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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의 남자 옷 이야기 ⑧

남성복식의 화룡점정, 액세서리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남성복식의 화룡점정, 액세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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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액세서리 하면 여성의 전유물로 생각되지만, 실상 액세서리는 오래전부터 남성의 개성과 품위를 강조하는 데 한몫했다. 벨트, 포켓스퀘어, 커프링크스, 시계 같은 소품들이 정장의 멋을 한껏 살리는 것이다. 남성복의 스탠더드, 영국 신사는 보수적인 느낌의 정장을 고집하는 동시에 무게감을 완화시킬 만한 튀지 않는 액세서리를 탐색한다.
남성복식의 화룡점정, 액세서리
남성을 위한 제품들은 여성 제품에 비해 어느 정도 다양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고대부터 근대로 접어드는 18세기까지만 해도 공무나 사적인 경우 모두, 남성 복식이 여성 복식보다 훨씬 다채롭고 더 화려했다. 당시 여성을 위한 복식은 몸을 풍성하게 감싸도록 고안된, 실제로는 고래 뼈를 사용해 허리를 비정상적으로 조이는 드레스가 대표적이었다. 반면 남성을 위한 복식은 군복과 연회복, 평상복과 스포츠웨어에 이르기까지 장소와 목적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매우 넓었다.

특히 강력한 왕권이 확립돼 있던 프랑스를 중심으로 궁정문화가 발달해 남녀불문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복식과 화장술을 선호했다. 남성을 위한 별도의 스타일리스트가 있었을 정도다. 오늘날 여성의 전유물인 스타킹이나 하이힐, 심지어 가터벨트까지 원래는 남성이 치장하는 데 썼던 것들이라고 하니, 당시 남성패션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고대의 문화유산만으로도 후손들이 먹고살기에 충분하다고 하는 프랑스에서 럭셔리 브랜드가 다수 출현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찍이 패션산업에서 독보적인 취향과 규모를 선보인 나라가 프랑스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의미에서 남성복의 스탠더드는 영국이 출발점이다. 이는 프랑스의 사치스러운 귀족문화가 프랑스대혁명이라는 획기적인 사건을 통해 대중적으로 부정되고 절제됐던 영향이 크다. 권력과 지배계급이 모두 폭력을 수반해 교체되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프랑스와 달리, 명예혁명이라는 무혈의 권력교체를 이뤄낸 영국은 근대 제국으로 강력하게 떠오르면서 사회 문화와 스타일 면에서도 큰 변화를 겪었다. 의회를 중심으로 부상한 영국의 엘리트 귀족들은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던 프랑스와의 관계를 아무래도 잊지 못했는지 프랑스식 화려한 복식과 사치품들을 허례라고 비판하며 배격한다. 따라서 영국식 복장은 보수성을 기본으로, 군대와 사립학교 그리고 스포츠를 자양분 삼아 정립됐으며, 영국의 식민지 획득과 더불어 세계로 진출한다.

다민족 국가인 영국의 문화는 하나의 특성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포멀한 슈트를 입은 어느 영국 신사는 근엄한 표정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코미디언이 아니면 감히 시도하지 못할 빨간색 양말을 신으며, 타인에게 셔츠를 보이는 것은 속옷을 보이는 것과 같다 하여 재킷을 벗지 않으면서도 유머러스하거나 섹시한 그림을 담은 서스펜더(suspender)를 매기도 하니 말이다. 영국은 군주나 귀족들이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고 할 만큼 집사 문화가 발달했지만, 대부분의 영국 남성에게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나 지갑은 여전히 필수품이다. 또한 가벼운 비는 아무렇지 않게 맞고 다니는 그들이지만, 다양한 소재의 모자나 묵직한 우산은 여전히 영국적인 그 무엇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전세계 남자들은 성장(盛裝)을 하면서부터 영국이라는 나라에 어느 정도 빚을 지는 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자의 품격을, 때로는 생각지 못한 유쾌한 위트와 유머를 드러내기도 하는 액세서리에 이르러서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영향력이 더욱 놀랍다.

아름다운 조화를 위한 액세서리



액세서리는 슈트나 구두, 셔츠처럼 중심적으로 드러나는 의복 그 자체는 아니다. 액세서리에 대한 잘못된 통념 중 하나는 그것이 반드시 보수적으로 보이는 남성의 옷차림을 개성적으로 마무리하거나 멋지게 튀어 보이게 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액세서리의 목적엔 어느 정도 착용자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함이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룩이 조화를 이루도록 촉매 기능을 하는 데 있다.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프랑스인보다 훨씬 금욕적이었던 근대 영국인들은 남성의 옷차림을 그의 존재감이나 사회적 지위와 동일시했다. 따라서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특정한 제품이 도드라진 차림새는 영국인답지 못하다고 보았다. 19세기 초에 형성된 근대적인 영국 국민성에 의하면 사회 질서를 지키지 않거나 전통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행위, 그리고 자연을 파괴하는 삶이나 페어플레이 정신의 실종 등에 대해 영국인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옷과 액세서리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차림에 대해서도 같은 시각이 견지됐을 것이다. 요컨대 영국인의 미묘한 의식 속에는 시대와 무관하게 가장 보수적인 느낌의 정장을 고집하는 동시에, 그런 복장이 갖는 격식을 티 나지 않게 완화해주는 디테일에 대한 고민이 함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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