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주는 교훈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입력2014-01-21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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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여러 차원의 역사를 만든다. 가족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국사는 가족사에 대해 봉건적이라는 굴레를 씌워 봉쇄한다.
    • 그러나 족보는 여러 역사의 일부이지, 타도 대상이 아니다. 학교나 사회단체, 지역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역사도 ‘역사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교학사에서 펴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표지.

    그동안 우리는 역사 탐구와 서술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와 왜곡에 대해 꽤 오랫동안 살펴봤다. 이제 역사 논쟁에서 나타나는 오류와 왜곡을 살펴보려고 한다. 논쟁이나 해석의 차이는 사실(史實)에 대한 탐구와 서술을 기초로 발생하는 것이기에 사실 두 영역을 나눠 설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한계랄까, 조건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럽게 역사 논쟁에서의 오류를 검토해보자. 마침 최근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한국사 교과서가 있다. 그 교과서를 둘러싼 논의와 논쟁은 우리의 역사 공부에 매우 좋은 자료가 된다.

    역사학의 위기(?)

    역사학도 처지에서 볼 때 현재 역사학과의 위기는 예견돼 있었다. 현대의 오만이긴 하지만, 역사학 역시 ‘진보사관’과 ‘근대주의’의 오만 속에서 협애(狹隘)해졌다. 고대-중세-근대라고 부르는 순간 작동하기 시작하는 진보사관과 근대주의는 사실 역사학의 무덤을 파는 일이었다. 사실과 가치 두 측면에서 모두 현대의 삶이 지고(至高)의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누가 지난 경험을 진지하게 현실로 끌어오겠는가. 과거 또는 경험은 기껏해야 호고(好古) 취미일 뿐이다. 마치 사극(史劇)이나 유사 역사평론이 역사학을 대신하듯.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학이 비실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현재 대학에서 이뤄지는 역사교육은 국민국가사로 한정돼 있다. 전국 모든 대학의 역사학과(국사학과)는 고대사, 고려사, 조선사, 식민지 및 현대사로 교과가 분류돼 있다. 그렇다. 국사(國史)다. 서양사와 동양사 역시 국민국가사 또는 국민국가사를 모아놓은 지역사(예컨대 유럽사, 남미사)를 커리큘럼으로 한다. 대학이 위치한 지역이나 규모의 차이, 이런 건 반영되지 않는다. 스테레오 타입의 교과가 국민국가답게 전국적으로 운영된다. 당연히 해당 전공 교수가 퇴임하면 그 자리엔 그 전공자만 뽑는다. ‘자리’니까. 이렇게 해서 이 국사교육 체제는 온존, 강화된다.



    익히 알다시피 19세기 국민국가의 완성에 충실한 시녀 노릇을 했던 역사는 국민국가 탄생과 유지에 기여했지만, 한편으론 국민국가의 아이덴티티에 방해가 되는 기억은 지워버렸다. 예를 들어, 탐라나 제주에 대한 기억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고, 빨리 지워버리고 국사가 보여주는 기억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웃기는 것은, 현대사는 가능한 한 지워버리려는 게 국사였다. 폴 벤느 같은 역사학자는 아예 역사학은 현대사를 사회학과 인류학에 넘겨줬다고 단언했다.

    사람은 여러 차원의 역사를 만들며 살아간다. 가족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학교에 다니면 학교의 역사를 구성한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은 교회나 절의 역사를, 또 자연스럽게 자기 고장의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국사는 가족사에 대해 봉건적이라는 굴레를 씌워 봉쇄한다. 하지만 족보는 여러 역사의 일부이지, 타도 대상이 아니다. 그 외에 학교나 사회단체, 지역 등 사람들이 곳곳에서 만들어가는 역사는 ‘역사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일곱 색깔 무지개로 구성돼 있는 나를 굳이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물들이려고 하면 받아들여지겠는가. 수능 시험, 공무원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 뿐이다. 그나마 공무원 시험도, 경상도나 충청도 공무원을 뽑는 데 국사 시험을 치는 건 타당성이 없다. 그 지역 공무원으로 근무해야 하니 경상도사(史)나 충청도사를 보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역사 왜곡의 준비

    20세기 ‘근대’ 역사교육이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역사학은 근대주의에 입각한 진보사관을 통해 역사학의 바탕인 과거의 경험을 부정했고, 국민국가사로 자신의 정체성을 제한하면서 역사학의 문채(文彩)를 지웠다. 게다가 역사학이 해줄 수 있는 풍부한 일, 즉 자료 발굴과 정리, 번역과 해설의 책무는 한갓 허드렛일로 버려두고 계속 논문만 요구했다. 재미없는 논문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시간의 문제일 뿐, 현재의 역사학을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학과는 차례차례 망할 것이다. 왜 망하는지도 모른 채.

