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호

요리연구가 이종임 - 건강 식단

“부부 백년해로, 밥상머리에서 결정됩니다”

  • 글·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jikija@donga.com

    입력2007-04-12 12: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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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 7년 만에 결혼, 30년 가까이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오죽 잘 알까. 하지만 잘 안다고 해서 상대를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식습관이 그렇다. 결혼 전부터 육식을 즐기고 화학조미료를 잔뜩 넣은, 맛이 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이제 건강을 생각할 때도 됐는데 좀체 고집을 꺾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야…작전 개시다!
    요리연구가 이종임 - 건강 식단
    1980년대 들어 나라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였다. 이종임(李鐘任·55) 수도쿠킹아카데미 원장은 그 시절 매일 아침 TV에 모습을 드러내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를 탔다. 주부들은 그의 손놀림을 유심히 지켜보고, 그가 조리 있게 설명하는 요리법을 받아 적느라 바빴다. 저녁 밥상에 새로운 요리를 올려놓기 위해서다. ‘저 여자랑 사는 남편은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정작 이 원장은 집안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7년 열애 끝에 이 원장과 결혼한 박영요(57)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의 몸에 밴 식습관 때문이다.

    “전 육식을 별로 하지 않는데, 남편은 고기를 즐겨 먹고, 흰쌀밥에 간이 센 반찬을 좋아해요. 그뿐인가요. 인스턴트 음식 많이 먹고, 회식도 자주하고요.”

    습관은 이성보다 강한 모양이다. 요리연구가와 의사가 만났으니 건강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최상의 궁합일 것 같은데, 박 교수의 고집스러운 입은 이 원장의 건강하고 소박한 손맛에 선선히 혀를 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20년 넘게 이틀에 한 번꼴로 밥상에 고기를 올리는 등 남편 입맛을 따랐다.

    요리연구가 이종임 - 건강 식단

    노화 방지, 각종 성인병과 암 예방법이 따로 있나. 부부가 신선한 제철 과일을 나눠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이종임·박영요 부부는 1년 전부터 매일 아침 토마토주스를 꼭 챙겨 먹는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이 원장의 표현대로 ‘몸에 나쁘다는 음식만’ 좋아하는 박 교수의 고집이 누그러진 건 5년 전쯤이다. 이미 담배는 끊은 상태였지만 술과 스트레스에선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병원 진료와 학교 강의로 바쁘게 지내던 박 교수는 부쩍 자주 피로를 느꼈다. 급기야 주위 동료들로부터 “중년 남성에게 피곤은 건강의 시한폭탄”이란 말을 듣고 바짝 긴장했다. 의사가 그것도 몰랐을까 싶지만, 알면서도 자신에게 닥치지 않으면 절실하지 않은 건 의사나 환자나 마찬가지다.



    “암 환자나 성인병 환자를 자주 접하는데, 진찰을 받고 돌아서면서 ‘뭘 먹으면 좋을까요? 가려야 할 음식은 없습니까?’ 하고 묻는 환자가 많아요.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데, 건강한 사람이 잘못된 식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죠.”

    박 교수 스스로 위기감을 가지니 이 원장이 공략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외식 횟수를 줄이고, 외식을 하더라도 고깃집 대신 일식집을 찾는다. 밥상에 육류보다 조개류나 생선류가 오르는 날이 많아졌고, 육류를 먹더라도 반드시 양념하지 않고 불에 구워 기름을 쫙 뺀 다음 각종 쌈, 채소와 함께 먹는다. 육식 비중을 줄였지만 단백질 섭취 걱정은 없다. 두부를 부치거나 전날 불려놓은 검은콩을 믹서에 갈아 비지찌개를 끓이는 등 끼니마다 반드시 콩요리를 밥상에 올리기 때문이다.

    요리연구가 이종임 - 건강 식단

    이대목동병원장을 지낸 박영요 교수는 고전음악 마니아다. 거실에 자리잡은 육중한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로열 스피커와 1940~50년대에 만들어진 진공관앰프, 그리고 방 한쪽 벽을 가득 메운 LP판과 CD, 공연 실황을 담은 DVD가 박 교수의 오랜 취미를 짐작케 한다.



    요리연구가 이종임 - 건강 식단

    인간 수명연장 프로젝트는 이제 큰 의미가 없어진 듯하다. 길어진 수명을 얼마나 질 높게 영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종임씨는 “생활습관성 질환이 많아지는데, 이는 먹을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온 가족이 주말만이라도 가정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함께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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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원장은 어머니 하숙정 수도요리직업전문학교 교장과 이모 하선정씨를 이어 요리연구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00년 노르웨이에서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음악회가 열렸을 때 만찬장에 한식요리를 차려내 한국의 손맛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최근엔 ‘남편을 90살까지 살리는 매일반찬’을 펴냈다.



    “건강식이라고 거창한 건 아니에요. 저희 집 밥상엔 청국장찌개, 생선찌개, 김치찌개, 된장찌개, 비지찌개 이 다섯 가지가 매일 돌아가며 올라와요. 반찬으론 샐러드나 각종 나물 무침을 자주 만들고요. 채소를 데치거나 익혀서 반찬으로 해먹으면 날것으로 먹을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지요. 나물 무칠 때 청국장가루를 넣고, 샐러드 드레싱으로 유자청이나 들깨, 플레인 요구르트를 쓰고요. 아침식사로는 시리얼이나 오곡으로 된 찰떡을 구워서 토마토주스와 함께 먹으면 간편하고 건강에도 좋죠.”

    이 원장은 “토마토의 붉은 색소인 라이코펜이 항산화작용을 해 동맥경화 및 암 예방에 도움을 준다”며 “특히 남성들의 공포 대상인 전립선암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토마토에 물과 얼음을 약간 넣고 믹서에 가는 데 1분이면 충분하니 누구나 시도할 만하다.

    이 원장은 아직까지 박 교수의 식습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박 교수가 여전히 흰쌀밥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식탁에 검은 바람이 불 것이라고 믿는다.

    “40, 50대가 되면 그나마 건강을 염려하고 식습관에 신경을 쓰는데, 그전엔 잘 못 바꾸죠. 처음부터 100% 다 바꾸겠다고 욕심내면 실패하기 십상이에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전제하고, 계획을 길게 잡고 하나씩 실천하면 어느새 ‘웰빙’이 됩니다. 당장 외식 빈도를 낮추고, 유기농 채소와 제철 과일을 사 먹는 것으로 시작해보세요. 식탁혁명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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