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일…”
거시적 관점에서 현재 한국인이 느끼는 불확실성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와 관련돼 있다. 예컨대 고용의 불안이 그렇다. 한국이 새로운 고용시장을 창출하지 못하는 것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발전해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롭고 경쟁력 있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한 고용환경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장기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없는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인 노동시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감에 따라 젊은이들은 갈수록 위험을 회피한 채 쉽고 안정적인 길로만 가려고 한다. 이는 결국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인재 양성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다.
지난해 나는 연세대에서 강연하면서 한 학생으로부터 “요즘 많은 학생이 고시 준비에 매달리고 있는데,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그러한 현상이 한국의 우수한 젊은이들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답했지만 누가 대학생들의 이런 선택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하며, 국민이 더욱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의료혜택 증진이나 녹지 조성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몇몇 국가에서는 주도적으로 이런 일을 맡고 있다.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영국 정부가 가장 적극적인데, 2002년에 총리의 전략 자문단(Strategy Unit)은 행복 증진을 위한 정책의 시사점을 논하기 위한 ‘삶의 질 향상’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몇 달 뒤 정부는 행복지수 도입, 행복에 대한 교육 확대, 봉사 활동 지원 및 일과 삶의 균형 향상,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확대 등이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발표했다.
보고서의 저자는 이러한 아이디어 중 어느 선까지 정부 정책으로 채택해야 할지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의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확고한 의견을 피력했다.
일부 독재 국가에서는 훨씬 대담한 정책을 활용한다. 예컨대 절대 군주제인 부탄은 국민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서양 TV 프로그램 방송을 금지하고 있다. 물론 이런 방식은 독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정부의 기능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도 시사한다.
영국 정부가 발간한 보고서에서도 지적했듯 일과 삶의 균형은 국민의 행복 수준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일 자체가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인 한국에선 더욱 심각하다. 서열, 계급,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조직사회의 특성은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성과보다 증거물 찾기
미국의 작가이자 실천주의자인 로버트 퓰러는 최근 몇 년 동안 서열주의의 남용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조직 내에서 서열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일하기 좋은 직장, 더욱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처럼 경직된 사회에서는 의미 있는 시사점이다. 한국에서 일해본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계급이나 서열, 형식에 집착하는 조직문화를 접하고 한 번쯤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예전에 한 재벌그룹의 임직원과 함께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워크숍이 끝난 후 이들이 정해진 차량으로 서열에 맞게 퇴장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임원들이 서열에 따라 에쿠스, 다이너스티, 쏘나타 등을 나눠 타는 동안 직원들은 차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멈춰선 채 도열하고 있었다.
한국의 조직문화는 조직의 규정을 준수하고, 튀는 행동은 하지 말며, 명령에 복종할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하지만 이 같은 문화는 기업의 창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조직 구성원에게도 엄청난 중압감을 준다.
이는 조직원의 일과 삶의 균형 혹은 행복감에 영향을 끼치는데, 어떤 이들은 이 같은 조직문화가 한국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이므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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