    여기에 위험요소가 하나 더 늘었다. 한국현대사학회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역사교과서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 학회는 몇 년 전부터 교과서 개정을 건의했고, 당시 역사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위원장 이배용),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가 주체가 되어 한국사 교과서 개정을 추진했다.

    그 결과 교과부가 2009년 8월 9일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했는데, 그 고시 내용에 당초 교육과정심의회를 통과한 초중고 역사교육과정안(한국사 부분)의 원안이 바뀌었다. 그중 하나를 예로 들면 ‘민주주의’ 개념이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뀐 것이었다.

    바뀐 과정부터 이상하다. 당초 과정안 원안은 전문역사학자들의 자문과 시민들도 참여한 공청회, 역사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라는 교과부 자체 검토를 거친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개념에 대해선 논의된 바 없었다. 불쑥 들어간 것이다. 대개 그렇듯, 이렇게 슬쩍 또는 불쑥 들이밀 땐 사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굳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표기하려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민주주의를 시장경제 중심의 자유주의 베이스로만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평등한 시민권에 방점을 둔 민주주의, 소유권의 자유와 시장 우위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의 대립과 조정의 역사가 배어 있다. 자유민주주의 개념은 당연히 복지, 사회정의, 이런 걸 생각하는 사회민주주의(social-democracy)와 다르다. 전자를 채택하면 후자는 역사교육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의미 왜곡의 오류

    현행 헌법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번역되기 때문에 이번 교육과정에 집어넣으려는 자유민주주의와 애당초 기원과 맥락이 다르다. 이런 논의가 오가는 중에 논리가 궁색해지자 자유민주주의론자들은 자유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그럴 거면 그냥 민주주의라 하면 되지, 왜 굳이 자유민주주의라고 쓰고, 거기에 사회민주주의 개념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까지 해야 하나?

    원래 자유민주주의는 특정 정당의 정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61년 12월 7일 기자회견에서 박정희 혁명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라고 선언하고, 1963년 2월 26일 제정된 공화당 강령 1조에서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며,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의 확립을 기한다’라고 했다. 1950년대 양대 정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의 정강 1조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확립’(자유당), ‘일체의 독재주의를 배격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한다’(민주당)로만 돼 있었다.

    특정 정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강으로 채택하는 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특정 정당의 정강 용어를 한국 현대사의 기조로 가르칠 순 없는 일 아닌가.

    이렇게 해서 국민국가사로 편협해진 역사학으로도 부족해서, 이젠 그 국민국가사의 일부만으로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보편적 공감이 아닌 특수한 배제로 작동하는 양상, 공익이 아닌 사익이 우선하는 양상, ‘서경(書經)’의 표현대로 하면 도심(道心)이 아닌 인심(人心)으로 작동하는 양상이 요즘 정부 정책 기조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던 바이지만, 역사교육까지 이렇게 세심하게 관리할 줄은 몰랐다. 정말 디테일이 살아 있다!

    현재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연구회 등 11개 연구단체가 개정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학계 대표들을 면담한 자리에서 이주호 장관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관복 교과부 학교지원국장은 “교과부는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 장관이 다시 한 번 검토하겠다는 뜻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합법적이라…. 그랬겠지. 공무원들이 어련했겠나. 그래서 고전이 중요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을 법으로만 다스리면, 요행히 법망을 빠져나가려고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저자와 한국현대사학회 바른역사국민연합 창립준비위원회 회원 등이 지난해 9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수정 보완 지시를 충분히 이행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왼쪽과 가운데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이명희 공주대 교수.

    ‘학술이라도 제대로’

    2011년 10월 28일, 서울 4·19혁명기념도서관 강당에서 ‘보수와 진보가 보는 민주주의-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론, 헌법, 역사’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역사교과서 개정 논란의 원인이 된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발제를 맡은 박명림 교수(연세대)는 “임시정부 이래 이승만 정부까지 어떤 헌법, 연설, 인터뷰에도 자유민주주의는 없다”는 내용을 구체적 사료와 함께 제시했다. 발표문에서 시종일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썼던 김용직 교수(성신여대)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1차 사료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모두 연구서에서 차용했다. 일단 현재까지, 역사학자인 내가 볼 때 임시정부부터 이승만 정부까지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기본 방향이라는 걸 보여준 사료는 없다.

