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 7년 만에 결혼, 30년 가까이 함께 살았으니 서로를 오죽 잘 알까. 하지만 잘 안다고 해서 상대를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식습관이 그렇다. 결혼 전부터 육식을 즐기고 화학조미료를 잔뜩 넣은, 맛이 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이제 건강을 생각할 때도 됐는데 좀체 고집을 꺾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야…작전 개시다!
그러나 정작 이 원장은 집안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7년 열애 끝에 이 원장과 결혼한 박영요(57)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의 몸에 밴 식습관 때문이다.
“전 육식을 별로 하지 않는데, 남편은 고기를 즐겨 먹고, 흰쌀밥에 간이 센 반찬을 좋아해요. 그뿐인가요. 인스턴트 음식 많이 먹고, 회식도 자주하고요.”
습관은 이성보다 강한 모양이다. 요리연구가와 의사가 만났으니 건강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최상의 궁합일 것 같은데, 박 교수의 고집스러운 입은 이 원장의 건강하고 소박한 손맛에 선선히 혀를 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20년 넘게 이틀에 한 번꼴로 밥상에 고기를 올리는 등 남편 입맛을 따랐다.
노화 방지, 각종 성인병과 암 예방법이 따로 있나. 부부가 신선한 제철 과일을 나눠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이종임·박영요 부부는 1년 전부터 매일 아침 토마토주스를 꼭 챙겨 먹는다.
“암 환자나 성인병 환자를 자주 접하는데, 진찰을 받고 돌아서면서 ‘뭘 먹으면 좋을까요? 가려야 할 음식은 없습니까?’ 하고 묻는 환자가 많아요.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데, 건강한 사람이 잘못된 식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죠.”
박 교수 스스로 위기감을 가지니 이 원장이 공략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외식 횟수를 줄이고, 외식을 하더라도 고깃집 대신 일식집을 찾는다. 밥상에 육류보다 조개류나 생선류가 오르는 날이 많아졌고, 육류를 먹더라도 반드시 양념하지 않고 불에 구워 기름을 쫙 뺀 다음 각종 쌈, 채소와 함께 먹는다. 육식 비중을 줄였지만 단백질 섭취 걱정은 없다. 두부를 부치거나 전날 불려놓은 검은콩을 믹서에 갈아 비지찌개를 끓이는 등 끼니마다 반드시 콩요리를 밥상에 올리기 때문이다.
이대목동병원장을 지낸 박영요 교수는 고전음악 마니아다. 거실에 자리잡은 육중한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로열 스피커와 1940~50년대에 만들어진 진공관앰프, 그리고 방 한쪽 벽을 가득 메운 LP판과 CD, 공연 실황을 담은 DVD가 박 교수의 오랜 취미를 짐작케 한다.
인간 수명연장 프로젝트는 이제 큰 의미가 없어진 듯하다. 길어진 수명을 얼마나 질 높게 영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종임씨는 “생활습관성 질환이 많아지는데, 이는 먹을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온 가족이 주말만이라도 가정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함께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 이 원장은 어머니 하숙정 수도요리직업전문학교 교장과 이모 하선정씨를 이어 요리연구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00년 노르웨이에서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음악회가 열렸을 때 만찬장에 한식요리를 차려내 한국의 손맛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최근엔 ‘남편을 90살까지 살리는 매일반찬’을 펴냈다. |
“건강식이라고 거창한 건 아니에요. 저희 집 밥상엔 청국장찌개, 생선찌개, 김치찌개, 된장찌개, 비지찌개 이 다섯 가지가 매일 돌아가며 올라와요. 반찬으론 샐러드나 각종 나물 무침을 자주 만들고요. 채소를 데치거나 익혀서 반찬으로 해먹으면 날것으로 먹을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지요. 나물 무칠 때 청국장가루를 넣고, 샐러드 드레싱으로 유자청이나 들깨, 플레인 요구르트를 쓰고요. 아침식사로는 시리얼이나 오곡으로 된 찰떡을 구워서 토마토주스와 함께 먹으면 간편하고 건강에도 좋죠.”
이 원장은 “토마토의 붉은 색소인 라이코펜이 항산화작용을 해 동맥경화 및 암 예방에 도움을 준다”며 “특히 남성들의 공포 대상인 전립선암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토마토에 물과 얼음을 약간 넣고 믹서에 가는 데 1분이면 충분하니 누구나 시도할 만하다.
이 원장은 아직까지 박 교수의 식습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박 교수가 여전히 흰쌀밥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식탁에 검은 바람이 불 것이라고 믿는다.
“40, 50대가 되면 그나마 건강을 염려하고 식습관에 신경을 쓰는데, 그전엔 잘 못 바꾸죠. 처음부터 100% 다 바꾸겠다고 욕심내면 실패하기 십상이에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전제하고, 계획을 길게 잡고 하나씩 실천하면 어느새 ‘웰빙’이 됩니다. 당장 외식 빈도를 낮추고, 유기농 채소와 제철 과일을 사 먹는 것으로 시작해보세요. 식탁혁명이 가능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