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행복한 시선

  • 입력2010-06-03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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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시선

    <나쁜 소년> 1981년, 캔버스에 유채, 167×244㎝, 개인소장

    정사(情事)를 빠르고 짧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섹스를 할 때는 대부분 옷을 벗는다. 옷이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하거니와 촉감을 둔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은 섹스를 하고픈 욕구 표현인 동시에 남자의 시각과 촉각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남자의 시선을 자극하고 있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에릭 피슬의 ‘나쁜 소년’이다. 중년여자의 일탈을 그린 이 작품에서는 벌거벗은 여자가 침대 위에 누워 다리를 들어올리며 몸을 비틀고 있다. 남자는 옷을 입은 채 여자의 음부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손은 바지 뒷주머니에 가 있다.

    큰 침대만 놓인 방은 호텔임을 나타내고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햇살은 한낮임을 의미하며 흐트러진 침대 시트는 정사가 끝났다는 것을 암시한다. 침대 위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 거리낌 없이 음부를 남자에게 보이고 있는 여자는 정사가 끝났음에도 오르가슴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자의 벌어진 입술과 비틀린 몸 그리고 손은 자위행위를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남자의 머리 스타일은 소년을 상징하며 여자의 머리 스타일은 중년의 여자라는 것과 두 사람이 불륜 관계라는 점을 시사한다. 방 안 탁자에 놓인 과일 바구니는 섹스의 달콤함과 금방 시드는 정열을 상징한다.

    에릭 피슬(1948~)은 이 작품에서 남자가 여자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의 돈을 훔치고 있다는 점을 손을 뒷주머니에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젊은 남자가 중년의 여자보다는 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서 정신적인 위안을 찾기 위해 섹스에 빠져 있는 미국 중산층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기 위해 배경을 호텔방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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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플> 1977년, 사진, 개인 소장

    벌거벗은 여자의 도발은 섹스 전에 유효하다. 섹스가 끝난 후에 남자는 여자가 벗고 별짓을 다 해도 자극받지 못한다. 남자는 섹스 후에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섹스가 끝난 후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남자를 그린 작품이 낸 골딘의 ‘커플’이다. 섹스 후 여자의 복잡한 심정을 표현하는 이 작품에서 여자는 음부를 드러낸 채 팔로 가슴을 가리고 침대에 누워 있고, 남자는 침대 옆에서 책을 읽고 있다. 좁은 침대와 타원형 형태의 가리개는 호텔방임을 나타내며 여자의 음부가 정면을 향해 있는 것은 두 사람의 정사를 암시한다.

    여자에게 등을 돌린 채 남자가 바지를 입고 책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섹스의 황홀경에서 빠져나와 현실의 세계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여자가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는 것은 섹스 후 소외감을 나타낸다.

    낸 골딘(1953~)의 이 작품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남자와 침대 위에서 옷을 벗은 채 생각에 잠겨 있는 여자의 모습은 두 사람이 커플이지만 부부가 아님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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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인 누드 초상화: 화가와 그의 두 번째 아내> 1937년, 캔버스에 유채, 91×93㎝,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젊은 남자는 시각적인 자극만 받으면 시도 때도 없이 성적 충동이 일어나지만 중년의 남자는 여자가 벌거벗고 있어도 마음과 달리 성적 충동이 잘 생기지 않는다. 중년 남자의 서글픔을 나타낸 작품이 스탠리 스펜서의 ‘2인 누드 초상화: 화가와 그의 두 번째 아내’다. 이 작품은 노화로 인해 성적 욕망이 떨어진 중년 남자의 강박관념을 표현하고 있다.

    벽난로가 타오르는 방 안에서 남자는 침대에 앉아 다리를 벌린 채 누워 있는 여자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지만 여자는 남자의 시선에는 관심조차 없다. 축 처진 페니스는 여자가 벗고 있어도 발기가 되지 않는 남자의 현실을 나타내며 당당하게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자는 남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화면 오른쪽 벽난로의 불은 남자의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상징하며 화면 앞 닭다리는 벌거벗은 여자의 몸을 보고서도 발기되지 않는 남자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접힌 뱃살과 늘어진 피부는 남자가 중년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남자와 달리 탱탱하게 묘사된 여자의 육체는 여자에 매료되어 있는 남자의 심리를 나타낸다.

    스탠리 스펜서(1891~1959)가 그린 이 작품의 모델은 화가 자신과 그의 아내 페트리샤 프라스다. 스펜서는 페트리샤에게 매료되어 1932년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한 후 4일 만에 그녀와 결혼한다. 결혼 후 레즈비언이던 페트리샤는 스펜서에게 섹스의 대가로 집문서를 요구한다. 스펜서가 요구에 응하자 페트리샤는 함께 살지 않는다. 스펜서가 거부당하는 자신의 사랑을 노골적이고 솔직하게 담아낸 작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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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의 여름> 1949년, 캔버스에 유채, 71×101㎝

    섹스를 할 때 생리학적으로 남자는 여자의 성적 능력과 상관없이 짧은 시간에 최상의 만족을 얻지만 여자는 남자와 달리 속전속결로 끝나지 않는다. 섹스는 남자와 여자의 성기 결합만이 전부는 아니다. 질그릇같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여자의 성적 만족감은 남자의 성적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섹스에 만족하지 못한 여자의 심정을 담은 작품이 호퍼의 ‘도시의 여름’이다. 이 작품은 육체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중년 부부의 마음을 담고 있다.

    남자가 벌거벗은 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누워 있고 여자는 옷을 입은 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 방 안 가득 퍼져 있는 햇살이 아침임을 암시하며 창문 사이로 보이는 건물들은 도시라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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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숙

    동덕여대 미술학부 졸업

    성신여대 조형대학원 졸업

    강릉대 강사 역임

    개인전 9회

    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클림트’ ‘명화 속의 삶과 욕망’ 등


    남자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는 것은 남자의 성적 부실함을 암시하며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인 여자의 자세는 성적 불만감을 나타낸다.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이 작품에서 여자의 붉은색 옷은 성적 정열을 상징하지만 침대 시트가 정돈되어 있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섹스를 암시하며 남자의 몸을 가리고 앉아 있는 여자의 자세가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중년임을 의미한다. 또한 햇살에 노출되어 있는 여자는 성적 소외감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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