    필자가 이날을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박 교수에 대한 토론 패널을 맡았던 권희영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역사학에서 사료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해석이다. 이는 역사학의 기본이다. 그런데 박 교수는 사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랬더니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일리가 있다.

    그의 말대로, “역사학에서 사료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해석이다.” 그러나 “역사학은 사료가 없이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역사학의 기본이다. 알고보니 그분이 현대사 전공인 역사학자란다. 그리고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인지라 그날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했는데, 한국현대사학회는 학술단체이지 운동단체가 아니라고 했다. 난 이날 일기에, “권 교수는 학술이 운동보다 그리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학술이라도 제대로 하셨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좋지 않은 인연

    지난해 12월 3일, KBS 전주방송에서 연락이 왔다. 교육부에서 검정 통과 교과서 저자들에게 내린 수정 명령에 대한 토론을 하는데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상황을 잠깐 설명해야 될 듯하다.

    이 문제는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시작돼 더욱 논란을 부추기는 사안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는 지난해 5월 10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1차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국편은 신청한 9종 교과서 중 8종에 대해 합격을 발표했는데, 거기에 교학사에서 펴낸 한국사 교과서(이하 교학사 교과서)가 끼어 있었다. 이어 8월 30일 최종적으로 8종의 교과서가 검정에 합격했다.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는 모두 6명인데, 대표 저자는 한국현대사학회 초대회장 권희영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이고,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은 이 단체의 2대 회장인 이명희 교수(공주대 역사교육과)였다. 세 사람은 현직 교사이며, 나머지 한 사람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좋다, 누가 쓰면 어떠랴! 제대로만 쓴다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1차 검정 결과를 발표한 지 석 달이 지난 8월 30일 국편에서 최종 검정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때 국편은 합격한 교과서의 저작자(저자 전원)와 출판사를 공개함과 아울러 검정 과정에서 국편이 수정을 요구한 명세와 이에 대한 저자들의 수용 여부, 검정 신청본 이후 교과서 저자들이 자체 판단을 통해 수정한 명세를 정리한 도표를 동시에 공개했다. 당초 교육부는 10월 중에 학교별로 이 8권의 책 가운데 하나를 채택해 2014학년도부터 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개그콘서트’ 같은 일은 바로 1차 검정 이후 최종 결과가 나오는 과정에 일어났다. 국편과 교육부는 최종 검정 결과 발표 후에도 내내 해당 검정 교과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장차 학생들이 다 보게 될 책이고, 학교 교사들이 8종류의 교과서를 비교해 채택 여부를 결정해야 할 판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어떻게 알았는지 교과서 내용을 보도했다. 그들 외엔 딱 한 곳, 국회 야당 의원실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지정된 장소를 벗어나지 않고 열람한다는 조건으로.

    나는 어지간해서 남이 쓰는 표현은 삼가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엔 써야겠다. ‘경악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보고 ‘경악했다.’ 이 교과서를 심사한 국편의 발표에 따르면, 국편이 이 교과서를 대상으로 ‘오류니까 수정하라’고 권고한 내용에다, 저자들이 발견해 자체 수정한 내용을 합하여 479곳을 수정한 뒤 최종 검정 과정을 통과했다. 그러니까 국편은 479곳의 오류를 무릅쓰고 검정을 통과시켜주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교과서에 이렇게 많은 자료-사실-서술의 오류가 있으면 검정을 통과하지 못한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다.

    내가 속한 한국역사연구회 등 한국사 연구 4단체가 검토한 결과에 따르면, 479곳을 수정했다는 이 책엔 여전히 298곳의 오류가 있고, 작은 오류까지 따지면 역사적 사실이 잘못 기술된 게 무려 60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1000군데의 오류!

    사실의 정확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아예 포털 사이트에서 긁어온 시각자료로 책을 만들었다. ‘사실, 개념, 용어, 이론 등은 객관적이고 정확한가? 각종 자료는 공신력 있는 최근의 것으로서 출처를 분명히 제시했는가?’라는 교과서 검정 기준을 애당초 무시한 분들이다.

    다채로운 왜곡

    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훈민정음 해례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엔 훈민정음에 관한 내용이 없다. 이 교과서로 배우면 이 나라 국민이면서 훈민정음 창제를 모르는 것뿐 아니라, 훈민정음에 대한 시험문제가 나올 때 풀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심지어 다른 교과서를 그대로 옮긴 곳도 있다. 그 교과서의 원저자는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알고 고쳤다. 한데 이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원저자가 실수한 부분을 그대로 옮기는 촌극을 빚었다.

