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일, 사방을 에워싼 산 사이에 납작 엎드린 형국의 충북 영동 산시마을 어귀에서 그를 만났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지요? 그런데 아직 갈 길이 첩첩산중입니다, 하하.”
맑은 산 공기를 맘껏 마셔서일까. 탄탄한 몸집과 꼿꼿한 등, 빠른 말투와 힘찬 손동작에서 청년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서울에서 차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산시마을에서 이씨의 지프로 갈아타고 물구덩이를 거치며 비탈길 오르기를 40분. 그러나 산 중턱에 마법의 성처럼 자리 잡은 집을 보자 뒷목을 뻐근하게 한 피로가 싹 가시고 ‘달려온 보람’만 남았다.
꼭 필요한 것만 갖춘 소박하고 정갈한 방 세 칸짜리 주택이 이름 없는 이 산골에서 유일하게 사람 사는 집. 앞마당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쉼 없이 컨트리 음악이 흘러나왔고, 감나무 수국 메리골드와 크고 작은 새들이 음악에 호흡을 맞췄다.
‘도시의 카우보이 이양일’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등반 영화 속 산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닮은 거실이 나왔다. 전깃불 대신 집안을 밝히는 램프, 한쪽 벽면에 나란히 걸린 카우보이 모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땔감과 벽난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훌륭한 소품으로 빛을 발했다.
이씨 부부는 집 근처 산골을 외국 TV 드라마 ‘초원의 집’에 등장하는 ‘호두나무골’이라고 명명했다. 주변에 호두나무가 많다고 한다.
“카우보이 복장은 청바지에 체크무늬 남방, 부츠와 벨트, 그리고 모자가 기본입니다. 제가 이태원에서 직접 산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지인들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이지요. 편안한 멋스러움의 매력에 수십년간 이 복장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복장만이 아니다. 1970년대부터 컨트리 음악의 대가로 일컬어지며 라디오 DJ로 활동한 그는 10대 후반부터 음악, 복장, 카우보이 정신 등 미국의 컨트리 문화에 빠져들었다.
“외화 ‘초원의 집’의 주인공 잉걸스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 청바지는 부잣집 아들이나 입을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지만, 양키시장의 중고품을 뒤지며 청바지를 수집했죠. 컨트리 음반은 물론이고요.”
이씨 가족의 집이 두 곳에 있다. 청주집을 ‘도시집’, 영동집을 ‘시골집’이라 부르며 양쪽에서 번갈아 생활한다. 27년 전 헐값에 땅을 구입해 오두막집을 지은 이씨의 ‘초원의 꿈’은 25년 전 강수산나씨를 만나면서 구체화했다.
종종 ‘산장 음악회’를 연다는 이씨 가족. 이씨는 기타를, 아내 강씨는 만돌린을, 유빈 군은 바이올린과 비슷한 피들(fiddle)을 연주한다(오른쪽 위). 시골집에 오면 장작 패랴, 감 따서 곶감 만들랴 쉴 틈이 없다.
강씨의 말이다. 이씨 부부는 두 집 생활의 행복을 다른 이들도 꼭 체험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도시의 삶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그렇다고 시골에서만 살면 지루하죠. 양쪽을 오가면 평소 보지 못하던 도시와 시골의 정취와 장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모은 컨트리음악 음반 3000여 장과 카우보이 소품은 이씨의 보물 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