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호

고통 중에 있었지만 괴롭기만 하지 않았고, 이별 앞에 있었지만 슬프기만 하지 않았다

[포토 에세이]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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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5-11-0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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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은 서울세계불꽃축제 때 한강이 보이는 사무실에 환자와 가족을 모셔 불꽃놀이 감상 기회를 제공한다.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은 서울세계불꽃축제 때 한강이 보이는 사무실에 환자와 가족을 모셔 불꽃놀이 감상 기회를 제공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낸 7주간은 엄마와 제게 특별했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주신 의료진 선생님들과 수녀님들, 치료요법 선생님들과 자원봉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던 환자의 딸이 병원 측에 보낸 편지.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던 환자의 딸이 병원 측에 보낸 편지.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던 환자의 딸이 병원 측에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임종을 앞둔 말기암 환자가 입원하는 호스피스 병동은 환자의 통증 완화에 초점을 두고 치료하는 게 특징이다. ‘예고된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환자와 보호자 등 가족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남은 시간 동안 환자와 가족에게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 바로 호스피스다.

    # 함께 본 마지막 불꽃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여의도성모병원은 한강에서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리는 날 밤, 호스피스 병동 입원 환자와 가족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한다. 한강이 잘 보이는 병동 사무실에 환자와 가족들을 모셔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놀이를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1년 중 하루, 그것도 두 시간 남짓 짧은 이벤트이지만 환자와 가족들이 고통과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화려한 불꽃을 함께 보며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더 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이다. 올해는 지난 9월 27일 열렸다.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은 매주 화요일 오전 9시 회진 때 신부님과 수녀님이 함께 병실을 찾아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한다.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은 매주 화요일 오전 9시 회진 때 신부님과 수녀님이 함께 병실을 찾아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한다. 

    #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오전 9시.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는 일반 병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부센터장이자 가정의학과장을 맡고 있는 정주혜 교수가 입원 환자와 가족에게 밤새 상태가 어떤지 묻고 필요한 처방과 조치를 하는 ‘회진’을 마치고 나면,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인 김은기 신부와 원목팀 김은미 수녀, 김은경 팀장과 최윤진·김현수 간호사, 사회복지사인 김윤정 수녀, 이지윤 사회복지사 등 10여 명이 함께 모여 환자를 위한 축복 기도를 한다.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편안하게 치료 잘 받으세요.”

    기도를 마치고 건넨 김은기 신부 말씀에 환자와 보호자가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화답했다. 몸이 아픈 ‘통증’은 약물 투입으로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지만, ‘예고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은 약으로만은 해소되지 않는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은 물론 신부와 수녀, 사회복지사 등 호스피스완화의료팀원 모두가 함께하는 ‘작은 기도식’은 가톨릭 신자인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환자와 가족을 위한 조촐한 파티를 연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환자와 가족을 위한 조촐한 파티를 연다. 

    # Now & Here

    ‘다음’을 기약하기 힘든 말기암 환자들이 머무는 호스피스 병동은 늘 분주하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호스피스완화센터 의료팀이 ‘지금’ ‘여기’서 ‘함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조촐한 파티를 준비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겐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이수영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1 꽃이 피는 화창한 봄날이면 병동 밖으로 환자를 모시고 나가 ‘꽃구경’을 함께 한다.  

    1 꽃이 피는 화창한 봄날이면 병동 밖으로 환자를 모시고 나가 ‘꽃구경’을 함께 한다.  

    2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되는 원예와 미술, 음악요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되는 원예와 미술, 음악요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3 환자와 가족이 함께 완성한 그림 ‘예수님과 함께하는 바캉스’.  

    3 환자와 가족이 함께 완성한 그림 ‘예수님과 함께하는 바캉스’.  

    # 꽃나들이, 음악회, 그리고 ‘특식’

    긴 투병으로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처럼 느껴질 수 있는 환자와 가족을 위해 호스피스 병동 의료팀은 ‘눈’과 ‘귀’, 그리고 ‘입’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시행한다. 봄의 전령 개나리꽃이 활짝 핀 화창한 봄날에는 병동 밖으로 환자와 함께 ‘꽃 나들이’를 나가고, 영화 상영회와 음악회를 열어 환자와 가족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제철 채소를 나누기도 하고, 복날이 되면 원기 보충에 도움 되는 ‘장어덮밥’, 후식으로는 더위에 지친 몸을 시원하게 해줄 ‘팥빙수’를 제공해 ‘특별한 맛’을 선사하기도 한다.