    또 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교사 세 사람은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권희영, 이명희 두 교수의 전횡에 불만을 가졌고, 공동 저자들의 의견과 다른 내용이 너무 많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필자 명단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저자가 저자이길 거부한 초유의 한국사 교과서가 된 셈이다. 또 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 사람은 검정본부에 제출한 저자 약력을 허위로 작성했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참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1) 훈민정음 삭제. 교학사 교과서엔 훈민정음에 대한 내용이 없다.

    2) 헌법 전문에도 들어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연대표에서 ‘빠뜨리거나’, 애국가조차 틀리게 기술했다.

    3) 이승만의 이름은 교과서에서 모두 82회 등장한다. 그다음으로 많은 김일성, 박정희, 김구 등은 17, 18회 안팎이다. 특히 1940년대 항일운동을 다룬 대목에선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구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데 비해 이승만 이름은 무려 32회 등장한다. 아예 “이승만은 당시에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방송을 함으로써 국민들과 더욱 친밀하게 되었고, 광복 후 국민적 영웅이 될 수 있었다”(교학사 전시본 293쪽)라고 왜곡을 서슴지 않았다.

    4) 탐구학습 : 교과서 190쪽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에 가담했던 일본인의 회고록을 사료로 인용한 뒤, “당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란 탐구활동을 제시했다. 질문 수준하고는…. 이들은 학생들로부터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을까?

    논란의 또 다른 함정

    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구한말의 항일의병.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일본군이 의병을 ‘토벌했다’고 기술했다. 외국 군대가, 그것도 조선 땅에서, 자신들의 지배권을 확보하려고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의병을 학살했다. 이쯤 되면 일본 극우파 교과서에 못지않다.

    지면 관계상 맛만 보여드렸다. 이런 자리에 교육부가 빠질 수 없다. 교학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과 함량 미달 수준이 알려지자 교육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우선 ‘고르게’ 오류 시정 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교학사 교과서가 저질렀는데, 엉뚱하게도 다른 교과서까지 시정하게 함으로써 교육부의 역사교육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교육부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미래엔출판사에서 간행할 한국사 교과서에 몇몇 소주제가 있는데, 그 소주제명 가운데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다니!’, ‘피로 얼룩진 5·18 민주화운동’,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부’(322∼337쪽) 등이 교과서 용어로 부적절하다며 다른 표현으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이승만 독재와 4·19혁명’이란 소제목에선 ‘이승만 독재’를 빼라고 명령했다. 참 재미있는 교육부다.

    교육부는 수정 명령을 합리화하려고 ‘수정심의위원회’를 만들었다. 이거, 법적 근거 없다! 그런데도 만든다. 왜? 자신들이 수정 명령 권한을 갖고 있다고 우기는 것이다. 왜 우길까? 그렇다. 현 검정제도를 무력화하고 결국 교육부가 지정하는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려는 것이다. 그나마 여러 교과서를 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나아진 한국사 교과서 제도를 군사독재시대로 되돌려 ‘주입, 세뇌’시키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KBS 전주방송에 나와 토론했던 권희영 교수는 검정교과서가 모두 좌파 성향이라며 국정교과서로 가야 한다고 거품을 물었다. 이분은 북한이 전체주의라서 싫다고 한다. 민중사관에 대해선 거의 발작적 거부감을 보인다. 도대체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중사관을 부정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걸까? 그것은 헌법 가치의 부정이고, 민주주의의 부정이다. 이런 권 교수의 행태가 전형적인 파시스트다. 나는 전체주의를 주장하고 실현하려는 자들을 파시스트라고 생각하는데, 이분은 다르게 생각하나보다.

    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오항녕

    1961년 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 동 대학원 석·박사

    국가기록원 팀장

    현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저서: ‘조선의 힘’ ‘기록한다는 것’, ‘조선초기 성리학과 역사학’ 등


    역사의 사료가 중요한 것은 관점이 망상으로 탈출하는 걸 막아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역사학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가치다. 이분이 내 칼럼을 못 본 모양이다. 역사자료를 많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실수하지 않는다. 물론 이분은 사료에 관심이 없다. ‘관점에만’ 관심이 있다. 역사학은 이러면 안 된다. 그래서 내가 진작 학술이라도 제대로 하라고 했던 것이다.

    * 필자의 견해는 본지의 제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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