으로 선보여 건강에 관심이 높은 액티브 시니어의 호응을 끌어냈다. 임현태 현대홈쇼핑 마케팅팀장은 “그 상품은 침대라기보다 식약청(현 식약처)으로부터 근육통 완화 효과를 인정받은 의료기기”라면서 “마음이 가도 고가여서 구매를 꺼리던 50대 고객이 부담 없이 쓸 수 있게 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생활용품업체들도 건강보조식품, 미용마사지기구 등 액티브 시니어용 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는 업체가 유한킴벌리다. 액티브 시니어 비즈니스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특화한 유한킴벌리는 제품 출시에 급급하지 않고 전문용품 개발과 다각적인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 상품은 요실금으로 외출을 꺼리는 액티브 시니어를 겨낭한 ‘디펜스 스타일팬티’다. 실버용 기저귀보다 착용감과 기능성을 높인 이 팬티는 지난해 10월 첫 출시 이후 올해 1월까지 4개월 동안 제품 체험 행사를 진행해 7만3000여 건의 문의가 이어질 정도로 높은 관심을 모았다. 이 회사의 손승우 홍보팀장은 “아이를 낳은 여성의 약 40%가 요실금 증상을 경험한다”며 “체험 프로모션 기간이 끝난 2월 이후에도 요실금 제품과 건강상담 문의가 월 평균 7000여 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주목하라! 액티브 시니어가 뜬다

    10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왼쪽)와 ‘7번방의 선물’.

    이 팬티는 55세 이상 여성으로 구성된 ‘스타일 판촉단’이 대형마트에 파견돼 ‘또래’ 고객에게 판매한다. 전화상담 요원도 55세 이상의 간호사 출신이다. 젊은 점원에게 고민을 말하기 쑥스럽다는 소비자의 심리를 배려한 동시에 액티브 시니어가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다.

    하지만 액티브 시니어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비즈니스를 벌였다간 실패하기 십상이다. 롯데백화점의 ‘실버 기프트 편집숍’이 좋은 예다. 50대 이상 시니어를 타깃으로 2년 전 서울 소공동 본점에 오픈한 실버 기프트 편집숍은 판매 실적이 저조해 최근 문을 닫았다.

    ‘실버’와의 차별화가 관건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실패의 가장 큰 이유로 “젊어 보이고 싶은 고객의 마음을 간과한 점”을 들었다. 그는 “나이 들었다는 느낌을 주는 ‘실버’라는 단어가 들어가다보니 숍을 이용하면 자신이 실버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객이 발을 들이는 자체를 꺼린 것 같다”며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밑거름 삼아 지난해 10월부터 본점 영플라자 브랜드의 90%를 바꿔 리뉴얼 오픈해 한국형 SPA(제조와 유통을 일원화해 판매단가를 낮춘 영캐주얼 브랜드), 명소 스트리트 브랜드 등을 적극 선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2013년 1월부터 4월까지 롯데백화점 SPA 상품군의 연령대별 구성비를 살펴본 결과 20~30대 구매 고객은 15% 늘어난 데 반해 50대 이상 구매 고객은 50% 넘게 늘었다. 액티브 시니어는 젊고 캐주얼한 옷을 선호했으며 색상이 화려하고 기능성이 좋은 아웃도어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현대홈쇼핑이 지난해 12월 30~40대를 타깃으로 방송한 ‘스위스 밀리터리 방한부츠’도 오히려 액티브 시니어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했다. 이 상품은 방송에서만 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두 달 만에 62억 원어치가 팔렸다.

    시니어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이완정 리즈플러스 대표는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할 때 나이를 부각하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대표의 말이다.

    “현대인은 70대 이상은 돼야 노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 설문조사를 통해 나온 결과다. 더구나 액티브 시니어는 스스로를 실제 연령보다 10~15세 젊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상품이나 서비스의 이름에 나이를 부각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과거 노인층을 대상으로 한 여행상품에는 대부분 ‘효도관광’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지만 요즘은 이런 상품을 찾아볼 수 없다. 액티브 시니어의 성향을 알기 때문이다.”

    고객과의 친밀도를 높이는 대면 서비스 강화도 액티브 시니어 비즈니스의 성공 포인트 중 하나다. 이 대표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는 이성보다 감성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고객의 말에 귀 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종업원의 태도를 보고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을 판단한다. 본인이 직접 매장을 방문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눈으로 확인한 다음에야 신뢰감을 갖는다. 이들이 인터넷 쇼핑을 꺼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경제적 안정을 이룬 액티브 시니어에게 단순히 저렴한 가격은 구매욕을 당기는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다.

    매장 편의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대외활동에 크게 무리가 없다 해도 노안으로 작은 글씨가 안 보이거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완정 대표는 “미끄럽지 않게 개선한 바닥과 상품 진열장 옆에 놓인 돋보기와 의자, 전신이 날씬해 보이는 거울 등 세심한 배려가 액티브 시니어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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