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산 기슭의 살 냄새
경치가 꽤 괜찮은 데마다 8경, 9경이니 별난 이름을 붙여놓는가 하면 골짜기 하나마저 7곡이니 9곡이니 해서 기막힌 풍경이 줄지어 있는 양 소문내는 것도 우리가 중국에서 배운 버릇이지만, 중국의 과장법이 세상에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땅의 8경9곡도 이름만 그럴싸할 뿐 볼만한 것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화양동계곡도 명승지 아홉 곳을 골라 화양 9곡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이는 차라리 그러지 아니함만 못하다. 그 경치가 다 경치인데 왜 헛된 이름을 붙여 선입관을 갖게 한단 말인가.
매표소에서 제9곡 파천까지는 10리 거리가 조금 못 된다. 상류로 가는 도중 계곡을 가로질러 걸쳐놓은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를 건너가면 도명산(643m)에 오르는 산길을 만난다. 골짝과 숲이 적절히 어울리는 데다 산길마저 완만하고 고요해 가벼운 등산을 하기에는 이처럼 근사한 데가 드물다. 더러 화양계곡의 경치에 실망한 이라 해도 도명산을 한 번 다녀오면 마음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도명산은 규모가 작은 속리산이라고 여기면 된다. 바위와 솔숲이 속리산의 그것을 빼다 박은 듯해서 그렇다. 정상에서 어미 되는 속리산의 연봉들을 바라보는 조망도 탁월하다.
도명산 자락 아래 서면
시골 간이역에 서 있던 장다리꽃
닷새 장터에서 맛보았던 허기
잊었던 스승의 숙제 문득 떠올라
새로움으로 불타는
푸른 이마의 높이를 올려 보았지
얼굴을 비추던 푸른 옥들은
쓰르라미 소리에 깨어져
급하게 달아나 버리고
부드러운 손길들은
견고한 근육들을
팽개쳐 놓고 흘러간다
나 이곳에 오래도록 있고 싶구나
떠나면 만나기 어려운 그대
물푸레나무 아래
궁륭이며 넘실거리는 살의 향기
뒤척이며 하얗게 변하는 욕망
- 최종원 시 ‘화양동계곡’ 전문
도명산 자락에 서면, 장다리꽃이며 배고픔, 옛날 숙제 같은 것이 떠올라 ‘새로움으로 불타는 푸른 이마의 높이’를 올려 본다고 하는데 글쎄, 나한테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별로 없다. 옛적의 간난과 고적함을 철 따라 변하는 산봉을 보며 환기한다는 뜻인가? ‘얼굴을 비추던 푸른 옥’도 마찬가지다. 산에 대칭되는 물의 심상을 끌어 오려고 한 듯싶지만 ‘옥’이 가지는 본래의 진부한 이미지 덕에 의미까지 반감되는 느낌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물과 바위가 이루는 교합과 별리(別離)의 관계를 남녀의 성적 이미지로 환치시키는 부분은 꽤 인상적이다. 이눔의 물들, 저 스스로 ‘견고한 근육’들을 찾아와 약을 올려놓곤 이내 나 몰라라, 달아난다. 가 봐, 더 멋진 근육들이 있나 해서 가다보면 결국 모래며 진흙뻘이나 만날 것이며 그때쯤이면 투명하던 네 몸에도 벌레들이 득실대고 못된 냄새만 풍기는 일밖에 없을지니…. 회초리로 자주 애용되는 데서도 보듯이, 물푸레나무 가지가 몸에 달라붙는 밀착도는 보통이 아니다. 그 아래의 궁륭(穹?)은 궁둥이처럼 생긴 바위를 말하는 거겠지. 그래야 ‘살의 향기’며 ‘뒤척이는 욕망’이 제 구실을 한다.
수려한 자연 가운데서 어떻게 몸 냄새 진한 시가 나오느냐고 트집을 잡는 이가 있다면, 그는 아직 사람살이와 자연의 기묘함을 잘 모르는 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인적 드문 산간에 앉아 번드레한 바위를 타고 흐르는 맑은 물을 보면서, 문득 명랑한 욕정 하나를 가질 줄 아는 사람이라야 자연과의 교합쯤도 제대로 궁리할 수 있지 않을까.
묘한 일이다. 시인만 그런 게 아니라 여러 차례 화양계곡에 가면서 나 또한 이 계곡이 풍기는 살 냄새를 맡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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