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구소가 한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2년 6개월 동안 하이에크, 뷰캐넌, 미제스, 애덤 스미스, 커즈너츠, 랜드, 바스티야, 액튼 등 50명이 넘는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책을 하드 커버로 만들어낸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름도 생소한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책이 대학 서가에 꽂히고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읽게 됐다. 읽는 것, 쓰는 것, 스스로 책을 펴내는 일을 함께 진행했다.
1999년 3개월간의 기부금 모집에서 90억원을 웃도는 돈을 모으는 데 성공한 나는 재단법인 자유기업원으로 분리·독립시키고, 연구소를 떠나서 사업의 세계로 인생의 방향타를 돌렸다.
이따금, 훗날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자유기업센터의 ‘자유주의 시리즈’만은 남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그 책들이 두고두고 한국의 지적 토대를 풍부하게 하고, 한국사회를 올바르게 인도하는 사상적 방향타를 제시하는 데 큰 몫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평생동안 추구할 것 같았던 연구소 생활을 접고 뛰어든 사업 세계에서는 책을 손에 잡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 그 세계를 떠난 지난해 8월 나는 개인연구소를 열면서 다시 한번 왕성한 독서에 몰입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한경와우TV의 ‘공병호의 독서대학’, MBC라디오의 ‘공병호의 독서산책’, 한국경제신문의 ‘공병호의 책이 있는 풍경’ 등 여러 독서 관련 코너를 맡으면서 이제는 책 읽기를 권하고 가이드 노릇까지 겸하게 됐다.
현재, 과거, 미래를 아우르는 책 읽기
1990년대 초반 날로 비어가는 머리를 채우기 위해 시작한 책읽기, 그 과정에는 이렇듯 하이에크와의 만남이 있었다. 책을 매개로 한 그와의 만남은 나 자신으로 하여금 연구소 설립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미리부터 예정된 삶이란 없다. 지식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나의 책 읽기는 인생의 진로를 바꾸었다. 그리고 책읽기를 통해 얻은 신념과 열정, 에너지는 30대를 열정적으로 이끌어온 원동력이 됐다.
40대로 접어든 후부터는 개인의 발전이라는 ‘자기경영’ 테마를 갖고 새로운 글쓰기와 글읽기 그리고 글 소개하기로 삶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 지난 15년간의 책 읽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인생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오묘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소한 순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사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도 ‘안테나’를 높게 세운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현재와 과거, 미래를 아우르는 책 읽기를 계속할 참이다. 그것에서 기쁨과 위안, 통찰력과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얻어진 지식들을 가공하고 재창조해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