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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가장 좋은 도구는 진실”

정호승 시인

“시를 쓰는 가장 좋은 도구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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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04쇄 찍은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 고교 때 학교 안 가고 쓴 평론 당선…장학금 받고 입학
  • ● “수도꼭지 틀면 물 나오듯 시는 나오지 않아”
  • ● 나는 문학을 들고 일하는 자영업자
  • ● 젊은 시인은 자의식과 표현 과잉 버려야
  • ● 지금은 웅덩이에 시가 고이기를 기다리는 중
“시를 쓰는 가장 좋은 도구는 진실”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과 더불어 한국 시단을 반짝반짝 빛내는 스타 시인 정호승. 정 시인은 1979년 3월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로 독자를 사로잡은 뒤 2010년 11월 10번째 신작 시집 ‘밥값’을 펴냈다. 등단 40년을 맞은 시인이 2006년 3월에 펴낸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는 이미 100쇄를 훌쩍 넘겨 지난 1월 27일 104쇄를 찍었다. 지금도 ‘서점가 터줏대감’으로 가부좌를 틀고 있다. 수많은 애독자를 거느린 정 시인은 그러나 요즘 너무 조용하다. 어디선가 또 가부좌를 틀며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을 거 같다.

4월 3일 오후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대치동의 한 커피숍으로 가는 날, 초겨울 날씨처럼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차디찬 봄바람도 몹시 거칠게 불었지만 그의 첫마디에 온몸이 스르르 녹았다.

“요즘 시를 통 안 쓰고 있어요. 요즘 시가 내 방에 찾아와 벌러덩 드러눕기도 하고, 슬슬 집적거리기도 해요. 시의 웅덩이에 시가 고이기를 기다리고 있어요(웃음).”

옆구리에 노란 책봉투를 낀 시인의 은빛 머리카락도 봄바람에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시인은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며, 데뷔작도 ‘첨성대’여서 아호(雅號)를 ‘첨성(瞻星)’이라고 지었다는 시인 정호승. 그래서인지 그날따라 시인의 눈에서는 더 많은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어머니 /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 아무리 멀어도 /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밥값’ 모두

원두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맑은 눈웃음을 툭툭 던지는 그에게 요즘 작품 활동에 대해 물었다.

“시로 등단한 지 꼭 40년이고, 소설가 박범신 선생과 같아요. 2010년 11월에 10번째 시집 ‘밥값’을 냈으니, 제가 시집을 너무 많이 낸 것인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 시인들은 보통 3년마다 시집 한 권씩을 내니까 조금 적게 낸 거 아닌가요. 11번째 신작 시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그동안 통 시를 안 쓰고 있었어요. 여름날 냇가에 가서 모래를 파면 처음에는 물이 안 고이는 것 같지만 조금 지나면 물이 스윽 고여 웅덩이가 되지요. 지금은 ‘밥값’ 이후 시의 웅덩이에 시가 고이기를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시인이 시를 찾아가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가 저를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올해 등단 40년이니까 시가 나를 찾아줄 것 같다는 소년 같은 설렘도 있지요. 예쁜 소녀가 그녀를 끝없이 기다리는 소년을 찾아오듯이.”

▼ 그동안은 시를 찾아가지 않았나요?

“맞아요. 항상 시를 찾아갔죠. 제가 시를 찾아가니까 시가 마중을 나오는 때도 있었고요. 요즘은 ‘밥값’ 이후 새로운 시집을 구상 중입니다. 이러한 계획들은 오늘의 문제이지 내일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오늘만 있지 내일은 없으니까요.”

시인 정호승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규동(1925~2011) 선생을 떠올렸다.

“제 나이 60이 되었을 때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나이를 물으시고는 ‘시인의 인생에서 60~65세가 가장 좋은 시를 쓸 때’라고 하셨어요. 지금도 그 말씀을 굉장히 귀하게 생각하고, 이 엄청난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 시인은 1950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63세다.

▼ 2006년 3월에 펴낸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는 이미 100쇄를 훌쩍 넘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2006년 3월에 펴낸 책이니까 햇수로 6년째지요. 제가 시작노트에 적어두었던 좋은 말 한마디와 책을 읽다 가슴 깊숙이 와 닿는 글귀를 토대로 삼아 쓴 산문입니다. 이 산문집은 중간쯤 쓰다가 낸 책이어서 올해 안에 제대로 끝내기 위해 마무리작업을 하고 있어요.”

인터넷을 뒤져보면 시인 정호승은 1950년 1월 3일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옮겨갔다.

“대구가 고향 같은 곳”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아버지가 대구에서 은행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인 ‘가난의 힘’을 깨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아버지가 은행을 그만두고 여러 사업을 하다가 잇달아 실패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때부터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녀야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활을 쏘아 명중시키려면 과녁을 멀리서 보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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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리│ 시인, 문학in 대표 ls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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