    # 원예, 미술, 그리고 음악요법

    남은 생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센터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진행한다. 꽃과 식물을 활용한 원예 활동, 그림을 그리며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는 미술 활동, 그리고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 연주를 통한 음악 활동 등을 통해 환자의 심신 안정을 꾀한다. 원예와 미술, 음악요법 등은 신체적·정서적·사회적 건강을 증진하는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제철 채소는 물론 삼복 더위 때에는 ‘장어덮밥’과 ‘팥빙수’ 같은 특식을 제공한다.  

    제철 채소는 물론 삼복 더위 때에는 ‘장어덮밥’과 ‘팥빙수’ 같은 특식을 제공한다.  

    호스피스 병동 환자와 가족을 위한 영화 상영회, 음악회도 열린다.  

    호스피스 병동 환자와 가족을 위한 영화 상영회, 음악회도 열린다.  

    환자의 ‘영적 돌봄’을 위해 다양한 종교 행사도 열린다.  

    환자의 ‘영적 돌봄’을 위해 다양한 종교 행사도 열린다.  

    # 세례식, 센터 미사, 그리고 성모의 밤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은 말기암 환자의 ‘통증 완화’뿐 아니라 ‘영적 돌봄’도 중시한다. 가톨릭대학교 부설 병원이라는 점에서 ‘가톨릭’ 특성에 맞게 다양한 행사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열린다.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세례식’을 비롯해, 병동 한가운데 환자와 가족이 함께 모여 센터장인 김은기 신부가 집전하는 ‘센터 미사’, 그리고 5월 성모성월 중 특별히 성모마리아를 기리기 위한 ‘성모의 밤’ 행사 등이 그것이다.

    여의도성모병원은 ‘사별’한 가족을 위한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의도성모병원은 ‘사별’한 가족을 위한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임마누엘실’.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임마누엘실’. 

    # 아름다운 이별

    말기암 진단을 받은 환자만 입원할 수 있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진통제 처방과 투약 등을 통해 환자의 통증을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또한 호흡곤란과 부종, 섬망 등 신체적 증상 조절을 위한 약물도 투여한다. 동시에 입 마름과 식욕부진 등 환자의 증상 조절을 위해 가족이 할 수 있는 돌봄 방법을 교육하고, 환자와 가족의 심리, 사회적 돌봄을 위한 상담도 제공한다. 

    피할 수 없는 ‘이별’에 앞서 임종 준비를 위한 가족 교육과 장례 준비에 필요한 절차도 안내한다. 가족들이 환자 옆에서 끝까지 아름다운 이별에 함께할 수 있도록 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는 ‘임마누엘실’(임종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사별’한 가족을 위한 돌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문자와 전화 상담을 통해 일정 기간 사별 가족의 안위를 묻고, 사별가족을 위한 돌봄 모임도 운영한다. 

    함께였었던 너 

    지금 어느 별에 있니

    난 아직도 이별에 있어

    흩어져가는 하늘에 나를 태워 보면

    볼 수 있을까 너 있는 곳에

    혹시 너도 나를 찾고서 있는지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너를 기다리고만 있어

    너의 밤하늘 속에 내가 있다면

    그 수많은 별들 중에 한 점이라도 채워지면

    그걸로 좋아 이별이 된대도

    함께였었던 너 지금 어느 별에 있니

    난 아직도 이별에 있어

    환하게 웃어주던 니 마지막 모습이 그리워

    꿈에서라도 만날까

    너를 품에 안고 잠들어

    너의 밤하늘 속에 내가 있다면

    그 수많은 별들 중에 한 점이라도 채워지면

    그걸로 좋아 이별이 된대도

    너를 잊지 않을게

                                         - 길구봉구 ‘이별’



    구자홍 기자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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