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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간 ‘안전한 약’…갑자기 ‘부작용 많다’ 말 바꾸기

정부 사전피임약 병의원 처방 추진의 불편한 진실

41년간 ‘안전한 약’…갑자기 ‘부작용 많다’ 말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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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간 ‘안전한 약’…갑자기 ‘부작용 많다’ 말 바꾸기

7월 4일 국회 보건복지위 남윤인순(민주통합당·위 사진) 의원실과 여성단체 주최로 열린 ‘여성의 결정권과 건강권 측면에서 본 피임약 재분류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 여성단체와 학계 대표들은 “피임약 재분류 결정의 주체는 여성이며 사전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7월 중순 어느 커피 전문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인근 회사의 부장과 직원 관계인 듯한 여성 2명이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목소리가 작지 않아 애써 엿듣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 내용이 귀에 들어온다.

“부장님 이야기 들었어요? 이제 먹는 피임약 사려면 산부인과 가야 한대요.”

“어, 정말? 큰일 났네. 남편이 그거(콘돔) 싫어해서…. 미리 좀 사놓아야겠네. 언제부터래?”

“8, 9월쯤 결정된다는데 벌써 약국에선 사재기가 시작됐대요.”

“산부인과 가서 처방받으라면 누가 피임약 먹냐. 여자들이 산부인과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남자는 몰라. 혹 잘못 갔다가 오해라도 받으면 어쩌냐.”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미리 좀 사두려고요. 남편이 자기만 일방적으로 피임하는 건 불공평하다 해서 (피임을) 몇 달 씩 번갈아서 하고 있거든요.”

“약국에서 잘 팔던 걸 갑자기 왜 그런대?”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 많고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군요.”

“참나, 그럼 나같이 거의 매달 먹는 사람은 뭐냐? 우리 엄마 때부터 먹던 약을 가지고 이제 와서….”

이들이 사재기를 해야겠다고 하는 피임약은 성관계를 맺기 전에 미리 먹어 임신을 방지하는 경구용(먹는) 사전피임약을 가리킨다. 피임약의 주성분인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프로제스틴)이 난자의 생산 자체를 막거나 배란을 연기한다. 21일 동안 같은 시간에 약을 먹고 7일 쉬는 식으로 반복해서 먹으면 피임이 된다. 사전피임약에 대한 여성들의 쑥덕거림은 그동안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사전피임약을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의사의 처방을 받아 먹도록 하는 안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피임약 재분류 날 선 공방

식약청은 6월 7일 일반의약품(약국 판매 일반약)으로 분류된 273개 약을 전문의약품(의사 처방 필수 전문약)으로 전환하고, 212개 전문약을 일반약으로 변경하는 의약품재분류안을 발표했다. 바로 이 재분류안에 지난 41년간 일반약이었던 사전피임약을 전문약으로 바꾸고 전문약이었던 긴급피임약(사후피임약,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돌리는 방침이 포함돼 있다. 식약청은 다른 약은 열람과 의견제출 과정을 거쳐 7월 말까지 안을 확정할 계획이지만 피임제에 대해서는 “과학적 판단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며 확정 시기를 못 박지 않았다.

긴급피임약은 사전피임약에 들어가는 두 가지 호르몬 중 프로제스틴의 용량을 단독으로 4~6배가량 늘린 것으로 성관계 후 72시간 안에 먹어야 피임이 되며, 빨리 먹으면 먹을수록 그 효과가 커진다. 배란 전에는 배란을 지연하거나 방해하고 수정이 됐을 경우에는 수정란의 자궁내막 착상을 막는다. 착상 전에 임신을 막는다는 점에서 ‘낙태약’은 아니다. 대다수 선진국에선 일반약으로 팔지만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전문약으로 지정돼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살 수 있다. 식약청은 이 약을 이번에 일반약으로 변경키로 했다.

피임약의 재분류안이 발표되자 여론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시민·사회·종교·이익단체가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반대의 내용은 서로 달랐다. 일부 종교계와 낙태 반대 시민단체, 그리고 의사들(특히 산부인과)은 사전피임약의 전문약 전환에 대해선 찬성하면서 긴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반대한다. 반면, 여성단체와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 경실련, 대한약사회는 긴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환영하면서 사전피임약의 전문약 변경에 대해 비판한다.

그래서 전자들은 식약청에 긴급피임약이 전문약으로 남도록 의견을 냈고, 후자들은 사전피임약을 일반약으로 그대로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6월 15일 식약청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선 식약청의 피임약 재분류안를 두고 각 단체 간 난상토론이 벌어졌지만 팽팽한 신경전만 벌이다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즉, 대한의사회를 비롯한 그룹은 사전이든 긴급이든 피임약은 모두 의사의 처방을 받도록 전문약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여성단체를 비롯한 그룹은 이 모두를 약국에서 소비자가 직접 살 수 있는 일반약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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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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