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의 신작 ‘뇌’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문학상 시즌에 출간되어 여러 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을 누르고 수위를 차지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입맞춤을 보냅니다.”
그의 소년 같은 면모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그런데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은 그 메시지를 보고 오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이 작가는 그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못 해봐서 한이 맺혔나보군’ ‘대중적인 인기에 굉장히 연연하는 작가로군’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베르베르는 ‘뇌’가 출간되기 전에도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바 있다. 비록 한 주간에 그치기는 했지만, ‘천사들의 제국’으로 1위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그런 베르베르가 왜 ‘뇌’의 성공에 그토록 솔직하게 기쁨을 드러냈던 것일까.
베르베르의 승부수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프랑스 작가들이 문학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랑트레(rentre)’라는 시기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랑트레란 7, 8월의 바캉스 시즌이 끝나고 일상적인 활동이 재개되는 시기를 말한다. 학교로 말하면 개학이고, 기업이나 상점으로 말하면 업무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시점이다.
문단과 출판계에도 랑트레가 있다. 9월 초에서 11월 초에 이르는 두 달 남짓한 기간에 프랑스 신간 소설의 대부분이 출간된다. 프랑스 사람들이 1년 동안 읽을 새로운 소설들이 두 달 사이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올해의 경우 이 시기에 약 700종의 소설이 출간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관행은 공쿠르, 페미나, 르노도 등 주요 문학상 수상작들이 11월 초에 발표되는 오랜 전통과 맞물려 있다.
프랑스 문단의 랑트레는 말하자면 작가와 출판사들이 문학상을 놓고 한바탕 레이스를 펼치는 시기인 셈이다. 그래서 문학상 경쟁에 뜻이 없는 작가들이나, 신작의 홍수 속에 자기 작품이 묻혀버리는 것을 원치 않는 작가들은 이 시기를 피해서 책을 내는 게 상례다.
9월 초에 프랑스 문단의 거물 필립 솔레르스가 소설 ‘연인들의 별’을 출간했다고 해서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솔레르스가 공쿠르상에 욕심을 내고 있다”면서 그의 수상여부가 이번 랑트레의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점치기도 한다. 솔레르스 자신은 “공쿠르상을 받기에는 내 경력이 너무 무겁다”며 짐짓 점잔을 빼고 있지만, 프랑스 문단과 출판계에서는 그가 9월에 ‘연인들의 별’을 출간한 것을, 문학상 경쟁에 참여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솔레르스와는 이유가 달랐겠지만, 베르베르도 지금껏 문학상 시즌을 피해서 책을 내왔다. 자신의 문학세계가 문학상을 다투는 전통 장르와 거리가 멀다는 인식도 있었을 것이고, ‘현대사회에서는 과잉 출판이 곧 검열’이라는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엔 문학상 심사 결과가 한창 발표되고 수상작들이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하는 시기에 신작 ‘뇌’를 출간했다. 자칫하면 언론으로부터 떠들썩하게 각광받는 문학상 수상작들에 치여 빛을 못 볼지도 모르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베르베르 자신도 내심으로는 그 점을 적잖이 우려하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승부수가 적중했음을 보여줬다. 소설 ‘뇌’는 출간 1주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기세를 올리더니, 이후 몇 달 동안 공쿠르 수상작 ‘붉은 브라질’과 수위 다툼을 벌이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니 스스로 프랑스 문단의 ‘아웃사이더’로 규정했던 베르베르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