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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테라피 ⑧

죽음, 삶의 질을 바꾸는 인생 퍼즐 한 조각

  • 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죽음, 삶의 질을 바꾸는 인생 퍼즐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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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삶의 질을 바꾸는 인생 퍼즐 한 조각

유능하고 아름다운 젊은이의 죽음을 다룬 ‘타임 투 리브’.

불꽃처럼 작렬하는 죽음

죽음은 순간을 절대화한다. 무한정 남아있을 것만 같던 시간이 셀 수 있는 무엇으로 압축되었을 때, 하루하루는 다른 의미로 격상된다. 사람들은 언젠가 죽을 것을 알지만 예고된 시간을 견디지는 못한다. 하루하루 기다리는 죽음은 그 자체로 형벌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의 기운에 모두가 다 관대할 수 있을까? 아마도 기다림이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들은 어딘가 결연하고 또 장렬한 데가 있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스타일은 무뚝뚝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지는 그의 표정과 닮아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 ‘하나비’는 기타노 다케시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인의 죽음에 대한 관념, 그 독특한 관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형사인 니시와 호리에는 파트너를 이루어 야쿠자를 소탕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니시는 딸을 잃는다. 게다가 아내마저 시한부 진단을 받는다. 니시가 아내의 병문안을 간 사이 불의의 습격을 받은 호리에는 불구가 되어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는다. 게다가 호리에를 습격한 범인이 후배 경찰까지 죽이자 이에 분노한 니시는 범인을 죽이고 경찰직을 그만둔다. 문제는 아픈 아내를 돌볼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 니시는 야쿠자에게 빚을 지고, 빚 독촉에 시달린다. 어느 날 낮은 탁상에 아내와 마주앉은 니시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떠나자고 말한다. 한겨울 눈이 쌓인 홋카이도로 그들은 여행을 떠난다. 목 아래, 어떤 곳은 머리 위까지 눈이 쌓인 북해도의 도로를 지나 어느새 바닷가에 닿는다. 그리고 한 아름 폭죽을 사와서 터뜨리며 불꽃을 즐긴다.

무작정 여행을 떠난 그들의 최종 도착지, 바다에 닿아 니시는 권총을 꺼내 아내와 자신을 겨눈다. 하나비는 일본어로 불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과 꽃의 합성어, 불꽃. 어쩌면 기타노 다케시는 죽음이란 그렇게 순간에 작렬하는 불꽃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침몰하는 배처럼 조금씩 사라져가는 생의 마지노선을 바라보며 서있을 것이 아니라 그렇게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사라지는 것. 그것이 바로 기타노 다케시, 그리고 일본인들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죽음이다. 사쿠라, 벚꽃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미학도 바로 순간의 사멸과 닿아 있다. 분분히 떨어져 사라질 때 더 아름다운 꽃, 변색과 탈색의 과정을 생략하고 싱싱한 채로 떨어지는 꽃의 매력말이다.



패션사진작가 로맹에게 죽음은 아주 먼 일이다. 그는 젊고, 잘생기고, 매력적인데다가 유능하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말기 암이라는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그렇다면 이제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유능한 젊은이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는 보장된 미래의 박탈과 다름없다. 그는 미래의 시간을 차압당한 채 낯선 죽음의 세계로 초대받았다. 공원에서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을 새삼스레 다시 바라보게 된 로맹, 시간은 이제 그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흥미로운 것은 그의 선택이다. 아직 젊은 그는 항암치료를 거부한 채 어딘가로 길을 떠난다. 그의 인생 스케줄에 죽음이 가깝게 예고되어 있다면 죽음에 저항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 자신의 근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가족, 애인과 결별하고 일을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할머니를 찾아 떠난다. 로맹은 그에게 남은 시간을 슬픔과 분노로 허비하기보다 고독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대면하기로 마음먹는다. 죽음은 위로로 해결될 수 있는 상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타임 투 리브’는 로맹을 통해 죽음에 대한 부정 분노,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심경의 변화를 밀착해 보여준다. 프랑스 영화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젊은 감독 프랑수아오종은 죽음에 대해 차분하고 섬세한 시각을 견지한다. 젊고 유능하고 아름다운 로맹은 어떤 면에서 감독의 자화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이 아름다운 페르소나를 통해 죽음이라는 타인의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주관화한다.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죽음을 맞이하는, 이 슬프고도 황홀한 아이러니 앞에 선 남자는 연어처럼 천천히 자기 자신의 본질로 거슬러 올라가 최후를 맞는다. 어쩌면 죽기에 적합한 시점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마련될 뿐.

죽으면, 사라진다. 프랑스 학자 레지스 드브레는 미술의 기원을 죽음에서 찾았다. 누군가 죽는다면 그를 볼 수 없다. 그러니까 그의 물질적 현재, 감각적 세계에서 신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만지고, 냄새 맡고, 볼 수 있었던 ‘그’가 사라지는 것, 그것이 바로 감각적 세계에서 죽음에 대한 경험이다. 레지스 드브레가 말하는, 죽음을 대신하는 미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라진 신체를 대신하는 물질, 그것이 바로 미술의 시작이다. 종교와 구분되지 않는 일종의 주술로서 미술이 비롯되었다면 분명 부재(不在)는 상징적 물질로 보충되었을 것이다. 죽은 왕을 대신하는 마스크라든지 동상은 부재를 메우는 물질로서 예술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소설가 박일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여자 친구가 자살한 뒤 살아남은 아픔을 이야기한 바 있다. 하루키 열풍의 도화선 ‘상실의 시대’ 역시 먼저 떠난 두 친구에 대한 애도에서 시작된다. 내 곁을 떠나버린 친구, 자살로 너무나 일찍 어린 나이에 세상에서 지워진 녀석들.

살아남은 자의 대처

의외로 죽음은 남겨진 자의 몫이 된다. 떠난 사람, 죽은 사람의 가장 큰 힘은 이제 더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변하는 것, 마음을 바꾸고 배신하거나 혹은 망각하는 것은 모두 살아남은 자들의 얘기다. 그래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때로는 죄스러운 마음이 되기도 한다. 죄스러운 마음, 우리는 고인에 대한 그 죄책감을 애도로 표출한다. 애도는 슬퍼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애도의 본질은 바로 충분히 슬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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