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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를 만나는 황홀한 봄밤

개츠비를 만나는 황홀한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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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인용한 ‘위대한 개츠비’는 소설가 김영하의 번역에 의해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최신 번역본 문장이다.

2년 전부터 김영하가 머문 도시들을 테마로 여행기들이 출간되고 있는데, 시칠리아(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하이델베르크(김영하의 여행자-하이델베르크), 도쿄(김영하의 여행자-도쿄)를 거쳐 그는 현재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머물고 있다. 여행자 김영하가 브루클린에 머물면서 한국의 독자에게 내놓은 것은 여행기나 소설이 아닌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다.

사실 이 소설은 고등학생과 대학생, 일반인에게 권하는 필독서인 만큼 오래전부터 여러 번역자에 의해 수십 권이 나와 있다. 작가라는 존재와 마찬가지로 독자라는 신분, 또는 정체성을 고유하게 확보하고 그 특권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번역으로 읽어야 하는 외국 작품을 선택하는 섬세하고도 까다로운 기준이 있다. 내가 새삼 1925년에 출간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는 이유는 1925년 뉴욕의 피츠제럴드와 2010년 뉴욕을 바다 건너 바라보고 있는 김영하의 문장을 동시에 경험하고자 하는 욕심과 호기심에 있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가 외쳤다. “개츠비 씨의 요청에 따라 블라디미르 토스토프의 최신작을 연주하겠습니다. (중략) “이 작품의 제목은”, 그는 힘차게 결론지었다. “블라디미르 토스토프의 입니다.” (중략) 가 끝나자 여자들은 애교스럽게 남자 어깨 위에 머리를 올려놓는가 하면, 기절이라도 하듯이 남자들의 팔에 갑자기 몸을 맡기기도 하고, 심지어 누가 잡아주겠거니 생각하고 사람들 무리 속으로 몸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츠비한테는 그 누구도 그러지 않았고, 프랑스식 단발머리 여자들 중 누구도 개츠비의 어깨에 손을 대지 않았고, 또한 노래하는 무리들 중 그 누구도 개츠비와 함께 노래하지 않았다.

개츠비, 이 위대한 인물은 누구인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위대한’이라는 엄청난 수사가 붙은 것일까. 이 소설은 1925년에 발표된 길지 않은 장편소설로,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서 1929년에 닥칠 대공황 이전의 불안과 혼란, 격정의 뉴욕 풍경을 제이 개츠비라는 문제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생생하게 전해준다. 개츠비는 한마디로 미천한 출신으로 태어났으나 우여곡절 끝에 밀주업으로 부를 축적한 주인공. 개츠비가 활보하던 미국은 금광과 석유 채굴과 함께 산업혁명의 총아 런던에서 대서양 건너 뉴욕의 월스트리트 증권가로 자본이 형성되던 시기. 금으로, 석유로, 또는 술(밀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주인공들과 그들의 역동적인 생의 폭발과 끝을 우리는 몇몇 소설과 영화를 통해 알고 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의 고아 출신의 히스클리프,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가 주인공들이다. 또한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이 사내들의 가슴속 비밀을 알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그들은 존재하며, 또한 죽어간다는 것도 알고 있다. 히스클리프에게 캐서린이 있다면, 제이 개츠비에게 데이지가 있고, 그것은 그들에게 축복이자 저주이자 희망이었던 것.



위대하지 않은 사랑이 있으랴!

이 소설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육군 장교 시절 만났던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집요하고도 바보 같은 사랑이야기다(번역자 김영하는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로 근사하게 표현했다). 비극은 서로 알아보았고, 사랑에 빠졌으나, 둘 중의 하나가 다른 길(삶/사람)을 선택했다는 데 있다.

사치와 화려한 삶을 추구한 데이지와 전쟁 중에 만난 청년 장교인 개츠비의 사랑이 삶으로 영원히 포개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만이, 그럴 때만이 비로소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한다는 것. 제목에 사로잡혀, 피츠제럴드가 창조한 개츠비라는 사내의 위대성에 골몰하는 경우가 있다. 위대하지 않은 사랑이 있으랴! 번역자 김영하의 제목에 관한 사유를 전하자면, 피츠제럴드가 이 작품을 쓸 당시 뉴욕 근교 롱아일랜드의 그레이트 네크(Great Neck)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로 개츠비를 불러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어의 강박관념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위대함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Great’가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아니었다면, 피츠제럴드 사후 이토록 오랫동안 이 소설이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비록 출간되기까지 여러 곡절을 겪었고, 또 출간되었을 때 독자의 외면을 받았지만, 그래서 이후 잊힌 작가로 쓸쓸하게 말년을 보내야 했지만, 결국은 이렇게 눈부시게 살아남아 21세기의 젊은 독자들과 소통한다는 것. 이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있을까. 개츠비를 만나는 봄밤, 어둠조차 황홀하다.

신동아 201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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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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