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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마지막 회>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 박상희|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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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된 혁명가의 최후

지금 한 사람이 욕조 안에서 죽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혁명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마라가 반대파를 지지한 한 여성에 의해 암살된 직후의 극적인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마라는 피부병을 앓고 있었기에 식초에 담근 터번을 둘렀는데, 이 혁명 지도자의 비극적 최후를 다비드는 밝음과 어둠의 극적 대비를 통해 생생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록 생명을 잃었지만 마라의 모습은 혁명의 순수함과 숭고함을 느끼게 합니다. 마라의 이름 아래 자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적어 넣음으로써 다비드는 혁명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비드의 일련의 작품은 미술과 정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예술의 한 영역으로 미술은 여느 예술 분야 못지않게 정치적일 수 있습니다. 정치의 선동과 선전에 미술은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라의 죽음’은 그 적절한 사례입니다. 한 혁명가의 죽음을 화폭에 담아 다비드는 혁명이 가져온 뜻하지 않은 비극을 마주하게 하고, 그 대면(對面) 속에서 혁명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환기시킵니다.

그러나 미술 작품에 선전과 선동이 너무 분명하게 표현돼 있을 경우 그 예술적 가치는 훼손되기 마련입니다.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의 미술이 대표적인 사례이겠지요. 과도한 선전과 선동은 결국 미술을 수단화함으로써 인위적인 감동을 강제합니다.

저는 예술적 감동이란 자연스러운 것일 때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권력을 위한 미술’은 생각만 해도 불편합니다. 미술을 포함한 예술의 일차적인 가치는 그것을 보는 인간의 마음속 무엇인가를 자연스럽게 건드려 공감을 느끼게 하고, 그 감동을 통해 삶의 기쁨과 위안을 얻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정치 이념과 예술적 감동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미완성 작품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박상희]

여하튼, 선전과 선동의 의미를 화폭에 담으려고 할 경우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화가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점에서 다비드는 정말 놀라운 능력을 갖춘 화가였습니다. ‘마라의 죽음’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선전과 선동을 앞세운 게 아니라 미술적 성취를 통해 그 결과로서 혁명 가치를 재발견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화가가 특정한 정치 이념을 지지하거나 표명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근대 이후 어떤 화가들은 정치적 성향이 분명했고, 어떤 화가들은 정치적 이념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성향이 분명한 화가라고 모두 자신의 이념을 화폭에 담지는 않았습니다.

다비드가 이례적인 것은,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을 지지한 그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분명하게 표출한 작품을 다수 남겨놓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이러한 다비드의 작품들이 상당한 예술적 감동을 선사한다는 점입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요한 요하임 빙켈만은 “고대 미술이 단순함, 엄격함, 장엄함, 품위 있음 등의 느낌을 안겨준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빙켈만의 주장은 신고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다비드의 작품들은 신고전주의가 지향한 가치들을 잘 담고 있습니다. 작품에 담긴 정치적 코드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다비드의 그림은 보는 이에게 감상의 즐거움을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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