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목해변 카페거리
지금, 서울의 동쪽에서 백담사가 있는 용대리에 이르는 길은 반듯하게 펴져 있다. 비포장길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경춘고속도로를 따라 동홍천까지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그 후로도 소양호를 내려다보는 교각의 연쇄에 의해 금세 설악산 아래까지 도달한다. 그런 직선의 길옆으로 자전거 도로까지 근사하게 펼쳐져 있어 울긋불긋한 차림에 안전한 보호장구까지 갖춘 자전거족이 날렵한 페달링으로 달려간다. 그 맵시 나는 행렬을 가만히 쳐다보니 불현듯 사반세기 전의 무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이라도 낡은 자전거를 끌고 일부러 인제군 신남리 옛길을 찾아 달리고 싶다.
기억의 길을 찾아서
원래 8월의 여정은 강릉의 안목해변 커피거리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한순간이나마 애틋한 장소에서 애틋한 감정을 되새기며 자기 마음의 여린 부분을 다독여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이 연재의 뜻이었고, 그것을 위해 우선 강릉을 생각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심산유곡의 오지도 생각했으나 누구나 찾아가는 대표적인 피서지로 방향을 바꾼 까닭은 손쉬운 곳에서 마음을 다스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강릉이라면 경포해변이 있고 그 위로 속초와 그 아래의 삼척까지 크고 작은 해수욕장과 항구가 줄지어 있다.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요즘 들어 크게 각광받고 있는 7번 국도의 중심이다. 피서철을 맞아 가족이 여행을 한다면 하루는 해수욕장에서 쉬겠지만, 날마다 바닷가에서 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양의 낙산사나 삼척의 계곡도 찾을 만하거니와 특히 강릉의 커피거리라면 해 질 무렵 온 가족이 산책 삼아 나설 법한 장소라고 여겼다.
그러나 강릉 안목해변의 커피거리는 다정하지 않았다. 피서철이라서 그런가. 저녁 산책을 하기에는 너무 시끄러웠고 차가 많았고 무엇보다 커피가 무르익지 않았다. 세 군데 카페를 들렀다. 서울 같은 대도시의 길목마다 난립해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강릉의 커피거리에도 들어서 있었는데, 그것을 피해 세 군데를 들렀다.
피서철에 사람들이 몰려들어서일까, 일하는 친구들의 손이 서툴렀다. 해변에 카페가 몰려 있을 따름이었다. 아늑한 장소는 없었다. 독특한 향기를 지닌 곳은 드물었다. 의자나 테이블이나 조명 하나하나에 온 정성을 다한 느낌은 부족했다. 무엇보다 커피 맛이 얕았다. 피서철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 단위로 몰려드는 피서객들을 커피거리의 카페들은 수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아무래도 이 거리는 찬바람 분 다음이 제격일 것이다.
아뿔싸, 그렇다면 이제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이 취재의 목적은 커피거리를 시작으로 하여 가장 아늑하고 근사하고 기품 있는 카페를 찾아내고 그 맛과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었는데, 7월 말에서 8월 초에 걸쳐 있는, 연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강릉의 해변에서는 그 일이 무망했다. 정성껏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그래도 꽤 수준 있어 보이는 어느 전문 카페에서조차 그 바리스타는 끝없이 몰려드는 피서객 때문에 도무지 짬을 낼 수 없어 보였다.
나는 안목해변에서 벗어났다. 저녁은 곧 밤이 되어 있었다. 시내로 접어들어 강릉의 밤을 훑어보다가 오늘 밤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설국열차’를 보러 극장으로 갔다. 장안의 화제작인데다 언제고 볼 영화였으므로 이 텅 빈 시간을 활용하자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서다. 그러나 영화의 첫부분에서, 열차 소리가 극장을 가득 채우자마자, 나는 생각했다. 강릉의 카페거리에서 일을 마무리 못한 것이 차라리 좋았다. 아, 그렇지, 열차를 타러 가야겠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