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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법

어른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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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불로장생약을 찾으며 불사에 집착하던 진시황이 웬일인지 요순임금 흉내를 내가면서 태산에 제사를 지내러 떠나다 중도에 큰비를 만난다. 비가 좀체 그치지 않자 나무 밑에서 비만 피하다 그냥 돌아와 결국 유생들의 비웃음을 산다. 진심으로 백성을 위하지도, 하늘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재물과 권력과 자기 안위만 챙기는 이가 어떤 번잡을 떨면서 자기 포장을 해도 결국 당대와 후대의 조롱거리가 된다는 교훈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자리가 높아지고 가진 게 많아질수록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은 받기가 힘든 법이다. 자칫 잘못하면 잘난 척, 있는 척이나 하고 나이 자랑이나 한다는 비난도 받을 수 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달하니 옛것은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해 ‘예의 없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갖게 된 탓도 있다. 존댓말이 없어 평등한 듯 보이는 서양에서도 교양 있는 사람들은 필요한 권위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예의를 엄격하게 따지는데 말이다. 일단 ‘맞짱’ 붙으면 세련된 것이라는 선입관이 노인들의 입지를 더 좁게 만드는 와중에도 둘러보면 어른 노릇을 멋지게 하는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비법은 무엇일까.

우선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오면 오는가보다, 가면 가는가보다’라며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고,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나를 알아주지 않지? 왜 나를 떠나려 하지?’ 라고 관계와 자리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인생 이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돈이나 권력으로 사랑과 존경을 구걸하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네게 얼마나 많이 투자했는데’ 하면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분노를 퍼부을 거라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 반대급부를 예상하고 베푸는 흉내만 내면 한과 억울함만 남을 것이다. 물론 ‘누구든 남 좋은 일만 하지’라며 회의하거나 남이 내게 감사해하지 않는 것 같아 괘씸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복이 많으니 남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고, 남보다 경험과 자원이 많아 남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이니 속상해할 것도 없다. 존재의 속성 중 하나인 허무감을 관계로써 보상받겠다는 희망 자체가 부질없다는 것을 얼른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가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여러 고통과 어려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꼭 필요하다. ‘왜 하필 나한테 암이? 왜 하필 나만 중풍이? 왜 내 사업체만 내리막길이야?’라고 따지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보다는 ‘나라고 뭐 특별한가. 나이 들었으니 병 걸리는 게 당연하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지. 이젠 정리를 할 때가 되었군’ 하고 크게 마음먹는 게 좋다.



물론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한다. 약 먹을 병이면 약 먹고, 수술할 병이면 수술한다. 몸 관리는 생명을 가진 자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미련 때문이 아니라, 죽지는 않는데 자꾸 아프다 하면 아무래도 남의 신세를 지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관리를 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훌륭한 양생법은 단순히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몸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라 했다. 건강과 젊음에 지나치게 집착해 몸과 건강의 노예가 되는 것도, 반대로 몸을 함부로 굴려 학대하는 것도 옳지 않다.

감정을 적절하게 유지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속으로는 원망과 회한으로 가득하면서 겉으로는 도사인 척하다가 술만 마시면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변해 난장판을 만드는 이들이 특히 문제다. 소리 지르며 화내는 것을 권위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신세 한탄하면서 죄의식을 유발해 자신이 목적하는 대로 주변 사람을 조종하려는 사람들 역시 감정 조절에 실패해 사람들에게 경원시된다. 큰소리 치며 야단법석을 떨면 뭔가 대단해 보일 것 같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감정 조절을 못해 10대처럼 소리 지르고 흥분하는 연장자나 윗사람은 결국 무시당한다.

젊은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겠다고 마음먹고 젊은이들을 모방하면서 너무나 가볍고 유치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흉거리다. 이미 다 지나간 농담을 장황하게 늘어놓아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이들, 사적인 자리에서 젊은이들보다 더 경박하고 더 끈적거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들, 후배들 앞에서 마음을 털어놓는다면서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이들은 어른답지 못하다.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의사소통을 하더라도 경계와 품격은 꼭 지켜야 진짜 어른이다.

나이 먹어도 꿈을 간직하면서 무언가를 겸손하게 배워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어른은 큰소리치고 위세를 떨지 않아도 존경받는다. 젊은이들이 이런저런 제안을 해도 “내가 다 해봤는데…”라며 마치 모든 것을 경험하고 달관한 것처럼 패배주의를 포장하는 어른을 젊은이들은 답답해한다. 아무리 늙었어도 젊은이들의 제안, 새로운 아이디어를 잘 듣고 감탄해주면서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함께 구체적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면 존경받을 것이다. 건강한 근육을 자랑하고 팽팽한 피부를 유지해도 “그런 거 다 소용없어. 니들이 몰라서 그래” 하는 식으로 주변 사람의 사기를 꺾는 어설픈 염세론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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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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