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서면 지옥’이란 말이 있다. 여행이란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니 웬만하면 집을 떠나지 말라는 은근한 암시가 담겨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이란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과 조상이 물려준 땅 모두를 뜻한다. 그러므로 집을 떠난다는 것은 고향, 조상의 산소, 생업인 농사일로부터의 이별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농경문화권에서는 여행이 자제되어야 했고, 이렇다 할 여행가가 태어나지 않았으며, 여행문화 또한 발달하지 못했다.
굳이 이러한 문화적 맥락을 따지지 않더라도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려움과 위험에 노출된다. 우리의 몸은 익숙한 것에 순응하고 낯선 것을 거부하는 이른바 ‘관성의 지배’를 받는데, 길 위에서는 모든 것이 내 통제 밖에 있기에 몸이 힘들어하는 것이다. 먹는 것, 자는 것, 교통편, 돈 관리, 안전문제 등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하고 머리를 굴려야 하니 힘겹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종종 길을 떠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도 돈과 시간의 여유만 생긴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여행이라고 했다. 그들 중에는 오로지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몸은 익숙한 것을 원하는데, 우리의 마음은 그 익숙한 것들로부터 탈출을 꿈꾼다. 왜 그럴까.
우리의 육신(魄)은 죽으면 땅으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정신(魂)은 하늘로 올라간다. 몸에는 고정된 주소가 있으나 마음에는 그런 게 없다. 땅은 부동(不動)하나 하늘은 동(動)한다. 그저 ‘동’하는 정도가 아니라 붕붕 떠다닐 수 있는 운동의 공간이다.
그래서 마음은 늘 새로운 세계를 지향한다. ‘신토불이’란 말은 있어도 ‘심토불이’란 말은 없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을 입에 올렸던 동아시아 농경민들도 혼백이 갖는 이런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을 못 떠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몸이 고달파야 마음이 즐겁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이다. 이것은 몸이 고달파야 즐거워하는, 참으로 희한한 성질을 갖고 있다. 가령 힘들게 운동하고 땀을 비오듯 흘린 뒤나, 맡은 바 또는 스스로 결심한 바를 열심히 수행하고 난 뒤에 어떤 기분을 갖게 되는지 생각해보라.
이런 연유로 옛 사람들은 몸을 단련함으로써 정신을 단련시키려 했다. 윗사람에게 인사하기, 규칙적인 생활습관 기르기, 주변 환경 깨끗이 하기,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기와 같은 몸의 숙달 없이는 정신의 고양이 이뤄질 수 없다고 보고 수신(修身)을 강조했다.
불교 또한 공덕(功德) 쌓기를 권장했다. 수도자들이 ‘도 닦는’ 광경을 떠올려봐도 득도와 고행은 동반자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몸에 편한 것은 인간의 본성을 망가뜨리고, 그리하여 자칫 인간을 타락의 길로 이끌 수 있다. 정신의 위대함은 욕망의 자기통제를 통해서만 빛난다.
이런 경향이 동양의 전통사회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서양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중세 수도원의 하루 일과를 살펴봐도 확인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영국의 명문학교인 이튼스쿨이나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등에서 크리켓이나 조정(漕艇) 같은 스포츠를 학생들에게 권장하는 사례만 봐도 짐작할 만하다. 그들은 스포츠 활동을 통해 젊은이들의 몸을 단련시킬 뿐 아니라 무엇이 공정하고 공평한 것인지, 사회정의는 어떻게 해야 실현될 수 있는지,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공정 공평 사회정의 용기 등은 추상적인 가치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렇다면 책을 통해 이론적으로 배워도 될 터인데, 왜 스포츠를 통해 그걸 가르치려 하는 것일까. 바로 거기에 몸과 정신의 함수관계가 존재한다(그런데 우리는 사회정의가 무엇인지를 오로지 머리로만 가르치려 한다).
몸의 단련, 그리고 그것을 통한 정신의 단련은 과정을 중요시하는 태도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과정은 생략한 채 그 열매만 얻으려 한다면 목표에 이르지 못할 뿐 아니라, 설령 그 언저리까지 간다 해도 결과가 자신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해롭게 할 개연성이 높다.
여행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여행이야말로 과정을 중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파리를 여행의 목적지로 삼았다 해서 파리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파리에서 그저 정형화된 스케줄에 따라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에펠탑, 노틀담대성당, 베르사유궁전 같은 명소들을 찾아다닌다고 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관광’일 수는 있어도 ‘여행’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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