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토탈 이클립스’와 압생트

매혹적 빛깔, 뇌쇄적 맛의 녹색요정

‘토탈 이클립스’와 압생트

2/3
‘시인의 제3의 눈’

개기일식(Total eclipse)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 전편에 걸쳐 인상 깊은 술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매혹적인 초록빛깔의 ‘압생트(Absinthe)’가 그것이다. 이 술은 영화 도입부의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든 베를렌이 랭보의 여동생을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랭보에 대한 긴 회상이 끝나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베를렌이 랭보의 여동생을 보내고 다시 두 잔의 압생트를 주문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음주 장면에 비중 있게 등장한다.

압생트에 대한 당시 파리 예술계의 반응은 참으로 대단했다. 베를렌은 랭보와의 첫 술자리에서 이 술을 ‘시인의 제3의 눈’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압생트는 예술가의 영감을 고취시키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았다. 압생트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당시 분위기는 랭보와 베를렌이 참가한 파리 시인들 모임에서 한 시인이 낭송한 ‘초록빛 압생트’란 제목의 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초록빛 압생트는 저주의 음료/ 혈관을 타고 흐르는 죽음의 독약/ 아내와 자식은 빈민굴에서 울고 있는데/ 주정뱅이는 압생트를 머릿속에 부어 넣는다.’

압생트는 암울한 시의 주제로 등장하는 것 외에 반 고흐, 피카소, 드가, 마네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당대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문호 오스카 와일드도 압생트에 대한 글에서 ‘계속 마시다 보면 당신이 보기 원하는 것들을 보게 되는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 당시 매혹적인 초록빛깔과 뇌쇄적인 맛으로 ‘녹색요정(green fairy)’이란 별칭까지 붙은 압생트는 과연 어떤 술이었을까? 압생트를 한마디로 말하면 알코올 농도 55~72%의 증류주로, 여러 가지 약초를 포함하고 있는 리큐르의 일종이다. 술의 주재료는 쓴쑥(wormwood)과 아니스. 이 중 아니스는 이집트가 원산지인 미나릿과 식물로 유럽, 터키, 인도, 남미 등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다. 그 열매인 아니시드는 독특한 향으로 향료나 빵, 술의 재료로 사용된다. 아니스를 이용한 술은 압생트뿐만 아니라 터키의 라키(raki), 그리스의 우조(ouzo), 이탈리아의 삼부카(sambuca), 프랑스의 파스티스(pastis) 등 지중해 주변 국가들에서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제조되고 있다. 이들 술에서 풍기는 강한 아니스 향은 한번 경험하면 절대 잊지 못할 정도로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압생트를 정작 유명하게 만든 재료는 쓴쑥이다. 쓴쑥은 유럽 원산의 국화과 다년생 식물로 글자 그대로 쓴맛이 강한 식물이다. 쓴쑥의 라틴 학명 ‘Artemisia absinthium’에서 압생트란 술 이름이 유래했을 정도로, 쓴쑥은 압생트의 중요한 재료다. 주된 성분은 투존이라는 화학물질인데, 압생트가 유발하는 각종 부작용, 즉 불안 경련 현기증 근육장애 등의 진범이라는 인식이 당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압생트의 부작용과 연이은 사건들

거슬러 올라가면 압생트는 1789년 정치적인 이유로 스위스에서 살고 있던 피에르 오디네르(Pierre Ordinaire)란 의사가 처음 만들어 만병통치 성격의 치료용 음료로 사용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관련 학자들은 당시 그 지방에 이미 존재하던 술을 오디네르가 처음 세상에 널리 알린 것으로 생각한다. 그 유래야 어찌됐건 이 술의 제조법은 그 후 여러 사람을 거쳐 메이저 듀비드(Major Dubied)란 사람에게 넘어갔고, 그는 아들 사위와 함께 1797년 본격적인 압생트 제조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사위 페르노(Pernot)가 훗날 압생트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다.

압생트는 19세기 중반 알제리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열병 예방 및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면서, 전쟁 후 군인들에 의해 그 인기가 더해졌다. 더욱이 필록세라 병충해로 프랑스 술시장의 전통적 지배자였던 포도주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때마침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가격이 떨어진 압생트는 19세기 말에 이르러 그야말로 프랑스 전역의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그러나 압생트의 인기에도 서서히 먹구름이 다가왔다. 압생트의 시작이 의사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그 쇠락의 단서 역시 의사들이 제공했다. 1860년대부터 파리의 한 정신병자 보호소의 주임의사였던 발렌틴 매그낭(Valentin Magnan)의 논문을 시작으로 압생트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 특히 신경정신 계통 부작용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꾸준히 제기됐다. 때마침 필록세라에서 회복한 포도주의 부활과 사회 전반에 걸친 절주, 금주 분위기도 압생트의 쇠락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 와서는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압생트의 주성분인 투존이 불안, 경련, 현기증, 근육장애 등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급기야 인상주의 대표화가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가 자기 귀를 자르고 끝내 자살하는 일련의 정신착란적 행위조차 압생트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런 와중에 1905년 스위스의 한 농부가 압생트를 마신 상태에서 부인과 두 딸을 총으로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당시 악소문에 시달리고 있던 압생트의 위상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사실 이 농부는 평소에도 하루 5ℓ씩 포도주를 마시던 알코올중독자였다. 사건 당일만 해도 압생트보다 훨씬 많은 양의 포도주와 코냑을 마신 상태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압생트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내 압생트는 벨기에(1906), 브라질(1906), 네덜란드(1908), 스위스(1910), 미국(1912) 등에서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되고, 1915년에는 본산지 프랑스에서도 법적 금지 품목이 되었다.

2/3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목록 닫기

‘토탈 이클립스’와 압생트

댓글 창 닫기

2023/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