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20대 리포트

혀 내민 고양이, 반점 토끼, 렌즈 보는 앵무새

인스타그램에서 스타가 된 동물들

  • | 구민지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min19972@naver.com

    입력2018-09-05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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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동물 계정 인기몰이

    • 동물 좋아하지만 못 키우는 사람들 대리만족

    [초바비 계정]

    [초바비 계정]

    얼마 전 인스타그램 피드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잠자는 고양이의 모습이다. 입 사이로 분홍빛 혀가 살짝 보였다. 아래엔 “가끔 혀 넣는 걸 까먹어요”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몇 분 만에 3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다. 

    이 계정 주인공은 초바비. 바비로도 불린다. 프로필 사진에 도도한 표정의 그가 있다. 계정 상단에 기본 정보가 적혀 있다. 2017년 2월 26일 출생, 페르시안 쇼컷 믹스, 수컷. 

    이 계정엔 두 살 고양이 초바비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가득하다. 얼굴을 확대해 찍은 사진은 기본이다. 털을 잔뜩 세운 영상, 2m 정도 높이까지 뛰어오르는 영상도 있다. 이 고양이가 직접 운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물이 SNS 활동을 할 순 없다. 이 계정은 초바비를 반려동물로 두고 있는 민모(여·23) 씨가 관리한다.

    욕실 밖에서 우는 모습 ‘찰칵’

    민씨는 초바비를 키운 지 6개월 되던 무렵부터 계정을 만들었다. 원래 목적은 바비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민씨는 자신을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바비의 모든 행동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기 때문이다. 샤워 도중 욕실 밖에서 울고 있는 바비의 모습을 찍은 적도 있다고 한다.
     
    한번은 민씨가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취한 상태임에도 바비의 놀란 표정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다음 날 술이 깬 뒤 이 영상을 계정에 올렸다. 

    계정을 찾는 사람들이 늘자 민씨는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해시태그. 게시물 하나당 22개의 해시태그를 단다고 한다. 한글과 영어 태그는 기본. 고양이를 많이 기르는 일본인들을 타깃으로 삼아 고양이를 뜻하는 ‘네코(ねこ)’라는 일어 단어도 포함시켰다. 



    민씨는 “이렇게 하면 ‘좋아요’ 개수가 늘어난다”고 했다. 고양이 콘텐츠에 관련된 페이스북 페이지에 바비 사진을 보내 1200개의 ‘좋아요’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초바비의 모습을 보고 예쁘다고 하면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민씨처럼 키우는 반려동물의 모습을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리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고 아끼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주길 바라는 심리에서다. ‘아기가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어머니 마음’이라고들 한다. 

    ‘청이’라는 터키시앙고라(Turkish Angora) 고양이를 기르는 김모(23) 씨는 인스타그램에 청이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첫 반려동물인 청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예뻐서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계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곰이’이라는 토끼를 키우는 김모(22) 씨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나곰이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나곰이는 다른 토끼와 달리 눈 주위에 큼지막한 점이 있다. 

    노모(26) 씨는 ‘동당이’라는 이름의 사랑앵무를 기르고 있다. 별명은 노씨의 성을 따서 ‘노동당’이다. 계정에는 동당이의 일상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카메라 렌즈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사진이 유난히 많다. 노씨가 동당이 계정을 운영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원래 그녀는 반려동물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노씨는 “어느 날 예전에 기르던 앵무가 갑작스럽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동안 찍어놓은 사진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닫고 슬픔에 빠졌다”고 말한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종종 표현된다. 반려조의 모습을 기록해놓은 사진이 없으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노씨는 파양 위기의 동당이를 맡게 됐고 이번엔 정말 잘 대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계정을 시작했다고 한다. 노씨에게 반려동물 계정은 ‘동당이와의 추억을 기록하는 일기장’인 셈이다. 

    김모(여·22) 씨는 ‘호두’라는 토이푸들의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가 자기 계정을 두고 반려동물 계정을 따로 시작한 이유는 자기 계정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술을 좋아한다. 본 계정 게시물의 절반 이상이 사람들과 술 마시는 사진이다. 게시물 밑에는 항상 “#힐링음주”라는 해시태그를 단다. “계정 사진만으로 내가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반려동물 계정엔 호두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올린다. 

    이런 반려동물 계정들은 요즘 동물 특유의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어필한다.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게시물에 달린 댓글과 좋아요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 계정을 찾는 사람들은 동물을 좋아하지만 여러 사정상 기르지 못하는 현실에서 계정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다.

    “귀여운 걸 보면 기분 좋아져”

    한 유명 반려동물 인스타그램 계정엔 17만 명이 넘는 팔로어가 찾는다. 이들이 반려동물 콘텐츠를 소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귀여워서’다. 대학생 심혜빈(여·21) 씨는 아침 통학시간에 지하철에서 반려동물 콘텐츠를 즐겨 본다고 말한다. 유명 강아지 계정과 지인의 고양이 계정을 주로 팔로우하는 이유로 “귀여운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경욱(23) 씨는 최근 혼나는 중에 손을 내미는 강아지의 영상을 페이스북 담벼락에 공유했다. 그 아래에 “세상 근심 다 풀린다”는 설명을 달았다. 김씨는 평소 반려동물 영상을 거리낌 없이 공유한다. 이는 아스피린 같은 역할을 한다. 김씨는 “일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귀여운 걸 보면 조금 풀린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서로 활발히 교류한다. 계정을 서로 팔로우하면서 마음에 드는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남긴다. 그러다 보면 서로 친해지게 된다. 민씨가 운영하는 초바비 계정을 팔로우하는 이들 중에도 고양이와 강아지 계정 운영자가 많다. 

    얼마 전 바비가 그루밍(털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행동)하는 영상을 올리자 “안녕 바비! 설이랑 친구해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출처는 어느 강아지 계정이었다. 6000명이 넘는 팔로어를 가진 유명 고양이 계정이 댓글을 달아준 적도 있다. 이들 중에서 민씨가 얼굴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온라인에서 반려동물을 매개로 맺어진 인연이다.

    하나의 커뮤니티 문화로

    때로는 SNS 계정을 통해 반려동물 관련 정보를 얻기도 한다. ‘동자’라는 모란앵무의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 장모(여·22) 씨는 반려조 계정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말한다. “동자의 깃털 끝이 거뭇거뭇해졌을 때 한 팔로어 분이 영양제를 추천해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샴 고양이를 기르는 김모(여·22) 씨는 “책을 보거나 검색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반려동물 계정에 있는 정보가 더 알기 쉽고 와닿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다른 계정 게시물을 보고 반려동물용 물품을 구입한다. 한 반려동물 계정을 통해선 고양이 장난감 공동 구매가 이뤄졌다. 반려동물 계정을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커뮤니티는 어느새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 이 기사는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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